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충실함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곧은 길을 따르겠다고 지금 이곳에서 결심합시다.
저는 오래 전 임무 지명을 받고 아름다운 섬나라 통가에 갔을 때, 교사들이 신앙이라는 공통의 끈으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마음에 대한 훈련과 인생에 대한 준비를 시켜주는 교회 학교인 리아호나 고등학교를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한 교실에 들어서면서 저는 학생들이 원주민 교사에게 열중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사와 학생들의 교과서는 책상 위에 덮인 채 놓여 있었습니다. 교사는 둥근 돌과 커다란 조가비로 만든 이상한 모양의 낚시 미끼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카페케라는 문어잡이용 덫이었습니다. 통가에서 문어고기는 별미입니다.
교사는 통가의 어부들이 한 손으로 카누를 저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마카페케를 카누 옆으로 드리우고 암초 위로 미끄러지듯 지나간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어는 그것이 바라던 먹이라 착각하고 바위로 된 집에서 튀어나와 미끼를 붙잡습니다. 문어가 어찌나 꽉 붙잡는지, 또한 귀중한 먹이를 놓지 않으려는 본능이 어찌나 확고한지, 어부들은 문어를 카누 안으로 훌쩍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교사가 그렇게 이야기한 후 악마, 즉 사탄이 소위 마카페케라는 것을 만들어 그것으로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그들의 운명을 손에 넣는다는 사실을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듣는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악마가 우리 앞에 늘어놓은 마카페케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는 그것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그런 다음 덫으로 잡으려 합니다. 일단 붙잡히면 그 마카페케로부터 벗어나기란 너무 힘들고, 때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안전을 위해 우리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런 다음 그것들을 피하려는 결심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부도덕이라는 마카페케는 우리 앞에 항상 존재합니다. 우리 주위의 거의 모든 곳에서 한때 부도덕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 지금은 괜찮다고 믿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한 성구를 떠올려 봅니다.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며, 어둠으로 빛을 대신하고, 빛으로 어둠을 … 대신하는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1 그런 것이 부도덕이라는 마카페케입니다. 몰몬경은 순결과 미덕이 무엇보다도 소중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유혹이 닥칠 때 사도 바울의 현명한 권고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2
다음으로 악마는 또한 여러분 앞에 외설물이라는 마카페케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외설물을 보는 것이 정말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고 믿게 하려고 합니다. 알렉산더 포프의 대표작, “인간론”에 이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부 출판 및 인쇄업자들은 매일 수백만 개의 외설물을 인쇄하는 데 그들의 인쇄기를 악용합니다. 분명히 보고 또다시 보게 될 외설물을 제작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외설물에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인터넷으로, 누구라도 컴퓨터를 켜고 손가락 끝으로 클릭하여 외설물이 나오는 수많은 사이트를 즉시 접할 수 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중 일부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두렵습니다. 이것은 악입니다. 그것은 저속하고 더럽습니다. 이것은 유혹적이며 습관을 형성하여, [여러분을] 영락없이 파멸로 잡아 끌어 내립니다. 이것은 이것을 개발한 사람들을 부자가 되게 하고 그 희생자들은 빈곤으로 이끄는 더럽고 추한 것입니다.”4 외설물을 조장하는 영화 제작자, 텔레비전 편성자, 또는 연예인들 또한 오염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자제력은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소위 현실주의를 추구한 결과 우리는 오늘날 이런 오염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외설물과 유사한 것은 무엇이든 피하십시오. 그것은 정신을 무디게 하고 양심을 갉아먹을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교화를 이루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요, 어둠이라.”5 외설물이 그런 것입니다.
다음으로 술을 포함하여 약물이라는 마카페케가 있습니다. 일단 잡히게 되면 이 마카페케는 버리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약물과 술은 사고를 흐리게 하고, 억제력을 없애고, 가족을 해체시키고, 꿈을 깨뜨리고, 삶을 단축시킵니다. 그것들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고 또 공격 당하기 쉬운 청소년들이 다니는 길에 의도적으로 놓여집니다. 우리 각자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육신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살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육신을 일부러 혹사시키거나 손상시키고서도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6 부디 우리 육신, 우리 성전을 적절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고, 또한 신체적, 정신적, 영적 안녕을 파괴시키는 해로운 물질로부터 자유롭기를 빕니다.
오늘 제가 언급하고자 하는 마지막 마카페케는 우리의 자존심을 뭉개고 인간 관계를 손상시키며 우리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도한 부채라는 마카페케입니다. 탁월함과 명성을 부여해 주는 것들을 원하는 것은 인간적인 경향입니다. 우리는 빌리는 것이 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용 카드를 사용하거나 대출을 받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거의 다 살 수 있습니다. 주택 담보 대출이 매우 인기가 있는 데, 이를 통해 거의 집 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은 주택 담보 대출이 또 다른 장기 주택 금융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지속적으로 수입 범위를 넘어 생활한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어제의 사치품이 오늘의 필수품이 되었다는 사고방식을 피하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필수품으로 만들지 않는 한 필수품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 부채를 진 후에야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아프거나 무력하게 되고, 회사가 망하거나 구조 조정으로 실직할 수도 있으며, 자연 재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큰 금액의 부채에 대한 상환이 이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채가 우리 머리 위에서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위협하는 다모클레스의 검이 됩니다.
수입 범위 내에서 생활할 것을 여러분께 당부드립니다. 자신이 버는 것 이상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지불 능력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수입 범위 내에서 생활한다면 불필요한 부채를 갚을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할 때보다 더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드립니다. 교리와 성약에는 “네가 … 계약한 빚을 갚으라. 속박에서 벗어나라.”고 적혀 있습니다.7
물론 우리를 의의 길에서 이끌어내기 위해 악마가 우리 앞에 늘어놓은 수많은 다른 마카페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며, 또한 생각하고 추론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유혹에라도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우리가 선택할 길과 여행해 나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해의 왕국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그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진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을 따라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회로와 함정과 올가미를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영리하게 위장을 한 그 마카페케들은 우리가 그것을 움켜쥐고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을 잃게 하려고 유혹하면서 교묘하게 놓여져 있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잠시 멈추어 기도하십시오. “와서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드러운 권유를 우리 영혼의 깊숙한 곳에 전하는 작고 고요한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8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파멸과 죽음을 피하고 행복과 영원한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며 악마의 꾀임에 귀 기울이다가 결국 속박되어 모든 것을 잃을 때까지 그런 마카페케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권력을 가졌던 한 성직자, 울지 추기경을 떠올려 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려한 펜은 울지 추기경이 올라간 장엄한 지위와 권력의 정점을 묘사했습니다. 같은 펜으로 헛된 야망에 의해, 편의에 의해, 탁월함과 명성에 대한 함성에 의해 원리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적었습니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을 얻은 후 다시 잃게 된 사람의 고통에 찬 탄식, 비극적인 몰락이 왔습니다.
충실한 부하인 크롬웰에게 울지 추기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울지 추기경을 안전으로 이끌 수도 있었던 그 영감 받은 말은 권력과 탁월함에 대한 추구, 부와 직책에 대한 추구에 의해 무의미해졌습니다.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과 그 뒤에 올 더 많은 사람들처럼, 울지 추기경은 무너졌습니다.
그보다 앞선 시대에, 사악한 왕에 의해 하나님의 종이 시험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늘로부터 영감을 받아 느부갓네살 왕에게 벽에 쓰인 글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제의된 보상, 즉 왕의 옷과 금 목걸이에 대해 다니엘은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10
후대 왕인 다리오 또한 다니엘을 존귀하게 여겨, 그를 가장 높은 직책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군중들의 시기, 왕자들의 질시, 야망에 찬 사람들의 음모가 뒤따랐습니다.
계략과 아첨을 통해 다리오 왕은 왕을 제외한 어느 신이나 사람에게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이라는 포고문에 서명을 했습니다. 기도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에서 다니엘은 지상의 왕에게서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왕, 곧 그의 하나님에게서 인도를 구했습니다. 일상적인 기도에 임했던 다니엘은 왕 앞에 끌려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형벌이 선고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의 성경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 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 다니엘이 왕에게 …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 왕이 심히 기뻐서 …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11
정말 긴박한 시기에, 참되고 충실하게 남겠다는 다니엘의 각오가 신성한 보호와 안전한 성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역사의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표시합니다. 새로운 배역이 인생의 무대를 차지합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들이 불길하게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현대적인 생활의 어려움에 둘러싸인 우리가 현명하고 적절한 진로를 정하고 따를 수 있도록 우리는 그런 확실한 방향 감각을 위해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진지한 간청을 거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구스타프 워커와 마가렛 워커의 이름이 마음 속에 선뜻 떠오릅니다.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1959년에 캐나다 선교부를 감리할 때 워커 부부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들은 고국인 독일에서 캐나다 온타리오 주 킹스턴으로 이민왔습니다.
워커 형제는 이발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그의 수입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와 워커 자매는 항상 십 분의 일 이상을 십일조로 냈습니다. 지부 회장으로서 워커 형제는 선교사기금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그는 한때 여러 달 동안 유일한 헌금자였습니다. 그 도시에 선교사들이 있었을 때 워커 부부는 그들을 먹이고 보살폈으며, 선교사들은 그 부부의 일과 복지를 위해 무언가 실제적인 기여를 하지 않고 그 집을 떠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구스타프 워커와 마가렛 워커의 집은 천국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녀를 축복 받지는 못했지만, 많은 교회 방문자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했습니다. 학식있고 세련된 남성과 여성들이 겸손하고 학식없는 이 하나님의 종들을 만나 한 시간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워커 부부의 외모는 평범했고 그들의 영어는 불완전하여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웠으며 집은 수수했습니다. 자동차나 텔레비전도 없었고,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주목하는 그 어떤 일도 그들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실한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영을 느끼기 위해 그들의 집을 찾아 갔습니다.
1982년 3월에 워커 형제와 자매는 워싱턴 D.C. 성전의 전임 의식 봉사자로 봉사하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1983년 6월 29일, 워커 형제와 자매가 그 부름에서 여전히 봉사하고 있을 때, 워커 형제는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평화롭게 이 필멸의 세상에서 영원한 보상을 받기 위해 떠났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입니다.1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영생, 즉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에서 생활하는 은사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하나님께 인도하는 곧은 길을 따르겠다고 지금 이곳에서 결심합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바꾸거나 고쳐야 할 일들이 있다면, 지금 그렇게 할 것을 여러분께 권고드립니다.
우리가 친숙한 다음 찬송가의 가사처럼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각자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간구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