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겨우 여기까지만 오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2020년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연례 훈련 방송
2020년 6월 9일 화요일
오늘 밤 함께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이 안전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우리는 첫번째 시현 20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셉 스미스와, 그가 진리를 알기 위해 행사한 신앙과 소망의 모범에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조셉의 겸손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찬양해 여호와와 대화한 사람”을 부르며 그 가사의 힘을 느꼈습니다.1 저는 다시금 사람과 대화하신 여호와를 찬양한다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조셉이 성스러운 숲에서 경험한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시현을 본 후에, 조셉은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게 잘 되었어요 … 제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2 조셉이 진리를 탐구하면서 추구한 방식은 우리 학생들이 따라야 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그리고 조셉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학생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알고 사랑하시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이 이 마지막 날에 교회의 선두에 서 계심을 스스로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이 시작된 이래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교회 교육의 진로’에서부터 현재의 ‘복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기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받은 영감 어린 인도는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더불어 회복된 복음을 경전에 나와 있는 대로, 그리고 성신의 권능에 의해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초에서 결코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우리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도록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알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우리가 발전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몇 가지 면에서 우리가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경험과 계시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며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연차 대회에서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이 하신 다음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겨우 여기까지만 오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Judith Mahlangu (multistake conference near Johannesburg, South Africa, Nov. 10, 2019), in Sydney Walker, “Elder Holland Visits Southeast Africa during ‘Remarkable Time of Growth,’” Church News, Nov. 27, 2019, thechurchnews.com].3 우리는 산중턱에 있고, 주님은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킴 비 클라크 장로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만 생각하지 말고, 학습자와 학습의 과정 및 결과에 어떻게 초점을 둘지도 고려하라고 하셨습니다. 장로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자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학생들이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키우려면 어떤 경험이 필요할까?” 우리의 경이로운 역사에 최근의 방침을 더하여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좀 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고 학습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은 최근에 있었던 총관리 역원과 함께하는 저녁 모임에서 학습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장로님의 의도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데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장로님은 질문하고, 관찰하고, 귀를 기울이며 우리가 이해했는지 확인하셨습니다. 또한 가르치는 일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그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도록 권유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십시오.”4
저명한 교수이자 랍비인 제이콥 네우세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위대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학생이 배우도록 돕는다.” 분명, 효과적인 가르침과 배움은 공생 관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네우세너 박사의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효과적인 가르침의 범위를 넓혀, 말하는 것보다는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학생들이 진리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성신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학생들이 안심하고 질문하며, 진리를 발견하고, 교리적으로 연결해 보고, 반 친구들의 간증을 듣고, 배우고 있는 진리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평가하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학생들이 복음에 따라 생활하고 신앙으로 행하는 방법을 알며, 실수에서 배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다시 노력하도록 영감을 주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스스로 배우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리 학생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경험을 더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그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 연구팀이 4대륙에서 수천 명의 젊은이와 함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수업을 듣고 있는 젊은이들 뿐 아니라 현재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젊은이들도 만났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요약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들의 대답을 세 가지 범주로 분류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범주에 “개심”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청소년과 청년 성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고 싶고, 또한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회복된 복음에 대한 신앙과 간증을 심화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게서 바라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의 수업이 그런 일이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그 연구에서 드러났습니다. 배울 수 있는 기회에 계속 참석하고 참여하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을 크게 강화하고 신앙을 키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더 많은 젊은이에게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싶은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들이 여러분과 함께 배울 때, 그들의 신앙과 간증이 커집니다.
젊은이들이 깊이 개심하도록 돕기 위해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학생들이 깊이 있게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의 원리에 전념했을 때, 우리는 많은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구할 때 그분께서 기꺼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 하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그 가능성을 생각할 때, 학생들이 하늘 아버지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및 속죄를 이해할 힘과 능력을 키우려면 그들에게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그들이 성신의 영향력을 구하고 인식하며 그에 따라 행하고, 그런 뒤 신앙으로 행하고, 회개하고, 성스러운 성약을 맺고 지키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들이 하는 경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그분처럼 되고자 애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조사에 참여한 이들의 대답을 듣고 우리는 두 번째 범주에 “개인적인 영적 성장과의 관련성”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설문 조사에 응한 이들은 교사가 학생들의 다양한 상황과 배경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학습 경험을 개인의 필요 사항에 맞출 때 수업이 의미가 있음을 느낀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교리와 교회 역사, 그리고 그들에게 중요한 사회 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질문을 할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논쟁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질문은 솔직한 것이며, 그들에게는 안심하고 그 질문을 탐구할 수 있는, 신앙으로 가득 찬 열린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들에게는 신앙뿐 아니라 연민을 가지고 솔직하게 질문에 대답해 줄 교사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또한 배우는 방법과 좀 더 영적으로 자립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개념을 분석하고 이를 영원한 맥락에서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발전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복음의 원리와 교회의 정책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또한 그들은 복음의 원리가 일상의 어려움에 도움이 되도록 그 원리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싶어 합니다.
학생들이 우리에게 자신이 원하고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작년에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이 주신 권고와 일맥상통합니다. 장로님은 우리에게 “학생은 채워져야 할 통이 아닙니다. 학생은 점화되어야 할 불입니다.”라고 상기시켜 주셨습니다.5
교사로서 우리의 역할은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소망을 키우고, 개인적인 계시를 받으며, 또한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스스로 찾은 진리에 따라 생활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구나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그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의미 있어 보이는 것이 인생의 다른 단계에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그만큼 의미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고, 안목을 갖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청소년과 청년 성인들, 특히 수업에 참석하고 있지 않은 이들이, 우리의 수업이 자신들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기보다 준비한 내용을 다루는 데 더 관심을 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수업이 너무 자주 이상적인 것에 초점을 두며 자신들의 삶의 현실을 충분히 인지하거나 자신들의 질문을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종교 교육원 교사가 해의 왕국의 결혼에 대한 교리를 이야기하며 그 주제가 청년 독신 성인에게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은 이미 성전 결혼의 중요성을 믿고 있지만, 일부 학생은 이 교리를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결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결혼 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또 교실에는 자신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만큼 재정적 형편이 되는지 궁금해 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자신이 그런 기회를 갖게 될지 의문을 품습니다. 또 다른 학생들은 동성에게 마음이 끌려서 힘들어하고 교회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은 계획대로 진행되지만 의미 있는 학생 참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이 주제를 다룸으로써 자신이 학생들과 의미 있는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실상은, 교리를 가르치기는 했으나 학생들의 불확실한 상황을 인지하거나, 그들의 필요 사항을 다루거나, 또는 그들의 현실적인 삶과 연관짓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 교리의 중요성을 자신의 특정 상황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줄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학생들의 영적인 발전에 대해 사려 깊은 교사는 기꺼이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합니다. 그러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어떻게 그들에게 축복이 되고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발전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도록 도와줍니다. 그런 교사는 학생들이 경전과 후기 선지자들의 가르침에서 영혼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키워나가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학생들이 그들의 삶에서 복음의 중요성과 의미를 인식하도록 돕기 위해, 학생들이 진지한 질문을 하고 그들의 통찰과 관점을 나누도록 어떻게 격려할 수 있을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숙고해 보시겠습니까? 학생들은 여러분이 그들을 알고 이해하며, 그들의 필요 사항에 맞게 기꺼이 수업을 조정해 나갈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매일 경전을 공부하고 경전과 현대 선지자들의 가르침에서 인도를 얻도록 영감을 주는 경험을 제공해 주십시오. 그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영적인 지식을 얻는 기술과 방법을 익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 학생들의 대답, 특히 수업에 참석하고 있지 않는 학생들의 대답을 들음으로써 우리가 알게 된 세 번째 범주는, 학생들은 교사가 소속감을 형성해 주기를 원하고 또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소속감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와, 교사와, 그리고 다른 반원들과의 관계 및 교분을 통해 형성됩니다. 모두가 자신이 환영받고, 지지받으며, 필요한 존재이고,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환경 속에서 소속감이 생깁니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이 의미 있는 대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낄 때 소속감이 커집니다.
저는 다시 한번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개인을 보라” 훈련에 보여 주신 여러분의 반응에 그리고 모든 학생이 사랑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끼도록 도우려는 여러분의 노력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현재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이들 다수가 여전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 수업은 아무 문제도 의문도 없는 그들이 보기에 완벽한 후기 성도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이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진지한 질문을 하거나 진심에서 나온 견해를 이야기하면 자신이 별로 충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받거나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또한 수업이 내적인 신앙 또는 외적인 모습에 상관없이 모두가 환영받는 곳이라면 참석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린포드 형제님은 한 젊은 여성이 우리 건물 중 하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수업에 등록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교회의 회원이고 종교 교육원에 대해 알고 있지만, 수업에 참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형제님이 저와 제 과거를 아시면, 제가 그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저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다행히도 이 여성은 안으로 들어오라는 린포드 형제님의 권유를 받아들였으며, 그녀는 그곳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수업에 등록하여 곧바로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얼마나 많은 수백, 심지어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우리 수업에서 제공하는 것을 정확히 필요로 하면서도 그곳에 어울리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며 우리 건물 밖에 서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제공해야 하는 것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그들이 필요합니다. 소속감을 형성하는 교사는 각 학생에게 수업을 더 좋은 학습 경험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합니다.
저는 안드레 형제님의 수업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을 때 그런 훌륭한 예를 하나 보았습니다. 마이클은 건강상의 이유로 선교 사업에서 조기 귀환했습니다. 귀환 준비를 하던 중에, 그는 차에 치여 뼈가 여러 개 부러졌고 장기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퇴원할 때 즈음, 그는 선교 사업을 완수하겠다는 꿈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극한 스포츠에 빠져 들었고 점점 교회에서 멀어졌습니다. 어느 날 혼자였던 그는 안전망도 없이 홀로 긴 고공 외줄 타기를 하여 협곡을 건너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협곡을 건너자 그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축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떨어졌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시점에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었다면 그들이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구주와 그분이 자신을 위해 하신 모든 일을 생각하게 되었고, 영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절벽을 올라가 교회로 돌아오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구주의 자비와 사랑, 권능을 놀라운 방법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해변에 있던 마이클은 선교 사업을 나가기 전에 종교 교육원에 다녔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곧바로 해변을 떠나 종교 교육원 건물로 걸어 들어갔는데, 몇 분 후면 수업이 시작될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안드레 형제님은 제가 방금 여러분에게 해 드린 이야기 대부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마이클이 그곳에 있어야 하며 그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나눌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드레 형제님은 마이클에게 수업에 참석하도록 권유했지만, 마이클은 사람들이 아마도 자신을 환영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수영복과 팔이 드러난 탱크톱을 입고 있었으므로, 양쪽 손목에서 어깨까지 뒤덮인 문신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수업에 오기 전에 옷을 입고 긴팔 셔츠를 입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안드레 형제님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클은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아무도 마이클 옆에 앉지 않았습니다. 영적 순서가 끝난 후, 안드레 형제님은 마이클을 교실 앞으로 나오게 해서 그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이 마이클을 사랑하며, 마이클에게는 나눌 것이 많으며, 그는 훌륭한 심성을 지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마이클에게 간증을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 마이클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그분의 친절하심과 동정심 그리고 기꺼이 용서해 주시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우리는 모두 마이클의 간증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안드레 형제님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무언가를 마이클에게서 보았습니다. 교사로서 그는 다양한 배경과 상황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무언가 나눌 것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이 서로에게서, 그리고 구주의 화평, 치유, 은혜를 얻고자 하는 그들의 공통된 소망에서 힘을 끌어낼 수 있게 하는 경험을 만들어 줍니다. 수업 후에 저는 또 다른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는데, 몇몇 학생이 마이클을 둘러싸고 그를 환영하며 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해 주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소속감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의미 있는 대의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인도주의적 대의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을 존엄성과 평등 및 기회를 누리는 삶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 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그러한 대의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대의는 그리스도의 대의와 휘장 양편에서 이스라엘을 모으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에서 하는 경험을 그러한 대의와 연관짓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를 더욱 초대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가르침과 상호 작용, 그리고 여러분의 교실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때때로, 여러분은 푸른색 셔츠를 입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학생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그들의 신성한 정체성과 잠재력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구해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학생들을 염려하고 있으며 그들의 개인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도와주십시오. 학생들이 반원들과 관계를 맺고 안전한 곳에 있으며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성약의 길을 따라 발전하도록 도움으로써 그리스도의 대의에 참여하도록 격려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러한 경험을 제공해 줄 때, 학생들은 소속감을 가질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모든 일을 날마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는 준비, 우리의 가르침, 그리고 학생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미나리 또는 종교 교육원에서 가르치든, 대면으로 또는 화상으로 가르치든, 새벽 또는 밤에 가르치든 관계없이 이러한 원리를 포함시키는 것은 학생들에게 축복이 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주 많은 훌륭한 일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겨우 여기까지만 오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계시를 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자녀를 축복하는 방법을 알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개별적 및 전체적으로 그분은 우리가 학생들에게 깊이 개심하고, 개인적인 영적 성장과 관련성이 있으며, 소속감을 형성하는 경험을 제공하도록 도와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도록 도울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우리가 신앙으로 계속 그분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