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완전한 모범
2009년 10월


2:3

완전한 모범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은 우리가 사는 동안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바랄 수 있고, 또 그렇게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안식일에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축복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서로 다른 경험을 하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공통된 소망이 있습니다. 간혹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선하다고 착각하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소망의 일부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서 주어졌습니다. 그 계시는 우리가 구주와 만날 날을 묘사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 계시는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바라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모로나이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마음의 힘을 다해 아버지께 기도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따르는 자 모두에게 내려주신 이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며,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그가 나타나실 때에 그가 계신 그대로 우리가 그를 볼 것인즉, 우리가 그와 같이 되게 하며, 우리로 이 소망을 갖게 하며, 그가 순결하신 것같이 우리가 순결하게 되게 할지어다. 아멘.”1

이 말씀은 믿음이 있는 후기 성도들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이해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생활함으로써 구주와 같이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발전할 필요가 없다고 자족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생각할 때 자만 속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가장 낮고 겸손한 사람도 구주와 같이 되라는 권유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놀라운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해 잘 표현한 초등회 노래가 있습니다. 어느 일요일에 저는 어린이들이 방에 가득 모여 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의자 앞쪽에 걸터앉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아주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눈에서 빛이 발하고 마음속 결심이 표정으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그 노래는 여러분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그 노래가 우리 기억 속에서 영원히 울리기를 바랍니다. 그 아이들이 느꼈던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를 닮으려고 주 길을 따라가리

주님처럼 나도 모든 이웃 사랑하리라

그릇된 선택을 할 때마다 속삭이듯 들리는 작은 소리는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네 생각과 행동을 조심하여 가르치심 대로 하라’”2

제가 보기에 그 아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심을 선언하는 듯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이 따라야 하는 모범으로 여겼습니다. 어린이들은 주님처럼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저는 열의에 찬 모습과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이 목표를 성취하고 싶어했습니다. 완전하라는 구주의 가르침은 단지 하나의 소망이 아니라 계명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 결심과 확신은 모든 후기 성도의 마음속에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구주께서는 속죄와 모범을 통해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노래를 부른 아이들도 그 방법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도록 동기를 주는 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원리를 통해서 우리의 완전한 모범이신 그분처럼 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매시간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가장 훌륭한 노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성역을 베푸실 때, 사람이 그분과 같이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하고 또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의 본보기가 바로 어린아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배우는 이상적인 환경의 본보기로서 가족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이 가족 관계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복지에 더 큰 관심을 둘 때 기쁨을 얻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로 사랑이 결여된 상태, 즉 이기심에서 슬픔이 비롯됩니다. 가족을 이루는 것은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고 슬픔을 멀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이상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상대방의 복지와 행복을 삶의 중심에 두겠다는 성스러운 성약을 맺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녀의 필요 사항이 부모의 필요 사항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정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깃든 이상적인 가족입니다. 우리 대다수의 가정에는 “영원한 가족”이라는 표어가 있습니다. 저의 집 근처에는 어머니이자 할머니였던 어느 여성의 묘비가 있습니다. 그녀와 남편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현세와 영원을 위해 서로와 후손들에게 인봉되었습니다. 그 묘비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디 가족 중 누구도 떨어져나가지 않기를”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문제는 각 가족들이 하는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비문을 새기게 했습니다. “부디”라는 말이 있는 것은 하나님도 그녀도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세와 내세에는 가족 안에 행복이 아닌 불행이 있기를 바라는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다소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다음 세상에서 여러분의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떨어져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몇 가지 선택 사항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먼저, 남편과 아내들에게 권고하겠습니다. 배우자의 장점을 볼 수 있는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약점과 실수가 작아 보이게 만드는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배우자의 기쁨이 곧 여러분의 기쁨이 되게 해 주는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배우자의 짐을 가볍게 해 주고 배우자의 슬픔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저는 제 부모님의 결혼생활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투병 생활을 하실 때, 어머니가 불편한 것이 많아질수록 아버지는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더욱 노력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병실에 자신의 침상을 설치해 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병실에서 지내기로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힘겨운 나날을 보내시는 동안 아버지는 매일 아침 수천 미터를 걸어서 출근을 하시고 밤이면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사랑이 꼭 필요하던 시기에 아버지의 사랑의 힘이 커진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라고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행하셨을 일을 아버지가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방황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께 권고드립니다. 구주께서는 지속적인 사랑을 보이는 면에서도 완전한 모범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나아오라는 권유를 거절한 니파이인들에게 주님께서 위로하시며 하신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들이닥친 멸망 속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곧 내가 살려 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회개하고 마음의 뜻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면 암탉이 그 새끼를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기를 몇 번이라도 하리라.”3

탕자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줍니다. 탕자가 가정을 잊지 않았듯이 여러분의 자녀도 그러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여러분의 사랑을 느끼고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올슨 에프 휘트니 장로님은 1929년 열린 연차 대회에서 자녀들과 성전에서 인봉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충실한 부모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양 몇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목자의 눈은 그 양들을 향하고 있으며, 언젠가 신성한 섭리의 손길이 그 양들을 감싸고 그들을 다시 우리 속으로 이끌 것입니다.” 휘트니 장로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주의하고 불순종하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신앙으로 그들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믿으십시오.”4 여러분은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며,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손을 내미신다는 확신을 갖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노력할 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자녀 여러분에게 권고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이 담긴 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너의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이 길 것이니라.”5 이것은 십계명 중에서 약속이 있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공경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신 은인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삶은 질적인 면에서 더 훌륭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어떻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비록 여러분의 수명이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입양을 하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는 저보다도 제 자녀들의 생일을 더 잘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제 아내와 제게는 명절이면 거의 잊지 않고 우리를 찾아오거나 함께 기념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가끔 누군가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하고 말을 건네며 사랑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 감동을 받습니다. 자녀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들려 주면 그 친구들은 제 말을 경청하는 듯합니다. 그들의 사랑으로 저는 구주께서 우리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 인사 속에서 저는 그들이 예수님께서 느끼시는 것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셨을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힘이 성장하고 자신이 완전한 모범이신 구주를 닮아가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걱정과 고난 속에서도 때때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경험을 기억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 예수를 닮으려고 주 길을 따라가리”라고 노래 부르는 어린아이들과 똑같은 마음을 느꼈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최근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6 하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순수한 어린아이의 평안을 느꼈을 것입니다.

침례를 받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순결하셨기 때문에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침례 받을 때 어린아이처럼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이 열렸으며,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7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런 음성도 듣지 못했지만,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따른 것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정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가족 안에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배우자에게 용서를 구했을 때, 또는 자녀의 잘못이나 불순종을 용서해 주었을 때 말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셨을 것이라고 믿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그러한 순간을 더 자주 경험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구주께서 치르신 속죄로 말미암아, 어린아이와 같이 순종할 때 구주의 사랑과 그분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약속된 은사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충실한 가족들도 이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제3니파이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네 모든 자녀는 주의 가르침을 받을 것인즉, 네 자녀의 평안이 심히 클 것이니라.”8

나아가서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행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할 기회를 오늘 찾으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느끼는 평안이 종종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또 머물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다음 약속은 참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9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며, 자신을 따르라고 손짓하십니다.

저는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그리고 침례와 성신의 은사를 받는 것과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사랑 안에서 견디는 데에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살아 계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우리의 완전한 모범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조셉 스미스는 회복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는 우리가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좀 더 구주와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될 수 있도록 의식을 베푸는 신권 권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린 아이와 같이 느꼈던 그 확신과 인정받는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모로나이서 7:48.

  2. “주 예수를 닮으려고”, 어린이 노래책, 40쪽.

  3. 제3니파이 10:6.

  4. 올슨 에프 휘트니, Conference Report, 1929년 4월, 110쪽.

  5. 모사이야서 13:20.

  6. 마가복음 10:14.

  7. 마태복음 3:17.

  8. 제3니파이 22:13.

  9. 요한복음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