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성찬식과 성찬
2008년 10월


16:21

성찬식과 성찬

성찬의 의식을 통해 성찬식은 교회에서 가장 성스럽고 중요한 모임이 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예언한 고통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 참조) 협착하고 좁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도처에서 유혹적인 우회로를 봅니다. 우리는 마음이 산란해지고, 퇴보하며, 의기소침해지거나 낙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인도해 주고 그 길을 계속 가도록 지켜주는 주님의 영을 어떻게 지닐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현대의 계시를 통해 다음의 계명에서 그 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더욱 온전히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도록 나의 거룩한 날에 기도의 집에 가서 네 성찬을 바칠지어다.

“이는 진실로 이 날은 네 일을 쉬고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네 헌신을 바치도록 너희에게 정해진 날임이니라.”(교리와 성약 59:9~10)

이것은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우리는 매주 합당하게 성찬식에 참석함으로써 “항상 [주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도록”(교리와 성약 20:77)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바로 그 영이 우리 간증의 토대입니다. 그 영은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하고,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며, 우리를 진리로 인도합니다. 그 영은 인생 행로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나침반입니다. 윌포드 우드럽 회장님은 이 성신의 은사가 “사람에게 부여될 수 있는 가장 큰 은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Deseret Weekly, 1889년 4월 6일, 451쪽).

I.

성찬의 의식을 통해 성찬식은 교회에서 가장 성스럽고 중요한 모임이 됩니다. 이 모임은 모든 가족이 함께 참석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일 모임입니다. 성찬뿐 아니라 이 모임의 모든 순서는 항상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가르침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도록 계획되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성찬식에 대해 생각하면 유타 주의 작은 마을에서 제가 집사에 성임되어 성찬 전달에 참여했던 때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 시절과 비교할 때, 오늘날 제가 여러 다른 와드에서 참석하는 성찬식은 크게 발전했습니다. 대체로, 회원들이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찬을 축복하고 전달하며 취합니다. 필요한 행사를 포함하여 모임의 사회는 간결하고 품위 있으며, 말씀은 내용과 전달 면에서 영적입니다. 음악은 적절하며, 기도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표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어린 시절의 경험 이래로 크게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종종 예외가 있습니다. 저는 일부 자라나는 세대들과 심지어 일부 성인들도 아직 이 모임의 중요성과 이 모임에서 유지해야 하는 개인적인 경건과 예배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이제 이 중요한 원리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 분들에게, 또한 주님의 인도하는 영이 그들과 항상 함께 하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된 영적 축복을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자리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II.

저는 먼저 교회 회원들이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5년 전에 전세계 지도자 훈련 모임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장로님은 교회의 신권 지도자들에게 성찬식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매우 개인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속죄를 기념합니다. 우리는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성찬식에 옵니다. 그것은 안식일 준수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넬슨 장로님은 말씀하셨습니다.(“성찬식 예배”, 리아호나, 2004년 8월호, 12쪽)

우리는 모임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자리에 앉습니다. “그 정숙한 짧은 시간 동안, 전주 음악이 나직하게 울립니다. 이 시간은 대화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지도자들과 회원들이 성찬을 위해 영적으로 준비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명상하는 시간입니다.(리아호나, 2004년 8월호, 13쪽)

구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니파이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그들에게 피를 흘리는 것으로 바치는 희생을 멈추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대신 “[그분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내게 희생으로 드[리라]”(제3니파이 9:20)고 명하셨습니다. 그 계명은 우리에게 매주 성찬을 취하라고 명하는 현대의 계시를 통해 다시 주어졌으며,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알려줍니다. 넬슨 장로님이 가르치셨듯이, “교회의 모든 회원들은 성찬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인 풍성함에 대해 각자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리아호나, 2004년 8월호, 14쪽)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님은 자신의 저서 구원의 교리에서 세상의 구속을 위한 구주의 죽음과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가 성찬을 취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의식이 주어진 이유는 주님을 섬기고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을 항상 기억하겠다는 우리의 성약을 새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스미스 회장님은 또한 “우리가 항상 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주님의 영을 지닐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교리, 브루스 알 맥콩키 편, 3권[1954~1956년], 2:341)

III.

어떤 옷차림을 하느냐는 우리가 참여할 활동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준비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우리가 수영이나 하이킹 또는 바닷가에 놀러 간다면, 우리의 복장과 양말 및 신발은 이러한 활동들을 나타낼 것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해야 할 때 우리의 복장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전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옷차림은 우리가 참여하는 의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존중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성찬식 동안-특히 성찬이 축복되고 전달되는 동안-우리는 예배에 집중해야 하고, 그 외의 다른 모든 행동, 특히 다른 사람의 예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심지어 조용히 조는 것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성찬 모임은 책이나 잡지를 읽는 시간이 아닙니다. 청소년 여러분, 성찬식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휴대폰 통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성찬을 취할 때 우리는 항상 구주를 기억하겠다는 성스러운 성약을 맺습니다. 성약을 맺는 바로 그 모임에서 명백히 그 성약을 어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성찬식의 음악은 우리 예배에서 지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경전은 의인의 노래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가르칩니다.(교리와 성약 25:12 참조) 제일회장단은 “찬송을 부르는 것이 때로는 가장 훌륭한 설교가 되기도 [한다]”고 선언했습니다.(찬송가, ix쪽) 모든 참석자가 함께 찬양드리는 것은 - 특히 우리가 성찬을 취할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찬송을 부르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모든 성찬식 음악은 주의 깊은 계획을 요하며, 이 음악은 예배를 위한 것이지 발표를 위한 것이 아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성찬식은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신앙을 행사하며, 구속주의 사명에 대해 숙고하고, 복음의 구원 교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지 다른 목적을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오락, 웃음, 경박한 생각은 모두 후기 성도의 성찬식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영과 온유한 마음으로,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으로 모여야 합니다.”(구원의 교리, 2:342)

이렇게 할 때, 즉 우리가 성찬 의식과 이 모임의 예배에 항상 있어야 하는 엄숙함에 동참할 때, 우리는 영의 동반과 계시를 받을 자격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삶에서 인도를 받고 화평을 얻는 방법입니다.

IV.

부활하신 주님이 미대륙을 방문하여 충실한 니파이인들 가운데 성찬을 제정하셨을 때, 그분은 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성찬의 상징물을 축복하시고 그것을 그분의 제자들과 무리에게 주시며(제3니파이 18:1~10 참조)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또 이를 너희는 회개하고 내 이름으로 침례 받는 자들에게 항상 행할지며, 또 너희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바, 나의 피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 너희가 항상 나를 기억함을 아버지께 증거하도록 하라. 만일 너희가 항상 나를 기억하면 너희가 나의 영으로 너희와 함께 하게 하리라.

“… 너희가 항상 이를 행할진대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는 너희가 나의 반석 위에 지어졌음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보다 많거나 적게 행할 자는 나의 반석 위에 지어지지 아니하였고, 모래의 기초 위에 지어졌나니,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들에게 부딪칠 때에, 그들이 넘어질 것이요, 지옥의 문이 열려 있어 그들을 맞으리라.”(제3니파이 18:11~13)

성찬은 모세의 율법에 따른 피의 희생과 번제를 대체한 의식이며, 다음과 같은 구주의 약속을 수반합니다. “누구든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내게로 오면 내가 그에게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줄 것이라.”(제3니파이 9:20)

V.

이제 저는 특별히 성찬을 집행하는 신권 소유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의식은 항상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회중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는 제사들은 성약과 약속된 축복을 나타내는 기도문을 천천히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성스러운 행위입니다.

성찬을 준비하는 교사들과 전달하는 집사들 역시 매우 성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이 12세의 집사였을 때 감독님의 부탁으로 침상에서 이 축복을 애타게 기다리던 형제에게 어떻게 성찬을 전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몬슨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감사를 표할 때 압도되었습니다. 주님의 영이 저를 감쌌습니다. 저는 거룩한 땅에 서 있었습니다.”(Inspiring Experiences that Build Faith, [1994년], 188쪽) 이 성스러운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룩한 땅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성찬 의식을 집행하는 청남들은 합당해야 합니다. 주님은 “주의 기구를 메는 너희여 깨끗할지어다”(교리와 성약 38: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합당하지 않게 성찬을 취하는 것에 대한 영적인 경고(고린도전서 11:29, 제3니파이 18:29 참조)는 또한 분명히 그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심각한 죄를 범한 교회 회원들에게 선도 조치를 내릴 때, 감독은 성찬을 취하는 특권을 일시적으로 거두어 들일 수 있습니다. 그와 똑같은 권세로 그 성스러운 의식을 집행하는 특권도 분명히 거두어 들일 수 있습니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적절한 복장의 중요성에 대해 제가 앞서 언급한 것은 당연히 어떤 부분이든 그 성스러운 의식을 집행하는 아론 신권 청남들에게는 특히 더 적용됩니다. 그들은 모두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정숙한 복장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끌게 하거나 또는 참석자들이 예배에 온전히 집중하고 이 성스러운 의식의 목적인 성약을 맺는 데 방해가 되는 모양새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이 13년 전 연차 대회에서 이 주제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이 주어졌을 때 현재의 집사들은 대부분 태어나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그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유익을 위해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성찬을 다루는 집사, 교사, 그리고 제사들은 어디에서든 가능한 한 흰 셔츠를 입을 것을 권유합니다. 교회의 성스러운 의식들에서, 우리는 흔히 의식복을 입으며, 흰 셔츠는 여러분이 침례반에서 입었던 하얀 의복을 조용히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지않아 여러분이 성전에서, 그리고 선교 사업을 할 때 흰 셔츠를 입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67쪽)

마지막으로, 성찬은 오직 이 신권 의식에 대한 열쇠를 가진 사람이 승인할 때만 집행됩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가정이나 가족 모임에서 신권 소유자가 충분히 있더라도 성찬 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입니다. 성찬대에서 집행하는 사람들, 성찬을 준비하는 사람들, 또는 회중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들은 이 의식의 열쇠를 가지고 있거나 행사하는 사람에 의해 지명 받아야 합니다. 감독단과 교사 정원회 회장단 및 집사 정원회 회장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집은 질서의 집이요.”(교리와 성약 132:8)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선택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의 영을 지녀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교리와 성약 59:9) 필멸의 삶에서 안전한 길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청결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권능을 위해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그분께 나아오라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또한 그 훌륭한 모임에서 매주 성찬을 취하고 그분의 영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게 해 주시겠다는 소중한 약속에 합당하도록 성약을 맺음으로써 그렇게 합니다.(교리와 성약 20:77 참조) 저는 우리가 항상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겸손히 기도드립니다. 속죄를 통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