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인가? 내가 해의 왕국에 갈 수 있을까?
2016년 10월


9:51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인가? 내가 해의 왕국에 갈 수 있을까?

진정으로 노력하며 자기 합리화나 반항을 하지 않는다면, 즉 은혜를 구하며 자주 회개한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종들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자 이렇게 모이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처럼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축복하시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분은 우리가 그분께로 돌아오기를 진정으로 바라십니다.

자애로운 은혜 속에 의과 대학을 마친 저는, 젊은 의사로서 쟁쟁한 고강도 프로그램의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과정에 합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수련의들을 만나고 보니, 지식이나 준비 면에서 제가 가장 형편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들을 따라가려면 턱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련의 과정을 시작하고 석 달이 막 지난 어느 늦은 밤, 저는 병원의 간호사실에 앉아 폐렴에 걸린 어린 소년의 입원 결정서를 작성하면서 혼자 훌쩍이다 졸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주눅이 든 적은 없었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의 폐렴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선배 레지던트 한 명이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잘 지내냐는 그의 말에 저는 좌절감과 두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제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그를 비롯한 다른 모든 선배 레지던트들이 얼마나 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제가 앞으로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조차도 자신을 믿지 못했을 때 그 선배가 저를 믿어 준 것입니다.

제 경험처럼, 우리 회원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인가?”, “내가 정말 해의 왕국에 갈 수 있을까?” 물론, 정말로 “충분히 좋은 것”이란 없습니다. 구원을 “얻거나”,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가 하고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앞의 두 질문도 저는 이런 의미로 이해합니다.

교회에 참석하면서 간혹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순수한 권유에도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다 따르지는 못해.”, ”이들같이 좋은 사람은 결코 될 수 없을 거야.” 하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럴 때의 느낌은 아마 그날 밤 병원에서 제가 받았던 느낌과 비슷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불필요한 괴로움을 줍니다. 우리에게 있거나 없는 , 또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우리의 자존감에 대해 그릇된 판단을 내립니다. 비교해야 한다면, 우리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모습에, 더 나아가 이루려 하는 미래의 모습에 견주어 봅시다. 우리에 관한 중요한 의견이 있다면, 그건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의견뿐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마음을 다해 여쭤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고 바로잡아 주실 뿐, 절대 낙담하게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인가?”, “내가 해의 왕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드립니다. “네! 여러분은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회개하며 자기 합리화나 반항을 하지 않는 한 해의 왕국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경기에서 탈락시키려고 갖은 구실을 찾아내는 무자비한 심판이 아닙니다. 온전하고도 다정한 아버지시며, 모든 자녀가 집으로 돌아와 그분과 함께 가족으로 영원히 살기를 그 무엇보다 바라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독생자를 주셨습니다!1 믿으십시오. 바로 그 영원한 진리에서 희망과 위안을 얻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돌아오기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업이자 영광입니다.2

이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께서 쓰시던 방법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저는 몇 번이나 그분에게서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오로지 노력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노력이어야 합니다!”3

“진정한 노력”이란 최선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점에 개선이 필요한지 깨닫고 다시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점차 주님께 가까워집니다. 그분의 영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4 주님의 은혜나 도움을 더 많이 받습니다.5

저는 가끔씩 주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돕고자 하시는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을 좋아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속죄가 죄인들을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 성도들을 위해서도 속죄가 존재한다는 점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

속죄는 우리가 악을 극복하고 피하며, 선하게 살고 선행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

각 개인이 … 이루기 힘든 훌륭한 일을 … 힘과 도움을 받아 해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은혜 덕택입니다.이 은혜가 바로 가능하게 하는 권능입니다. …’[경전 안내서, “은혜”, 강조체 추가] 혹은 … 우리 각자가 해의 왕국에 합당하게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늘 도움입니다.”6

하늘 도움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구하고 의로운 느낌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엄청난 사실은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과거의 죄로 승영에 이르지 못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로나이는 그가 살던 시대의 범법자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마다, 그들은 용서를 얻었느니라.”7

주님께서도 죄인에 대해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만일 그가 너와 내 앞에 자기 죄를 고백하고, 그 마음의 진실함으로 회개하거든, 그를 너희는 용서하라, 나도 그를 용서하리라.”

참으로 또한 나의 백성이 회개할 때마다 내게 대한 그들의 범법을 내가 사하리라.8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같은 죄를 몇 번이나 지었더라도 말입니다.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많은 기회를 이미 놓쳐 버렸다고 생각되더라도, 아무리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할지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닿는 곳에 있음을 간증드립니다. 여러분이 무한한 그리스도의 속죄의 빛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지는 일은 불가능합니다.”9

그렇다고 이 말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란 언제나 그 결과를 동반합니다. 죄를 짓는 자나 피해자나 모두 해를 입고 상처를 받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10 그뿐만이 아닙니다. 설령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죄로 인한 죄책감과 오점을 거두신다고 해도, 죄의 모든 결과마저 바로 사라지게 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 두십시오. 때로는 죄의 결과가 평생을 가기도 합니다. 죄 중에서도 가장 나쁜 죄는, “일단 저지르고 회개는 나중에 하자”는 식의 알면서도 저지르는 죄입니다. 이것은 엄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통을 조롱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자신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무릇 나 주는 죄를 털끝만큼도 묵과할 수 없느니라.”11

또한 앨마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보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간악함은 결코 행복이 아니었느니라.”12

앨마의 말이 유독 사실로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반복적인 죄로 성신에서 멀어지고 낙담하다가 결국 회개마저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구주의 속죄로 우리는 회개하여 온전히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진실한 회개를 하는 순간 말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합리화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건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란 걸 하나님도 아실 테니, 그분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시겠지.” 하며 지은 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노력”이란 우리가 주님의 표준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성전 추천서를 받을 때 묻는 말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지 못하고 필요한 도움을 바로 얻지 못하는 또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바로 반항입니다. 모세서를 보면 사탄이 반항하다가 천국에서 쫓겨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13 “하나님도 회개도 이제는 필요 없어”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는 순간, 우리는 반항의 길로 들어섭니다.

중환자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저는 생명을 구하는 치료를 온당치 않게 거부할 때 불필요한 육체적 사망을 맞을 수 있음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맞서는 일은 유일한 도움과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과 자비를 통하지 않고서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14 그리고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의지를 존중하시기에, 자신의 노력이 없다면 역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노력이 이런 식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도와 변화시키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미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돕고 계십니다. 잠시 멈추어 여러분이 살면서 받은 그분의 도움을 생각해 보고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 간증드립니다. 진정으로 노력하며 자기 합리화나 반항을 하지 않는다면, 즉 그리스도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며 자주 회개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해의 왕국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소중한 자녀들 모두에게 주시려는 축복과 영광,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분명, 여러분과 저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신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1. 요한복음 3:16 참조.

  2. 모세서 1:39 참조.

  3. 힝클리 회장의 다음 인용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인쇄본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저 최선을 다하십시오. 반드시 그러십시오.”(“도전의 시간, 훌륭한 시간”, 세미나리를 가르침: 예비 독서 자료 [교회 교육 기구 교재, 2004년, 18쪽) “실패에 대한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지는 마십시오. 성취할 수 있는 능력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세우지는 마십시오. 그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행한다면 주님께서 그 노력을 인정하실 것입니다.”(“마음속에 거룩한 표상을 세우십시오”, 성도의 벗, 1990년 1월호, 108쪽)

  4. 교리와 성약 50:24 참조.

  5. 이더서 12:27 참조.

  6.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필멸의 여정과 속죄”, 리아호나, 2012년 4월호, 14쪽.

  7. 모로나이서 6:8.

  8. 모사이야서 26:29~30.

  9. 제프리 알 홀런드, “포도원의 품꾼”, 리아호나, 2012년 5월호, 33쪽.

  10. 교리와 성약 10:15~19 참조.

  11. 교리와 성약 1:31.

  12. 앨마서 41:10.

  13. 모세서 4:3 참조.

  14. 니파이후서 2:6~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