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결혼 생활에서 단합을 증진시킴,” 결혼 및 가족 관계 반원 학습 지도서 (2000), 8–11
“제2과,” 결혼 및 가족 관계 반원 학습 지도서, 8–11
제2과
결혼 생활에서 단합을 증진시킴
적용을 위한 제언
자신의 필요 사항과 상황에 따라 다음 제언 중 한 가지 이상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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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되는 것에 관련된 다음 성구들을 읽는다. 고린도전서 1:9~10; 빌립보서 1:27; 모사이야서 18:21; 교리와 성약 38:27. 이 성구들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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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상의 약속, 직업상의 약속, 지역 사회와 관련된 약속, 교회와 관련된 약속을 포함해서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시간에 대해 여러분의 배우자와 함께 토론한다. 시간을 할애하여 서로의 필요 사항을 이해하고 여러분의 다른 약속이 상대방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노력에 방해가 되는지 확인한다.
독서 과제
다음 기사에 대해 공부한다. 여러분이 기혼자일 경우, 여러분의 배우자와 함께 기사를 읽고 토론한다.
하나가 되기 위하여
헨리 비 아이어링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너희가 하나가 되지 아니하면 나의 것이 아니니라.”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교회에 속할 자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가 되라. 만일 너희가 하나가 되지 아니하면, 너희는 나의 것이 아니니라.”(교리와 성약 38:27) 남자와 여자가 창조될 때, 결혼 생활에서의 그들의 단합은 희망 사항이 아니라 명령으로서 주어졌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24)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결합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에서의 그와 같은 연합은 단지 이상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할 필요성은 단지 이 지상 생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끝이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불멸의 상태로 있었을 때 최초의 결혼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집행되었습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남자와 여자에게 남편과 아내로서 함께 연합하고자 하는 욕망을 주셔서 영원히 완전하고 의로운 연합 가운데, 가족으로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녀들에게도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단합하여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극이 일찍부터 닥쳐왔습니다.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살해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자녀들은 사탄의 유혹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교묘함과 증오와 교활함으로 사탄은 그의 목표를 추구해 나갔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의 목적과는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완전한 단합과 영원한 행복을 주시고자 합니다. 그분들과 우리의 적인 사탄은 창세 전부터 구원의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가족의 이러한 성스럽고도 기쁜 연합은 영생 안에서만 지속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떼어 내어 비참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분리되어 헤어지도록 인간들의 마음속에 불화의 씨앗을 심어 주는 자는 바로 사탄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단합과 헤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느껴 왔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그리고 아마 다른 환경에서 때때로 한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보다는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우위에 둘 때 우리는 사랑과 희생의 삶을 어렴풋이 보아 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헤어져 홀로 있을 때의 슬픔과 외로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상에서 단합을 경험하고 그것을 다음에 올 세상에서까지 영원히 가지기에 합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그 위대한 축복이 어떻게 오는 것인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단합은 구주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
구주께서는 단합과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우리의 성품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돌아가시기 전 사도들과 함께 가진 마지막 모임에서 드린 기도에서 그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기도는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주께서 우리 모두가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무거운 희생을 감당하시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성임하시고 사랑하시고, 또 교회를 인도할 열쇠를 맡기셨던 사도들과 헤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분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온전하신 아들이 온전하신 부모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서 구주와 그분의 종들을 따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들이 하나가 되듯이 가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18~21)
이 말씀 가운데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해 주는가를 명백히 하셨습니다. 진리를 믿는 자들은 그분이 인정하신 종에 의해 주어진 의식과 성약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의식과 성약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성품이 변화될 것입니다. 구주의 속죄는 그런 방법으로 우리가 성결케 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가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 지상에서 화평을 얻고 아버지와 그의 아들과 영원히 함께 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사도와 선지자들의 성역은 아담과 이브의 자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르쳤고 우리가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가족 곧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손자녀들과 조상을 하나로 묶고 마침내 아담과 이브의 모든 가족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영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도록 인도해 줌
구주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하여—이는 사도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임—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19) 성신은 거룩하게 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신을 우리의 동반자로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멜기세덱 신권을 회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권의 열쇠는 지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신권의 권세로 성신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성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을 지니고 있으면, 우리는 조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영은 간증을 나누는 자들을 결합시키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진리의 간증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결코 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제3니파이 11:29 참조) 하나님의 영은 투쟁하는 사람들 사이에 결코 차별의 느낌을 갖게 하지 않습니다. (조셉 에프 스미스, 복음 교리, 제5판[1939년], 121쪽 참조) 영은 개인적인 평화와 남과 일치하는 느낌을 갖게 해줍니다. 영은 영혼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단합된 가족, 단합된 교회, 그리고 평화의 세계는 단합된 영혼들에 달려 있습니다.
성찬 기도에서 하는 약속을 지킴
비록 어린이까지도 성신을 동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성찬 축복 기도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성찬식에서 그것을 듣습니다. 이 성스러운 순간에 침례시에 맺은 성약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가 교회의 회원으로 확인 받을 때 받았던 약속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 성찬 기도문은 이러합니다. “또한 저희가 기꺼이 당신 아들의 이름을 받들며, 항상 그를 기억하고 그가 저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키고자 함을 당신에게 증거하게 하시오며, 그리하여 저희가 항상 그의 영과 함께 하도록 하시옵소서.”(교리와 성약 20:77)
우리는 그 성약을 지킴으로써 그분의 영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받들 것을 약속합니다. 그것은 그분과 같이 우리 자신을 돌보아야 함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삶에서 첫번째로 두어야 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이나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도록 가르친 것보다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먼저 사랑하면 우리 안에서 화평이 사라질 것입니다. 가족이나 국가가 세상적인 물질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면 결국 그들은 분열될 것입니다. (Harold B. Lee, Stand Ye in Holy Places[1974], 97쪽 참조) 주께서 우리들에게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서로를 위해 행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받들 때 당연히 뒤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적인 행동은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영적인 수준으로 우리를 들어 올려 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분을 항상 기억할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렇게 약속합니다. 특히 우리가 그분의 용서를 구해야 할 때, 우리는 그분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자주 그분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회개와 용서를 가능케 해준 그분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우리의 변호인으로서 그분을 기억합니다. 용서와 화평의 느낌이 올 때, 우리는 인내와 그분의 끝없는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와 같은 기억은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줍니다.
우리는 또한 가족으로서 함께 기도하고 경전을 읽을 때 그분을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침 식탁에 가족이 둘러 앉아 기도할 때, 어떤 자녀는 다른 자녀를 위해 그 날 있을 시험이나 어떤 일을 성취함에 있어,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축복이 주어질 때 축복 받은 그 자녀는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던, 변호인이신 그분의 사랑과 친절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들이 사랑 가운데 하나로 묶여질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경전을 읽을 때마다 그분을 기억하겠다는 성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경전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 줍니다. 왜냐하면 경전 말씀은 언제나 선지자들로부터 나온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녀들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말씀의 참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기억할 것입니다.
모든 계명을 지킴
셋째로, 성찬을 취할 때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전부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 제이 르우벤 클라크 이세 회장은 연차 대회에서 단합을 호소할 때—그는 여러 차례 단합을 호소했음—우리가 무엇에 순종할 것인지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쓸모 없고 불필요한 계명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경전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계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취할 때,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따르고 지키겠다는 성약을 맺습니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구별이나 차이가 없습니다.”(대회 보고, 1955년 4월호, 10~11쪽) 클라크 회장은 단 하나의 죄가 아니라 모든 죄를 회개할 때, 우리는 모든 계명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같이 보일지라도 복잡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단순히 구주의 권능에 순종하며 그분이 명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순종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모사이야서 3:19 참조) 이것이 바로 우리를 가족으로, 교회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묶어 줄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러한 권능을 그분의 선지자를 통해 겸손한 종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신앙은 우리들로 하여금 가정 복음 교사로 또는 방문 교사로 부름을 받아 주님의 심부름을 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하심에 따라 그분을 대신해서 행합니다. 한 명의 성인 형제와 십대 청소년이 동반자가 되어 가정을 방문합니다. 그들은 하늘의 권능이 그들을 도와 가족이 단합되고, 감정이 대립되는 일이나 거짓말하는 일이나 험담하는 일이나 욕설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주께서 종들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은 또한 우리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우리를 꾸짖을 때, 그들의 결점을 보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적인 결점보다는 그들의 선한 의도를 더 잘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상하기보다 도리어 종들을 부르신 주님께 더욱더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단합에 필수적인 것임
계명 가운데에는 우리가 그것을 어겼을 때 단합을 깨뜨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말한 것에 대해 우리가 보인 반응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악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언제나 서로 상대방의 좋은 면을 보고 그들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대회 보고, 1967년 10월호, 4~11쪽 참조)
동시에 우리는 성스러운 것을 경멸해서 말하는 자들과 맞서야 합니다. 그것은 그러한 죄의 결과는 성령을 거스리게 되어 분쟁과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님께서는 자신이 병원 침상에 누워 계셨을 때 다투지 않고 참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좌절의 순간에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불렀던 한 간호사에게 이렇게 요청하셨습니다.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욕하는 그분은 바로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 때 그 곳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런 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 Edward L. Kimball[1982], 108) 영감에 찬 사랑스런 질책은 단합으로 인도해 줍니다. 성신에 감동되었을 때 질책을 하지 않으면 다툼에 이르게 됩니다.
단합을 하기 원할 경우에 우리는 감정과 관련하여 꼭 지켜야 할 계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화나게 한 자들을 용서하고 악의를 품지 말아야 합니다. 구주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우리는 우리를 화나게 한 자들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분노와 상처의 모든 근원을 알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불완전한 사람들 가운데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4~5)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자신의 결점을 잊어버리고 남의 결점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준엄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12)
깨끗하고 교만을 조심해야 함
성찬 기도문은 매주 우리에게 단합의 은사가 율법에 대한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식을 통해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받들고 그분을 항상 기억하고 그분의 모든 계명에 따르겠다는 성약을 지킬 때, 성령이 우리와 늘 함께 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며 우리를 단합시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에 주어지는 두 가지 경고가 있습니다.
첫째, 성신은 우리가 깨끗하고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때에만 우리와 함께 머뭅니다. 부정한 것을 선택하게 되면 성신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영은 단지 주님을 세상보다 우위에 두는 자들에게만 함께 합니다. “너희여, 깨끗할지어다.”(제3니파이 20:41; 교리와 성약 38:42 참조)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능력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교리와 성약 59:5 참조)고 하신 말씀은 제언이 아니라 계명입니다. 이러한 것은 영의 동반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영의 동반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경고는 교만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영에 의해서 온유하게 된 가족이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단합에는 위대한 권세가 따르게 됩니다. 또한 그 권세와 함께 세상의 인정도 받게 됩니다. 그 인정이 칭찬이나 선망을 불러오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를 교만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 교만이 영을 거스르게 합니다. 불화의 확실한 근원이 되는 이 교만을 막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의 표시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더 큰 봉사를 통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기회를 통해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보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비슷한 점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또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여 서로에게 봉사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서로를 보완해 감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을 배웁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축복하려는 우리의 소망을 아는 자들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한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5:9 참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그분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기를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