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떻게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까? 로널드 에이 래스번드 장로는 우리가 경전을 읽으며 받은 영감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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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의 속삭임에 응답함으로써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가 당신 영의 속삭임에 응하도록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제 아침 기도에 항상 들어갑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방법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면,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훌륭한 부모님께 자랐고, 그분들은 제가 어렸을 때 경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부터 선교 사업 그리고 인생을 거치며, 저는 영의 이끄심을 느끼고자 노력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제 삶에서 주님의 영을 가장 잘 듣는 방법은 경전을 읽고 그분의 속삭임을 따르는 것입니다. 다음은 제 삶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었던 몇 가지 구체적인 예시입니다.

어머니는 제게 경전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머니는 성자와 같은 사람이셨고 제게 어떻게 성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무렵, 어머니는 이미 많은 인생 경험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인생 경험 때문에 어머니는 막내인 제게 열성적으로 집중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무릎 맡에 앉히고 가르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거실 히터 통풍구 앞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곤 하셨습니다. 그곳에 앉아 어머니는 구약전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영을 인식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여러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설명해 주시고, 그것을 제 생활에 적용해 주셨습니다.

저는 목적을 지닌 방향성을 가지고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제 가정 교육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영을 인식하는 것은 아무렇게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다음 날 교회 일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을 생각하거나, 자녀나 손주, 친구에 관해 생각할 때, 저는 목적을 지닌 방향성을 느낍니다. 저는 자주 영의 속삭임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어디에 가거나, 무엇을 하거나, 이런 저런 것들을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어떤 때에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저는 몰몬경에서 니파이가 형들에게 그들이 “감각이 없어 [주님의 말씀]을 감지할 수 없었[다]”고 한 말에 공감합니다.(니파이전서 17:45) 제게 있어 영의 음성은 뚜렷한 방향성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이 첫 번째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면, 열에 아홉은 잘 해낼 것입니다.”1 저는 우리가 이러한 첫 번째 속삭임을 따른다면 일반적으로 성신의 인도를 받게 될 것임을 일찍부터 배웠습니다.

저는 영의 속삭임에 응답함으로써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대화 중에 속삭임을 느끼는 경험을 하였고, 그럴 경우 저는 그냥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성신에 응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이 제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가 당신 영의 속삭임에 응하도록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제 아침 기도에 항상 들어갑니다.

교회 임무이든, 가족이든, 어떤 맥락이든지 간에, 저는 단지 영에 호응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성신에 호응하려면 몇 가지 신중한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일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광고는 성신에게 불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영이 받아들이는 외부 영향에 따라 성신에 호응하는 우리의 능력은 영향을 받습니다.

저는 뉴욕으로 가는 선교 부름을 통해 그분의 음성 듣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19살 때, 저는 선교사 부름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아버지와 형, 매형이 독일로 선교 사업을 갔다 왔기 때문에 저도 독일로 선교 사업을 가고 싶었습니다. 우편함으로 걸어가 그 안에 든 선교 부름장을 꺼냈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저는 요즘처럼 큰 축하 행사나 파티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열어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부름장을 읽었습니다. “로널드 에이 래스번드 장로님, 귀하는 뉴욕주 뉴욕시에 본부를 둔 동부 선교부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안돼! 나는 독일로 가야한단 말이야!” 저는 실망했습니다. 그 편지를 손에 쥔 채 집에 들어갔고, 곧 부모님을 뵙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부름에 대해 빨리 더 나은 태도를 가지는 게 좋겠어.”

저는 침실로 들어가 교리와 성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날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는 정확히 교리와 성약 100편을 펼쳐 들었고, 이 부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보라, 또 바라보라, 나는 이 곳에, 이 주변 지역에 나의 백성을 많이 가지고 있나니, 이 동쪽 땅에서 이 주변의 지역에 효과적인 문이 열리리라. 그러므로 나 주는 너희가 이곳에 오는 것을 용납하였나니, 이는 이와 같이 그 일이 여러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내게 필요하였음이니라.”(교리와 성약 100:3~4)

그 즉시, 독일에서 봉사하는 선교사로 부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셨을 무렵에, 저는 이 경전 구절을 통해 주어진 계시로 주님께서 제가 가기를 원하시는 선교부가 동부 선교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교부 회장으로서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뉴욕으로 선교사 부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도록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부름을 받아 봉사하던 때에 닐 에이 맥스웰 장로가 뉴욕시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맨해튼에서 열릴 선교부 전체 대회를 위한 계획을 세우면서, 누구에게 그 모임의 개회 기도를 부탁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선교사 명단을 꺼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선교사들 중에 누구에게 개회 기도를 드리게 하실지 제가 알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정기 접견 중에 저는 조셉 아피아라는 장로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저는 닐 에이 맥스웰 장로와 함께 하는 영적 모임에서 우리 선교사들 중에 누가 기도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기도해 왔는데, 장로님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영적 모임에서 개회 기도를 드리도록 권유하고 싶습니다.”

아피아 장로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이 선교부에서 맥스웰 장로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것을 저보다 더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선교사는 없을 거예요. 맥스웰 장로님은 제 조국인 가나에서 교회 사업을 시작하신 사도이며, 제 부친 토마스 아피아를 가나 아크라 지방부의 지방부 회장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불과 8년 전에 맥스웰 장로님은 저희 부모님을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인봉하셨어요.”

저는 그의 부친과 연결된 가나의 인연이나 그의 가족과 연결된 성전 인연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곤 선교사 명단을 보고 아피아 장로의 이름이 마치 네온 불빛처럼 눈에 띄었다는 것입니다. 영적 모임이 있던 그 날, 아피아 장로는 개회 기도를 드렸고, 맥스웰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올라가 그를 껴안으셨습니다.

저는 영의 속삭임에 따랐을 때 그 선교사에게 인도되었고, 주님의 사도와 함께했던 그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십니다. 그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역에서 잘 드러납니다. 몰몬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역을 베푸십니다. 저는 그 점이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훌륭한 교훈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엄청난 인구나 무리, 가족들 가운데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성역을 베푸십니다.


1. See Truman G. Madsen, Joseph Smith the Prophet (1989),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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