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야 할 모범
오늘날의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는 표준, 즉 따라야 할 모범을 필요로 합니다.
몇 년 전에 저는 한 교회 잡지의 표지에 칼 블로흐의 훌륭한 그림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화가가 그의 머릿속에 그려 두었다가 나중에 장인의 손길로 캔버스 위에 옮겨 놓은 그 장면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환영하는 사가랴의 부인 엘리사벳이었습니다. 두 여인 모두 기적적인 잉태로 태중에 아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침례 요한으로 알려졌습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와 마찬가지로 요한의 경우에도 유년 시절에 대해 기록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태어나서 성역을 베풀게 될 때까지 요한의 생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단 한 구절의 글이 전부입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1
요한의 메시지는 간결했습니다. 그는 신앙, 회개, 침수에 의한 침례 및 자기보다 더 큰 권능을 지닌 자에 의해 성신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요한은 그를 따르는 충실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2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3
그 후에 예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나중에 예수께서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4
오늘날의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는 표준, 즉 따라야 할 모범을 필요로 합니다. 침례 요한은 그의 뒤에 오실 분, 즉 인류의 구세주에게 항상 경의를 표함으로써 참된 겸손의 완벽한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른 다른 사람들에 관해 아는 일은 우리 영혼에 다음과 같이 속삭여 줍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5 단호하게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신뢰할 때 그들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들의 모범을 따를 때, 이 시대에 비슷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각자 따라야 할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에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번제물로 드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일은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불 땔 나무를 주워 모아 들고 정해진 정소까지 가는 그의 심정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삭을 묶어 제단에 있는 나무 위에 눕히고 손을 뻗어 그를 죽일 칼을 잡았을 때 분명 그의 몸과 마음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에게 온 영광스러운 명령을 그는 기쁨 섞인 놀라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6
아브라함은 의심 없는 순종의 귀감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어려움이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욥기를 읽어 보십시오. 그렇게 할 때 다음과 같은 느낌이 올 것입니다. “욥이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7 행동이 경건하고, 재물이 많은 욥은 어떤 사람이라도 멸망시킬 만한 시험에 당면했습니다. 재산을 잃고, 친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가족을 잃어 좌절한 그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8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유혹을 거절하고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외칩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9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심을 알고 있나니”10
욥은 끝없는 인내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고통을 겪는 사람을 가리켜 “욥의 인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 줍니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11던 사람은 예언자 노아였습니다. 어렸을 때 신권에 성임된 “그는 의의 전도자가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며 신앙, 회개, 침례 및 성신을 받음 등을 가르쳤습니다.”12 그는 그의 음성을 듣고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홍수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좇아 그와 가족이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을 한 쌍씩 모아 그들도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대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질 만한 징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13-그의 경고는 얼토당토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햇빛이 내리쬐고 생명체가 평상시대로 움직이고 있는 메마른 땅에서 방주를 짓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러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갔다. 홍수가 났다. 순종치 않은 자들은 물에 빠지고 말았다. 방주의 기적은 그것을 짓는 과정에서 보여진 신앙에 따라 나타났다.”
노아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따랐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때로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항상 옳바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적인 여성의 모범은 룻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훌륭한 두 아들을 잃어 고통 당하고 시름에 잠긴 마음을 이해하고, 나오미의 영혼을 괴롭혔을 절망과 외로움의 고통을 느끼며 충절에 대한 고전적인 말씀이 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4 룻은 그녀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나오미에 대한 룻의 변함 없는 충성을 통해 그녀는 보아스와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외국인이요 모압 출신의 개종자인 그녀는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고 구세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몰몬경에서 리하이와 새라이아의 아들인 위대한 예언자 니파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충실하고 순종했으며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레이밴에게서 놋쇠판을 가져오라는 어려운 임무가 주어졌을 때 그는 불평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명하시는 대로 이룰 수 있는 방편을 미리 마련치 아니하시고는 명하지 않으심을 제가 아오니, 주께서 명하신 대로 가서 행하겠나이다.”15 어쩌면 이러한 용기 있는 행동이 찬송가 “쇠막대”에 있는 권고의 가사를 쓰도록 영감을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니파이는 지치지 않는 결의의 모범이었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에 관한 이야기에서 이 경륜의 시대의 첫번째 예언자였던 요셉 스미스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완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열네 살밖에 안 되었을 때 이 용감한 소년은 후에 성스러운 숲이라고 불린 숲으로 들어가 그가 드린 진지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숲에서 받은 영광스러운 시현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했을 때 요셉에게는 박해가 끊이지 않고 뒤따랐습니다.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분명히 시현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도 알고 계심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17
단계적으로, 거의 계속해서 반대에 당면했지만 항상 주님의 인도를 받아 요셉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그는 모든 행동에서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을 향해 그의 형 하이람과 함께 카테지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그는 앞으로 닥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용감하게 직면했으며 그의 간증을 피로 인봉했습니다.
인생의 시험에 직면할 때 우리는 예언자 요셉 스미스가 보여 준 담대한 용기를 닮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하나님의 예언자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사랑하는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입니다. 그분은 수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큰 확장을 관리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교회 지도자들이 이제까지 가 본 적이 없는 나라들을 방문하셨으며, 세계 전역에 있는 정부 지도자들과 회원들을 만나 보셨습니다. 그분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분은 예언적인 비전으로 영구 교육 기금을 제정하여 세계 많은 지역에 있는 회원들의 빈곤의 사슬을 깨뜨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기술과 훈련을 습득하여 보수가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습니다. 이 영감 받은 계획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었으며, 이제 그들은 밝은 미래에 대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힝클리 대관장님은 모든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위치에 성전을 지어 주심으로써 전 세계에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 성스러운 축복을 가져다 주는 일을 끊임없이 해 오셨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든 그에 상관 없이 인생의 모든 상황과 배경에 처해 있는 그들을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확실한 낙천주의의 모범이시며, 우리는 그를 예언자, 선견자, 계시자로 존경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 사람들이 지닌 독특한 성품은 우리가 앞에 놓여 있는 문제와 시련에 당면할 때 우리에게 무한한 가치의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 있는 제롬 케니스 폴라드 가족의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5월에 타빌리 조셉 사무엘 폴라드 장로는 짐바브웨에서의 선교 사업 마지막 날에 선교부 사무실로 오던 중 그가 운전하고 있던 선교부 차에 뭔가 고장이 난 듯 나무를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자나가던 사람이 폴라드 장로의 동반자는 구출했으나 폴라드 장로는 의식을 잃고 차에 끼여 있었는데 차에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폴라드 장로는 죽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8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형제는 서 인도 제도 선교부에서 봉사 중이었습니다.
폴라드 장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그의 부친에게 전해졌을 때 이미 아내를 잃은 이 겸손한 사람은 서인도 제도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형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분명 비탄에 빠지고 상심했을 폴라드 형제와 그 아들은 장거리 전화를 통해, “난 하나님의 자녀”18를 불렀습니다. 통화를 끝내기 전에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며 주신 축복에 감사하고 그분의 위안을 간구했습니다.
후에 폴라드 형제는 그의 가족이 복음과 구원의 계획에 대해 강한 간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때가 찬 이 놀라운 경륜의 시대에 이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도전에 직면할 때,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 모범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침례 요한의 참된 겸손, 아브라함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순종, 욥의 끝없는 인내, 노아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 룻의 변함 없는 충성, 니파이의 지치지 않는 결의,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담대한 용기, 힝클리 대관장님의 확실한 낙천주의를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성품들을 발전시키는 것은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힘의 요새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리아의 아들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최고의 모범으로 인도되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생애는 우리가 따라야 할 완전한 모범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를 요람으로 받으신 주님은 필멸의 인간으로서 지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셨습니다. 지상에서 성역을 베푸시는 동안 주님은 인간에게 더 높은 율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은 세상의 사고를 바꾸셨습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축복하시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장님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죽은 자도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의 자비의 메시지, 그분의 지혜의 말씀, 그분의 인생의 교훈에 대해 세상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분을 알아보는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발을 씻겼으며 그분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19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20 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조롱했습니다. 식초를 마시라고 주었습니다. 그분을 모욕했습니다. 갈대로 때리고 그분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여러 세대를 통틀어 예수님의 메시지는 한결같았습니다. 아름다운 갈릴리 해변가에서 주님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고21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에게도 “나를 따르라”고22 명하셨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에게도 “나를 따르라”고23 지시하셨습니다. 또한 여러분과 제게도 우리가 경청만 한다면 이와 똑같이 “나를 따르라”는 권유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