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와 온 인류는 그분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분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그분의 종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약 2000년 전에, 재물을 많이 갖고 있던 한 부유한 청년이 구세주께 지극히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태복음 19:16)
구세주의 가르침과 “와서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9:21)는 다정한 권유를 “듣고”, 그 부유한 젊은이는 “재물이 많으므로 … 근심하며 갔”(마태복음 19:22)습니다.
슬프게도, 오늘날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영생을 가진 자가 곧 부자니라”(교리와 성약 6:7)는 말씀과, 영생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은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영원한 부”(교리와 성약 38:39) 대신에 “세상의 부”를 귀중히 여기고 선택합니다. 영생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은사입니다.(교리와 성약 14:7 참조) 간단히 말해서, 영생은 주님의 면전에서 가족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교리와 성약 132:19~20, 23, 55 참조)
위대한 중재 기도를 드리시며, 구세주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영생을 얻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게 될 수 있습니까?
구세주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저는 우리와 온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와 그분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영생을 얻게 되는 유일한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그분을 아는 것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길래, 우리가 그분에게 나아와 그분을 알아야 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역할에 관해 “살아 계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대관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선언문보다 더 훌륭한 말이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위대한 여호와였고 신약의 메시아이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
“그분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목숨을 내주셨습니다. …
“그분은 아버지의 장자였고, 육신을 입은 독생자였으며, 세상의 구속주이셨습니다.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시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린도전서 15:20)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 고대 미대륙에 살고 있던 그분의 ‘다른 양들’(요한복음 10:16)에게도 성역을 베푸셨습니다. … 주님은 아버지와 함께 소년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시어, 오래 전부터 약속된 “때가 찬 경륜”의(에베소서 1:10) 시대를 여셨습니다. …
“… 그분의 신권과 교회가 지상에 회복되었으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으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에베소서 2:20)습니다. …
“그분이 언젠가 지상에 돌아오시어 … 만왕의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이며 만군의 주로서 통치하실 것입니다. … 우리는 저마다 그분 앞에 서서 …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합당하게 성임받은 사도로서 우리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위대한 왕인 임마뉴엘이시며 …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요, 소망이십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리아호나, 2000년 4월호, 2~3)
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저는 우리와 온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와 그분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영생을 얻게 되는 유일한 길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그분을 아는 것이라는 것을 간증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그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 답을 주셨습니다. “승영과 생명의 계속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이를 찾는 이가 적나니, 이는 이 세상에서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나를 알지도 아니함이니라. 너희가 이 세상에서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알게 될 것이요 …”(교리와 성약 132:22~23)
우리가 진실되게 그리고 온전하게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너희가 [위대한 여호와이며, 메시야이며, 세상의 창조자이며, 구세주이며, 세상의 구속주이며, 하나님의 불멸의 아들인]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알게 될 것이요”(교리와 성약 132:23)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와 온 인류는 그분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분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그분의 종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마태복음 10:40, 교리와 성약 1:38, 68:8~9, 84:36, 112:20 참조)
그분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류가 하나님 면전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진리 또는 율법, 성약, 의식 등을 포함하는 그분의 충만한 복음과 영원한 성약을 받아야만 합니다.(교리와 성약 39:11; 45:9; 66:2; 76:40~43; 132:12; 133:57 참조)
그분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충실한 아들들은 그분의 신권을 받아, 그들의 부름을 영화롭게 해야만 합니다.(교리와 성약 84:33~35)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와 온 인류는 모로나이가 권고한 대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 안에서 온전하게 되[어야만]”(모로나이서 10:32)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분과 같이 “되고자” 힘써 노력해야만 합니다.(“무엇인가 되어야 하는 과제” 댈린 에이치 옥스, 리아호나, 2001년 40~42 참조)
부활하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나와 같은 자라야 하느니라”(니파이삼서 27:27) “…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라는 그분의 질문에서 사용된 “ought(해야 한다)”란 단어의 의미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다” 또는 “의무나 도덕적 책임을 지거나 묶여 있다”입니다.(누가복음 24:26 참조; 단어 ‘ought’의 정의는 Noah Webster’s First Edition of an 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7th ed. [1993], “ought”를 참조한다). 고대와 현대의 거룩한 경전들은 그분께서 “나와 같이 되라”(니파이삼서 27:27; 또한 니파이삼서 12:48, 마태복음 5:48, 요한1서 3:2, 모로나이서 7:48 참조)라고 선언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성약에 의해 그렇게 “되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구세주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의 백성과 만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질 때가”(모사이야서 3:20, 또한 모세서 7:62, 이사야 11:9 참조) 속히 오며,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며 알 수 있게 되고,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와 그분을 알고, 나아가 영생을 얻게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