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영적 모임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


33:28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

청년 성인을 위한 전 세계 영적 모임, 2019년 1월 13일, 브리검 영 대학교–하와이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에게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의 희생에 대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대신하여 여러분의 신앙과 충실함에 감사드립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이곳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훌륭한 합창단 덕에 이 모임에 영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연단에 앉아 계신 다른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우리의 삶에 미치는 그분들의 영향력에 감사하며 그분들이 보여 주시는 제자로서의 모범에 경의를 표합니다.

수 개월 동안 저희 마음에 계속 떠올랐던 주제가 있었는데, 오늘 그에 대해 토론하고 싶습니다. 그 주제는 신앙과 의심입니다. 작년 6월, 우리는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연례 교사 훈련 방송에서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모임을 시작하면서 그 비유를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바다에서 항해를 하다가 배가 전복된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구명 조끼를 입은 채 가장 가까워 보이는 해안을 향해 몇 시간째 수영을 해가고는 있지만, 그쪽이 정말 해안 쪽인지는 확신할 길이 없습니다. 극심한 탈수 증세가 밀려오는 나머지, 다시 팔을 내저으려 할 때마다 피로가 몰려 오고 현기증이 납니다. 해안가까지는 어림잡아 30킬로미터나 떨어져 보입니다. 수영으로 그렇게 멀리 갈 수는 없기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런데 저 멀리 자그마한 엔진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는 점점 여러분을 향해 다가오는 듯하고,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이 솟구칩니다. 자세히 보니 고깃배 한 척이 다가오는 게 보입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여러분은 생각합니다. “선장이 나를 본 거야! 하늘이여 감사합니다!” 배가 멈춰서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의 어부가 여러분을 친절하게 배 위로 끌어올려 줍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분은 기어가 배 안에 자리를 잡고는, 안도의 숨을 쉽니다. 어부는 수통에 담긴 물과 살짝 구운 크래커를 건넵니다. 여러분은 허겁지겁 먹어치웁니다. 물과 크래커 덕분에 여러분은 체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양분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마음이 놓이고 너무나 행복합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상태가 한결 나아지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수통에 담긴 물에서는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고, 여러분이 좋아하던 에비앙이나 페리에 같은 고급 생수와는 거리가 멉니다. 크래커도 먹을 만했지만 여러분이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은 조리된 육류 음식에다 초콜릿 크루아상 디저트였습니다. 또 그 친절한 어부는 낡아빠진 부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게 보입니다. 그가 쓴 모자는 땀으로 얼룩져 있고, 그는 귀가 어두운지 잘 듣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배는 오래되고, 오른쪽 뱃머리는 몇 군데가 찌그러져 있습니다. 페인트칠은 군데군데가 깨지고 벗겨져 있습니다. 어부가 배의 방향키를 잠시라도 놓으면 배가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도 느껴집니다. 이 배와 선장이 여러분을 구조해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어부에게 배의 찌그러진 부분과 방향키에 대해 물어 봅니다. 그는 수십 년간 날이면 날마다 똑같은 길로 어장을 오갔기에 그런 것들은 그다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 배는 어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안전하고도 믿음직스럽게 데려다 준 것이었습니다.

어안이 벙벙합니다! 어떻게 찌그러진 부분과 방향 키가 걱정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좀 더 내 취향에 맞는 먹을거리는 없는 걸까? 배와 어부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걱정이 늘어만 갑니다. 애초에 배에 올라타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어부에게 배를 멈추고 물에 다시 빠지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해안까지는 아직 20 킬로미터도 더 남았지만, 이런 배에 타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부는 슬픈 얼굴로 배를 멈추고는 여러분이 다시 바다에 들어가게 도와줍니다. 다시 여러분은 바다에 혼자 남습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이 비유에서 고깃배는 교회를, 어부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지도자를 뜻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1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도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생을 가져다주는 그분들의 사업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2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 즉 성약의 길을 제공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이들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성약의 길을 가도록 돕고 격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깃배와 어부가 이 교회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되도록 도와주는, 승인된 구원 및 승영의 의식을 제공하는 데 교회의 찌그러진 부분과 벗겨진 페인트칠이 문제가 됩니까? 어부가 양 손으로 키를 잡아야만 배가 올바른 항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안전하고 믿음직스럽게 데려다 주는 어부와 배의 능력이 무효가 됩니까? 배에 머무는 대신 물에 다시 빠지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제 남편처럼 선견자로 성임되지 않고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때 그 찌그러지고 벗겨진 작은 부분들은 우리 마음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모든 회원은 회복된 교회의 참됨에 대해 자기 자신만의 간증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의 큰 변화를 포함하는 참된 개종 없이는, 은유적으로 말해서 크래커나 벗겨진 페인트 같은 것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2018년 4월 연차 대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참된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모로나이서 10:5 참조] 누구를 정말 신뢰해야 하는지도 궁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계시를 통해, 여러분은 몰몬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조셉 스미스가 선지자이며,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라는 사실에 대해 여러분만의 증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참된 것에 대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에 새겨진 증거와 간증은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습니다.”3 이 간증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욱 중요합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저의 간증은 제가 스웨덴 예테보리에 살던 시절에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11세 소년이었습니다. 당시 선교부 회장님은 모든 젊은이들에게 몰몬경을 읽으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그 권유를 받아들이고 몰몬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몰몬경을 읽고 있던 중에, 선교부 회장님의 보좌 중 한 분이 우리가 읽은 것에 대해 기도해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권유를 실행에 옮겼던 그날 저녁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는 침대가에 무릎을 꿇고 몰몬경이 참된지 알기 위해 아주 단순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음성이 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 책이 참되다고 이제까지 계속 네게 말하고 있지 않았느냐.” 그 경험은 저를, 제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 경험은 신앙의 여정, 즉 성약의 길을 벗어나지 않고 무엇이든 더 열심히 하고 더 잘 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저는 예테보리에서 회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예테보리에서 구속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을 우러러보기 시작한 것도 예테보리에서였습니다. 예테보리는 제게 “몰몬의 물”이 되었습니다.4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여러분이 구속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 곳은 어디었습니까?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만약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때 받은 느낌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시기를 촉구합니다. 이 지식과 느낌은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신앙은 각자가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단지 무언가가 참되기를 즉흥적으로 바라거나 상상 속에서 스스로를 확신시키는 것이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확신입니다. 신앙은 또한 행동의 원리입니다.

“신앙이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 신앙은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권세 있는 [교사가] 가르친 복음을 들음으로써 불이 붙습니다.[로마서 10:14~17 참조] 기적이 신앙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강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종에 의해 발전[됩니다]. 달리 표현하면, 신앙은 의에 의해서 [옵니다.]”[앨마서 32:40~43 참조]5 신앙은 하나님에게 표적을 요구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고 이를 지킬 때 주어집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을 갖길 원하십니다. 그래야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6 신앙은 하나님의 자비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사람은 신앙을 갖고 싶다는 결심을 해야 하며, 그런 후에 먼저 신앙을 가지고 행해야만 그 신앙이 자랄 수 있습니다. 앨마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보라, 만일 너희가 너희의 능력을 일깨우고 환기시켜, 참으로 내 말을 시험하기에 이르며, 아주 작은 신앙을 행사하려 할진대, 참으로 설혹 너희가 믿기를 바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을지라도, 이 바람이 너희 속에서 역사하게 하기를, 곧 너희가 믿어 내 말의 일부를 위한 자리를 내줄 수 있기까지 그리하라.”7 신앙을 키우려면 우리는 신앙을 갖고자 선택하고 그런 뒤 신앙을 행사하고 행해야 합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신앙을 얻으려는 소망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발로 신앙을 표현합니다.

이 원리는 제 남편이 열한 살 때 따랐던 몰몬경의 약속에 잘 나와 있습니다. “또 너희가 이 기록을 받거든, 내가 너희를 권면하거니와, 너희는 혹 이 기록이 참되지 아니한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 보라. 너희가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진정한 의도를 지니며, 진실한 마음으로 간구할진대, 그는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에게 이것의 참됨을 드러내어 주시리라.”8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이 참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그 질문은 여러분을 신앙으로 이끌 것이고 그 신앙은 자랄 것입니다. “이것이 참되지 않을까?”라는 말은 그것이 참되다고 간주하고 하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차를 타고 호놀룰루에서 북쪽 해변으로 가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쪽으로 간다고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몰몬경에 대해 모로나이가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는 질문은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질문이며 따라서 이는 우리를 더 큰 신앙으로 이끕니다.

여러분이 “이건 거짓이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그 질문은 여러분을 의심으로 이끕니다. 의심은 결코 우리를 신앙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제가 어떤 스테이크 대회에 참석했을 때, 스테이크 회장님은 제게 한 형제를 만나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편의상 그를 스티븐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스티븐은 한때 교회의 충실한 회원이었습니다. 그는 귀환 선교사인데다 성전에서 결혼했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충실하게 봉사했던 그는 교회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스티븐과 만났을 때, 그는 조셉 스미스가 첫 번째 시현에 대해 네 가지 다른 버전을 썼다는 사실에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조셉 스미스가 그 이야기를 지어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네 가지 다른 버전을 수십 년 전에 조사했었던 한 사람에게 스티븐이 연락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스티븐은 그 분과 만났습니다. 다음 번에 스티븐과 이야기할 때, 제가 물었습니다. “이제 첫번째 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서 이제 괜찮습니다.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은 나부에서와 1890년 성명 이후에 시행되었던 복수 결혼에 대해서 정말 고민이 돼요. 그것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저는 신뢰할 만한 주요 자료들을 통해 이 부분을 연구한 사람과 스티븐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만남 뒤에 저는 스티븐에게 연락해서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고, 근심거리가 풀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 한동안 신권을 유보한 부분이 걸리는군요.”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슬프게도, 스티븐은 계속해서 의심하는 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겁니다. 그는 무언가를 아는 것보다 의심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9 그는 그가 신앙으로 심은 것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파내고 있었습니다.10 시간이 가면서 한 가지 의심거리가 해결되면 또다른 의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질문에 아무리 응하고 답을 주려한들, 그는 의구심이 드는 또다른 주제를 찾아낸 것이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주는 축복으로 그를 인도해 줄 배의 능력보다 그 배의 찌그러진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스티븐이 하고 있던 것은 일종의 “교회 역사 두더지 게임”이었습니다. 두더지가 튀어나와 그 두더지를 때리면 다른 구멍에서 또다른 두더지가 튀어나오는 게임 말입니다.

어떤 지적 궁금증이 있을 때 추가적인 지식과 정보가 이를 한시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추가적인 정보 역시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썼듯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입니다.11

의구심을 가진 이들, 의심이 마음에 자리잡게 된 이들, 그리고 영적인 기반이 약해 흔들리던 많은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자리를 지켰고 성약의 길에 남았습니다. 종종 그들은 기도할 때, 닐 엘 앤더슨 장로님이 수십 년 전에 자신이 선교사로 봉사하기에 잘 준비된 것인지 알기 위해 기도했을 때 받았던 그런 응답을 받습니다. 그분은 기도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으셨습니다. “네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나 충분히 알고 있느니라!”12 때때로, 사실 자주, 주님의 응답은 이와 같을 것입니다. “너는 충분히 알고 있느니라. 성약의 길에 남아 내 계명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말이니라.”

천사가 니파이에게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니파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심을 알고 있나이다. 그러할지라도 모든 것의 의미를 알지는 못하나이다.”13 그는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생에서 우리는 결코 모든 것의 의미를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압니다. 우리의 운명은 작고 미숙한 신앙을 행사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그 신앙을 키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의심은 결코 신앙을 낳지 않습니다. 태초에 창조 과정에서 빛과 어둠이 서로 그랬듯이 말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으려다 물 속으로 빠졌을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야, 왜 더 의심해 보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은 “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14

Lectures on Faith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심과 불안이 있는 곳에는 … 신앙이 없고 있을리도 없다. 왜냐하면 의심과 신앙은 동시에 한 사람 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확고한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확고한 확신이 없다면 신앙은 약화된다. 신앙이 약한 사람은 하나님의 상속자요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기 위하여 마주치게 될 온갖 반대, 고난, 역경 등을 이겨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들의 마음은 지치고 약화될 것이며, 사탄은 그들을 휘어잡아 결국 파멸시키고 말 것이다.”15

이것이 스티븐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는 의심과 불안이 그의 마음을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교회 회원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맞설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고단해지고 신앙이 사라졌습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교회와 그 교리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며 복음 학습의 근간이 됩니다. 조셉 스미스는 다음 성구를 읽고 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6

하지만 그 뒤에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17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 구하되, 그가 응답을 주실 수 있음을 의심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 구절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8

조셉 스미스가 구했던 것과 같은 응답이나 우리가 바라는 응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믿고자 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것이 우리에게 알려지리라는 소망을 품은 채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이 경륜의 시대 초기에 사도이셨던 존 에이 윗소 장로님의 말씀을 저희는 참 좋아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의심은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출처를 통해 탐구하고픈 질문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 노력 없이 의심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 스스로 안주하며, [적절한] 노력을 들이기를 꺼리고, 하늘에서 오는 답을 찾기 위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려 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과 어둠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의심은 정신적 및 영적인 공간의 어두운 그늘에서 마치 독버섯처럼 자라납니다. 그는 마침내 굴 속에 든 두더지처럼 눈이 멀어, 대개의 경우 근거를 조롱으로, 노력은 나태함으로 대체하며, 게으른 학자가 됩니다. 의심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 한 그릇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라나 더 큰 의심을 낳는 그런 의심은 악한 것입니다.”19

윗소 장로님의 말씀은 여전히 참됩니다.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머물러 있는 의심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의 실재성을 알도록 이끌지도,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제정하신 친절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참으로 알도록 이끌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이 후기 사업의 참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의심이 아닌 신앙을 택하고, 답을 구하기 위해 확실하고도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향해야 합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앨마도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또 이러므로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할 자, 그는 더 적은 분량의 말씀을 받게 되고, 그 마음을 완악하게 아니할 자, 그에게는 더 큰 분량의 말씀이 주어져, 이윽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기에 이르고 이윽고 이를 전부 알기까지 이르느니라. 또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할 자들, 그들에게는 더 적은 분량의 말씀이 주어져, 그들이 그의 비밀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까지 이르게 되리니, 그때 그들이 악마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그의 뜻에 의해 멸망으로 인도되리라.”20

여러분은 파산하고 갚아야 할 빚 투성이인 사람에게서 재정적인 조언을 구하시겠습니까?

데일 지 렌런드 장로: 돌팔이 약장수에게 의학적인 조언을 물으시겠습니까?

루스 엘 렌런드 자매: 테니스 포핸드 잘하는 법을 누구에게서 배우고 싶으십니까? 아마추어 선수입니까 아니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입니까?

데일 지 렌런드 장로: 그렇다면 왜 여러분은 한때 신앙으로 심었던 것을 의심 속에서 갈갈이 찢어 버려 영적인 파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영원한 복리를 맡기려 하십니까?21 또는 예레미야가 말했듯이 “생수의 근원되는 [그리스도를] 버[리고] …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판]”22 자들에게 여러분의 영원한 복리를 맡기려 하십니까? 이 사람들은 그 생수의 샘을 버리고 나갔으며 여러분이 그 생수를 담지 못한 다른 근원에 주의를 돌리기를 바랍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23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은 경전을 공부하고 살아 있는 선지자 및 사도들의 말씀을 읽는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신뢰할 만한 출처를 활용하여 여러분의 신앙을 키우십시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무언가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하려 할 때, 선지자 몰몬은 우리가 따를 수 있는 패턴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즉 무릇 선한 일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악한 것은 악마에게서 오나니, …

그러나 보라, 하나님께 속한 것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도록 이끌며 권유하나니, 그러므로 무릇 선을 행하도록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섬기도록 이끌며 권유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너희에게 주어져 너희로 선악을 분별하게 하였음이요, 또 판단하는 길은 어두운 밤과 낮의 빛을 구별함같이 명백하여 너희가 완전한 지식으로 알 수 있음이니라.

이는 보라,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선악을 분별하게 하였은즉,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판단하는 길을 보여 주노니, 무릇 선을 행하도록 권유하며, 권하여 그리스도를 믿도록 설득하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사로 말미암아 보냄을 받은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을 완전한 지식으로 알지니라.

그러나 무엇이라도 사람들을 설득하여 악을 행하게 하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하고, 그를 부인하게 하며, 하나님을 섬기지 않게 하는 것이면, 너희는 그것이 악마에게 속한 것인 줄을 완전한 지식으로 알지니라.”24

이렇게 단순합니다. 어떤 선택이 여러분을 선행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 악을 행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유혹한다면, 악마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약의 길로 들어서면, 그 길에서 벗어나도록 방해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들이 그릇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도록 설득하는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신앙을 부정하는 신뢰할 수 없는 출처에서 나온 답변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의심하고자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25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우리가 들었던 비유로 돌아가서, 배가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도록 우리를 구조해 주고 안전히 해변가로 데려다 줄 수 있음을 아는 자들은 닳고 찌그러지고 페인트가 벗겨진 그 배 위에 남기로 선택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성약의 길로 들어서서 그 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후 그들이 끝까지 견디면, 영생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위대한 은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그분의 실재하심과 사랑과 연민에 대한 지식은 바로 이 과정에서 옵니다.

교리와 성약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가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알게 해 주느니라. 다른 이들에게는 그들의 말을 믿게 해 주나니, 이는 만일 그들이 계속하여 충실하면 그들도 또한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6 이 구절에서 충실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이란 보상은 아는 자와 믿는 자 모두에게 똑같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2009년 4월, 저는 교회의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9년 10월 연차 대회에서 말씀하도록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께서 대회를 시청할 수 있으실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생을 목수이자 건축자로서 열심히 일하셨는데, 92세에 허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컨퍼런스 센터로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누이 하나가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아버지 댁으로 가서 대회를 TV로 시청하실 수 있게 도와드렸습니다.

대회가 끝나자 저는 아버지 댁으로 가서 제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데다 칭찬에 그다지 너그러운 분이 아니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연차 대회 보셨나요?”

그래.”

“제가 한 말씀도 들으셨어요?”

그래.”

“어떠셨어요?”

“괜찮더구나. 하마터면 자랑스러울 뻔했지.”

그런 후 저는 아버지께서 뭔가 하실 말씀이 있다는 걸 알아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간밤에 꾸었던 꿈 얘기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몽상가가 아니었습니다. 변덕스러운 생각이나 거짓말이라는 건 꿈에도 안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언제나 지독하고도 요령이 없으리만큼 정직하셨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어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꿈을 꾸었단다. 그분은 나를 품안에 꼭 안으시고는 내 죄가 사해졌다고 말씀하셨지.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구나.” 그것이 전부였고, 저는 더 이상 아무 질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두 달 후 저희 부부가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하던 중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24세에 핀란드 라스모에서 교회에 들어오신 후로 그가 받으신 빛과 지식에 따라 생을 사셨습니다. 부탁 받은 일은 무엇이든 하셨습니다. 그분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세상과 아버지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영의 은사를 받기에 합당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이 은사를 받기에 합당해진다는 것은 성별이나 신권의 직분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앙을 갖기로 선택하고 성약의 길에 남기로 선택한 자들에게 약속된 보상입니다.27

루스 엘 렌런드 자매: 그럼 어떻게 신앙을 키우고 강화할 수 있을까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수학 시간에, 예를 들어 미적분을 배울 때, 선생님이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선생님이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았다고 해서 그 선생님의 수학 지식이 자동으로 여러분의 것이 되던가요? 슬프게도 아니죠.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지식을 습득하려면 여러분 스스로 미적분 문제를 풀어 봐야 하고, 풀이 과정과 공식과 부호에 익숙해질 때까지 공부하고 연습 문제를 풀어 봐야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신앙을 찾고 강화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큰 신앙을 가진 누군가에게서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신앙이 자연스레 우리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경전과 살아 계신 선지자들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정말로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매주 성찬을 취하면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를 기억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이와 같은 개인적인 헌신의 행위들이 신앙을 쌓고 유지해 줍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제가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으로서 맡았던 첫 번째 임무는 교회 역사부에 방문하여 제가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 뒤를 이어 역사부 고문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상상이 가실테지만, 그들이 사랑하던 고문이 저로 대체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그들은 “울고 통곡하며 이를 [갈았]”으며,28 눈물을 닦느라 일시적인 화장지 부족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역사부 고문의 임무의 일환으로, 저는 The Joseph Smith Papers를 모두 읽었습니다.저는 또한 성도들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교회 역사서 제1권과 제2권 첫 부분을 읽었습니다.29 조셉 스미스가 이제껏 기록했거나 기록했다고 알려진 모든 자료를 읽어 보면서 하나님의 사업을 지상에 회복하도록 선택받은 이 선지자에 대한 저의 간증은 강화되었습니다.

조셉 스미스는 언제나 그의 간증에 참되고 진실했습니다. 그는 일관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모로나이, 침례 요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모세, 일라이어스, 그리고 엘리야를 실제로 보았던 사람으로서 그의 행동은 언제나 일관적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금판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은사와 권능으로 그 고대 문자들을 번역하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를 받고, 신권과 거룩한 사도 직분의 열쇠를 부여받은 사람에 걸맞게 행동했습니다.

저는 조셉 스미스가 보았다고 증거한 것들을 보았고, 하나님의 은사와 권능으로 몰몬경을 번역했으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신권과 이에 수반되는 열쇠들을 받았다는 사실을 제가 지닌 오감으로 감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확실한 방법들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됨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열쇠들이 오늘날 지상에 존재하며, 넬슨 회장님은 이 지상에서 조셉 스미스의 정당한 후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래된 배에서 찌그러지고 벗겨진 부분들로 여겼던 것은 영원한 관점에서 신성한 목적으로 허가되고 의도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그 찌그러지고 벗겨진 부분을 친히 만드셨을 수도 있고, 또는 그런 부분을 그분만이 아시는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이 지상에서 그분의 사업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분의 종들은 그분을 잘 압니다.

루스 엘 렌런드 자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주이심을 알고 있다는 제 간증을 더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그분의 속죄 희생과 그 속죄의 열매에 대한 신앙을 행사할 때, 우리 삶은 영원히 축복받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축복과 함께 당신의 교회를 회복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며 이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 대해 지니신 동정심과 사랑과 염려에 대해 간증합니다. 여러분과 저를 위해 행해진, 그분의 견줄 수 없는 속죄 희생에 대해 간증합니다. 제가 구주를 알게 되면서, 그분께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상한 마음을 낫게 해 주시기를 무엇보다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키우기를,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믿”기를 간구합니다.30 경전과 살아 있는 선지자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류하며, 매주 성찬식을 위해 준비하여 합당하게 성찬을 취함으로써 신앙을 더욱 증진시키도록 권유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개인적인 헌신을 주님께 드리고 다른 이들을 섬기고 성역을 베풀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엠 러셀 밸라드, “배 안에 머물고 배를 꽉 붙드십시오!” 참조.리아호나, 2014년 11월호, 89~92쪽; 제럴드 코세,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Liahona, 2018년 5월호, 111~113쪽. 그는 이렇게 말씀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언젠가 교회를 멋진 자동차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차량이 깨끗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자동차의 목적은 매력적인 기계로서 돋보이는 데 있지 않고, 차에 탄 사람들을 나르는 데 있습니다.”

  2. 모세서 1:39 참조.

  3. 러셀 엠 넬슨“교회를위한 계시와 우리 삶을 위한 계시”, 리아호나, 2018년 5월호, 95쪽.

  4. 모사이야서 18:30.

  5. 경전 안내서, “신앙”, scriptures.lds.org

  6. 앨마서 32:22 참조.

  7. 앨마서 32:27.

  8. 모로나이서 10:4.

  9. Paraphrase of Michel de Montaigne, “On the Education of Children,” quoting Dante’sInferno: “For doubting pleases me more than knowing.”

  10. Paraphrased quote attributed to Elisabeth Elliot (1926–2015), a Belgian-born American Christian author and speaker.

  11. 고린도전서  2:14.

  12. 닐 엘 앤더슨. “여러분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13쪽.

  13. 니파이전서 11:17.

  14. 마태복음 14:31.

  15. Lectures on Faith[1985], 71.

  16. 야고보서 1:5.

  17. 야고보서 1:6.

  18. 야고보서 1:6~8.

  19. See Jonathan A. John A. Widtsoe, Evidences and Reconciliations [1960], 31–33.

  20. 앨마서 12:10~11.

  21. Paraphrased quote attributed to Elisabeth Elliot.

  22. 예레미야 2:13.

  23. 앨마서 30:13~16 참조.

  24. 모로나이서 7:12~13, 15~17.

  25. 닐 엘 앤더슨, “신앙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리아호나,, 2015년 11월호, 65~68쪽 참조.

  26. 교리와 성약 46:13~14.

  27. 교리와 성약 88:67~68 참조.

  28. 앨마서 40:13.

  29. 스티븐 이 스노우,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리아호나, 2018년 2월호, 58~59쪽 참조.

  30. 몰몬서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