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육 기구 종교 교육자 대회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입니다


40:19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입니다

총관리 역원과 함께하는 저녁 모임 • 2019년 2월 8일, • 솔트레이크시티 태버내클

이곳 템플스퀘어 태버내클과 전 세계 곳곳에 모여 계신 형제 자매 여러분, 래스번드 자매와 저는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제 삶을 바꿀 정도로 강한 영향을 주었던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교사들의 영향력을 되돌아봅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저를 가르쳤던 교사들이 제가 경전을 공부하는 방법, 특히 얼마나 몰몬경을 사랑하는지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또한 복음 안에서 함께하기를 즐기던 친구들과 안전한 곳에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고등학교에 있는 세미나리 건물과 대학에 있는 종교원에서 서로 어울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특히 멜러니 트윗첼을 종교원 무도회에 데리고 가는 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멜러니는 지금의 제 아름답고 훌륭한 아내입니다.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교사로서 여러분은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데리고 오는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공부하며, 영으로 가르치기 위해 자신을 영적으로 준비하고, 복음 진리를 밝히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 간증에 확신이 없는 청소년, 간증과 이해력을 점점 잃어가는 그분의 소중한 자녀를 도울 사람을 찾고자 하셨을 때, 주님은 여러분이 부모와 교회 지도자들로 이루어진 팀에서 선두에 서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여러분은 학생들 앞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각자를 사랑하시며, 그분의 영원한 계획에서 우리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진리를 재확인해 주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그것을 진실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이 종종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십니다.1

“얼마나 많은 [이들이] … 구속하시는 사랑을 노래하게 되었고, 이는 [너희] 안에 있는 그의 말씀의 권능으로 인한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에게는 기뻐할 만한 큰 이유가 있지 아니하냐?

과연 [너희]에게는 그를 영원토록 찬양할 까닭이 있나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이라.]”2

하지만 때로는 청소년을 북돋우고 가르치며 격려하는 일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그분에게 데려오는 이 사업이 어려울 수 있음을 아십니다. 저는 이것을 뉴욕에서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제 심금을 울린 앨마서의 이 구절이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낙심하여, 바야흐로 되돌아가려 하였을 때, 보라 주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말씀하시되, 나의 형제 … 가운데로 가서, 네 고난을 인내로써 견디라. 그리하면 내가 성공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3

대적은 지금까지 자신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 왕국에 미쳤던 부정적인 영향에 만족하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는 공격적이며 무자비합니다. 그는 여러분이 보살피는 학생들을 표적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 중 일부가 “ 무서워하므로 [낙담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4

생각에 잠긴 청녀

길을 벗어난 학생이 일부 있지만, 주님의 영으로 여러분은 그들을 다시 옳은 길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바울의 다음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니라.]”5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사업은 다음과 같은 영원한 약속과 함께 우리에게 권유하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6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기뻐하며, 두려워 말라. 이는 나 주가 너희와 함께 하며, 너희 곁에 서 있을 것임이니, 너희는 나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내가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 장차 올 자임을 증거하리라.”7

우리는 “기뻐하[면서]”8 두려움으로 발이 묶일 수 없습니다. 기뻐함과 두려움은 함께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따른다면, 즉 우리가 기뻐한다면, 세상의 구주이신 그분에 대해 간증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분을 알게 되고, 세상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우리를 돕는 일에서 그분이 가지신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일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라도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의 힘든 문제들과 어려움으로 인해 우리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비극과 역경이 우리 꿈을 산산조각내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상기해 주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는 너희 기쁨이 충만하지 아니하나, 내 안에서 너희 기쁨이 충만함이니라.”9

여러분은 교실에서 “기쁨”을 받아들인 학생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움과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신뢰로 마주합니다. 그들은 질문에 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진리를 배우고 알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으로 확신에 차서 교실에 와 앉습니다. 그들에게 “난 하나님의 자녀”10라는 말은 그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초등회 노래에 관한 기억이 아니라 지식이자 확신입니다. 그들은 영적 경험과 통찰, 그리고 자신의 질문에 답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지식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수업에 참석합니다. 그들은 다투기 좋아하는 세상을 헤쳐 나가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압박 속에 하루 하루를 살며 느끼는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면서 그들의 희망이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에 참석했던 시절에는, 아주 오래전인 것 같은데요. 학생들은 믿음을 가지고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 때는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 때문에 의심에 휩싸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학생들은 세상이 종교나 계시, 선지자,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해 던지는 근심거리들을 짊어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뒷줄에 앉아 책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자는 학생은 어떻습니까? 아니면 최근에 머리를 밀어버리고는 여러분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 여학생은요? 한때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에 참석했지만, 이제는 서로 거의 이야기도 하지 않는 두 친구는 어떨까요? 모범적이었으나 복음 토론에 흥미를 잃은 듯싶더니 이제는 수업에 빠지는 일이 더 잦아진 학생은 어떻습니까?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배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학생들은요? 어떤 학생은 수업에 와서 앉아 있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문을 나섭니다. 영을 느끼지도 못한 채로 말입니다. 스트레스, 두려움, 유혹, 위기, 낙담이 학생들의 소중한 삶을 잠식했습니다.

의기소침해 있는 청남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고 자문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두려움과 체념, 바로 그것이 지금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학업 성취, 압박감, 해결할 수 없는 가정 문제에 관한 두려움. 아무도 신뢰할 수 없고 아무도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두려움. 혼자가 되는 두려움, 또 집단에 속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된다는 두려움. 조직화된 종교 또는 어떤 종교에 대한 두려움. 그들의 고통을 해결하거나 완화할 수 없다는 두려움. 두려움은 낙담과 절망, 불안과 우울을 불러옵니다. 두려움은 상황이 더 좋아질 수 없다는 낙담을 낳습니다. 두려움은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아무도 “혹시 무슨 일 있니?”라고 물어 주지 않을 거라고 믿게 만듭니다.

불행히도 두려움이 표출되는 여러 형태 중 가장 잔인한 결말은 바로 자살입니다.

유타 주지사는 작년에 빠르게 증가하는 십 대 자살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팀을 구성하면서 러셀 엠 넬슨 회장님에게 그 팀에 참여할 교회 지도자를 지명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넬슨 회장님께서는 이 막중한 책임을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십 대 자살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위기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자살은 15세에서 24세 사이 젊은이들이 사망하는 주요 원인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또한 “자살 시도는 실제 자살 건수의 20배로 더 자주 일어납니다.”11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는 참으로 잔혹한 통계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으로서, 우리는 자살이 해답이며 고려할만한 문제 해결법이라는 생각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십 대에게 자살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들이 고통의 해결 방안으로 자살을 고려하지 않도록 그들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의 삶은 “구조하라”라는 말의 훌륭한 모범이 됩니다. 우리도 그것을 우리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주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분은 속죄를 통해 우리를 구조하러 오셨고, 우리가 그분께로 향하기만 한다면 우리를 치유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심으로써 참으로 깊은 사랑을 끊임없이 보여 주십니다.

손을 잡고 있는 청녀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들에게 사랑을 보이고, 친구를 찾아 주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그들에게 친절한 말이나 행동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 우울증, 다른 정신 질환을 위한 상담 치료를 받도록 그들의 부모나 감독과 함께 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청소년이나 청년 독신 성인들은 특히 자살에 취약합니다. 그들은 구주의 팔에 안겨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따뜻하고도 사랑이 담긴 그분의 팔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친구들도 이와 같이 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자살은 답을 얻지 못한 질문과 슬픔, 비통, 만약 그랬다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초래하는 고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자살은 큰 비극이기에 우리는 모두 조언하고, 보살핌과 관심을 보이며, 우리 젊은이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그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새롭고도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희망을 잃고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사람과 그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경건하게 부르는 것만으로도 힘든 순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 사회에서는 십 대 한 명이 그런 극단적 행동을 하면 다른 십 대가 자살을 하나의 선택 사항으로 생각하고 모방하는 “다발적” 자살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018년 4월 BBC 뉴스에 보도됐던 영국의 한 십대 청소년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는 “자살을 이미 시도했었던” 하티 스페리-사우스라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불행해 보이는지를 한 교사가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하티는 자살을 다시 시도해서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친구 중 세 명이 이미 자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2년 동안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하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거의 항상 극심한 슬픔을 느꼈어요. 그리고 잠을 자지 못했고요.” 그런 어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별거 중이었고, 어머니는 이런저런 건강 문제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하티의 어머니에게 모든 관심이 몰렸고, 아무도 하티의 눈에 깃든 절망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지내니? 기분은 좀 어때?”라고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머리를 거의 삭발하다시피 밀어 버린 하티가 무시무시한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고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교사가 물었습니다. “하티,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니?”

하티는 “잘 지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하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정말 끔찍해요. 너무 슬프고 계속 울게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후 하티는 화장이 모두 지워질 정도로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교사는 다른 수많은 학생에게 했던 간단한 질문을 했을 뿐이지만 교사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을 때, 하티는 그 구명 밧줄을 움켜잡고 도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티는 이후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정말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실에 들어서는 학생에게 하는 ‘어떻게 지내니?’라는 질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해요. 학생들이 그냥 ‘잘 지내요.’라고 했더라도, 그들은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말을 들었을 거예요.”12

사랑하는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든 간에 삶을 끝내는 행위로 생명의 소중함에 반대표를 던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에 매달리십시오. 언젠가는 여명이 밝아와 필멸의 어둠이 달아나 버리게 될 것임을 명심합시다. 자신이 시편의 저자가 말한 ‘깨진 그릇[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그릇은 거룩하신 토기장이의 손 안에 들려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13 

위기에 처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정해진 방법은 없습니다. 이 청소년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합창단에서 노래하며, 축구팀에서 활약하기도 하고, 방과 후에 식료품을 봉투에 담기도 합니다. 그들은 교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그들 중 일부는 여러분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교회에 마음을 두지 않은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실망과 망친 시험, 이성 친구와의 이별, 따돌림,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우리가 청소년기의 불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교회는 십 대 자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관련 정보와 온라인 동영상, 고독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도움, 전화 상담 서비스, 그리고 하티와 같이 도움을 구하는 경고의 징후를 설명한 목록이 담긴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부디 이런 자료와 친숙해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서 여러분의 부름을 더 훌륭히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14

우리는 어떻게 고통받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이 느끼는 바를 알고 계심을 전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여러분의 아주 개인적인 어려움과 실수조차 직접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그런 짐을 짊어지심으로써 여러분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모두 이해하는 마음으로 보살펴 줄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희망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 그리고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영원하며 숭고하고도 기쁜 장소가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나 주가 너희와 함께 하며, 너희 곁에 서 있을 것임이니.”15 우리 곁에 계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자들 또는 세미나리 평의회에 속한 사람들만을 위해서만 예비된 실없는 말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청년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서실 것이며, 그런 문제로 가장 힘들 그 시간 동안 우리 곁에 서실 것입니다. 그것이 속죄의 힘이며, 우리는 그 약속이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미친다는 것을 제대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

한 여성을 고쳐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학생들이 위험하거나 나쁜 결정을 피할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억할 만한 “방어막 경전 구절”을 찾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좋은 예로 “기뻐하며, 두려워 말라. 이는 나 주가 너희와 함께 하며, 너희 곁에 서 있을 것임이니”가 있습니다.16

인생은 항상 어려움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학생들도 말입니다. 어떤 청년들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힘들어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경전을 공부하고, 계명을 지키며, 매일 기도하면, 마음의 상처나 혼란, 친구들 사이에서의 소외, 불의의 사고는 자신을 비켜 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시련은 우리 모두에게 닥칩니다.

문제, 도전, 시련, 고난, 역경, 불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이런 것들은 이 필멸의 삶 동안 하게 되는 경험 일부이며, 이는 우리를 강하게 해 주고 발전하게 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가 여전히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17

영의 힘으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격려하는 것보다 복음을 가르치는 수업의 학업적 요건을 더 우선시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영감을 받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십시오. 넬슨 회장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처럼 그들이 개인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십시오.18

그렇게 됐을 때, 그들은 주님의 인도와 안내를 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인도와 안내는 그분이 지니신 사랑의 실제적인 형태가 됩니다.

제가 이런 거룩한 모임에서 자살에 대해서, 그리고 그에 연관된 감정인 두려움과 외로움, 절망, 불안감, 고통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바로 여러분이 “최초 대응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분이 돼 주시기를 권유합니다. 자살과 그에 수반되는 어두움은 실재합니다.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것은 재앙처럼 증가하고 있으며, 택함과 충만한 약속을 받은 젊은이들까지도 유혹하여 삶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원 모양으로 손을 잡고 있는 청소년

삶은 부서지기 쉽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누군가에게 일어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고, 무얼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 기도와 경전 공부, 가정의 밤을 하는 가정을 둔 청년들이라면, “붙잡을 수 있는” 도구가 더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한 청남이 가정의 밤 활동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적어 보라는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모두 가진 듯이 보이는 열네 살짜리 청남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아는 것”

제게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세미나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친구는 열세 살 때부터 교회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그 친구는 세미나리 합창단 오디션을 보겠다고 결심하고, 심지어 합격했습니다. (세미나리 합창단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수업에서 배운 공과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매번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영이 그곳을 채웠고, 제 친구는 이 합창단이 자신이 다니는 길 건너편 학교의 합창단과는 무언가 다름을 알았습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는 영을 느꼈던 것입니다. 결손 가정이라 복음 가르침을 전혀 받지 못했던 친구는 영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의지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확고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곁에 누군가가 있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는 여전히 그의 세미나리 교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었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19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 중 가정에서의 훌륭한 영향력을 비롯하여 누군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여러분의 가르침이 그들의 복리에 결정적 요소가 됩니다. 복음 토론을 더 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그런 학생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시간이 그들의 하루 중 영적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제발 그런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이들은 “만물 아래로” 내려가셨고20, 그렇게 하여 “육체를 따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연약함을 좇아 어떻게 도울지” 아시는 구주를 통해 치유를 얻게 됩니다.21

예수께서 어린 소년의 점심 식사 거리였던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기도하시기 위해 홀로 산에 오르셨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려고 배에 올라탄 중에 밤이 깊자,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을 본 자들은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고]”,22 그분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이르셨습니다.23

그날 밤 베드로가 주의 부르심을 듣고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걷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마음을 놓고 안심했으나, 소용돌이와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내려다보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께서는 조롱이 아닌 동정심을 품고 그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모로나이는 우리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에 대해 이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를 들어 올리시기를 바라며, 또 그의 고난과 죽으심과 … 그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과 그의 영광의 소망과 영생의 소망이 영원히 네 마음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노라.”24

우리 모두는 물 위에 나와 있다 할 수 있으므로,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말씀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약 성서에 나오는 또다른 이야기에서, 한 무리가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25주위에 모여 섰는데, 주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보시고 그 주위에 있던 자들의 신앙을 느끼시고는 “안심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

이 마지막 경륜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조셉 스미스를 통해 선교 임지로 나가 위험과 고난을 겪고 있는 그분의 종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어린아이들아 기뻐하라.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음이니라].”27

조셉 스미스는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나가 있는 사도들을 시현으로 보았습니다. “옷이 해지고 발은 퉁퉁 부었으며 시선도 아래를 향한 채 극심한 피로에 지쳐 함께 동그랗게 모여 서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서 계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구주께서 그들을 바라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28

여러분, 패턴이 보이십니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권능은 그분께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나타납니다. 무슨 일을 겪게 되든지 우리가 그분께로 나아가고 우리를 구원하는 권능을 사용한다면,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가장 흔하게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 주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궁금하십니까? 이는 맨 막바지인 최후의 심판에 이르러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닮아가고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며, 그분께서 택하신 선지자들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매일의 생활 속에 발휘되는 속죄의 권능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속죄에 대해 공부할 때면, 저는 구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무릎을 꿇으셨을 때 처하셨던 그 슬프고도 가련한 상황을 떠올리려 노력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9 주님께서는 그분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얼마나 극심한지 너는 알지 못하며, 얼마나 격렬한지 너는 알지 못하나니, 참으로,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너는 알지 못하느니라.”30 우리 청소년들은 이 심오한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천사가 겟세마네 동산에 계신 예수님을 위로하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31

우리의 죄와, 지독히도 힘든 나날들, 연약함과 실망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느라 곤경에 처한 그분을 돕기 위해 천사가 나타나 위로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궁지에 처할 때마다 주께서 보내신 “천사들은 [여러분을] 둘러 있어 [여러분을] 받쳐” 줄 것입니다.32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그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앞서 마지막 만찬에서 그분의 사명과 약속된 축복을 분명하게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그분은 그분 앞에 닥칠 일들을 분명히 아셨고, 위대한 구원의 계획에서 그분이 완수하실 부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셨기에, 그의 제자들에게 “담대하라” 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뇌가 예수님을 덮치려 했으며, 유다의 배반이 임박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는 체포되어 재판받으시고, 십이사도는 양떼가 흩어지듯 흩어지며, 구주는 극심한 채찍질을 당하시고, 불공정한 재판을 받으시며, 폭도들은 예수 대신에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소리 높이 외치고, 이후에는 갈보리에서 무참히 십자가에 달리시게 될 참이었습니다. 대체 기뻐할 일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이윽고 속죄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온 인류가 부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속죄를 막으려는 사탄이 실패를 거둠에 따라 죽음은 폐해져야 했습니다.”34

우리는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 구속주의 무한하신 속죄가 없었다면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이 없었다면 사망은 끝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우리 구주의 속죄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영생이 가능한 것이 되고 불멸이 실현 가능한 것이 되었습니다.”35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마음 속에 구주가 지니신 힘과, 우리 모두에 대한 그분의 사랑, 그리고 아버지의 신성한 계획에 대한 경외심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숙고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들을 위한 것이며, 매우 복잡한 삶 속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들이 알도록 도울 수 있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왕국에서 봉사함으로써 그분의 영을 불러오도록 격려하십시오.

수년 간 교회의 성전부를 이끌며 봉사했던 저는 성전에 참여하는 것이 기쁠 뿐만 아니라 대리 침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려 줄지어 서 있는 청남 청녀들을 보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면서 성전의 권능을 강조할 때, 여러분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께서 “기쁨”의 원천이심을 알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더욱 늘리고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새롭게 엔다우먼트를 받고서 성전 봉사자로 일하는 청년 성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감사드립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모두 하얀 옷을 입고 거룩한 곳에 서서, 그들은 그분이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다시 오실 것을 간증합니다.36 성전에서 우리가 주님께 봉사하는 것은 구주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참으로 특별한 방법입니다.

학생들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유효한 제한 사용 성전 추천서 또는 일반 성전 추천서를 항상 소지하도록 격려하시고, 더 나아가 그들이 성전에 거할 때의 느낌과, 스스로 의식을 행할 수 없는 자를 위해 봉사하면서 “더 나은 것”을 위해 현세를 초월하여 휘장 너머에까지 영향을 미칠 때 받게 되는 계시과 영감을 나누도록 격려하시기 바랍니다.37

사랑하는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복음에 초점을 맞출 때,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38

제가 사도로 성임받았을 때, 몬슨 회장님께서는 제가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특별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임무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경전에서 주님에 대해 쓰이는 이름과 칭호별로 구분하여 찾아 내며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경전 구절에 나오는 다음 모든 이름과 칭호들은 그분 안에 거하는 우리의 소망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이러한 분이십니다.

  • 이스라엘의 소망.39

  • 광명한 새벽 별.40

  • 선한 목자.41

  • 모사.42

  • 평강의 왕.43

  • 구원자.44

  • 세상의 빛.45

  •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46

  • 구원하기에 능한 자.47

  • 모든 권능을 지닌 자.48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모든 것을 아우릅니다. 그분은 우리가 흔들릴 때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필사의 노력을 다할 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혹여나 실족한다 해도, 그분의 또다른 이름인 “어둠에 비치는 빛”은 어느 때보다도 더 밝게 빛을 발할 것입니다.49 그분은 우리가 가장 기쁠 때나 가장 힘든 때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굳이 어림짐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의 길에는 그분의 발자취가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 우리는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주 거룩한 성찬을 취하는 가운데 그분과 맺은 성약을 새롭게 할 때, 세상의 구속주이자50 진리의 영이자51 말씀이신52 그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성찬이 지니는 힘에 대해 가르치십시오. 특히 흔들리고 있거나, 이 귀중한 의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가 항상 그의 영과 함께 하도록”53 한다는 성찬의 축복에 대해 말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한 치유의 힘을 실제로 사용하게 하십시오.

이외에도, 구주께서는 당신의 신성과 영원한 임무를 모두 밝혀 주신 다음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언급하셨습니다.

  •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54

  • “내가 능히 너희를 거룩하게 할 수 있[느니라.]55

  •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느니라.”56

  • “나 주는 … 나를 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노라.”57

  • “내 은혜가 너희에게 족함이요.”58

  • “너는 내 안에서 화평을 누리리라.”59

  • “두려워 말라 … 이는 너희가 나의 것임이요.”60

사랑하는 친구이신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제가 아는 구주이시며, 제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분이십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하여 그분과, 그분께서 지니신 선함과 자비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나의 친구요 나와 함께 기업을 받게 될 것임이니라.”61

형제 자매 여러분,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나 해답입니다. 그분의 사명과 복음을 이해할 때, 그분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의지는 우리에게 힘을 가져다줍니다.

힐라맨은 이것을 적절히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 이제 나의 아들들아,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이신 우리 구속주의 반석 위에 너희가 너희의 기초를 세워야 함을 … 기억하라. 그리하면 악마가 그의 강한 바람을, 참으로 회리바람 가운데 그의 화살들을 내보낼 때, 참으로 그의 우박과 그의 강한 폭풍이 너희에게 부딪칠 때, 그것이 너희를 이겨 비참과 끝없는 재난의 심연으로 너희를 끌어내리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세워진 반석으로 인함이라, 이는 확실한 기초이니 만일 사람들이 그 위에 세우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할 기초니라.”62

어린양을 안고 계신 예수

여러분이 삶에서 주의 사랑을 느끼고,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 역시 그 사랑을 느끼게 도우실 수 있도록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희망으로 가득차고 “기뻐하는” 가운데, 주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여러분에게 영감을 주고 북돋아 주도록 축복합니다. 학생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말로 표현하는 것과 더불어 말로 표현하지 않는 부분까지도 감지해 내며, 주께서 여러분이 행하기 원하시는 바를 알기 위해 영감을 얻으시도록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를 축복합니다. 저와 제 동료 사도 분들이 여러분에 대해 품고 있는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여러분 모두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데려오기 위해 여러분이 행하시는 일의 중요성을 여러분이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구주이신 주님에 대해 간증을 나눌 때, 그분께서 여러분 곁에 계심을 여러분이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