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사랑의 절기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해마다 여러분과 함께 이곳에서 제일회장단 성탄절 예배를 보며 성탄 절기를 시작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거나 다른 수단을 통해 이 모임을 청취하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제 사랑을 전합니다.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와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성탄 절기를 맞아 흔히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게 되며, “갈보리”라는 노래의 아름다운 노랫말처럼 “곤고한 자에게 안식과 영혼에 평안”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절기의 온갖 번잡함에 사로잡혀 우리가 갖고자 하는 바로 그 안식과 평안을 삶 속에서 잃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우리들 대다수는 특히 이 절기에 흔히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성탄절 활동에 참석하거나,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많은 돈을 쓰거나, 너무 많은 기대를 하거나, 너무 많은 긴장을 하는 것 등을 원인으로 들 수 있습니다. 흔히 성탄 절기의 활동 때문에 구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단순한 즐거움을 느껴야 할 시기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아 피곤에 지치고 기진맥진해 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서두르거나 종종걸음 친다고 성탄절의 참된 기쁨을 찾지는 못합니다. 더구나 선물을 구매한다고 그런 기쁨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절기의 주인인 구주에게 모든 초점을 맞출 때 참된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행하게 하신 일을 행하면서 그분을 우리 생각과 생활의 중심에 둘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성탄 절기에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하는 가운데 구주의 모범을 따르도록 합시다.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연로한 분들, 특히 외로움의 고통으로 힘겨워 하는 분들이 사랑과 관심을 애타게 갈망합니다. 꺼져가는 희망과 사라진 꿈의 차가운 바람이 연로한 분들과 장년기를 지나 초로에 접어드는 분들에게 쌩쌩 몰아칩니다.
여러 해 전에 리차드 엘 에반스 장로님이 이런 글을 남기셨습니다. “연로한 분들이 외로운 노년기에 필요로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불확실성의 청소년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소속감,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 그저 의무적이고 의례적인 격식이 아닌 사랑이 담긴 친절한 마음과 손길, 그저 어느 건물의 쉼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과 삶에서 의미 있는 한 부분이 되는 것 등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연로한 분들이 청소년기의 찬란한 아침을 맞게 해드릴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배려심과 지원, 적극적이고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석양의 따뜻한 황혼기를 더 아름답게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1
형제 자매 여러분, 참된 사랑은 구주의 사랑이 드러나게 합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성탄절의 영이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을 들을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어린 시절에 했던 한 경험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이 경험에 대해 한두 차례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11살이었습니다. 우리의 초등회 회장님이셨던 멜리사 자매님은 회색 머리의 사랑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초등회에서 멜리사 회장님은 모임이 끝나고 잠깐 남았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텅 빈 예배당에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초등회장님은 제 어깨에 손을 얹고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놀라 왜 우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초등회 개회 시간에 용기반 아이들이 좀 더 경건하게 있도록 할 수 없는 듯 하구나. 토미, 날 좀 도와주겠니?”
저는 멜리사 자매님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이후로 초등회에서의 경건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제게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멜리사 자매님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문제의 장본인은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사랑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90대가 되신 멜리사 자매님은 솔트레이크시티 북서쪽에 있는 한 요양시설에 사셨습니다. 성탄절 바로 전날 사랑하는 초등회 회장님을 방문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천사 찬송하기를”2이 흘러 나왔습니다. 수천 년 전에 동방에서 찾아온 현자들의 방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다만 사랑의 선물과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소망을 가져 갔습니다.
멜리사 자매님은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계셨습니다. 음식 담긴 접시를 응시하며, 주름진 손에 들린 포크를 들고 계셨습니다. 음식은 전혀 들지를 않으셨습니다. 말을 걸자 친절하나 멍한 눈빛으로 바라 볼 뿐이셨습니다. 손에 포크를 들고 멜리사 자매님에게 음식을 떠먹이며, 초등회 역원으로 소년 소녀들에게 했던 봉사에 대해 말했습니다. 전혀 알아 듣는다는 기미도 안보였을 뿐 아니라, 말 한마디 없으셨습니다. 요양원에 살던 다른 두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말해도 아무 소용없어요. 자기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세요. 이곳에 온 이후로 한 마디 하시는 것을 못봤어요.”
점심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저 혼자 하던 대화도 끝냈습니다. 떠나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분의 갸냘픈 손을 꼭잡고, 주름졌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들여다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멜리사 자매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성탄절 되십시오.” 돌연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군지 알겠구나. 넌 내 초등회 학생 토미 몬슨이야. 널 정말 사랑한단다.” 그분은 제 손에다 입술을 대며 사랑으로 가득한 달콤한 입맞춤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두 뺨을 따라 흐른 눈물은 꼭 잡은 우리 두 손을 적셨습니다. 그 날 마주 잡은 우리 손을 하늘에서 성결케 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천사들이 참으로 노래했습니다. 구주께서 하신 말씀이 그 때만큼 확연히 개인적인 의미를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3 이르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이런 노랫말이 들리는 듯 합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행복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때 옵니다. …… 성탄절의 [영]은 형제애와 우정으로 타오르게 하며 친절한 봉사 행위를 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참된 본질입니다.”5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가르친 원리에 마음을 쏟기에 성탄절 절기인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시간은 없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님과 우리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시간입니다. 다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돈을 주는 사람은 많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시간을 주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성탄절의 참된 뜻과 목적을 살리도록 합시다. 성탄절은 단지 장식 조각과 리본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해야 합니다. 성탄절은 받을 것을 따지는 이해타산 없이 아낌없이 주는 영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써 느끼는 행복입니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것을 버리고 참된 가치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수록 나눌 사랑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을 가장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가정이며 교회에 성탄절이 찾아 왔다네.
대형 마트에도 성탄절이 찾아 왔다네
하지만 마음에 깃들지 않는다면
성탄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리.
성탄절의 모든 영광이 우리를 둘러싸는 가운데, 우리도 동방박사처럼 우리가 섬길 이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이끌어 줄 밝고 특별한 별을 찾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기꺼이 베풀고자 하는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구주께 드릴 선물로 삼아 영적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납시다. 모두가 기쁨이 가득한 성탄절을 맞기를 바랍니다. 거룩하고 축복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