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정에서 기쁨을 찾음
인생을 즐기고, 이 여정에서 기쁨을 찾으며, 친구와 가족과 함께 우리의 사랑을 나눕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 앞에 겸손하게 서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던 것들과, 그리고 여러분과 나누어야겠다는 느낌을 받은 것들에 대해 말씀드릴 때에 저를 위해 신앙으로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먼저 우리가 사는 이 지상에서의 가장 불가피한 국면 중 하나를 언급하면서 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그것은 변화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모두에게 익숙한 격언과 같은 다음의 말을 들어 왔습니다. “변화만큼 변치 않는 것도 없다.”
전 생애에 걸쳐 우리는 변화를 겪고, 또 그에 대응해야 합니다. 어떤 변화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변화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돌연한 죽음, 예기치 않았던 질병, 소중한 재산의 손실과 같은 갑작스런 변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화들은 부지불식 중에 서서히 일어납니다.
이 대회는 제가 십이사도 정원회로 부름 받은 이래 45년을 맞는 대회입니다. 당시 십이사도의 후임 사도로서 저는 십이사도와 제일회장단에서 저의 선임자이셨던 특별한 열네 분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분들은 한 분 한 분 본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8개월 전에 힝클리 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저는 제가 선임 사도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45년의 기간에 걸쳐 일어난 그 변화들은 이제 기념비적인 것들로 보입니다.
다음 주에 몬슨 자매와 저는 결혼 6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시작하던 때를 되돌아보며 저는 그 이후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해 왔는가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함께 여정을 시작했을 때 우리 곁에 서 계셨던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들은 돌아가셨습니다.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너무나 완전히 채워주었던 우리의 세 자녀는 성장하여 자신들의 가정을 가졌습니다. 대부분의 우리 손자 손녀들도 성장하여, 이제 우리는 4대 증손을 두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매분, 매초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왔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의 삶은 비슷한 변경과 변화를 겪습니다. 제 삶과 여러분의 삶에서의 변화 간의 차이는 세부사항의 차이일 뿐입니다. 시간은 결코 가만히 서 있지 않습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전진해야 하며, 그렇게 전진할 때 변화가 옵니다.
지금 이곳에서의 필멸의 삶은 우리가 가지는 단 한 번뿐인 유일한 기회입니다. 오래 살수록 우리는 이 삶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크게 실감합니다. 기회들은 왔다가 또 갑니다. 저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의 짧은 여정 동안 배워야 하는 가장 큰 교훈 중에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여러분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의 미래를 계획하느라 가장 중요한 것들이 여러분을 지나쳐가게 하지 않기를 간청드립니다.
저는 제 아내 프란시스가 “쇼 중독자”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많은 뮤지컬들을 철저히 즐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중 하나는 미국인 작곡가 메러디스 윌슨이 쓴 “뮤직맨(The Music Man)”이라는 작품입니다. 그 쇼의 주요 인물들 중 하나인 해럴드 힐 교수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경고의 음성을 들려주는데,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과거가 공허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요.”1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기억할 내일은 없습니다.
저는 이전에 다음과 같은 철학의 예를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반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오래 전, 아서 고든은 한 국내 잡지에서 이런 기사를 썼는데 그것을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열세 살, 동생이 열 살이었을 때, 하루는 아버지께서 서커스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점심 때 한 전화가 걸려 왔다. 시내에 아버지가 해야 할 급한 업무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실망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오늘은 안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기다리셔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가 웃으시며 말했다. ‘서커스는 다음에 또 올 텐데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알아요, 하지만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그렇지 않아요.’”2
여러분에게 성장하여 가정을 떠난 자녀가 있다면, 십중팔구 여러분은 종종 인생의 그 시기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다는 인식과 함께 상실의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물론,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기보다는 대부분의 오늘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미래에 돌아볼 즐거운 추억들을 가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자녀를 키우고 있는 과정에 있다면, 새로 깨끗이 닦은 거의 모든 것들의 표면에 찍힌 그 작은 지문들, 집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장난감들, 빨아야 할 빨래 더미들은 너무나도 빨리 사라질 것이며, 놀랍게도 여러분은 그러한 것들을 몹시도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스트레스는 우리의 환경과는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스트레스를 다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일에 방해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에는 거의 언제나 우리 주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런 생각만을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간은 사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3라고 썼습니다. 우리는 친절한 말을 하거나 애정을 보인 것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러한 것들을 생략한다면 후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홀히 해 왔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여러분의 자녀를 안아 주고, 여러분의 부모를 안아 드리십시오. “사랑해요”라는 말을 더 많이 하고, 항상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사랑해야 할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보다 더 중요합니다. 친구들은 이사를 가고, 자녀들은 성장하며, 사랑하는 이들은 세상을 떠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서 떠나가고 우리에게는 “만일 … 했더라면”, “단지 그랬더라면”의 감정만 남을 때까지 그들을 당연하게 여기기가 쉽습니다. 작가 해리엇 비쳐 스토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덤에서 흘리는 가장 비통한 눈물은 하지 못한 말과 하지 못한 행동 때문이다.”4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 동안에 교회 회원인 공군 제이 헤스는 북 베트남 상공에서 피격을 받았습니다. 2년 동안 그의 가족은 그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노이에서 그를 체포한 사람이 마침내 그에게 집으로 편지를 보내도록 허락했으나 메시지는 25개 이내의 영문 단어로 제한했습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상황, 즉 2년 동안 가족을 보지 못했고 그들을 다시 보게 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면 여러분과 저는 가족들에게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가족들이 자신임을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또 그들에게 귀중한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헤스 형제는 이렇게 썼습니다. “다음 사항은 중요함: 성전 결혼, 선교 사업, 대학교. 전진해 나아가고, 목표를 세우고, 역사를 기록하고, 일년에 두 번은 가족 사진을 찍을 것.”5
인생을 즐기고, 이 여정에서 기쁨을 찾으며, 친구와 가족과 함께 우리의 사랑을 나눕시다. 어느 날,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신약전서의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중 몇몇은 소오튼 와일드의 고전 드라마인 “우리 읍네”를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 그로버 코너 읍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극중에 에밀리 웨브는 분만 중에 사망하고, 우리는 네 살 난 아들과 함께 남겨진 그녀의 젊은 남편 조지의 쓸쓸한 슬픔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에밀리는 평안히 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삶의 기쁨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지상으로 되돌아오는 특권을 허락 받고 자신의 스무 번째 생일을 다시 체험합니다. 처음에는 다시 한 번 젊음을 누리는 것에 신이 났으나 흥분은 금세 달아납니다. 생일의 기쁨은 없고, 이제 에밀리는 미래의 창고에 무엇이 있는지를 압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삶의 의미와 경이를 이해하지 못했는가를 깨닫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입니다. 안식처로 돌아가기 전에 에밀리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인간들은 살아 있는 동안, 매 순간 인생을 깨닫기나 하는가?”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의 축복에 대한 감사를 가져옵니다.
한 저명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풍요와 부족은 평행선의 현실로서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가 그 둘 중 어느 쪽으로 향할 것인가는 항상 우리의 의식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 … 우리가 우리 삶에서 가지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현재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랑, 건강, 가족, 친구, 일, 자연의 기쁨과 개인적인 추구라는 풍요에 대해 감사하는 쪽을 선택할 때, 불모지의 환영은 사라지고 우리는 지상의 천국을 경험한다.”6
교리와 성약 88편 33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무릇 어떤 사람에게 선물이 주어졌으나 그가 그 선물을 받지 아니하면, 그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보라,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선물을 주는 자를 기뻐하지도 아니하느니라.”
고대 로마의 철학자 호라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충고했습니다. “신께서 그대에게 축복해 준 시간이 얼마이든 그것을 감사하게 받고, 기쁨을 매년 미루지 말지어다. 그렇게 한다면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그대는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으리.”
여러 해 전에, 저는 보르그힐드 달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890년 미네소타에서 노르웨이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심각한 시력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녀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생활에 참여하고 싶은 큰 소망을 가졌으며, 철저한 결심을 통해 자신이 맡은 거의 모든 것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장애가 매우 크다고 생각했던 교사들의 충고에 맞서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에 그녀는 콜롬비아 대학교와 오슬로 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미네소타 서부와 노스다코타에 있는 여덟 개 학교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저술한 17권의 책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내가 볼 수 있는 눈은 하나뿐이었고 그나마 모든 것을 보아야 했던 그 왼쪽 눈도 짙은 흉터에 덮여 있어서 조금밖에 뜨이지 않았다. 나는 얼굴 가까이로 책을 들어올려 왼쪽 눈을 최대한 긴장시켜야만 볼 수 있었다.”7
기적적으로, 그녀가 50세가 넘은 1943년에 혁신적인 방법이 개발되어 오랫동안 갖지 못했던 시력의 상당 부분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녀 앞에 흥미진진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그녀는 우리 대다수가 당연하게 여기는 작은 것들, 이를테면 날고 있는 새를 보는 것, 설거지 중에 거품에 반사된 빛을 주목하는 것, 또는 매일 밤 달의 위상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큰 기쁨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책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8
보르그힐드 달은 시력을 회복하기 전이나 후에나 자신이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가 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82년에 그녀의 마지막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제목은 행복한 나의 인생(Happy All My Life)입니다. 그녀는 감사하는 태도를 지녔기에 자신이 받은 축복들에 감사했고 여러 도전들에도 불구하고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신약전서의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 하나님의 뜻이니라”
저와 함께 열 명의 나병환자 이야기를 되새겨봅시다.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9
주님께서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신 계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사에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지 아니하 … 는 자들 외에는 사람이 어떠한 일로도 하나님께 죄를 범하거나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진노가 불붙지 아니하느니라.”10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는 자들 중에 있기를 기원합니다. 배은망덕이 중죄에 속한다면, 감사는 가장 고결한 미덕에 속합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에 감사를 지니고 우리의 매일을 최대한 가장 중요한 것들로 채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말과 행위로 표현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저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주님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를 되새겨보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복음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 즉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가? 내가 죽으면 나의 영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줍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봉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사랑의 유산입니다. 그분은 병든 자를 고치셨고, 억압된 자들을 일으켜 세우셨으며,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홀로 서셨던 때가 왔습니다. 일부 사도들은 의심했고, 한 명은 배반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성난 군중은 그분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아직도 골고다 언덕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그분의 자비로운 말씀이 울려퍼집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11
그분은 일찍이, 아마 자신의 지상에서의 사명이 절정에 달했음을 인식하시고 다음과 같이 슬퍼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12“여관에 있을 곳이 없[다]”13는 것은 유일한 거절의 표현이 아니었으며, 단지 처음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러분과 저에게 그분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14
질고를 아는 이 슬픈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이 만군의 주시요, 영광의 왕은 누구입니까?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구원의 근원이십니다. 그분은 “나를 따르라”15고 손짓해 부르시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16고 가르치십니다. 또 “나의 계명을 지키라”17고 간청하십니다.
그분을 따릅시다. 그분의 모범을 따릅시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분께 거룩한 감사의 선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저의 진심을 다해 우리가 삶의 변화에 순응하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으며, 항상 감사를 표현하고, 그리하여 이 여정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