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영적 모임
빛을 맛보며


61:17

빛을 맛보며

린 지 로빈슨 장로와 함께하는 밤 청년 성인을 위한 전 세계 영적 모임, 2015년 5월 3일, 솔트레이크 태버내클

형제 자매 여러분! 청년 성인을 위한 전 세계 영적 모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특히 올해 세미나리를 졸업하신 분들에게 환영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이 성취한 일은 칭찬할 만하며 주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증명합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밤 이곳에 계신 여러 참석자의 모범을 따르고 여러분 지역의 종교 교육원이나 교회 대학에서 영적인 배움을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약속하건대,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인도를 계속해서 받고 여러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제 간증을 전할까 합니다. 여러분은 저한테서 “저는 압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속주요, 세상의 구주라는 것과 그분의 복음이 참됨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여러분의 간증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고 싶습니다.

신앙이란 스펙트럼에서 여러분의 간증은 어느 지점에 있습니까?

먼저 머릿속으로 자기 평가를 시작해 봅시다. 이 그림에 나오는 선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신앙 스펙트럼에서 여러분의 간증에 점수를 매겨 보십시오.

Slide from a Powerpoint presentation given by Elder Lynn G. Robbins for May 3, 2015 CES Devotional.

아래쪽에는 무신론자가 있는데 여기를 0으로 놓겠습니다. 맨 위쪽은 10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나타냅니다. 여러분은 이 스펙트럼에서 어느 지점에 계십니까? 아마 본인이 받을 만한 점수보다 더 낮은 점수를 줄 분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증진시키는 간증의 여러 측면과 그 간증 하나하나가 신앙의 스펙트럼에서 우리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더 큰 평화와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지를 토론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준 점수를 기억했다가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혹 그 점수가 높아지지는 않는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앨마는 “모두가 참으로 내 말을 시험하기에 이르며, 아주 작은 신앙을 행사하려 할진대, 참으로 설혹 너희가 믿기를 바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을지라도”(앨마서 32:27; 강조체 추가) 신앙의 스펙트럼에서 첫 걸음을 내디디라고 각 사람에게 권합니다.

Slide from a Powerpoint presentation given by Elder Lynn G. Robbins for May 3, 2015 CES Devotional.

소망

다음의 이야기는 소망이라는 이 첫 걸음을 내딛는 지혜를 보여 줍니다.

프랑스의 천재이자 수학자이며 발명가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1623년에 태어났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에는 수학 확률론이 있는데, 최적의 결정을 내리기 위한 논리적 접근법인 이 이론은 합리적 선택이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파스칼은 결정이론을 이용해 사람은 모름지기 인생의 가장 큰 내기, 즉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음을 예리하게 파헤쳤습니다. 파스칼의 내기라고도 알려진 이 이야기에는 이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사람의 생명,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람의 영생이 달려 있습니다.

Slide from a Powerpoint presentation given by Elder Lynn G. Robbins for May 3, 2015 CES Devotional.

상단에는 두 개의 선택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와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왼쪽 하단에도 두 개의 선택 사항이 있는데 ‘믿는다’와 ‘믿지 않는다’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의 조합이 나올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존재하며 내가 믿고 그에 따라 행하는 경우, 나는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다.

  • 내가 믿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나는 잃을 게 없다.

  • 나는 믿지도 경배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존재하는 경우, 나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

  • 내가 믿지 않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나는 얻는 게 없다.

  • 파스칼의 내기는 최적의 결정이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며, 오직 바보만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잃는 것은 많고 얻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탕자는 그 사람이 잃는 것은 “먹고 마시고 즐거워”(니파이후서 28:7) 할 기회가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거기에 무엇이 달려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보잘것없는 아차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는 “잠시 자기의 일에 기쁨을 누리나, 차차 마지막이 이[를]”(제3니파이 27:11) 것입니다. 떠들썩하게 흥청대며 놀고자 하는 그의 꿈은 살아 있는 악몽이 됩니다. 그는 필연적으로 이생에서 경험하는 영적인 숙취에서 깨어나 “간악함은 결코 행복이 아니었[다]”(앨마서 41:10)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고 나중에 심판의 날이 도래할 때 “하나님 앞에서 그의 심판이 공의로우시다 인정할 것”(모사이야서 16:1)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그는 환상의 대가인 사탄이 즐거움으로 가장하고 사탕발림으로 포장한 비참함으로 자신을 속였음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잠언 23:17) 합니다.

다행히 탕자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구주께서 우리가 이 비유에서 배우기를 바라시는 훌륭한 교훈입니다.(누가복음 15:11~32 참조)

씨앗을 심는다 – 배움의 시작

앨마는 다음 단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바람이 너희 속에서 역사하게 하기를, 곧 너희가 믿어 내 말의 일부를 위한 자리를 내줄 수 있기까지 그리하라.

이제 우리는 말씀을 씨앗에 비유하리라. 이제 만일 너희가 자리를 내주어 씨앗 하나가 너희 마음에 심어졌다면”(앨마서 32:27~28; 강조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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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실험에서 호기심을 갖고 소망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학습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이 학습 과정은 두 가지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닌즉, 너희는 지혜의 말씀을 부지런히 구하고 서로 가르치라. 그러하도다, 가장 좋은 책에서 지혜의 말씀을 구하라. 참으로 연구와 또한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라.”(교리와 성약 88:118; 강조체 추가)

경전은 또한 영이 우리를 가르치는 두 가지 학습 경로를 알려 줍니다.

“그러하도다. 보라, 나는 네게 임하여 네 마음에 거할 성신으로 말미암아 네 생각과 네 마음에 말하리라.

이제 보라, 이것은 계시의 영이니”(교리와 성약 8:2~3; 강조체 추가)

학습 방법과 학습 경로를 조정함

신앙 스펙트럼으로 돌아가기 전에, 두 가지 학습 방법과 두 가지 학습 경로의 상관 관계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양쪽을 다 사용하면 어떻게 우리가 신앙 스펙트럼을 따라 계속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유용한 통찰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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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스미스가 연구를 통해 기도에 대해 배운 때는 성경의 다음 구절을 읽던 때였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 1:5)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 성스러운 숲에 들어가 기도했을 때, 조셉은 신앙으로 기도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각자료 상단에는 두 가지 학습 경로가 있습니다. 바로 생각과 마음입니다.

연구하여 배운 것을 생각과 연결시킴

연구를 통해 배우려 할 때, 주님은 영감 어린 생각의 형태로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연구”와 “생각”의 관계와 관련해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있는데, 생각, 흥미, 호기심, 조사, 공부, 연구, 숙고, 질문, 깊이 생각함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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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어린 질문은 깊이 생각하게 하고, 영의 영향 아래에서 깊이 생각하면, 연구한 것과 마음이 교차하는 배움의 다음 단계로 올라서게 됩니다.

연구하여 배운 것을 마음과 연결시킴

깊이 생각하면, 씨앗을 가꾸게 되며, 그 씨앗은 싹이 트고, 여러분은 영이 주는 느낌을 받기 시작합니다. 생각을 믿음으로 바꾸는 것은 마음, 즉 영감 받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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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보라 그것이 참된 씨앗, 곧 좋은 씨앗이라면, 너희가 너희의 믿지 않음으로 그것을 내어 버려, 주의 영을 물리치지 아니할진대, 보라, 그것은 너희 가슴 속에서 부풀기 시작하리니, 이 부푸는 움직임을 너희가 느낄 때에, 너희가 속으로 말하기 시작하기를 - 이것은 좋은 씨앗임에, 곧 그 말씀은 선함에 틀림없도다. 이는 이것이 내 영혼을 크게 하기 시작함이라. 참으로 이것은 나의 이해력을 밝혀 주기 시작하나니, 참으로 이것은 내게 기쁨을 주기 시작하는도다 하리라.”(앨마서 32:28; 강조체 추가)

보통 ‘이해하다’ 란 말은 생각과 연관시키기 쉬운데 여러 성구에서는 ‘이해하다’를 다음과 같이 마음과 연관시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려 예수께서 기도하신 말씀을 그들이 그 마음에 깨닫더라.”(제3니파이 19:33) 어린 조셉은 야고보서 1장 5절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전의 어느 구절도, 이때 이 구절이 내 마음에 임한 것보다 더 힘차게 사람의 마음에 임한 적은 결단코 없었다.”(조셉 스미스—역사 1:12)

앨마는 그와 비슷한 느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보라, 이것이 너희의 신앙을 키워 주지 않겠느냐? 내가 이르노니, 그러하도다. 그러할지라도 그것이 완전한 지식으로 다 자란 것은 아니니라.”(앨마서 32:29; 강조체 추가)

그 씨앗은 아직 완전한 지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음에 감동을 받으면, 우리는 신앙 스펙트럼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고양됩니다. 조셉의 경우, 그 씨앗은 조셉이 행동으로 옮기도록영감을 주어 기도하라는 경전의 권유를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조셉은 “[그의] 신앙이 시련을 겪기까지는 … 증거를 받지 못”(이더서 12:6) 했습니다.

신앙으로 배운 것을 생각과 연결시킴

신앙으로 배우려면 느낌과 믿음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1 구주께서는 신앙으로 배우라는 바로 그 권고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강조체 추가) 이 구절에서 구주는 행함이란 믿음을 지식으로 바꾸는 신앙의 행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반대론자들에게 그분은 이렇게 촉구하십니다.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한복음 10:38; 강조체 추가)

안다는 것에 대해 앨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이제 보라, 너희가 시험을 해 보아 씨앗을 심었고, 이에 그것이 부풀고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하니, 이로 인해 너희는 그 씨앗이 좋은 줄을 반드시 알리라.

또 이제 보라, 너희의 지식은 완전하냐? 그러하도다. 그 일에 있어서 너희의 지식은 완전하며, 너희의 신앙은 휴면 중에 있도다. 이는 너희가 앎으로 인함이니, … 너희의 이해력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너희의 생각이 넓어지기 시작한 줄을, 또한 너희가 앎이라.”(앨마서 32:33~34; 강조체 추가)

신앙을 행동으로 옮기면 우리는 지식을 얻게 됩니다.

신앙과 생각으로 배우는 것과 관련된 다른 말 중에서도 우리는 완전한 지식, 기도, 회개, 행동의 변화, 순종, 경험, 맛보기 등의 말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Slide from a Powerpoint presentation given by Elder Lynn G. Robbins for May 3, 2015 CES Devotional.

앨마는 빛을 맛보는 것을 언급하면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맛보다”란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실이니라. 이는 그것이 빛인 연고요, 또 무엇이든지 빛 된 것은 선하니, 이는 그것이 분별할 수 있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선한 것인 줄 너희가 반드시 알리라. 또 이제 보라 너희가 이 빛을맛보고 난 후 너희의 지식은 완전하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의 신앙을 버려 두어서도 아니 되나니, 이는 너희가 다만 씨앗이 좋은 것인지 알기 위하여 시험을 해 보고자 씨앗을 심을 만큼 너희의 신앙을 행사한 것에 불과함이니라.”(앨마서 32:35~36; 강조체 추가)

빛을 맛보고 음미하면 그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 묘목이 좋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빛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 안에서 기적을 이루게 하며] … [여러분을] 주께로 돌이[키게]”(앨마서 23:6) 합니다.

신앙으로 배운 것을 마음과 연결시킴

앨마의 말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또 보라,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매, 너희가 말하기를, 크게 주의하여 이를 가꾸어 … 너희가 많은 보살핌으로 나무를 가꾸면, 그것이 뿌리를 얻겠고, 크게 자라 열매를 맺을 것이라. …

보라 너희가 지극히 귀[한] … 그 열매를 거두게[또는 맛보게] 될 것이라.”(앨마서 32:37, 41~42; 강조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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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맛보고 나면, 우리는 신앙으로 배운 것과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그 열매가 참으로 달고 귀함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뜻을 행하면 우리는 그분의 속죄와 복음을 여러 방식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의 초반에 우리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이제 앨마가 묘사한 대로 “마음에 크나큰 변화”(앨마서 5:12)가 일어나고 영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개종으로 바꾸어 줍니다.

“주께로 돌이[킨]”(앨마서 23:8) 우리는 침례와 성신의 은사를 받음으로써 구주를 따릅니다. 복음의 “열매를 맛보면서” 축복과 아울러 리하이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내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매, 그것이 나의 영혼을 심히 큰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는지라. 나는 나의 가족들도 역시 그 열매를 먹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나니, 이는 그 열매가 다른 어떤 열매보다 더 먹음직한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니파이전서 8:12)

“주께로 돌이[킨다]”는 것은 말 그대로 크나큰 변화이자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며,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고 주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성도가 되며”(모사이야서 3:19)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탈바꿈입니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개종은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서야]”(에베소서 4:13)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이 일은 평생 추구해야 할 과업이자 주님과 그분의 은혜 혹은 신성한 도움을 믿는 평생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니파이후서 25:23 참조)

앨마가 설명한 바와 같이, 이 평생에 걸친 개종에는 나무를 시들게 하는 영향력을 피하기 위한 우리 쪽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무를 소홀히 하여, 그 가꿀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보라 그것은 아무 뿌리도 얻지 못하리니, 태양의 열기가 와서 그것을 태우면, … 마르고”(앨마서 32:38)

“그런즉 너희는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과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힘써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느니라. 그런즉 만일 너희가 힘써 앞으로 나아가되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하며 끝까지 견딜진대, 보라, 이같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시느니라.”(니파이후서 31:20; 강조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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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크나큰 변화와 개종은 우리에게 질문이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빛을 맛보게 되면, 질문은 신앙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계속해서 배우려는 소망을 우리 안에 심어 줍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을 믿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아니하는 자, 그에게는 내가 참으로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모든 말을 확증하여 주리라”(몰몬서 9:25)

질문은 좋은 것입니다. 질문은 깊이 생각하고 찾고 기도하게 합니다. 조셉 스미스에게는 평생 끊임없이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리와 성약의 거의 모든 편은 조셉이 기도로 주님께 질문을 드린 결과로서,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주어진 계시입니다. 구주께서 배우신 방식도 바로 그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처음에는 충만함을 받지 아니하셨으나 계속하여 은혜에 은혜를 받으시더니, 드디어는 충만함을 받으시더라.”(교리와 성약 93:13)

완전한 지식

신앙의 스펙트럼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맨 위쪽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라고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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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지식”이란 구절을 잠시 살펴봅시다. “빛을 맛보[는]” 것과 관련해서 앨마는 “그 일에 있어서 너희의 지식은 완전하며”(앨마서 32:34)라고 가르쳤습니다. 다음 성구에서 선지자 몰몬이 똑같은 빛에 대해 간증하면서 “완전한 지식”이란 같은 구절을 사용한 점에 유의하십시오.

“이는 보라, 나의 형제들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너희에게 주어져 너희로 선악을 분별하게 하였음이요, 또 판단하는 길은 어두운 밤과 낮의 빛을 구별함같이 명백하여 너희가 완전한 지식으로 알 수 있음이니라.

이는 보라,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선악을 분별하게 하였은즉,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판단하는 길을 보여 주노니, 무릇 선을 행하도록 권유하며, 권하여 그리스도를 믿도록 설득하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사로 말미암아 보냄을 받은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을 완전한 지식으로 알지니라.

이에 이제 나의 형제들아, 너희가 판단할 수 있는 빛, 곧 그리스도의 빛을 알고 있은즉, 너희가 잘못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모로나이서 7:15~16, 18; 강조체 추가)

두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빛이야말로 우리에게 진리의 완전한 지식을 준다고 간증합니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조차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적 감각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빛을 양심이라는 말로 인정합니다. 영어로 양심(conscience)이란 단어는 라틴어인 콘시엔티아(conscientia),즉 “내면의 지식”2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진리를 봉인하는 그 빛과 함께, 우리는 계속해서 신앙의 스펙트럼 위에서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니파이후서 28:30; 교리와 성약 98:12, 128:21) 발전하며 “성신의 권능으로 … 모든 것의 참됨을 알게”(모로나이서 10:5; 강조체 추가) 될 것입니다.

잠시 후, 빛은 어떤 맛이 나며, 또 빛은 어떻게 완전한 지식을 주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기 위해 앨마의 실험을 실제로 해 보겠습니다.

반대되는 것은 진리를 드러낸다

실험에 앞서, 이 과정에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니파이후서 2장에서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이 있음이 꼭 필요”(니파이후서 2:11)함을 배웠습니다. 인류는 “쓴 것을 맛보게 되나니, 그리하여 그들이 선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모세서 6:55) 됩니다. 예를 들어, 건강은 그 반대되는 것, 즉 아픔과 병을 주로 연구한 것입니다. 자유는 억압과 속박에 관한 연구입니다. 행복은 그 반대인 슬픔을 연구한 것입니다. 작은 기적같은 반딧불처럼, 빛은 어두운 배경 없이는 인식되지 못합니다.

반대되는 것은 우리의 교육과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숨이 가빠질 때까지는 공기를 당연시하듯이, 반대되는 것이 없으면 진리는 잘 보이는 곳에 있더라도 숨겨진 채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항상 존재하기에 많은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영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제3니파이 9장 20절,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받은 것 같으려니와 그들이 이를 알지 못하였[던]” 레이맨인들처럼 말입니다.

반대되는 것은 진리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진리에 내재된 힘, 기쁨, 달콤함까지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탕자는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서야 얼마나 행복한 삶을 버리고 집을 떠났으며, 젊었을 때 얼마나 모든 걸 당연시 여겼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고통과 질병은 건강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줍니다. 부정직의 피해자가 되면, 우리는 고결함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불평등이나 잔혹함을 경험하면, 사랑과 친절을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빛으로 각각의 열매를 맛본 후에야 우리는 “완전한 지식”을 얻습니다. 완전한 지식은 모든 면에서 반대되는 것을 통해 열매를 하나씩 맛볼 때 옵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궁극적인 행복, 성장이 약속되며, 반대되는 것을 비켜가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한 성장이 약속됩니다. “평온한 바다에서는 뛰어난 선원이 나올 수 없습니다.”3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통찰력 있는 다음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상반되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진리가 드러난다.”4

브리검 영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실은 그 반대되는 것으로 증명되고 드러난다.”5

신앙의 실험

이제 실험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관련된 계명, 또는 그리스도와 같은 덕성 몇 가지를 각각 그 반대되는 것과 비교하며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나씩 생각해 볼 때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이, 그리스도와 같은 덕성은 달콤하지만 그 반대는 쓰다는 것을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속에 확증해 줄 것입니다.

  • 사랑 대 미움, 증오, 대립

  • 정직 대 거짓말, 속임수, 절도

  • 용서 대 복수, 분개, 쓰라림

  • 친절 대 악랄함, 화, 불친절

  • 인내 대 다혈질, 성급함, 편협함

  • 겸손 대 교만, 고집불통, 거만

  • 중재자 대 대립, 분열, 선동을 일삼는 자

  • 근면 대 싫증을 내고, 포기하며, 완고함

이것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여러 덕성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씨앗 실험의 효과를 분명히 설명하기에는 충분합니다.

이 목록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여러분은 각 덕성에 따르는 힘과 진리, 달콤함은 이를 증명하는 수천 가지 경험을 통해 하나씩 알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실 것입니다. 좋은 열매에는 내재된 증거와 증명이 뒤따릅니다. 즉 맛이 느껴집니다! 열매를 하나씩 맛보고 말씀에 말씀을 더해 “완전한 지식”을 얻게 되는 게 그 증거입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이를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범사에 헤아려(영문 성경상의 표기는 Prove라는 단어로 되어 있으며 이는 증명하다라는 뜻이다-옮긴이) 좋은 것을 취하고”(데살로니가전서 5:21; 강조체 추가) 이런 덕성과 그 밖의 덕성을 여러분의 삶과 융합시켰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신앙 면에서 훨씬 더 앞서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달의 영광의 간증이라 부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종교를 갖고 있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이들은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그들 또한 몰몬이 말한 그리스도의 빛이 있고 복음의 일부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실험—다음 단계

해의 왕국의 간증은 “아버지의 충만하심”(교리와 성약 76:75~78; 93:19)을 구할 때 옵니다. 침례를 받고 성신의 은사를 받기에 합당하면, 그 사람은 몰몬경의 다음 구절에 나와 있듯이 그리스도의 빛을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이것이 너희 마음의 원하는 바일진대 주께서 너희에게 그의 영을 더욱 풍성하게 부어 주시도록, … 주의 이름으로 침례 받음에 너희가 꺼릴 것이 무엇이 있느냐?”(모사이야서 18:10; 강조체 추가)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님은 우리가 빛 가운데 성장한다는 점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더욱 더 하나님께 향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하늘의 빛을 더 많이 받게 됩니다.”6

“빛을 받아들이고 계속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빛을 더욱 받아들이나니,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져 마침내는 대낮이 되리라”(교리와 성약 50:24)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시기에, 더 큰 빛을 받을 때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굳이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완전을 향하여 가까이 나아갈수록, 시야가 더욱 맑아지고, 기쁨이 더욱 커져, 인생의 모든 악을 극복하고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을 잃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7

이해가 되도록 더 큰 빛과 더불어 해의 왕국 수준에서 실험을 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만의 독특한 교리 몇 가지를 흐릿한 빛 아래에 있는 다른 곳의 교리와 비교해 봅시다.

  •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대 하나님이 문자 그대로 우리 아버지인 것은 아니며 그분은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존재일 뿐이다.

  • 선지자와 사도가 있는 하나님의 조직 대 하나님이 세우신 방식을 버림.

  • 주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며 신권 열쇠를 소유한 사람들을 통해 다스리신다. 대 혼란, 서로 다른 목소리, “거짓 영”(교리와 성약 50:2)

  • 신권 권세 및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음 대 신학 학위, 선출되거나 고용됨, 혹은 스스로 천거함.

  • 의식 및 성약 대 그냥 선한 삶.

  • 아이들은 죄가 없음 대 유아 세례.

  • 두 번째 증거인 몰몬경 대 성경만이 유일한 증거임.

  • 죽은 자를 위한 성전 의식 대 촛불을 피워놓고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함.

  • 영원한 결혼 및 가족 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진리를 그 반대되는 것들과 대조해 보면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잘 보이는 곳에 숨겨진 명백한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은 우리가 계속 “그리스도의 빛으로 부지런히 탐구하여 … 모든 선한 것을 붙잡[게]”(모로나이서 7:19) 할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 20:29)

이제 신앙과 간증의 또 다른 흥미로운 면을 살펴봅시다.

경전 안내서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참된 것들에 대한 소망을 포함[합니다.](히 11:1)”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라는 게 흥미롭지 않습니까? 세상은 그 반대, 즉 “봐야지 믿는다”고 말하니 말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세상을 오감으로 발견하며, 표적으로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경전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을 오감으로 느꼈음에도 끝까지 개종하지 못한 사람들의 예가 가득합니다.

  • 레이맨과 레뮤엘은 천사를 보았습니다.(니파이전서 3:29) 또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와 “심히 질책[을 받는 경험도 했습니다.]”(니파이전서 16:39)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도 느꼈는데, 니파이가 손을 뻗자 “주께서 그들을 흔들어 주셨[습니다.]”(니파이전서 17:54)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맛보고냄새도 맡았습니다. “너희가 음식을 요리하지 않도록 내가 너의 음식을 달게 하리라.”(니파이전서 17:12) 오감을 통해 여러 차례 주님의 나타나심을 인식했지만, 레이맨과 레뮤엘은 거역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었을까요?

  • 모세가 이스라엘 자녀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났을 때, 그들은 역병과 불기둥,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만나를 맛보았습니다. 즉, 그들은 오감으로 경험했습니다. “또 그들이 인도함을 받되 주 그들의 하나님, 그들의 구속주께서 그들 앞에 행하시며, 낮으로는 그들을 인도하시고 밤으로는 그들에게 빛을 주시며, 사람이 받기에 합당한 모든 것을 그들을 위하여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그 생각을 눈멀게 하여, 모세에게 또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대하여 욕하였나이다.”(니파이전서 17:30) 분명 그들에게는 보는 것이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 경전에는 다른 유사한 예가 많지만, 가장 놀라운 예는 구주께서 바로 곁에 계신데도 그분을 거부했던 사람들의 영적 무감각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요한복음 12:37; 또한 교리와 성약 138:26 참조)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데에 반대되는 예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자신의 간증을 확증하기 위해 한 가지 놀라운 경험을 하기를 바라는 이들은 영이 주는 더 큰 간증과 증거가 경전에 밑줄을 긋는 것처럼 여러 작은 방법으로 날마다 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경전에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아하!” 하고 감탄할 만한 특별한 인상과 통찰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영감을 주는 감동은 계시입니다.

계시의 또 다른 예는 친절하거나 선한 행동을 하고 싶은 느낌이 들 때입니다. “무릇 선을 행하도록 권유[하는] …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사로 말미암아 보냄을 받은 것”(모로나이서 7:16)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항상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그 빛을 맛봅니다. 이런 영적인 느낌으로부터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기]”(교리와 성약 64:33) 마련입니다.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는 모든 것의 참됨을 알게 되리라.”(모로나이서 10:5)

여러분은 몰몬경에서 천사를 보고 믿었던 사람을 떠올릴 수 있습니까? 아마 앨마 이세를 생각하실 것입니다. 앨마 이세와 모사이야의 아들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구름에 둘러싸인 듯 하강하여 마치 우레와도 같은 소리로 말”(모사이야서 27:11)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아시다시피 앨마의 회개와 성역으로 이어집니다.

앨마에게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앨마는 연구와 신앙으로 배우겠다는 자신의 선택의지를 아직 행사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알기 위해 아직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금 언급한 여러 예에서 증명되었듯이 보는 것은 신앙이나 간증을 얻는 지름길이 아닙니다. 앨마는 자신이 어떻게 간증을 얻었는지 설명하며, 천사가 나타났기 때문에 간증을 얻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의 간증에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또 이것이 모두가 아니니라. 너희는 내가 스스로 이러한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나는 내가 말한 이러한 것이 참된 줄을 아노라. 이에 너희는 내가 어떻게 그러한 것의 확실함을 안다고 생각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것들이 내게 알려졌느니라. 보라, 내가 여러 날을 금식하고 기도하며 나 스스로 이러한 일을 알고자 하였느니라. 이제 내가 참으로 그러한 것이 참된 줄을 스스로 아는 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그것들을 내게 나타내 주셨음이니, 이는 내 안에 있는 계시의 영이니라.”(앨마서 5:45~46; 강조체 추가)

“반짝 회개”나 단시간에 행동이 변화하는 것은 오감을 통한 외부의 영향으로 가능하기도 하지만, 레이맨과 레뮤엘의 경우처럼 그것은 언제나 오래가지 못합니다. 지속되는 간증은 오직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는]”(예레미야 31:33) 성신과 더불어 연구와 신앙을 통해 배울 때 생깁니다. 그래서 니파이인들은 구주께서 방문하셨을 때 보고 듣고느꼈음에도, 또 그분께서 기적적으로 마련해 주신 떡을 맛보고냄새를 맡았음에도(제3니파이 20:3~9 참조) “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위하여 기도하였나니, 저들은 성신을 저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였[습니다.]”(제3니파이 19:9)

몇 년 전에 한 장년 선교사 한 분이 제게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구와 기도를 통해서만 성신이 우리에게 진리를 증거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 이야기는 그분이 젊었을 때인 196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유타 주 프로보 시내 중심지와 가까운 조그만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프로보에 있는 작은 가구 매장의 판매원이었고, 그 사건은 새해 명절 무렵의 긴 주말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연휴는 길었습니다. 그날은 새해 전야인 12월 31일 목요일이었습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휴가였지만, 저는 어떤 계획도 없이 아파트에 혼자 있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다가 음식이 다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를 읽고 싶어졌습니다. 집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다니는 옆집 청년들에게 읽을거리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필드 앤 스트림 (Field & Stream) 같이 여가와 관련된 잡지가 있을까 하고 말이죠. 그들은 잡지는 없지만 제가 읽으면 좋아할 것 같은 책은 한 권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게 몰몬경 한 권을 주었습니다.

저는 몰몬 교회는 들어보았어도, (그건 유타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이겠지요.) 몰몬경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그 책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저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몰몬경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줄거리를 파악하려고 몇 부분을 재빠르게 훑어보았을 뿐입니다. 한 번도 못 들어본 지명과 이름이 있었고, 내용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에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하고 말하며 몰몬경을 돌려주었습니다.

한 청년이 ‘몰몬경에 대해 기도해 보셨나요?’라고 묻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책에 대해 기도한다고요? 전 그저 뭔가 읽고 싶었던 거지 기도할 거리를 찾는 건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몰몬경의 내용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몰몬경이 경전이며 제가 먼저 기도한 후, 몰몬경이 참된지 알고자 하는 진정한 소망으로 읽는다면 하나님께서 몰몬경이 참됨을 성신의 권능으로 드러내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성당을 다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저는 가톨릭 신자로 자랐고, 제가 아는 것은 가톨릭이 전부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제가 가톨릭 신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했던 유일한 기도는 주기도문, 성모송, 그리고 미사 전서에서 읽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오랫동안 해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떤 청년들이 제가 정말 잘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분께 이 책이 참된지 여부를 알려달라고 물어보라는 겁니다. 기가 찬 일이었지만, 기나긴 주말 내내 달리 할 일이 없었으므로 저는 그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몰몬경을 갖고 가서 맥주 한 병을 따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무릎을 꿇고 이 책이 참된지를 알려달라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 후 다음 구절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 니파이는 훌륭하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름과 지명은 제가 몇 시간 전에 읽었던 것과 똑같았습니다. 이번에 다른 점이 있다면 마술처럼 ‘불신감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히 몰몬경에 빠졌습니다! 니파이와 그의 형들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형들이 니파이를 학대할 때 화가 났습니다. 니파이가 좋았으니까요! 저는 선한 사람들은 계속 응원했고 나쁜 사람들은 불쌍히 여겼습니다. 여러 시간 몰몬경을 읽었지만,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시계를 봤더니 거의 새벽 5시였습니다. 저는 새해 복을 빌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8시 반경에 일어나 본능적으로 몰몬경을 펼쳤습니다. 그렇게 몰몬경을 읽으며 남은 주말을 보냈습니다. 팔리 피 프랫 형제님처럼, 음식에 대한 생각도 성가셨고 아무것도 저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전화선도 빼버렸고 이따금 간단한 간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온종일 몰몬경을 읽었습니다. 첫날 밤처럼 몰몬경을 읽다가 시계를 보니 또 새벽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자다가 다시 책을 집어 들고서, 자진해서 뛰어든 이 마라톤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월요일 새벽 5시경에 몰몬경을 다 읽고 녹초가 되어 잠들었습니다.

그해 성탄절을 앞두었을 시기부터 저는 아메리칸포크 지역에서 대형 카펫 파는 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제품이 특수 카펫이라서 사장님은 제게 카펫 까는 일까지도 감독하라고 했습니다. 사장님은 프로보 지역에서 전에 감독으로 봉사한 분이었는데, 우리는 교회 이야기를 몇 차례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장님은 좋은 분이었지만 다혈질인 데가 있으셔서 조금은 조심해야 했습니다. 저는 월요일 아침 8시에 카펫 까는 일을 감독하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 시각이 다 되었을 때도 저는 거기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9시, 이윽고 10시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10시 30분쯤 사장님은 몹시 화가 난 채로 제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사장님은 현관에 들어서서 단단히 꾸짖을 참이셨으나, 제가 몰몬경을 품에 안고 소파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문을 닫고 카펫 까는 일은 자기가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가게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11시 반이 넘어서야 깨어나 (사장님이 온 줄 모르고) 시계를 봤습니다. 비교적 짧게 두 번째 기도를 드린 후 얼른 옷을 갈아입고서 (아마 제가 도착할 때쯤에는 할 일이 없을 것이라 예상하며) 차를 몰고 쏜살같이 작업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사장님을 발견하고서 사과하기 위해 다가갔습니다. 사장님은 저를 돌아보시며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 책이 어떻던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자초지종을 깨달은 저는 지난 주말의 일이 떠올라 눈물을 머금은 채 ‘그 책은 참됩니다. 몰몬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울기 시작하자 사장님은 다가와서 저를 부둥켜안아 주셨습니다. 저는 1965년 1월 22일에 침례받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훌륭한 형제님을 만나 뵙게 된 것은 그분이 그렇게 개종하고 수십 년 후에 샌디에이고 몰몬 대대 방문자 센터에서 아내와 함께 선교 사업을 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분이 몰몬경을 읽었을 때 두 가지 비교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진정한 의도나 기도가 없었지만, 두 번째는 소망과 기도로 읽었기에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몰몬경과 복음이 참된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호기심 이상의, 오감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선택의지를 진지하게 행사해 알고자 하는 소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이 기록을 받거든, 내가 너희를 권면하거니와, 너희는 혹 이 기록이 참되지 아니한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 보라. 너희가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진정한 의도를 지니며, 진실한 마음으로 간구할진대, 그는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에게 이것의 참됨을 드러내어 주시리라.

또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는 모든 것의 참됨을 알게 되리라.” (모로나이서 10:4~5)

그 약속은 “아마”, 또는 “어쩌면”이라는 말로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 약속은 바로 “그는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에게 이것의 참됨을 드러내어 주시리라.”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는 또 다른 원리는 몰몬경을 통째로 읽어야 증거를 얻을 수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첫 장에서 그 빛을 맛보았습니다. 피자 한 판을 다 먹고 나서야 피자가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 아닙니다. 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맛이 더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나중에 습득한 맛이 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앨마가 다음 성구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그 점일 겁니다. “참으로 이것은 나의 이해력을 밝혀 주기 시작하나니 참으로 이것은 내게 기쁨을 주기 시작하는도다 하리라.”(앨마서 32:28)

여러분의 간증은 생각보다 더 강합니다

시작할 때 저는 여러분에게 신앙 스펙트럼에서 여러분의 간증에 점수를 매겨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분의 간증이 생각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는 것을 깨달으셨기 바랍니다. 성신을 교사로 삼을 때, 여러분은 복음의 갖가지 열매에 담긴 완전한 지식을 열매 하나하나를 통해, 말씀에 말씀을 더해 얻고, 여러분의 간증은 날마다 더 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Slide from a Powerpoint presentation given by Elder Lynn G. Robbins for May 3, 2015 CES Devotional.

복음을 더 많이 배우고 복음대로 살수록 더 많은 빛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은 더욱더 상식에 맞는 복음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명나무의 열매가 참으로 귀중하고 “지극히 감미로워 [우리가] 이전에 맛본 그 어느 것보다도” 감미로우며 우리의 영혼을 “심히 큰 기쁨으로”(니파이전서 8:11~12) 가득 채워주리라는 것을 배웁니다. 복음은 삶에 긍정적인 결과 이상의 축복, 기쁨, 통제력을 주고 영원한 가족으로서 끝없는 행복의 희망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몰몬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며, 그 사실을 성신을 통해 안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몰몬경은 달콤하고 귀한 맛이 납니다. 저는 몰몬경의 맛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분은 세상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고통을 겪으셨음을 증거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주이시며 살아 있는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 이 땅에서 당신의 교회와 왕국을 계속해서 이끌고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저는 그분의 이름과 이 모든 진리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아멘.

  1. David A. Bednar, “Seek Learning By Faith,” Ensign, Sept. 2007, 60–68 참조.

  2. Wordsense.eu Dictionary, “conscientia,” www.wordsense.eu/conscientia/ 참조.

  3. 아프리카 속담.

  4. Joseph Smith, History of the Church, 6:428.

  5. Brigham Young, Discourses of Brigham Young, sel. John A. Widtsoe [1954], 433.

  6.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빛과 진리의 간증을 얻음”, 리아호나, 2014년 11월호, 22쪽.

  7. Joseph Smith, History of the Church, 2:8.

  8. 경전 안내서, “신앙”, scriptures.ld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