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강하고 담대하라
2014년 4월


16:18

강하고 담대하라

다수의 의견이라도 물리치는 용기, 원리를 지키는 용기를 갖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다시 한 번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좋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릴 때 하늘의 도움을 간구하고 싶습니다.

이 컨퍼런스 센터 외에도 전 세계 많은 예배당과 다른 장소에서 수많은 분들이 모여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권을 갖고 있기에 모두 하나의 끈으로 묶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괄목할 만한 발전과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거의 무한한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만, 한편으로 우리는 또 많은 어려움에도 직면해 있으며, 그 어려움 중에는 이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도덕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고, 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협착하고 좁은 길에서 멀어지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압력과 고상한 것을 파괴하고 세속적인 사회의 얄팍한 철학과 행동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 시도하는 교활한 영향력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저런 도전들로, 우리는 우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택들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용기, 즉 아닐 때는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 맞을 때는 맞다고 할 수 있는 용기, 또 어떤 것이 옳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사회 경향이 주님께서 주신 가치관과 원리에서 급속하게 멀어지고 있기에 우리가 믿는 것들을 수호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용기가 있으십니까?

오래 전에 제일회장단에서 계셨던 제이 르우벤 클라크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 자신의 신앙을 확언할 경우, 믿지 않는 동료들의 비웃음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앙을 수정하거나, 틀리게 설명하거나, 부정적으로 희석하거나, 심지어 멀리 던져 버리는 척해야 한다고 느꼈던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위선자입니다.”1 위선자라 낙인찍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의 신앙을 밝히고 싶지 않은 분들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선한 영향을 받으며 주님의 영이 편안하게 임할 그러한 곳에 거하고, 그런 활동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하겠다는 소망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이야기에서, 어떤 아버지가 학교에 가지 않는 아들에게 했다는 이 충고가 생각납니다. “네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곳을 당장 떠나거라!” 여러분께도 같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곳을 당장 떠나십시오!”

용기를 내야 할 상황들은 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는 용기가 매일 필요합니다. 용기는 중대한 사건만이 아니라 결정을 내릴 때나 주변 상황에 대응할 때 더욱더 필요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보이는 용기에는 증인이 별로 없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 울리는 북소리나 당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군중이 없더라도 당신의 용기는 여전히 고귀하다.”2

용기에는 많은 형태가 있습니다. 기독교인 저술가인 찰스 스윈들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용기는 싸움터에서 …… 또는 집에 들어온 도둑을 용감하게 잡을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용기의 진짜 시험대는 훨씬 더 조용히 옵니다. 그것은 일종의 내적인 시험으로서, 용기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충실한 것, 또는 오해를 받더라도 혼자서 꾸준하게 밀고나가는 것입니다.”3 저는 이런 내적인 용기에다, 두려울지라도 옳은 일을 행하고, 조롱받을 위험에 처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을 수호하고, 친구나 사회적 지위를 잃는 위협이 있더라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옳은 것을 위해 꾸준히 나가는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인기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용감한 행동과 용맹한 사건, 용기의 모범에 대해 배웠습니다.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은 18세 된 수병의 조용한 용기였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 회원은 아니지만 겸손했고 늘 기도했습니다. 같이 온 250명 중에서 매일 밤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때로는 위협적인 사람들의 조롱과 불신자들의 놀림 속에서도 기도를 드리는 유일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내적인 용기가 분명 부족해 보이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친구는 남편과 함께 참석한, 영적이고 신앙을 키워 주는 시간이 되었던 자기 와드의 성찬식에 대해 말했습니다. 아론 신권 제사인 한 청남이 계명을 지킬 때 오는 기쁨과 복음 진리에 대해 말씀하며 온 회중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는 흰 셔츠와 넥타이를 맨 단정한 모습으로 연단에 서서 뜨겁고 감동적으로 간증을 전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제 친구 부부는 이웃집으로 가던 도중, 몇 시간 전에 간증으로 그들을 흐뭇하게 해 주었던 그 청남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저분한 옷을 입고 인도로 걸어가는 그 청남의 모습은 몇 시간 전과는 완전히 달랐고, 담배도 피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 부부는 크게 실망하고 서글퍼했을 뿐 아니라 어떻게 성찬식에서 그렇게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혼란스러워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있든, 또 무엇을 하든 언제나 같은 모습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고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고 아는 그런 사람입니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NCAA 농구 선수이며 교회 회원인 저버리 파커는 전국적인 잡지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에서 부친에게서 받았던 가장 훌륭한 조언을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버리 형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을 때에도 보는 사람이 있을 때와 똑같은 사람이 되거라.”4 형제 여러분,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조언입니다.

경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용기를 보여 주는 모범들로 가득합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자신이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을 옹호하고, 기도하면 죽음에 처하게 하겠다는 위협 속에서도 기도하는 용기를 내어 엄청난 용기를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5

다들 아시다시피 아빈아다이는 진리를 거부하는 대신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용감한 삶을 살았습니다.6

또한 순결하고 순수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고 몸소 보여 준 힐라맨의 용맹한 2,000명의 아들들의 모범에서 영감을 받지 않을 분이 있습니까?7

아마도 이런 경전 이야기 하나하나는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의로움을 지키는 용기가 있었던 모로나이의 모범에서 그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8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평생에 걸쳐 용기에 대한 셀 수 없는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모범 하나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사슬에 묶여 (함께 사슬에 묶여 있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미주리 리치먼드 지역 법원 옆의 짓다가 만 통나무 집에 갇혀 있을 때 있었습니다. 같이 갇혀 있던 팔리 피 프랫은 그 날 밤 일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간수들이 지껄이는 음담패설과 입에도 담지 못할 갖가지 욕설과 더러운 이야기를 몇 시간씩 들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귀와 가슴 속으로 큰 고통을 느끼며, 한밤중이 다 지나도록 잠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프랫 장로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간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너무도 놀랍고 소름끼치고 분한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간수들을 꾸짖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조셉 옆에 누워 있었고 그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나 다른 어느 누구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그가 일어서더니 마치 천둥 같은 목소리로, 포효하는 사자처럼 외쳤다.

‘조용히 하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꾸짖고 명하노니 너희는 조용히 하라. 나는 단 한 순간도 더 그런 말을 듣지 않겠노라. 그러한 말을 그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든 나든 즉시 죽으리라!’”

프랫 장로의 묘사에 따르면 조셉은 “매우 위엄 있는 태도로 똑바로” 섰습니다. 사슬에 묶이고 무기도 없었지만, 평온하고 위엄이 있었습니다. 조셉은 구석에서, 또 그의 발치에서 웅크린 채 두려움에 떠는 간수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제멋대로 굴던 사람들이 조셉의 용서를 구하며 조용히 있었습니다.9

용기 있는 모든 행동에 이런 장엄하거나 즉각적인 결과가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옳은 일과 진리를 수호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기 있는 의견과 타인의 인정이라는 흩어지는 모래에 뿌리를 심으면 똑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아는 것을 굳게 붙들려면, 다니엘이나 아빈아다이, 모로나이, 조셉 스미스와 같은 그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쉬운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을 행하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두려움에 직면하고, 비웃음을 경험하고, 반대와 마주칩니다. 일반적인 흐름을 저버릴 수 있는 용기, 원리를 위해 앞장설 수 있는 용기를 우리 모두 지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는 용기에 미소지어 주십니다. 기꺼이 남자답게 죽겠다는 결심만이 아니라, 깨끗하게 살겠다는 결심이 수반될 때 용기는 생명력 있고 매력적인 덕성이 됩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방식으로 생활하려 노력하고 전진할 때, 분명히 주님의 도움을 받고, 그분의 말씀에서 위안을 찾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호수아에 기록된 그분의 이 약속을 사랑합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0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의 신념에 용기를 갖고 사도 바울처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11라고 분명히 밝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용기로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12는 바울의 권고를 따를 수 있기를 빕니다.

엄청난 재난이라도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런즉 이제 모든 사람은 자기 의무를 배우고 자신이 임명된 그 직분을 부지런히 행하기를 배울지어다.”13 주님의 이 말씀은 여러분과 저, 그리고 모든 곳의 신권 소유자들에게 날카로운 외침처럼 다가옵니다. 사도 베드로께서 선언하신 것처럼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14이 되어 목적에서 하나가 되고 높은 곳에서 오는 권능을 받게 될 것입니다.15

오늘 밤 이곳에서 우리 각자 그런 각오와 오래 전의 욥처럼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 있[는 동안] ……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16고 말할 용기를 품고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