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내면에서 일어서서 “전심전력”을 다 하십시오
2017년 4월


2:3

내면에서 일어서서 “전심전력”을 다 하십시오

필요하다면 우리가 나아갈 경로를 다시 설정하고, 원대한 희망과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전심전력”을 다 하여 용감하게 “내면에서 일어섭시다.”

몇 년 전에 어린 손녀가 제게 달려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오늘 축구 시합에서 제가 세 골을 모두 넣었어요!”

저는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대단하구나, 세라!”

그러자 세라의 어머니가 저를 보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습니다. “점수는 2대 1이었어요.”

저는 누가 이겼는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연차 대회는 자기 성찰을 하고, 계시를 받고, 방향을 수정하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네버로스트[NeverLost]’라는 지피에스[GPS] 시스템을 사용하는 렌트카 회사가 있습니다. 이 지피에스 시스템의 안내 음성은 목적지가 입력된 상태에서 운전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서면 “이 바보 같으니라고!” 하고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상냥한 어조로 이렇게 말해 준다고 합니다. “경로를 재설정합니다. 가능하다면 합법적으로 유턴하십시오.”

에스겔서에는 이런 훌륭한 약속이 나옵니다.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고, 또한]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1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하지만 세 번째 약속을 받으려면 두 개의 율례를 모두 지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고, 모든 것을 지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받습니다. 그러려면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는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에 나온 한 남성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그 남성은 봉투에 현찰을 가득 담아 국세청으로 보내면서 거기에 다음과 같은 익명의 편지를 동봉했습니다. “국세청 관계자께, 과거에 내지 못한 세금을 보냅니다. 추신: 이것을 보낸 후에도 양심에 가책이 남는다면 나머지 세금도 모두 보내겠습니다.”2

우리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심판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무엇인지 알려고 이리저리 따져 보지 않습니다. 주님은 진심과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요구하십니다.3 우리의 온 마음 말입니다! 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구주를 따르겠다는 약속의 상징으로 물속에 완전히 잠깁니다. 우리가 온전히 헌신하며 “전심전력”을 다 할 때, 하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움직입니다.4 미온적으로나 부분적으로만 헌신한다면, 하늘의 가장 위대한 축복을 온전히 받을 수 없습니다.5

오래전에 저는 보이스카우트 소년들과 함께 사막으로 야영을 간 적이 있습니다. 소년들은 자신들이 지핀 큰 모닥불 옆에서 잠을 잤고, 저는 여느 훌륭한 스카우트 지도자들이 그렇듯 제 트럭의 뒷좌석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야영지를 둘러보는데, 스카우트 대원 한 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소년을 폴이라고 하겠습니다. 폴이 유난히 찌뿌둥해 보여서 잘 잤느냐고 물었더니, “잘 못 잤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유를 묻자, 폴은 “추웠어요. 불이 꺼졌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불은 꺼지게 마련이지. 침낭 속은 따뜻하지 않았니?”

폴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스카우트 대원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폴은 침낭을 안 썼어요.”

저는 믿을 수 없어 물었습니다. “왜 침낭을 안 썼니?”

침묵이 흐른 후, 마침내 폴은 부끄러운 듯 대답했습니다. “침낭을 펴지 않으면 다시 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실화입니다. 폴은 5분의 수고를 아끼려고 여러 시간 동안 추위에 떨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항상 더욱 위험한 방식으로 그렇게 하곤 합니다. 사실상 우리는 영적인 침낭을 펴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기도할 시간을 내지 않고, 복음을 공부하지 않고, 매일 복음에 따라 열심히 생활하지 않을 때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면 모닥불만 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영적으로 냉담해지게 됩니다.

성약을 안일하게 대한다면 그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너희 스스로에 관하여, 그리고 영생의 말씀에 부지런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조심하라.”6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나의 피는 그들을 깨끗하게 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7

사실, 부분적으로 헌신하는 것보다 “전심전력”을 다 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부분적으로만 헌신하거나 전혀 헌신하지 않는다면 스타워즈 식으로 말해서, “포스에 장애”가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따라서 행복의 본질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8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9

다행히도 우리가 어디에 있든, 또 어디에 있었든, 우리는 구주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내게로 오는 그는 내가 영접하리니,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러한 자의 것임이라. 보라, 그러한 자를 위하여 내가 내 목숨을 버렸고, 또다시 취하였노라.”10

계속해서 회개하고 주님께 의지할 때,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과 겸손함을 되찾아 힘을 얻고,11 삶의 경험에서 풍성한 지혜를 얻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12 영국 시인 테니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힘은 열 사람의 힘과 같으니, 이는 내 마음이 순수한 까닭이라.”13 주님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너희는 … 거룩한 곳에 서서 움직이지 말라.”14

제 아들 저스틴은 평생 질병에 시달리다가 열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스틴은 저희 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성찬식 말씀을 전하며 자신이 깊은 감명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하나 나누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사람 모형의 샌드백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주먹으로 샌드백을 칠 때마다 샌드백은 쓰러졌다가 곧바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샌드백이 왜 계속 일어나는지를 물었습니다.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 안에 일어서게 하는 뭔가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전심전력”을 다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닥쳐오든”15 “내면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육체의 가시를16 없애 주시거나 견딜 힘을 주시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릴 때, 우리는 내면에서 일어서게 됩니다. 그러한 가시는 질병, 장애, 정신 질환, 사랑하는 이의 죽음, 그 외의 여러 가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처진 손을 들어 올릴 때 내면에서 일어섭니다. 점점 빛을 불편해하고 악을 선이라 부르고 선을 악이라 부르며17 “의인들을 그 의로 인하여 정죄하”는18 사악하고 세속적인 세상으로부터 진리를 지킬 때, 우리는 내면에서 일어서게 됩니다.

우리가 시련을 겪으면서도 내면에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한 양심이 있고, 성신이 주는 확신을 통해 힘과 위안을 얻으며, 인간의 이해력을 뛰어넘는19 영원한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세에서 지상 생활을 경험할 기회를 받자 기뻐서 소리쳤습니다.20 우리는 “전심전력”을 다 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용감하게 지키는 옹호자가 되겠다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다시 일어서서 그분의 계획을 옹호할 때입니다!

최근에 제 아버지는 향년 97세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잘 지내시냐고 안부를 물어 오면, 아버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요즘 내 기분을 1에서 10사이에서 등급을 매기자면, 한 25쯤 된다오!” 아버지는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조차 힘겨우실 때도 항상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면에서 일어서셨습니다.

아버지가 90세이실 때 함께 공항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제가 휠체어를 갖다 드릴지를 여쭈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니야, 게리. 좀 더 늙으면 그렇게 하자꾸나.”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그리고 말이다, 걷는 게 힘들면 언제든 뛰어가면 된단다.” 우리가 현재 걷고 있는 방식으로 “전심전력”을 다하지 못한다면, 뛰어가야 할 수도 있고 경로를 재설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유턴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더 열심히 복음을 공부하고, 더욱 진실하게 기도하고, 정말로 중요한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일을 내려 놓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을 붙잡기 위해서는 세상을 놓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그 점을 이해하셨습니다.

사빈 장로의 아버지, 해군 복무 시절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버지가 해군에 계셨을 당시, 그곳에는 아버지의 원칙을 조롱하는, 크고 넓은 건물에 속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21 하지만 아버지의 전우 가운데 데일 매덕스와 돈 데이비드슨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빈, 자네는 왜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자네는 도덕 표준도 높고, 술 담배도 안 하고, 욕설도 안 하는 데다 언제나 차분하고 행복해 보이네.”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이 그들이 몰몬에 대해 배운 것과 일치하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이 두 전우를 가르치고 침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크게 노한 데일의 부모님은 데일이 교회에 들어간다면 사랑하는 여자 친구인 메리 올리브를 잃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아들에게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메리는 데일의 청에 따라 선교사를 만났고, 그녀 역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님은 선교사를 부르셨는데, 그중에는 몇몇의 기혼자들도 있었습니다. 1946년, 데일과 그의 아내인 메리 올리브는 첫 출산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음에도 데일이 선교사로 봉사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후에 그들은 모두 아들 셋과 딸 여섯을 낳아 슬하에 아홉 남매를 두었습니다. 세 번의 선교 사업을 한 데일과 메리 올리브를 따라 아홉 자녀가 모두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수십 명의 손자 손녀들 또한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그 아들 중 존과 매튜 매덕스는 현재 태버내클 합창단의 일원이며, 매튜의 사위인 라이언도 그렇습니다. 매덕스 가족은 이제 144명이 되었고, 그들은 “전심전력”을 다 하는 일에서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태버내클 합창단 일원으로 봉사하는 매덕스 가족

아버지가 남기신 서류를 훑어보던 중에 우리는 또 한 명의 전우였던 돈 데이비드슨의 다섯 딸 중 하나인 제니퍼 리차즈가 보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형제님의 의로움 덕분에 저희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교회가 없었다면 저희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복음을 사랑하셨고 생의 끝까지 복음에 따라 생활하려 애쓰셨습니다.”22

개개인이 내면에서 일어설 때 미치는 선한 영향력은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와 두 전우는 크고 넓은 건물에서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던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23 그들은 대중보다 창조주를 따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졌다고 한 것은24 어쩌면 우리 시대를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헛된 말”이 아주 많습니다. 바로, 크고 넓은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대화입니다.25 그런 대화는 사악함을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할 때, 그리고 사람들이 길을 잃고 잘못된 길로 달려갈 때 자주 이뤄집니다. 또한, “전심전력”을 다 하는 데 필요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선지자가 아닌 육에 속한 사람을 따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뤄집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충실한 사람들의 결말을 압니다. “전심전력”을 다 할 때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는26 확신을 얻습니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올바르게 사십시오.”27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저희 장인어른께서는 브리검 영 대학교가 하는 미식축구 경기를 좋아하시면서도 경기 결과를 직접 접하게 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신 나머지 시합은 보러 가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디오 녹화기가 발명되어 장인어른께서 경기를 녹화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브리검 영 대학교가 이기면, 장인어른은 결과를 아시기에 마음 놓고 녹화 경기를 보셨습니다. 팀이 부당하게 벌칙을 받거나 누군가 부상을 입거나 경기 막판에 점수가 뒤처지더라도 결국은 이길 것을 아셨기에 초조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장인어른은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을28 얻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실하면 결국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확신을 우리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필멸의 세상이 마냥 쉽다거나 눈물 흘릴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29

형제 자매 여러분, 내일의 죄를 지어 놓은 사람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나아갈 경로를 다시 설정하고, 원대한 희망과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전심전력”을 다 하여 용감하게 “내면에서 일어섭시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그분의 아들이신 우리 구주의 사명을 순수하고 용감하게 수호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위대한 행복의 계획이 실재함을 간증합니다. 주님의 가장 좋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제 축복을 여러분에게 더해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