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회
그리스도의 평안은 적대감을 없앱니다
2021년 10월 연차 대회


12:51

그리스도의 평안은 적대감을 없앱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온유, 인내, 친절로 의견 차이를 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운동 스트레스 검사를 하는 동안 심장은 더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걷는 것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는 심장이 오르막길 달리기를 해내려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스트레스 검사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기저 질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질환이 확인되면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치료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분명 전 세계적인 스트레스 검사였습니다! 이 검사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1 의료 전문가, 교사, 간병인 및 그 밖의 사람들의 영웅적인 희생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관대함과 친절을 베풀었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약점도 드러났습니다. 취약 계층은 고통을 겪었으며, 계속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격려와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전염병은 구주의 교회와 그 회원들에게 영적인 스트레스 시험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우리 삶은 “더 높고 더 거룩한 방법”으로 행하는 성역,2『와서 나를 따르라』 교과 과정, 가정이 중심이 되고 교회가 뒷받침하는 복음 학습으로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어려운 시기에 연민 어린 도움을 베풀고 위안을 주었으며, 계속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3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영적인 스트레스 시험에서 다툼과 분열의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을 변화시키고 구주의 참된 제자로서 단합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새로운 도전은 아니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4

구주께서는 니파이인들을 방문하셨을 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논쟁이 너희 가운데 없게 하[라.] …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내게 속한 자가 아니요 분쟁의 아비인 악마에게 속한 자임이라,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서로 노여움으로 다투게 하는도다.”5 우리가 분노로 서로 다투면 사탄은 웃고 하늘의 하나님은 우십니다.6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사탄이 웃고 하나님께서 우십니다. 첫째, 다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과 그분의 “공덕과 자비와 은혜”를7 통해 오는 구속에 대한 우리의 하나 된 간증을 약화시킵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8 이 반대의 경우 또한 참됩니다. 즉, 서로 사랑을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그분의 제자가 아님을 모두가 알게 됩니다. 다툼이나 적대감이9 그분의 제자들 사이에 존재할 때10 오늘날 그분의 사업이 위태로워집니다. 둘째, 다툼은 우리 개개인에게 영적으로 해롭습니다. 우리는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빼앗기며, 영을 느끼는 우리의 능력이 손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노여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서로 대적하게 하는 … 것은 [그분]의 교리가 아니[며], 그러한 일을 없이 하는”11 것이 [그분]의 교리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의견 차이에 성급하게 화를 내거나 비판적으로 대응한다면, 저는 영적인 스트레스 시험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서 제게 희망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대신 그것은 제가 변화해야 함을 알려 줍니다. 그 깨달음은 유익한 것입니다.

구주께서 미 대륙을 방문하신 후에 백성들은 단합했으며, “온 땅에 다툼이 없었”습니다.12 여러분은 그 백성들이 모두 똑같아서, 아니면 그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없어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구주의 제자가 되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했기 때문에 다툼과 적대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들 사이의 다름은 구주에 대한 그들의 공통된 사랑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로서13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 백성 중에서 이들보다 더 행복한 백성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14

단합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15 단합은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키우며16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집중할 때17 발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18 공통된 기본 정체성과 회복된 복음의 진리에 대한 헌신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진실한 관심을 낳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지닌 다양한 특성, 관점, 재능을 소중하게 여깁니다.19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개인적인 견해나 관심사보다 우선시할 수 없다면, 우리의 우선순위를 다시 살펴보고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내 의견에 동의만 한다면 당연히 하나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더 나은 방법은 이렇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이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나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다툼을 줄이고 동정심과 배려심을 보이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우면,20 우리는 온유, 인내, 친절로 의견 차이를 대합니다.21 자신의 감정보다는 이웃이 상심하지 않을까 더 걱정합니다. 우리는 “이견 조율과 통합을 도모”합니다.22 우리는 “의견을 비판하”는 데 가담하지 않으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그들을 실족하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23 그 대신, 우리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는 20년 이상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변호사로서 그녀는 종종 극명하게 반대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무례하거나 화내지 않으면서도 동의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상대편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여러분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여러분도 저를 똑같이 존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은 종종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하게 하고 때로는 우정을 쌓게 했습니다.

과거의 적이라도 구주의 제자로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24 2006년에 저는 아버지와 조부모님을 기리고자 핀란드 헬싱키 성전 헌납식에 참석했는데, 그분들은 핀란드에서 교회의 초기 개종자셨습니다. 아버지를 포함한 핀란드인들은 수십 년 동안 핀란드에 성전이 세워지기를 꿈꾸었습니다. 당시 성전 구역은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러시아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헌납식에서 저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성전의 일반 운영 첫날이 러시아 회원들을 위하여 성전 의식을 행하도록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러시아와 핀란드는 수 세기 동안 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아버지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모든 러시아인을 불신하고 싫어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하셨으며, 그것은 러시아에 대한 핀란드인들의 전형적인 적대감이었습니다. 그분은 19세기 핀란드와 러시아 간의 전쟁을 연대기로 기록한 장대한 시를 외우고 계셨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핀란드와 러시아는 또다시 적대국이 되었고 이 시기를 겪은 그분은 당신의 의견을 고수하셨습니다.

핀란드 헬싱키 성전이 헌납되기 일 년 전에 핀란드 회원들로만 구성된 성전 위원회가 모여 헌납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모임 중에 누군가가 러시아 성도들이 며칠 동안 여행하여 헌납식에 참석할 것이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성전 축복을 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원장인 스벤 에클런드 형제님은 러시아인들이 그 성전에서 첫 번째로 성전 의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핀란드인들이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모든 위원회 위원들이 이에 동의했습니다. 충실한 핀란드 후기 성도들은 러시아 성도들을 위해 자신들의 성전 축복을 연기했습니다.

지역 회장으로 그 성전 위원회 모임에 참석했던 데니스 비 노인슈안더 장로님은 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이 순간만큼 핀란드인들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동쪽 이웃 나라와의 험난한 역사, …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의 땅에 성전을 지었다는 흥분과 설렘은 제쳐 두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이 먼저 성전에 들어가도록 허락한 것은 사랑과 희생의 선언이었습니다.”25

아버지께 이런 친절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그분은 마음이 풀렸고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핀란드인에게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에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동료 핀란드인들의 모범에 영감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핀란드인들은 핀란드인이었습니다. 러시아인들 역시 러시아인이었습니다. 누구도 적대감을 버리기 위해 자신들의 문화나 역사, 또는 경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가장 우선에 두기로 했습니다.26

그들이 할 수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산, 문화, 경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레이맨인으로서 자신의 유산을 저버리지 않았으며,27 몰몬도 니파이인으로서 자신의 유산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28 그러나 그들은 각자 구주의 제자가 되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것이 아닙니다.29 용감하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구주의 제자가 되는 것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으로 여기시도록 권유합니다.30 제자로서의 우리 삶에 내재된 성약, 즉 하나가 되겠다는 그 성약을 지키도록 합시다.

성공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있는 전 세계 성도들의 모범을 따릅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니] …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속죄 희생으]로 허[셨습니다].”31 세상에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간증이 강해질 것이며, 우리는 영적으로 건강하게 남을 것입니다.32 저는 우리가 “분쟁을 피”하고 “사랑 안에서 주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신앙으로 주님과 함께”할 때, 그분의 평안이 우리의 것이 됨을 간증드립니다.3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제일회장단이 후기 성도들에게 필요 시 마스크를 착용할 것과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을 것을 촉구하다”, 뉴스룸, 2021년 8월 13일, news-kr.churchofjesuschrist.org; “Vaccines Explained,”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int/emergencies/diseases/novel-coronavirus-2019/covid-19-vaccines/explainers; “Safety of COVID-19 Vaccine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Sept. 27, 2021, 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safety/safety-of-vaccines.html; “COVID-19 Vaccine Effectiveness and Safety,” Morbidity and Mortality Weekly Report,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gov/mmwr/covid19_vaccine_safety.html.

  2. 러셀 엠 넬슨, “이스라엘의 집합에는 자매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리아호나』, 2018년 11월호, 70쪽.

  3. 교리와 성약 81:5 참조.

  4.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사도와 선지자가 단합과 다툼에 대해 말씀해 왔다. 다음의 예를 참조한다. 마빈 제이 애쉬튼,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매리온 지 롬니, “단합”, 『성도의 벗』, 1983년 7월호; 러셀 엠 넬슨, “분쟁의 해독”,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러셀 엠 넬슨, “성약의 자녀”, 『성도의 벗』, 1995년 7월호; 헨리 비 아이어링, “하나가 되기 위하여”, 『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시온에 오라”,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제프리 알 홀런드, “화해의 성역”, 『리아호나』, 2018년 11월호; 쿠엔틴 엘 쿡, “의로움과 단합으로 맺어진 마음”, 『리아호나』, 2020년 11월호; 게리 이 스티븐슨, “마음이 함께 맺어지고”, 『리아호나』, 2021년 5월호.

  5. 제3니파이 11:28~29.

  6. 모세서 7:26, 28, 33 참조. 이것은 구주의 속죄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거나 그분이 여전히 고통을 겪고 계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를 완전히 끝마치셨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속죄 희생을 완전히 마치심으로써 무한하고도 완전한 공감과 연민을 얻으셨으며 이로써 그분은 실망과 슬픔을 느끼실 수 있다.

  7. 니파이후서 2:8.

  8. 요한복음 13:34, 35.

  9. 적대감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상태 또는 감정이다. 그것은 적의, 반감, 적개심, 원한, 뿌리 깊은 증오나 악의를 내포한다. “적대감”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증오”로도 번역된다. 그것은 “사랑”으로 번역되는 agape의 반대말이다. See James Strong, The New Strong’s Expanded Exhaustive Concordance of the Bible (2010), Greek dictionary section, number 2189.

  10. 요한복음 17:21, 23 참조.

  11. 제3니파이 11:30.

  12. 제4니파이 1:18.

  13. 제4니파이 1:17.

  14. 제4니파이 1:16.

  15.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이렇게 말씀했다. “주님은 노력을 값지게 여기신다.”(조이 디 존스가 인용, “특별히 고귀한 부름”, 『리아호나』, 2020년 5월호, 16쪽)

  16. 제4니파이 1:15 참조. 이런 단합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에녹 시대에 “그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의롭게 거하며, 그들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었으므로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시온이라 [부르셨다].”(모세서 7:18)

  17. 모사이야서 18:21 참조.

  18. 사도행전 17:29; 시편 82:6 참조.

  19. 고린도전서 12:12~27 참조.

  20. 모로나이서 7:47~48 참조.

  21. 교리와 성약 107:30~31 참조.

  22. 댈린 에이치 옥스, “하늘에서 영감받은 우리의 헌법을 수호함”, 『리아호나』, 2021년 5월호, 107쪽.

  23. 로마서 14:1~3, 13, 21 참조.

  24. 구주께서는 “옛날의 나의 제자들이 서로 대적할 기회를 찾으며, 마음에 서로 용서하지 아니하더니, 이 악으로 인해 그들이 고난을 겪고 심히 징계를 받았느니라”라고 비판하시며, 현대의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마땅히 서로 용서해야 하느니라”라고 훈계하셨다.(교리와 성약 64:8~9)

  25. 데니스 비 노인슈안더 장로, 개인적인 대화.

  26. 전형적인 핀란드 방식으로, 에클런드 형제는 이 결정에 대해 논의할 때 그것이 그저 논리적으로 타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인의 관대함을 칭찬하는 대신 러시아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핀란드인들은 핀란드 헬싱키 성전에서 행해지는 사업에 러시아인들이 크게 이바지한 것에 감사했다.(스벤 에클런드, 개인적인 대화)

  27. 힐라맨서 13:2, 5 참조.

  28. 제3니파이 5:13, 20 참조.

  29. 교리와 성약 38:27 참조.

  30. 누가복음 14:25~33 참조.

  31. 에베소서 2:14~15.

  32. 에베소서 2:19 참조.

  33. 러셀 엠 넬슨, “분쟁의 해독”,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84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