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영적 모임
주님의 참되고 살아 있는 교회의 특징


주님의 참되고 살아 있는 교회의 특징

패트릭 키아론 장로와 함께하는 저녁 모임

청년 성인을 위한 전 세계 영적 모임• 2018년 5월 6일 • 브리검 영 대학교–아이다호 센터

제 아내 젠에게 감사합니다. 아내는 방금 자신이 가르친 대로 한결같이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을 기뻐합니다. 또한 그 사실을 어디에서든 담대하게 나누는 사람입니다. 제가 교회에 들어오고 이 년이 지나 우리가 서로를 만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 때 이후로 지금도 계속해서 제게 훌륭한 모범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 계신 여러분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아름다운 개회 기도에서 언급되었지만, 저도 여러분이 영감을 구하고 있다면 필요한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뭔가 특별한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분도 그것을 받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일 때, 이런 기회를 위해 함께 준비할 때, 큰 권능이 임할 수 있습니다. 함께 모일 때 힘이 생깁니다. 치유가 필요한 분은 치유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위안이 필요한 분은 위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평안이 필요한 분은 평안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 분들은, 대부분 새학기라 아직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시험이 가까워지면 주님의 축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이 영의 속삭임을 느끼고 어떤 메시지를 느끼게 될 때, 여러분의 현재 상황이 무엇이든 현 상태에 머물지 않고 그 느낌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힘과 확신을 갖게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여러분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면, 새로운 힘과 신앙이 필요하다면, 그런 은사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열대여섯 살 무렵 제 자신에게 깊이 몰두해 있었고, 사춘기의 소년들이 으레 그렇듯이 감정 상태가 불안정하고, 마음이 오락가락 했으며, 상처도 쉽게 받았습니다. 물론 그 시기 이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그런 상태는 십 대 시절에 가장 극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저는 방황했고, 남의 시선을 무척 의식했으며, 쑥스러워했습니다. 저는 영국의 한적한 해안 지방에 있는 기숙 학교를 다녔는데, 그것도 별로 좋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저 멀리 사우디아라비아에 계셨습니다. 학교만 놓고 보자면, 스네이프 교수가 있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가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 해안 지방의 날씨는 대체로 좋지 않았지만, 어느 해 겨울인가 초속 20m 내외의 돌풍을 동반한 엄청난 폭풍우가 아일랜드해 전역에 불어닥쳤습니다. 바닷물이 방파제를 세차게 때려 제방이 붕괴됐습니다. 주변 지역으로 약 5,000채의 가옥이 물에 잠기고, 주민들은 집에 전기나 난방, 조명도 없이 고립되어 있었으며, 게다가 먹을 것도 바닥이 나고 있었습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학교에서는 우리를 내보내 주민들을 돕게 했습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자연재해를 본 적이 없었던 저는 그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방이 진흙과 흙탕물이었습니다.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며칠째 잠도 자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마을로 가서 물에 잠긴 가재도구를 위층으로 옮겨 말리고, 침수로 못쓰게 된 카펫을 건져 올렸습니다. 물에 흠뻑 젖은 카펫이 너무나 무거웠다는 것과, 집에서 심한 악취가 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다음으로 놀라운 사실은 도움을 주는 우리와 도움을 받는 주민 사이에 생긴 동지애였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정말 좋은 뜻으로 힘을 합친 사람들 사이에는 멋지고 따뜻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그런 수고를 하며 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평소에 제 생각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그 불안정한 감정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런 깨달음이 지속되기를 바랐건만,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타인을 돕는 것이 저의 우울하고 자기중심적인 상태에 치료제가 됨을 알았을 때 제가 완전히 변화되었어야 했는데, 그 발견이 제 내면에 깊이 자리잡지 못했고, 그 일을 좀 더 깊이 숙고하지 않았기에 저는 완전히 변화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나중에야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살아오면서 이 진리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여러분에게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역을 베풀라는 연차 대회에서의 권유

저는 연차 대회에서 이 진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역사적인 대회 후 몇 주 만에 여러분께 말씀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 대회에서 받은 느낌과 평안, 활력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연차 대회의 핵심 메시지는 구주께서 하시듯이 성역을 베풀라는 거듭된 당부였습니다. 우리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임을 인식하고 사랑으로 성역을 베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봉사할 때 횟수를 세고 보고하기 위해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그리고 우리의 친구가 그분이 계신 하늘 본향으로 가는 길을 찾고 그 길 위에 머물도록 도우려는 더 높고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봉사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셨다면 하셨을 방식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진정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짐을 덜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우리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고 이해하는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눌 때, 성역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기쁨과 지속적인 성취를 얻을 수 있습니다.

넬슨 회장님은 이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참되고 살아 있는 교회를 구별 짓는 특징은 조직화되고 일치된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 개개인과 그들의 가족에게 성역을 베푸는 일일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분의 교회이므로, 그분의 종인 우리는 그분께서 그러셨듯이 한 명 한 명에게 성역을 베풀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권능과 권세로, 그분의 사랑과 친절로 성역을 행할 것입니다.”1

저는 우리가 받은 가르침을 거듭 되새기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역을 행하라는 그 당부를 귀담아듣는다면,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신앙과 자신감이 커지고, 더 행복해질 것이며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공허감,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우울감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이런 것을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점진적으로 배웠다는 것과, 또 이 위대한 진리를 계속 상기시켜주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큰 감사를 느낍니다.

이런 성역을 행할 때 오는 유익과 축복

이런 봉사나 성역 또는 제자 정신의 백미는 이를 통해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많은 방법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우리가 자신의 걱정과 두려움, 근심과 의심에서 벗어나 완전히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봉사를 할 때 처음에는 그저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그 즉시 우리는 훨씬 더 높고 더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됩니다. 우리는 거의 깨닫지 못한 채 서서히 빛과 평안을 경험합니다. 우리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뜻해지며, 위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이런 은사들은 타인을 도울 때 우리가 실제로 행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옵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경전에 언급된 풍성한 삶은 타인을 위한 우리의 봉사를 늘리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봉사에 우리의 재능을 쏟을 때 이르는 영적인 절정의 상태입니다.”2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우리는 더 의미 깊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지기에 참으로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가’ 더 쉬워집니다.”3

성역을 행할 때 경험하는 탈바꿈의 예와 성역을 행하지 않을 때의 대비점

이런 탈바꿈은 초임 선교사가 자신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내가 누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라고 자문할 때 경험합니다.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데려오는 본연의 목적으로 마음을 돌릴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선교사들은 종종 이런 사실을 어렵게 깨닫습니다. 그들은 사람과 음식과 관습이 다른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느라, 때로는 언어 문제에 사로잡혀서 바깥으로 눈을 돌려 봉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때,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들은 걱정을 멈추고, 일하러 가며, 자신 앞에 놓인 이타적인 과업을 행합니다. 그리고, 평안과 목적의식을 지니고 선교 사업에서 또 인생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발견합니다.

안타깝게도 선교사들이 귀환하여 인생의 다음 단계로 교육, 직업, 또는 개인 및 가족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선교 사업에서 발견했던 것들은 너무 쉽게 사라집니다. 선교사들은 18개월에서 24개월 동안 봉사하며 자신에 관해 걱정하지 않고, 즉 힝클리 회장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을 잊고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할 때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선교 사업을 마치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면, 그 생활의 한 부분이었던 여러 자기중심적인 습관들로도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다시 마음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타인을 도울 때 빛과 평안, 기쁨을 얻는 것이 분명하듯이, 자신만을 생각하면 예외없이 의심과 걱정, 우울한 마음이 생깁니다.

두 달 전에 있었던 일인데, 저는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여러 시간 동안 깬 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일어나서 집 안을 조금 걷다가 침대로 돌아와서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나 자신에 관한 생각은 그만하자.” 그리고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 저는 누운 채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누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러자 한 친구에게 연락하여 힘을 주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 날 아침에 그 느낌에 따라 뭔가 좋은 일을 했습니다. 누구를 도울 수 있는지 알기 위해 그렇게 기도하고 나자, 애써 찾으려 했던 평안을 얻고 마침내 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구주께서 행하신 성역의 예

구주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셨고4 도와줄 사람을 늘 찾으시며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5 구주께서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가르치고, 인도하셔서 그들의 관점을 바꾸어 놓으시고,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분께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불러 당신을 따르게 하셨을 때, 그들의 삶의 방향과 초점이 즉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6

나중에 구주께서 십자가에서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돌아가신 후, 그들은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어부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한번은 그들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그때 부활하신 구주께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7 이것은 구주께서 어떤 권능도 잃지 않으셨다는 뜻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엉뚱한 데를 보고 있었고 엉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물가에서 함께 물고기를 먹을 때, 구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그때마다 베드로는, 점점 더 근심하며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매번 대답하고 나면,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의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구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세 번씩이나 물으셨을까요? 베드로는 예전에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을 들었고, 그 즉시 어부 일을 그만두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떠나시게 되자, 베드로는 슬퍼하며 길을 잃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잘 안다고 생각하는 어부 생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당신의 말씀에 진심으로 귀기울여 듣고 이번에는 그 권유의 막중함을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이제 그분은 제자들 곁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고 제자가 되는 것의 의미를 베드로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서 무엇을 원하셨을까요? 주님은 베드로가 당신의 양, 당신의 어린 양을 먹이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부드러우면서도 직접적인 요청을 인식했습니다. 그 선임 사도는 이에 호응하여 자신이 요청받은 일에 나머지 생을 바쳐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성역을 행했습니다.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회복이 이루어진 오늘날 지상에는 또 다른 선임 사도가 계십니다. 넬슨 회장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그분의 양을 먹이라는 권유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연차 대회에서 가장 명확하고 가장 따뜻한 표현으로 그 권유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으로 감동받고 영감받았지만, 그에 따라 정말 변화했습니까? 주변의 온갖 산만한 것들과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관심을 요구하는 많은 것들 속에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권유에 응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뭔가를 행하고, 진정 변화하고,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성역을 행하라는 권유를 듣고 “어떻게 시작하지?”라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기도로 시작하십시오. 넬슨 회장님은 이런 도전 목표를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계시를 얻기 위해, [우리의] 영적인 능력을 지금보다 더 키우시도록 촉구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네가 구하면, 계시 위에 계시를, 지식 위에 지식을 받을 것이요, 그리하여 여러 비밀과 평화로운 것들을 알게 되리니—기쁨을 가져다주는 것, 영생을 가져다주는 것을 알게 되리라.’[교리와 성약 42:61]”8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하나님 아버지께 여쭈어보십시오. 어떤 것이든 작은 친절한 행위로 인해 우리는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그 축복을 얻게 됩니다. 사소하게 보이더라도 여러분이 받은 느낌을 따르고, 그대로 행하십시오. 기대하지도 않을 누군가에게 친절한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메시지도 괜찮습니다. 꽃 한 송이, 쿠키 몇 개, 친절한 몇 마디 말도 좋습니다. 더 나아가서 정원이나 마당을 정리하거나, 거동이 불편해진 사람을 위해 세탁을 해 주거나, 세차를 해 주거나, 잔디를 깎아 주거나, 눈을 치워 주거나, 또는 그냥 친구처럼 힘든 처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준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진 비 빙엄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웃에게 봉사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위대하고 영웅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봉사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9

첫발을 내딛는 것이 내키지 않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자신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작은 일의 결과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교회와 멀어져서 한때 지녔던 강한 신앙과 소망을 잃어가는 친구가 걱정된다면, 봉사 활동이나 성역을 행할 때 그 친구에게 참여를 권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열고 우리 삶에서 그분의 사랑을 재발견하려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위해 의미 있는 봉사를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봉사와 성역을 행하는 이유

우리는 봉사와 성역을 행하는 이유를 스스로 끊임없이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며, 지상에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좀 더 완전한 상태로 그분께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면이 아니라 바깥을 바라보고, 서로 봉사하기를 배우는 것이 지상 생활의 목적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사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바깥을 바라보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성역을 행할 때 일어나는 기적은,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잊을 수 있음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넬슨 회장님은 더 높고 거룩한 봉사의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호응할 때, 그 봉사가 얼마나 성취감과 해방감과 차분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지, 또 우리가 타인의 생활에서 어떻게 변화를 이끌고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전에서 엔다우먼트를 받고 선교 사업을 마치면, 이런 유혹이 옵니다. “아, 이제 다 끝났어. 나는 18개월 또는 2년 동안 전임 선교로 봉사했으니까, 이제 다른 사람 차례야.” 결혼한 후에도 그런 유혹이 올 수 있습니다. “이제 결혼을 했어. 잠시 쉴 때야.” 하지만 성역에는 일시 멈춤이 없습니다. 성역은 삶의 방식입니다. 조셉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활줄을 풀기 위해” 즉, 일상적인 활동에서 잠시 벗어나 쉬면서 활력을 찾는 휴일도 필요합니다.10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그분의 양을 먹이겠다는 우리가 맺은 성약과 책임은 잠시 멈추거나 쉬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성역을 받아본 적도 있고, 또한 타인을 위해 하나님의 손에 놓인 도구가 될 때 오는 평안과 기쁨을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어린 아들을 위해 우리가 했던 고생을 제 아내가 설명해 드렸습니다. 아들을 잃은 후, 우리는 넋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거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친절, 도움을 너무나 많이 받았습니다. 이미 친구로 지냈던 한 친절한 부부는 그 시기 내내 우리에게 한결같은 성역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곁에 남아서 우리와 함께해주고, 우리를 위해 기도했고, 축복과 식사, 위로의 말을 건넸고, 또 때로는 침묵해 주기도 했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 올 때나 우리가 기운이 빠지고 슬픔에 빠졌을 때도 어떻게든 그 부부는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역은 몸에 밴 삶의 방식이었으며, 이를 여러 해 동안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조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성역을 행합니다.

세계적인 교회의 성역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며 교회의 유럽 지역에서 봉사하는 동안 이 원리가 적용되어 놀라운 결과를 일으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지금도 중동 지역에서는 계속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런 싸움과 파괴로 모든 것을 잃고 피난을 온 수천 명의 난민을 위해 교회 회원들과 여타 종교 단체들이 나서서 도왔습니다. 소지품이 든 조그만 가방 몇 개를 들고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온 난민들도 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함을 보고, 형제 자매들을 보고, 주님의 어린 양을 본 우리 회원들이 나서서 모든 것을 잃은 이 난민을 돕고, 입히고, 먹이고, 거처를 제공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도움을 준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또는 자기 자신과 일상적인 삶에 몰두하면서 희미해졌던 빛과 활력, 기쁨을 축복받았습니다. 그들은 세계 전역에서 이 훌륭한 구제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에게는 즉각적으로 도와야 할 뚜렷한 필요 사항이 있지만, 우리 주위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겉으로 드러나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도와주야 합니다. 우리의 성역과 봉사를 멀리서만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면에서 집 가까이서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저는 이런 원리를 실천하는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뿌듯합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자원 봉사자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식량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배부하는 일에 7백만 시간 이상을 사용했습니다.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교회는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는 50만 명의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공했습니다. 41개국에 있는 49,000명이 휠체어를 기증받았습니다. 자원 봉사자들이 시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40개국에서 시력을 회복시키고 97,000명의 간병인을 훈련했습니다. 38개국에서 33,000명의 봉사자들이 산모 및 신생아를 돌보는 법을 훈련받았습니다. 헬핑핸즈는 말할 것도 없이, 최근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수백만 시간 이상을 기증하고 일했습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재해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이웃과 지역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에 기여했습니다.

교회가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JustServe, 즉 “그저 봉사합시다” 프로그램은 봉사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며, 이를 통해 이미 삼십오만 명의 자원 봉사자가 등록하여 각자의 지역 사회에서 수백만 시간의 봉사를 했습니다.

이 교회는 행동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결정짓는 특성이 되게 하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기쁨과 평안을 얻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구주의 모범을 따르는 가장 숭고하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엠 러셀 밸라드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일은 작고 단순한 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작은 금 알갱이가 계속 쌓여서 큰 보화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베푸는 작고 단순한 친절과 봉사는 쌓이고 쌓여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헌신, 그리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 때마다 얻는 평안과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11

봉사의 세 가지 형태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봉사의 세 가지 형태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교회에서 책임을 수행하도록 지명받거나 권유받는 형태의 봉사입니다. 이런 봉사에 관해서는 연차 대회에서 정말 훌륭하고 영감에 찬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측정되지는 않지만 아주 소중한 이런 성역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보살펴야 할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돕습니다.

둘째,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는 형태의 봉사입니다. 이것은 첫째 형태의 확장이며, 우리가 자신을 잊고 타인에게 눈을 돌리기 위해 좀 더 의식적으로 노력할 때 이런 형태의 봉사가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과 교류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공식 임무는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소망이 동기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보임으로써 시작됩니다. 친절한 행동과 조용한 관대함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더 따뜻하고 더 의미 있는 관계로 이끕니다.

셋째, 공공 봉사입니다. 여러분의 연령에서도 교육위원회, 자선단체, 그리고 지방 자치단체, 중앙 정부에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런 참여를 장려하고 싶습니다. 적절한 경우, 봉사와 개인 및 지역 사회 발전에 초점을 두고 정치에 참여하십시오. 지역 사회, 국가, 대륙 전반에 지나치게 편향되고, 공격적이고, 해를 끼치는 정치적 이익단체는 피하십시오. 공동의 목적을 찾고 있는 정치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그들의 관할 지역과 그 너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십시오. 여러분은 균형과 이성을 주장하며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공정을 외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을 이와 같은 훌륭한 시민 참여에 바칠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뉴스를 읽다 보면, 세상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매일 크고 작은 행동을 한다면, 우리 세상과 주변 사람의 생활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웃에게 봉사하고 또 이웃과 함께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다 보면, 여러분처럼 돕고 싶은 마음을 지닌 친구들을 사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여러 문화와 종교 사이에 가교를 놓게 될 것입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 가르쳐 주는 사랑은 서로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숭고한 노력을 함께할 때에만 우애가 생긴다. 물질적 행복을 좇는 우리 시대에도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막에서 마지막 남은 빵 껍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느끼는 행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12

결론

여러분 각자가 예수께서 하시듯이 성역을 베풀라는 권유에 응한다면, 여러분은 완전히 변화되어 더 한층 이타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한 구주의 방식으로 성역을 베풀 때 얻는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데서 비롯되는 염려와 불확실성과 우울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제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이름이나 원대한 목적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영이 여러분에게 권유하는 것일 수 있으며, 여러분은 그런 느낌을 전에도 받은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손을 내밀고, 살펴보고, 들어올리십시오. 여러분이 느낀 권유에 따르겠다고 선택하고 여러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오늘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여러분과 여러분이 성역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오는 축복을 보고 느낄 때, 여러분은 이를 일상생활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가장 숭고하고 훌륭한 노력은 빛과 희망, 기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목적을 하나님의 모든 자녀와 나누며 그들이 본향하로 향하는 길을 찾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봉사하고, 성역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복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방식의 삶을 살 때, 특별한 성취감을 느끼게 될 것이며, 또한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어떻게 찾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넬슨 회장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책임을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참되고 살아 있는 교회를 구별 짓는 특징은 조직화되고 일치된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 개개인과 그들의 가족에게 성역을 베푸는 일일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분의 교회이므로, 그분의 종인 우리는 그분께서 그러셨듯이 한 명 한 명에게 성역을 베풀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권능과 권세로, 그분의 사랑과 친절로 성역을 행할 것입니다.”13

이것이 구주께서 삶을 사신 방식이요 이유였습니다. 그분은 위대하고 무한한 속죄 은사를 통해 완전한 향유와 궁극적인 치유를 여러분과 제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하시듯이 성역을 행함으로써 그분의 참된 제자가 되려고 노력할 때, 살아 계신 그분을 더 자발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따를 수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아멘.

  1. 러셀 엠 넬슨,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 성역을 행함”, 리아호나, 2018년 5월호, 69~70쪽.

  2. 스펜서 더블유 킴볼, “풍성한 삶”, 성도의 벗, 1979년 6월호, 3~4쪽.

  3. 스펜서 더블유 킴볼, “풍성한 삶”, 성도의 벗, 1979년 6월호, 3쪽.

  4. 사도행전 10:38.

  5. 사도행전 10:38.

  6. 마태복음 4:20, 강조체 추가.

  7. 요한복음 21:6.

  8. 러셀 엠 넬슨, “교회를 위한 계시와 우리 삶을 위한 계시”, 리아호나, 2018년 5월호, 95쪽.

  9. 진 비 빙엄, “구주와 같이 성역을 베풂”, 리아호나, 2018년 5월호, 104쪽.

  10. See William M. Allred, in “Recollections of the Prophet Joseph Smith,” Juvenile Instructor, Aug. 1, 1892, 472.

  11. 엠 러셀 밸라드, “봉사에서 느끼는 기쁨”, 리아호나, 2011년 5월호, 49쪽.

  12. Antoine de Saint-Exupéry, Airman’s Odyssey (1939), 195.

  13. 러셀 엠 넬슨,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 성역을 행함”, 리아호나, 2018년 5월호, 69~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