8명의 귀환 선교사 자녀를 둔 아버지가 자녀들의 선교 사업 준비를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제공: 드와이트 이건, Church News 기고자
기사 하이라이트
- 한 아버지가 여러 해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운, 여덟 아들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던 양육에 관한 조언을 나눈다. 아들 여덟은 모두 선교 사업을 마쳤다.
내가 1972년 영국 런던으로 선교 사업을 떠날 때 당시 91세이시던 내 할아버지 마혼리 모리앤쿠머 화이트는 나를 껴안으며 큰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지 너는 모를 거다!” 내가 2년 뒤 귀환했을 때는 할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나신 후였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결혼하여 아버지가 되는 앞날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여덟 아들을 키우는 일은 소규모 선교사 훈련원을 운영하는 것과 다소 비슷한 면이 있다. 특히 음식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수년간 일요일 저녁 부엌에서 먹어 치운 음식을 헤아려 보면 우유가 수백 통, 시리얼이 몇 트럭분, 구운 치즈 샌드위치가 수천 개는 될 것이며, 영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할 때 내 주식이었던 구운 콩을 얹은 토스트는 언제나 인기 있는 메뉴였다.
pinewood derby car(컵스카우트에서 하는 자동차 경주 활동 참여에 필요한 나무로 만든 모형 자동차-옮긴이) 24개를 연달아 만들고 나니, 우리 신발 상자는 우리가 만든 구식 모형 자동차들로 가득 찼다. 그중에서 우승을 차지한 차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트랙을 거꾸로 돌았던 차 한 대뿐이었다. 우리는 스카우트 캠프와 부자간 야외 활동을 수없이 다녀왔다. 우리는 아들들을 총 24개의 청남 직분에 성임했으며, 여덟 번의 축복사의 축복을 받고 선교사로 성별되는 순간을 여덟 차례 맞이하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프로보 선교사 훈련원에 여덟 차례 다녀왔으며, 아들들이 각자 선교사 훈련원 문을 통해 어른이 되는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해 으스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양육 기술 면에서 나를 훨씬 능가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도 자녀들의 현명하지 못한 선택으로 커다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사람마다 상황은 매우 다양하므로 자녀 양육이란 어려움이 가득한 삶의 현장에서 전에 받은 변변치 않은 교육으로 연습도 없이 행해지는 일이다. 아버지의 역할에 관한 다음 조언은 나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는 내가 양육 문제에 직면했을 때 유의하려고 노력했던 사항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모은 것이다.
“자녀를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Quotable Quotes,” Reader’s Digest, Jan. 1963, 25쪽에 실린 노틀담 대학교 시어도어 헤스버그 총장의 말씀에서 인용)
“자녀와의 관계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나의 아버지 메릿 에이치 이건 박사, 사적인 대화 중에서.(아버지는 내게 아들들과 함께 있는 첫 10분 동안 정말 잘 대해 주라고 권고했다. 그렇게 하면 그 이후에 다소 어려운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라도 훨씬 더 순탄하게 이어질 것이다. 이는 저녁 식사 중에 학교 성적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자녀는 삶의 방해물이 아니라 본연의 목적이다.” —리차드 에어와 린다 에어 부부, 노변의 모임 말씀 중에서.
“자녀가 ‘선교부 회장이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면 전 선교 사업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만한 아버지가 되라.” —큰형 엠 윈스턴 이건, 사적인 대화 중에서.
아들에게 선교 사업의 고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음 인용문이 와 닿았다. “저는 선교 사업이 결코 쉽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이 작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값싼 경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결코 쉬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 구원이 그분께 결코 쉽지 않았을진대, 어떻게 우리에게 쉬울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프리 알 홀런드(“선교 사업과 속죄”, 2001년 10월호, 리아호나).
아들들이 선교 임지로 떠날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 주곤 했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선교 사업을 떠난 다섯 번째 아들이었는데, 선교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 경험인지에 대해 놀랐고, 내게 닥쳐올 그 어려움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무도 알려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왜냐하면 그 경험은 내가 직접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형들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자, 남은 아들들은 집에서 떨어져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시련을 받아들이기가 쉬워졌다.
“여러분이 하게 될 주님의 가장 중요한 일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해롤드 비 리 회장(Strengthening the Home 소책자, 1973, 7쪽)
“결혼해서 자녀를 10명 정도 둘 때까지만 기다려 보라. 그러면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정말로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선교부 회장 밀란 디 스미스(그는 실제로 10자녀를 두었다.), 사적인 대화 중에서.
“개인 기도, 경전 공부 및 기독교인다운 봉사와 같은 속성으로 자녀를 양육하라. 이러한 행위는 자녀가 교회 활동과 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영적 목표에 도달하는 데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딘 엘 라슨 장로, 스테이크 대회 성인 모임 말씀 중에서.
“적극적으로 경청하라. 공감하며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정서적 복리를 향상하는 열쇠이다. 먼저 이해하려고 한 다음, 이해받으려고 하라.” —스티븐 알 코비, 영국 런던에서 선교 사업 시절 선교부 대표.
나는 아들들과 여행하며 차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가끔 주요한 주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는 정말로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가르치는 기회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가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우리 아들들에게는 모두 서로 다른 관심사와 재능이 있다. 우리는 양육 방식을 아들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맞추어 조정하려고 노력했다. 정해진 틀은 없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들이 항상 묻는 것은 결국 “저를 사랑하세요?”라는 질문임을 명심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하고 우리에게 의존하는 모든 자를 구원한 연후에야 우리의 사업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시온의 구원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에프 스미스(2011), 410쪽.
스미스 회장님의 이 말씀은 부모로서 우리의 일이 본질적으로 무한하며 영원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휴 니블리는 모세서 1장 39절에 관해 언급하며 “영광은 일에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 주었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점으로 나는 아들들을 키우고 아이들이 선교 사업과 성전 결혼, 그리고 직접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주된 일을 담당했던 내 아내 레슬리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으며 우리 부부와 아들들 그리고 손주들이 배워야 할 가르침이 아직 많이 있다. 여러 해 전, 매리온 디 행크스 장로님은 스테이크 대회에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분의 자녀 가운데 누구도 단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위안을 주셨다. 이러한 확신을 통해 우리는 미래에 대해 용기와 커다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주: 드와이트와 레슬리 이건 부부는 올해 17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 날에 선교사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덟 아들이 모두 귀환 선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화 대신 16명의 손주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