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책임질 수 있다면
2015년 4월


10:37

책임질 수 있다면

의무를 배우고,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 따라 행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나아갑시다

제가 12살 때, 칠레 북쪽, 제가 태어난 도시로 복음을 전파할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 조그만 지부에 참석했는데, 어느 일요일에 한 선교사가 성찬을 전달하면서 제게 성찬 빵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 선교사를 쳐다보며 조용히 “취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왜요?”라는 물음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교회 회원이 아니니까요.”1

선교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빛이었습니다. 아마 그는 ‘이 소년은 모든 모임에 참석하고 있잖아! 그런데 어떻게 교회 회원이 아닐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다음 날, 선교사들은 저희 집을 찾아와서 어떻게든 저희 가족 모두를 가르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관심이 없었고, 선교사들은 제가 6개월이 넘도록 매주 교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끼며 계속해서 방문했습니다. 마침내 제가 기다려 왔던 그 순간이 왔습니다. 선교사들은 제게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이 되라며 권유했습니다. 또, 제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아마 “얘야, 법적으로 성년이 되었을 때 결정하라.”고 하실 것이라 생각하며 선교사들과 함께 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선교사들과 대화하는 동안 마음이 감화되셔서 제가 원하는 허락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는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장로님, 지난 6개월 동안 제 아들 조지가 일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교회가 그 아이의 삶에 좋은 영향만 주고 있다는 걸 목격했지요.” 그런 다음, 놀랍게도 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이 결정에 책임질 수 있다면 침례를 받아도 좋다.” 저는 아버지를 껴안고 입을 맞추며 허락에 대한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지난 주에, 제 인생에서 그 중요한 순간을 맞은 지 47주년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으로서 우리는 어떤 책임이 있습니까?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큰 책임이 있습니다. … 첫째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2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된 책임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가장 높은 등급의 영광에 이르는 것을 의미함을 알고 우리 자신의 구원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입니다.3우리에게 맡겨지고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인 이 책임들이 우리의 우선순위와 소망, 결정 및 우리가 하는 일상적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승영을 얻는 것이 참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승영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저주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성공의 반대가 실패이듯이 구원의 반대는 저주인 것입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은 일단 훌륭한 것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평범한 것에 오래 만족해하지 않습니다.”4 그렇다면 승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면 승영보다 못한 것에 어떻게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지려는 소망을 이루고, 그분과 같이 되라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해 주는 네 가지 주요 원리를 소개하겠습니다.

1. 우리 의무를 배우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 앞에 책임을 지려 한다면, 우리를 위한 그분의 뜻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즉 이제 모든 사람은 자기 의무를 배우고 자신이 임명된 그 직분을 부지런히 행하기를 배울지어다.”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고 행하길 바라시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옳은 것을 행하려 희망하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에서 앨리스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체셔 고양이에게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 주겠니?”라고 묻습니다.

고양이는 “네가 어디에 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지.”라고 답합니다.

앨리스가 “어디라도 상관없어.”라고 하자

고양이는 “그러면 어디로 가든지 문제가 되지 않아.”6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만큼 먹음직한 열매가 달린 나무”7로 이르는 길 즉,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좁고, 그 길을 가려면 노력이 필요하기에 “찾는 자가 적[다는]”8 것을 압니다.

니파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너희가 무엇을 행하여야 할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일러 주심이니라”9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는 “성신[은] 너희가 무엇을 행하여야 할지 모든 것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임이라”10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및 현대의 선지자들을 통해 받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신을 통해 받는 개인적인 계시는 우리의 의무를 알게 해 주는 근원인 것입니다.

2. 결정하십시오

복음의 회복, 특정 계명, 부름에서 봉사하는 데 따르는 의무, 성전에서 맺는 성약을 배웠을지라도 그 새로운 지식에 따라 행할지, 행하지 않을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 침례 또는 성전 의식과 같은 거룩한 성약을 맺는 것을 스스로 자유로이 선택합니다. 고대에 종교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맹세는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구 율법에서는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11고 했습니다. 그러나 절정의 시기에 구주는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12고 하면서 약속을 지키도록 더 높은 수준의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의 말은 자신의 충실함과 누군가에 대한 약속을 증명하기에 충분해야 하며, 그 누군가가 하나님 아버지일 때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약속을 준수하는 것은 우리의 말에 대한 충실함과 정직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3. 그에 따라 행하십시오

우리의 의무를 배우고, 배우고 이해한 것에 따라 결정을 한 후에는 그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결심을 보여 준 훌륭한 예로, 고침을 받기 위해 찾아온 중풍병자와 구주의 일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1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우리의 죄 사함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아직 구세주께서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으시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축복하실 뿐 아니라 그의 죄도 사해 주셨는데, 그 일은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맺으신 약속을 어김없이 이루실 것이며, 약속한 일을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 행하리라는 데에 대한 분명한 표적이었습니다.

우리가 걷고자 선택한 길은 좁습니다. 그 길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을 요구하며, 길 위에 머물고 전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여건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인내하며 순종하고 회개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가 배운 것과 선택한 것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4. 아버지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제자의 길은, 의무를 배우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의로운 소망이나 선호도에 맞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과 기꺼이 행하려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14라고 말한 한 나병환자의 태도에서 감명을 받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 나병환자는 자신의 소망이 의로웠다손 치더라도, 그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주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수년 전에 저와 절친한, 사랑스럽고 신앙심이 깊은 부부가 오래 바라던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았는데, 그들은 이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었습니다. 제 친구들과 당시 유일한 자녀였던 딸아이가 이 새로 태어난 사내아이를 맞은 즐거움으로, 그 집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고 3살밖에 되지 않은 그 어린아이는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힘든 상황에 있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친구의 대답에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우리는 괜찮아.” 친구의 말에는 조금의 불평이나 거역 또는 불만도 없었습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 아들과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또한 그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전적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만을 느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어린아이는 해의 영광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의무를 배우고, 올바른 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 따라 행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나아갑시다.

47년 전에 아버지께서 제게 그런 결정을 하도록 해 주신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또 그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는 그 결정에 책임을 지라는 아버지의 요구가 하나님 아버지께 책임을 지고, 저 자신의 구원과 이웃의 구원을 추구하며, 그것을 통해 조금 더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대하고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특별한 날에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살아계심을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