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리는 봉사를 선택했다
February 2016


교회에서 봉사하며

우리는 봉사를 선택했다

글쓴이는 독일 바바리아에 산다.

남편이 암투병 중이었지만,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성전에서 봉사하라는 부름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성전을 향해 걷고 있는 부부

삽화: 벤 소워즈

1994 년 12월 12일, 우리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걸려온 전화를 한 통 받았다. 1994 년 12월 12일, 우리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걸려온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어떤 분이 상냥한 목소리로 당시 제일회장단 제2보좌였던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이 우리와 통화하고 싶어 하신다고 말했다.

몬슨 회장님은 남편인 게르하르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성전 회장님이 형제님을 그분의 보좌로, 그리고 자매님을 성전 메이트론 보조로 부르고 싶어 하시는군요.” 그러고 나서 몬슨 회장님은 남편의 건강에 대해 염려를 표하셨다.

게르하르트는 11년간 만성 림프성 백혈병과 싸우고 있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예’라고 대답했다.

봉사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직장을 그만두려 하자, 나의 상사는 “월급을 올려 줄 테니 계속 이곳에 계시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아니요, 그럴 수가 없네요.” 나는 그에게 우리가 선교 사업을 하기로 주님께 약속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2년 동안 봉사할 생각이지만, 그때까지 남편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후 2주가 채 안 되어 게르하르트가 정기 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여기 계십시오. 사망에 이를 위험이 너무 높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었다.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고, 어떻게 부름을 완수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앙과 소망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겼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실 일이 있다면, 그분은 우리가 그것을 이룰 방편도 마련하시리라 믿었다.

1995년 1월 2일, 우리는 선교 사업을 떠났다. 나는 갑자기 내가 포기하게 될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내 어머니, 내 아이들, 내 손자들, 내 직업, 내 집, 내 정원. 그러나 다음날 프랑크푸르트 성전에 자리를 잡자, 마치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 날이 밝듯이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졌다. 일상의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이다.

이 거룩한 곳에서, 우리는 구주께서 발하시는 사랑, 빛, 소망, 기쁨, 신뢰, 따뜻함, 안전, 보호, 그리고 평안을 찾았다. 봉사하는 동안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온 훌륭한 사람들을 만났다. 비록 그들의 언어는 서로 달랐지만, 사랑이라는 언어가 우리를 연결해 주었다. 성전 봉사로 우리는 매우 행복해졌다.

성전의 영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이 내 사랑하는 남편을 26개월이라는 봉사 기간 동안 지탱해 주었다. 성전 부름에서 해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게르하르트는 통상적인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갔다. 이번에는 의사가 그를 병원에 머무르게 했다. 몇 달 후 그는 하늘 본향으로 돌아갔다.

뒤돌아보면, 성전에서 봉사하던 그 시간이 하늘에서 온 선물처럼 느껴진다. 함께 선교 사업을 하겠다는 약속을 이루며 우리 사랑하는 아버지의 집에서 남편과 함께 나란히 서서 봉사하던 그 시간이 말이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