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초기의 여성들
제인은 여정 내내 기뻐했다
제인 매닝 제임스처럼 우리도 신앙으로 우리의 여정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는가?
제인 매닝 제임스는 걷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맏아들 실베스터는 이제 마차 옆에서 걸을 만큼 제법 컸다. 그러나 여정 중에 태어난 아기 사일러스는 여전히 안고 다녀야 했다. 1847년 당시, 제임스 가족은 그레이트솔트레이크 밸리에 곧 당도할 최초의 개척자들 중 하나였다.
제인은 이런 장거리 여정이 낯설지 않았다.
4년 전에 그녀의 가족은 동부의 도시에 있던 집을 떠나 서부 개척지 변두리에 있던 나부의 성도들에게로 합류했다. 강으로 가면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 길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는 많은 흑인이 노예 신분이었기 때문에 제인의 가족은 빈번하게 자신이 자유민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여 주어야만 했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는 유색인들이 해당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심지어 그 법에 따라 유색인들은 1인당 500달러까지 통행료도 내야 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요금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편견 때문인지 강을 오가는 배의 선원들은 제인의 가족을 더는 태워 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제인의 가족은 많은 짐들을 버리고 가져갈 수 있는 것만 챙겨서 걷기 시작했다.
제인의 가족은 1,287km 이상을 도보로 이동했다. 후텁지근한 낮과 칠흑같이 어두운 밤 동안에도 계속 걸었다. 천근만근 무거운 발을 움직여 숲을 지나고, 하늘을 이불 삼아 잠을 잤다. 잠에서 깼을 때는 그들의 옷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제인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신발이 다 해지고 발에 물집이 잡혀 피가 날 때까지 걸었습니다. …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발이 낫게 해 달라고 간구했는데 우리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1
이런 힘든 여정을 견뎌 나가는 동안, 제인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거의 석 달을 걸어간 끝에 마침내 그들은 나부에 도착했다. 몇 년 후, 충실한 성도들이 평원을 건너기 위해 나부를 떠났을 때, 제인은 그 여정을 시작한 최초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