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2장: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제2장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평안은 오직 조건 없이 순종할 때, 즉 평강의 왕, 평안을 부여할 권능이 있는 분께 순종할 때에만 올 수 있습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생애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하워드 더블유 헌터 회장의 한 지인은 그를 “위대한 내적 평안에서 오는 비범한 인내심을 지닌” 사람이라고 묘사했다.1 헌터 회장은 내적 평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며 이런 평안은 하나님께 마음을 돌릴 때만, 즉 그분을 신뢰하고 신앙을 행사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려 노력할 때만 받을 수 있음을 가르쳤다. 그런 평안은 헌터 회장이 힘들었던 많은 시기를 헤쳐 나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1975년도 후반, 헌터 회장의 아내 클레어는 의사에게 뇌수술을 권고받았다. 헌터 회장은 그 수술이 클레어에게 과연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줄 것인가를 고민했다. 수술이 아내의 허약한 몸을 더 혹사시키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전에 다녀오고, 가족들과 상의하면서 그 수술이 클레어의 병세를 호전시키기 위한 최선의 희망이라고 이내 느꼈다. 그는 수술 당일에 자신의 기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수술실 입구 문으로 갔고 아내에게 입맞춤을 했다. 아내는 그 문을 지나 안으로 실려갔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상황을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 갑자기 깊은 근심이 평안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나는 올바른 결정을 내렸고 내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을 알았다.”2

1989년에 헌터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 평안을 느낀 또 다른 경험을 했다. 그가 브리검 영 대학교 근동 연구 예루살렘 센터를 헌납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교회가 예루살렘에 근거지를 마련하려는 시도를 여러 그룹이 반대했으며 폭력으로 위협했던 적도 있었다. 헌납식 연사 중에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장로도 있었는데, 나중에 그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제가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방 뒤쪽에서 어떤 웅성거림이 들려왔습니다. 군복 차림의 남자들이 방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헌터 회장님에게 쪽지를 전달했습니다. 저는 몸을 돌려 어떤 지시 사항이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폭파 위협이 있었답니다. 형제님은 두려우십니까?’ 저는 ‘아닙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저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마저 다 전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3 헌납식은 아무 탈 없이 진행되었고, 폭탄 같은 것은 없었다.

이와 같은 여러 상황에서 헌터 회장은 구주께서 주시는 평안에 대한 약속을 신뢰했으며, 자주 이 성구를 인용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베드로와 함께 물 속에 계신 그리스도

우리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하고]”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할 그분에게서 [결코] 눈길을 돌[려서는]” 안 된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가르침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된 평안의 근원이시다.

선지자 이사야는 700년도 더 전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큰 찬사가 표현된 칭호들을 사용했습니다. … 그런 칭호들 가운데서 현재 우리 세상의 관심을 끄는 것 한 가지는 바로 “평강의 왕”(이사야 9:6)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7절) 전쟁으로 지치고 죄에 시달린 세상에 참으로 크나큰 희망이 아닙니까!4

세상이 갈구하는 평화는 적대 행위를 일시적으로 중지한 시기를 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안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만 오고 다른 방법으로는 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사야의 기록에 있는 한 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이사야 26:3). 이사야가 언급한 이런 완벽한 평안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옵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십이사도와 마지막 만찬을 드셨을 때, 그분은 사도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떡을 떼고 잔을 건네셨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그 자리를 떠난 뒤에 그들에게 얼마간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다른 것 중에서도 그분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또 그들 각 사람에게 남기는 선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모아놓은 물품이나 재산, 부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입던 옷가지 외의 다른 소유물은 기록에 나와 있는 것이 없으며, 이 옷가지마저도 다음 날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병사들이 나눠 가졌고 겉옷은 제비 뽑기를 해서 가져갔습니다. 그분의 선물은 이런 단순하지만 심오한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그분은 유대 방식으로 인사와 축복을 남겼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런 인사와 선물이 그들에게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같이 공허한 소망도 아니고, 정중한 의식도 아니었지만, 평강의 장본인이자 평강의 왕으로서 그분은 그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몇 시간 내에 어려움에 빠지게 될 운명이었지만, 그들은 그분의 평안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굳게 남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을 그 저녁 시간에 마치는 기도를 하기 전에 그들에게 주신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5

2

복음 원리에 따라 생활할 때 우리는 평안을 키워 나갈 수 있다.

우주에서 그러한 인도의 손길을 가진 유일한 분, 세상을 향한 확실한 참 빛이자 꺼지지 않는 등대가 되는 유일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빛과 생명이시며 몰몬경의 한 선지자가 묘사한 것처럼 “결코 어두워질 수 없는 무궁한 빛”(모사이야서 16:9)이십니다.

개인으로서나 가족 또는 지역 사회나 국가로서 안전한 평화의 바닷가를 찾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불빛입니다. 그분은 바로 지상에서 성역을 베푸실 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라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

일례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업신여겨 이용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영문 흠정역 마태복음 5:44).

이 하나의 권고가 여러분의 이웃과 가족에게, 또 여러분과 자녀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그리고 위대한 지구촌을 이루고 있는 국가들에서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그 가르침이 중대한 도전을 제시하지만 세상에 끊임없이 다가오는 전쟁과 가난과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되는 비참한 과업보다는 그것이 훨씬 더 받아들이기 쉬운 도전일 것임을 압니다.6

우리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들을 도우려 노력할 때, 우리를 불의하게 이용했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의 생활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서 영을 지니고 서로 단합할 때,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7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이든 먼 곳에 사는 사람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평화를 알게 될 유일한 길을 제시해 줍니다. … 우리에게는 더 화평한 가족과 이웃과 지역 사회를 기초로 형성되는, 더 평화로운 세상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평화를 얻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며 우리의 친구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393쪽] … 우리는 우정의 손을 내밀 필요가 있으며, 더욱더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더디게 노할 필요가 있습니다.8

하나님은 강요와 경직된 대면이 아니라 설득과 인내와 오래 참으심으로 행하십니다. 그분은 부드럽게 권유하시고 감미롭게 이끌어내십니다.9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 또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을 사람들, 그분의 율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평화의 약속같은 것은 없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지도자들의 퇴폐와 타락을 이야기한 뒤에 이런 말로 권고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이사야 57:20~21) …

구주께 무관심하거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을 때, 우리는 보호받지 못하고 내적인 혼란과 불화를 겪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평안과 상반됩니다. 평안은 오직 조건 없이 순종할 때, 즉 평강의 왕, 평안을 부여할 권능이 있는 분께 순종할 때에만 올 수 있습니다.10

신문의 머리글에 자주 드러나는 세상의 어려움은 그리스도 복음의 단순한 원리에 따라 생활할 때 오는 평안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구주의 속죄 희생을 믿는 신앙과 구주께서 주시는 영속적인 삶에 대한 조용한 확신이 있다면, 떠들썩한 소수자들이 우리 평안을 깨뜨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어수선한 세상에서 그런 신앙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임이니라”(누가복음 11:9~10).11

저는 이 세상에서 평안을, 또한 다가올 세상에서 영생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다음 두 가지 영원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1) 첫째, 예수는 그리스도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며, 죄와 무덤에서 인류를 구속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위해 지상으로 오신 분이며, 그분은 살아 계시어서 우리를 아버지의 면전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조셉 스미스는 범법으로 인류가 잃어버렸던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 이 후기에 주님께서 일으키신 선지자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 근본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는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12

여러분이 유혹을 물리치고 … 깨끗하고 도덕적인 생각과 행동, 올바르고 정직한 거래, 학업에서의 성실성과 양심, 금식과 기도, 그리고 예배로 수확의 법칙에 따라 생활하고 매일 노력을 다하겠다고 결심한다면, 자유와 내적 평안, 또 번영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13

이타적인 봉사로 가득한 삶은 또한 이해력을 넘어서는 평안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 이런 평안은 오직 복음 원리에 따라 생활할 때만 찾아올 수 있습니다. 평강의 왕께서 만드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이런 원리들입니다.14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는 수천 가지 죄와 유혹을 통해 … 개인들의 평안을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생활이 나사렛 예수께서 우리 앞에 확립해 주신 완벽한 모범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노력이 좌절되고, 개인의 생활이 평화롭고 평온하며, 가족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염려해 주며, 와드와 스테이크 또 지부와 지방부가 그리스도의 더 큰 몸을 이뤄 모든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고 모든 아픔을 진정시키고,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니파이가 호소했듯이 온 세상이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과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힘써 앞으로 나아[갈]” 때까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니파이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이것이 길이니 … 달리 주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니파이후서 31:20~21)15

그리스도의 발에 기름을 붓는 여인

“이타적인 봉사로 가득한 삶은 또한 이해력을 넘어서는 평안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

구주는 우리가 주변의 불안에 관계없이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실 수 있다.

예수님은 슬픔과 고통과 번민과 운명의 시달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짊어지셨던 무거운 짐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데 선지자 이사야는 그분을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라고 묘사했습니다.(이사야 53:3) 주님의 배는 거의 전 생애 동안 요동쳤으며, 적어도 사람의 눈에는 그 배가 갈보리 해안의 절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는 필멸의 눈으로 생을 바라보라는 권고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어떤 일이 십자가 위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영적인 관점으로 보고 압니다.

아무리 폭풍우가 사납게 휘몰아쳐도 구주의 입술과 마음에는 평강이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우리 가정에, 전 세계에서 각자의 나라들에, 나아가 때때로 교회가 당면하는 시달림 속에서 우리도 그럴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떠한 방해도 없이 인생을 살아가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16

사람이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것에 둘러싸여 생활하면서도 내적인 불화와 불일치 때문에 끊임없는 불안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와는 반대로, 전쟁이 가져온 극심한 파괴와 피 흘림 속에서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차분하게 평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친구나 세상의 방법에서 도움을 찾으려 한다면, 동요와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돌아선다면, 불안한 영혼을 위한 평안을 찾게 될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요한복음 16:33)라고 말씀하시며 이런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이사도와 온 인류에게 이런 선물도 주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요한복음 14:27)

우리가 그분의 커다란 선물과 다음과 같은 다른 권유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갈등의 세상에서 지금이라도 이런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8~29).

이런 평안은 세상적인 소란에서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지식은 고통스러운 마음에 위안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그리고 다가올 영원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줄 것입니다.17

혼란하고 세속적으로 분주히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단순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단순한 진리에 담겨 있는 기본을 공부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은 어렴풋한 추측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은 역동적이고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참되게 받아들이면 의미 있는 종교적 경험을 하게 해 줍니다. 몰몬이라는 종교가 주는 큰 강점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믿음을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소란과 혼란을 평안과 평온함으로 대체합니다.18

4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할 때 우리는 평안을 파괴하는 요소들을 이겨 낼 수 있다.

우리를 검사하고 우리를 시험하며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이겨 내신 그리스도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주 이용하던 여행 길 중 하나였던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데, 밤이 어두워지고 주변 날씨가 거칠어지며 여행길이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파도는 맹렬했고 바람이 세찼습니다. 이 육신을 지닌 연약한 인간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예수님은 홀로 해변에 남아 계셨기 때문에 자연을 진정시키고 그들을 구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늘 그러셨듯이 주님은 항상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사랑하고 돌보셨습니다. 아주 큰 곤경에 빠져 있던 순간에 그들은 어둠 속에서 겉옷을 펄럭이며 그들을 향해 물위를 걸어오는 어떤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물 위를 걸어오는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습니다. 인생의 어둠 속에서 바다가 그렇게 크고 우리 작은 배는 그렇게 작아 보일 때 우리가 자주 경험하듯, 폭풍우와 어둠 속에 있던 그들에게도 궁극적이고 위안을 주는 평안의 음성이 찾아와 이렇게 단순한 선언을 전했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에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대답을 베드로에게 해 주셨습니다. “오라.”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성난 파도 위를 걸어가는 동안에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물방울이 옷에 튀었을지라도 모든 것이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흔들려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성난 파도와 자기 밑에 있는 어두운 소용돌이로 시선을 돌리자, 곧바로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대부분의 우리처럼 그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외쳤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손을 뻗어 물에 빠진 제자를 건져 주시며 부드럽게 나무라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다음에 그들은 안전하게 배로 돌아와 잠잠해진 바람과 파도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곧 그들의 안식처,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도달하기를 바라는, 안전한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 선원들과 제자들은 모두 깊이 경탄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오늘 제가 밝히는 것처럼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Farrar, The Life of Christ, pp. 310–13에서 각색; 마태복음 14:22~33 참조)

저는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지역 사회와 국가로서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불신앙의 세찬 파도를” 이기고 확신에 차 걸으며 “의심의 회오리 바람 가운데서 두려움 없이” 남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할 그분에게서 눈을 돌린다면, 그러기가 쉽고 또 세상은 그렇게 하도록 크게 유혹하기에, 우리가 우리를 돕고 또 구할 수 있는 그분을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주위에 있는 끔찍하고 파괴적인 요소들이 지닌 힘과 맹렬함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기필코 다툼과 슬픔과 절망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밀려와 우리를 익사시키려 위협하고 깊은 물이 흔들리는 우리 신앙의 배를 삼킬 것 같은 때에 우리가 폭풍우와 어둠 가운데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태복음 14:27)는 세상의 구주의 부드러운 음성을 항상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19

학습 및 교수 제언

질문

  • 헌터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평안의 근원이라고 가르친다.(1편 참조) 여러분이 이런 진리를 알게 되는 데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가?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평안을 가져다주는가?(2편 참조)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어떻게 평안을 지니는 데 도움이 되는가? 평안을 지니는 데 구주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3편에 있는 헌터 회장의 가르침을 복습한다. 여러분은 구주께 나아감으로써 여러분의 짐에서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구주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어떻게 경험해 보았는가?

  • 물 위를 걷는 베드로에 대한 헌터 회장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4편 참조) 어려운 시기에 평안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여러분이 어려운 시기에 “담대하라” 또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구주께서는 여러분을 어떻게 도와주셨는가?

관련 성구

시편 46:10; 85:8; 이사야 32:17; 마가복음 4:36~40; 로마서 8:6; 갈라디아서 5:22~23; 빌립보서 4:9; 모사이야서 4:3; 교리와 성약 19:23; 59:23; 88:125

교사를 위한 도움말

반원들에게 본 장에서 토론하고 싶은 편을 하나 선택하라고 하고, 같은 편을 선택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로 편성해 준다. 각 조에게 본 장 끝에 있는 관련 질문을 토론해 보라고 한다.

  1. Eleanor Knowles, Howard W. Hunter(1994), 185.

  2. Knowles, Howard W. Hunter, 266.

  3. Boyd K. Packer, “President Howard W. Hunter—He Endured to the End,” Ensign, Apr. 1995, 29.

  4. “The Gifts of Christmas,” Ensign, Dec. 2002, 16.

  5. Conference Report, Oct. 1966, 15–16.

  6. “평화의 항구에서 비치는 불빛”, 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18쪽.

  7. 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ed. Clyde J. Williams(1997), 40.

  8. “제일 좋은 길”,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61, 63쪽.

  9. “선택의 금실”, 성도의 벗, 1990년 1월호, 22쪽.

  10. Conference Report, Oct. 1966, 16.

  11. Conference Report, Oct. 1969, 113.

  12. 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172–73.

  13. 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73-74.

  14. “The Gifts of Christmas,” 19.

  15. Conference Report, Apr. 1976, 157.

  16. “주여 큰 폭풍우 일고”, 성도의 벗, 1985년 1월호, 36쪽.

  17. Conference Report, Oct. 1966, 16-17.

  18. Conference Report, Oct. 1970, 131-32.

  19. “평화의 항구에서 비치는 불빛”,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