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곳”,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1권, 진리의 표준, 1815~1846년(2018) 제35장
제35장: “아름다운 곳”
제35장
아름다운 곳
커머스를 휩쓴 말라리아는 1840년까지도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에밀리 파트리지는 언니 해리엇과 함께 천막과 짐마차, 아직 덜 지어진 집들을 찾아다니며 병자들을 보살폈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된 에밀리는 척박한 생활에 익숙해졌다. 에밀리의 가족은 초라하게나마 있었던 그들의 집에서 쫓겨나기를 반복하며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끝에 오하이오에 와서야 처음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자들을 돌보던 에밀리와 해리엇도 결국 고열과 오한으로 쓰러졌다. 딸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워드 파트리지와 그의 아내 리디아는 강가의 버려진 창고에 작은 방을 얻어 천막에 있던 딸들을 그곳으로 옮겼다. 그런 다음, 에드워드는 그곳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땅에다 가족들이 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미주리에서 시련을 겪으며 건강을 잃은 에드워드 파트리지 감독은 일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에드워드도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약으로 몸을 추스른 후 다시 집 공사를 시작했으나 일이 주 정도 후에 또 다시 몸져누웠다. 그러나 그는 약을 더 먹고는 공사를 계속해 나갔다.
비좁고 답답한 창고 방은 에밀리와 해리엇, 그리고 마찬가지로 병상에 누워 있는 에밀리의 다른 남매들의 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에밀리는 1840년 봄이 지나면서 점차 열이 떨어졌지만, 해리엇은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5월 중순, 해리엇은 1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1
해리엇의 죽음은 파트리지 가족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장례를 치른 후, 에드워드는 가족들에게 더 나은 거처를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소유지에 짓고 있던,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외양간으로 가족들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힘에 부친 일을 밀어붙인 끝에 그는 기력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동료 성도인 윌리엄과 제인 로 부부는 이 가족을 돕기 위해 에밀리 남매들을 집으로 데려가 간호해 주었다.
에드워드는 여러 날을 고통에 시달리다 해리엇이 죽은 지 열흘쯤 후에 숨을 거뒀다. 에밀리는 언니와 아버지를 잃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에밀리는 언니 해리엇과 사이가 각별했다. 에밀리는 아버지가 가족과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불평하는 성도들과 믿음 없는 반대자들, 적대적인 이웃들이 그의 영혼을 지치게 할 때도 아버지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2
시간이 지나면서 에밀리는 병과 슬픔의 안개에서 벗어났지만, 이제 그녀의 삶은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에밀리와 열아홉 살 된 그녀의 언니 엘리자는 궁핍한 가족의 생계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엘리자는 재봉 기술 덕택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에밀리는 특별한 재주가 없었다. 물론 접시를 닦고, 바닥을 쓸고 닦는 등 다른 집안일은 할 수 있었지만, 커머스에서 그런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넘쳐 났다.3
다행히 성도들은 에밀리의 아버지가 교회를 위해 큰 희생을 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교회 신문인 Times and Seasons[타임즈 앤드 시즌스]에는 다음과 같은 파트리지 감독의 부고가 실렸다. “파트리지 감독은 그 누구보다도 교회의 신뢰를 크게 얻었던 사람이다. 종교는 그의 전부였다. 그는 종교를 위해 일생을 보내고,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4
성도들은 파트리지 감독을 기리고 그의 가족을 돕기 위해 그가 시작한 주택 공사를 마저 마무리했고, 에밀리의 가족은 이제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다.5
1840년 봄이 되자, 미시시피강 유역의 새로운 도시는 희망찬 시작을 알렸다. 성도들은 습지의 물을 강으로 빼고, 그 땅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꾸기 위해 배수로와 운하를 팠다. 그들은 도로 계획을 세우고, 기초를 놓으며,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밭을 갈았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 6월 무렵에는 250채가량의 가옥이 완공되었다.6
조셉은 커머스에 도착할 당시 도시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곧바로 나부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었다. 그는 제일회장단 성명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도시의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나온 말로, 아름다운 상황 또는 장소를 뜻합니다. 또한, 이 말은 휴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7 조셉은 나부가 그 이름과 같은 곳이 되기를, 성도들이 최근 몇 해 동안의 갈등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휴식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평화와 휴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알았다. 성도들은 오하이오와 미주리에서 겪었던 반대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서로 더욱 끈끈한 관계를 맺고 이웃과 지속적인 우정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8
이 무렵에 조셉은 윌리엄 펠프스의 편지를 받았다. 윌리엄은 교회를 버리고 미주리주 법정에서 조셉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뒤 오하이오에 살고 있었다. 윌리엄은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제 상황은 저도 알고 형제님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친구들이 도와준다면, 저는 구원을 받고 싶습니다.”9
윌리엄이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진실한 사람임을 알았던 조셉은 얼마 후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형제님의 행동으로 우리가 큰 고통을 겪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쓴잔은 비워졌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조셉은 미주리에서 겪었던 암울한 나날을 잊어버리려고 했으므로 윌리엄을 용서하고 그에게 다시 교회 일을 맡겼다.
“사랑하는 형제여, 전쟁은 끝났습니다. 처음에 친구였다면 또다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10
조셉은 하루라도 빨리 성도들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더 전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님께서는 리버티 감옥에 있던 조셉에게 그의 날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하셨다. 조셉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마흔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하나님께 계시로 받은 것들을 더 늦기 전에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했다.11
그러나 조셉은 도시를 건설하고 교회의 현세적인 일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았다. 그는 항상 교회의 사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오랫동안 파트리지 감독과 같은 이들에게 의지하여 부담을 덜곤 했다. 하지만 이제 에드워드도 없으니, 조셉은 뉴얼 휘트니 감독과 나부에서 부름받은 다른 감독들에게 더욱더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영적인 성역에 집중하려면 교회 행정의 현세적인 측면을 지휘하는 부분에서 아직 도움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12
얼마 후, 조셉은 존 쿡 베넷이라는 낯선 이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존은 나부로 이주하여 교회의 회원이 되어 성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뜻을 조셉에게 전했다. 의사이자 일리노이주 민병대의 고위 간부인 그는 목사와 교수로 재직한 경력도 있었다. 존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한다면 제가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빠른 답장 기다리겠습니다.”13
그리고 그후로 며칠 사이에 조셉은 존에게서 두 통의 편지를 더 받았다. 존은 약속했다. “저에게 의지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의 사람들이 저의 사람들이 되고, 당신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희망합니다.” 그는 연설 솜씨와 지치지 않는 활력으로 자신이 성도들에게 매우 가치 있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14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이 나날이 커집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사업을 즉시 접고 당신이 계시는 더없이 행복한 곳으로 당장 달려가겠습니다.”15
조셉은 존의 편지를 읽은 뒤, 존처럼 유능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며 성도들을 북돋았다.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리노이주에서 교회가 확고히 서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
조셉은 존에게 답장을 보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이 계절이 가기 전까지 이곳으로 오시겠습니까? 저는 그 누구보다 기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형제님을 맞이하겠습니다.”16
나부가 자리를 잡아가자, 조셉은 집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영국에 간 사도들이 보낸 성도들 마흔한 명이 바다를 건너 이곳 나부로 이주해 왔다. 조셉은 앞으로 몇 달, 그리고 몇 년 동안 더 많은 성도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라 예상했다.
조셉은 그해 7월에 전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공표했다. “나부는 주요 집합 장소입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이곳에 와서 나부의 청빈을 누리게 하십시오!”
조셉은 성도들이 미주리에서 추방되고 정부에 제출한 청원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많은 이들이 시온의 미래와 집합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셉은 시온이란 단순히 잭슨군에서 땅 몇 평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이해하기를 바랐다. 그는 “성도들이 집합하는 곳이 시온입니다.”라고 선포했다.
이제 주님께서는 나부와 주변 지역에 스테이크를 세우라는 명을 성도들에게 주셨다. 시간이 가고 더 많은 성도가 시온에 집합하면, 교회는 추가로 스테이크를 조직하고, 이 땅은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었다.
조셉은 설교를 마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공표했다. “교회가 뒷받침해 준다면, 저는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만큼 웅장한 성전을 지을 책임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그는 손을 뻗어 언덕 높은 곳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성도들이 그곳에 성스러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셉은 간절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는 살아서 그 성전이 완공되는 날을 볼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말할 것입니다. ‘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종이 평화롭게 눈감게 하소서.’”17
몇 주 뒤, 나부에 무더위가 이어지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병으로 죽어 가는 와중에 조셉의 친구인 세이모어 브런슨이 세상을 떠났다.18 장례식에 참석한 조셉은 세이모어의 미망인 해리엇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수천 명의 성도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하던 중에 조셉은 제인 네이먼을 보았다. 제인에게는 침례도 받기 전에 십 대의 나이로 사망한 사이러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제인이 아들 영혼의 안위를 근심하고 있음을 안 조셉은 자신의 형 앨빈처럼 침례받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구원에 관하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성도들에게 밝히기로 결정했다.19
조셉은 성경을 펴서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한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느냐.”20 그는 바울의 이 증언은 산 자가 죽은 자를 대신하여 침례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육신은 죽었으나 영은 살아 있는 그들에게 침례의 혜택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셉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나 그분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죽은 수많은 사람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말했다.21
제인은 조셉이 설교를 마치기 무섭게 교회의 장로와 함께 강으로 가서 사이러스를 위해 침례를 받았다. 그날 저녁에 제인이 아들을 대신해 침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조셉은 제인에게 침례를 준 장로가 의식에서 어떤 의식문을 사용했는지를 물었다. 장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말해 주자, 조셉은 그가 정확하게 침례를 행했음을 확인해 주었다.22
존 베넷은 1840년 9월에 나부에 도착했다. 조셉은 나부와 교회의 법적, 정치적 사안을 관리하는 것에 관하여 그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다. 존은 선지자와 나이가 비슷했지만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키가 작고 머리는 희끗희끗 세어 가고 있었으며 눈동자는 검고 얼굴은 갸름하고 준수했다. 존은 쉽게 침례를 받아들였다.23
루시 스미스는 병든 남편을 걱정하느라 새로 온 유명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셉 일세도 파트리지 감독처럼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미주리를 떠나왔고, 나부의 무더위에 건강은 날로 더 악화되고 있었다. 루시는 남편이 회복되기를 바랐지만, 조셉 일세는 각혈까지 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조셉과 하이럼은 아버지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아버지의 병상을 찾았다.24
루시는 나머지 가족에게도 전갈을 보냈고, 그동안 조셉은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그는 죽은 자를 위한 침례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받게 되는 축복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조셉 일세는 더없이 기뻐하며 앨빈을 위해 침례를 집행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잠시 후, 거의 모든 자녀가 집에 모였고, 루시는 자녀들을 아버지의 병상 주변에 둘러앉게 했다. 죽음을 앞둔 조셉 일세는 아직 말할 힘이 있을 때 자녀 하나하나를 다 축복해 주고자 했다. 조셉의 차례가 되자, 조셉 일세는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를 축복했다.
“계속해서 충실하라.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가족, 그대의 후손이 축복을 받으리라. 그대는 살아서 그대의 일을 마치리라.”
조셉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 정말 그렇게 될까요?”
조셉 일세는 축복사로서 선지자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그래, 그렇단다. 넌 하나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일에 대한 계획을 다 마칠 수 있을 거야.”
조셉 일세는 모든 자녀를 축복한 뒤 루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여,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여인 중 한 명이라오.”
루시가 고개를 저었지만, 조셉 일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같은 날 죽기를 바라곤 했지만, 내가 죽을 때 당신도 죽기를 바라지는 마시오. 내가 떠나도 당신은 남아서 이 아이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오.”
잠시 말을 멈춘 후, 조셉 일세는 소리쳤다. “앨빈이 보이는구나.” 두 손을 맞잡은 조셉 일세는 숨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숨이 점점 가빠지더니 이내 조용히 눈을 감았다.25
조셉 일세가 죽고 몇 주가 지난 뒤, 성도들은 1840년 10월 연차 대회를 위해 나부에 모였다. 조셉은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해 더 많은 가르침을 전했으며, 죽은 자의 영은 살아 있는 친척이 구원 의식을 대신 받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26
성도들은 대회의 각 모임 사이 휴식 시간에 미시시피강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강물에 허리 높이까지 몸을 담근 장로들이 죽은 조부모와 부모, 형제, 자녀들을 위해 침례를 받고자 하는 성도들을 향해 손짓을 하며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곧 하이럼도 형 앨빈을 위해 침례를 받았다.27
강물 속에 서 있는 장로들의 모습을 보던 빌리트 킴볼은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침례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히버가 영국에서 돌아와 침례를 집행해 주기를 바랐지만, 조셉은 가능한 한 빨리 죽은 자를 구속하라고 촉구했으므로 그녀는 지금 바로 어머니를 위해 침례를 받기로 했다.28
에머 스미스 역시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에머의 아버지 아이잭 헤일은 1839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잭은 끝내 딸 부부와 화해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에 조셉을 비난하며 몰몬경은 “거짓과 사악함으로 만들어 낸 어리석은 위조품”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고, 교회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그 편지를 출판해도 된다고 허락하기까지 했었다.29
하지만 에머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날 강에서 아버지를 위해 침례를 받았다.30 에머는 아버지가 이생에서는 회복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해 가을에 조셉과 존 베넷은 나부 법률 헌장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 헌장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여 그들이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게 하고, 또한 미주리에서와 같은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들을 지키게 하려는 데 있었다. 만일 주의회가 이 헌장을 승인한다면, 나부 시민들은 시를 위해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고, 지방 법원을 운영하며, 대학을 설립하고, 민병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31
교회를 위한 조셉의 계획도 점점 더 확대되어 갔다. 선지자는 더 많은 성도가 집합할 것을 예상하고 나부 인근에 여러 스테이크와 새로운 정착촌들을 세웠다. 또, 조셉은 올슨 하이드와 존 페이지에게 부름을 주어 팔레스타인으로 가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도록 지명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아브라함 자손들의 집합 장소로 헌납할 계획이었다. 이 두 사도는 팔레스타인에 가기 위해 유럽을 거치면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할 것이었다.32
조셉과 제일회장단은 이렇게 선포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온 땅과 온 나라의 백성들과 모든 언어와 방언, 피부색의 사람들이 이 장소에 모여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주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만군의 주이신 그분을 예배할 것입니다.”33
12월 초에 존 베넷은 일리노이주의회를 설득하여 나부 헌장을 승인받았다. 즉, 성도들에게 도시 계획을 추진할 권한이 생긴 것이었다. 존은 의기양양하여 나부로 돌아왔고, 조셉은 기회가 될 때마다 그를 칭찬했다.34
한 달여 후인 1841년 1월 19일에 주님은 새로운 계시로 성도들을 축복하셨다. 주님은 에드워드 파트리지와 조셉 스미스 일세, 그리고 크룩트 강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데이비드 패튼을 맞아들이시어 보살피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하이럼 스미스는 조셉 일세의 뒤를 이어 교회의 축복사로 부름받았으며, 한때 올리버 카우드리가 했던 것처럼 조셉 곁에서 선지자, 선견자, 계시자 역할로 봉사하도록 지명받았다.35
또, 주님은 존 베넷에게 조셉을 도와 성도들을 대표하여 교회 외부의 사람들과 계속 소통하라고 명하시며, 의롭게 일한다면 주님의 축복이 따를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이렇게 선포하셨다. “만일 그가 권고를 받아들이면, 자기 상을 결코 잃지 아니하리라. … 나는 그가 행한 일을 보았나니, 만일 그가 계속하면, 나는 그 일을 받아들일 것이[니라.]”36
또한, 주님은 과거에 잭슨군에서 성도들이 시온 건설에 들인 노력을 받아들이셨으나 이제는 나부를 건설하고 더 많은 스테이크를 세우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나부 하우스라는 호텔을 지어 나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휴식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시온의 영광에 대해 생각할 장소를 제공하라고도 말씀하셨다.37
무엇보다도,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새로운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집이 나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되게 하여 내가 그 안에서 나의 백성에게 나의 의식을 드러낼 수 있게 할지어다.”38
죽은 자를 위한 침례도 그 의식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주님은 성도들에게 미시시피강에서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행하도록 하셨으나 이제는 성전 안에서 특별한 침례반을 헌납할 때까지 그 의식을 멈추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의식[은] 나의 집에 속한 것이[니라.]”39
주님은 성전에서 행해질 다른 의식들과 영감을 주는 새로운 진리들을 장차 알려 주시겠다고 하셨다. “창세 이전부터 감추어져 온 것들, 때가 찬 경륜의 시대에 관한 것들을 내가 나의 교회에 드러내려고 생각하고 있음이니라. 그리고 나는 이 집에 관한 모든 것과 그 신권[을] … 나의 종 조셉에게 보여 주리라.”40
주님은 성도들의 근면과 순종을 보상하리라고 약속하시며, 온 힘을 다해 성전을 짓도록 촉구하셨다.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 한 채를 짓되 이 곳에 지으라. 그리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모든 일에 충실함을 너희가 내게 입증하며, 그리하여 나로 너희에게 복을 주어 존귀와 불멸과 영생으로 너희에게 면류관을 씌우게 하라.”41
새해가 시작되었을 때, 성도들은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1841년 2월 1일에 성도들은 존 베넷을 나부의 시장으로 선출했으며, 베넷은 시 법원의 수석재판관도 겸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새로운 대학의 총장이자 민병대의 소장, 제일회장단 보좌의 보조이기도 했다.42 조셉과 다른 지도자들은 그에게 도시를 이끌고 번영을 가져올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존의 권세와 책임이 확대되자, 에머도 그가 성도들에게 크나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존과 성도로서 정을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존이 거만한 장군처럼 나부 곳곳을 휘젓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셉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지 않을 때는 오직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존 베넷의 재능과 역량은 물론 그에 관한 모든 것이 에머는 근심스럽기만 했다.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