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그리스도를 따를수록 우리는 그분의 구속 사업에 참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기를 구하게 됩니다.
식민지 시절, 미국에는 노동력 수요가 많았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영국과 독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미국으로 이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여행경비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단 무임으로 배를 타고 가 도착하면 일정 기간 뱃삯을 갚기 위해 무급으로 일한다는 조건으로 노동 계약을 맺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밖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미국에 가 있는 가족들이 그들의 도착에 맞추어 뱃삯을 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왔습니다. 혹 가족이 돈을 내 주지 못하면 이 신참 이민자들은 무급으로 일하여 비용을 갚아야 했습니다. 이런 무급 노동을 하는 이민자들은 빚을 갚는 사람이라는 뜻인 “redemptioner[리뎀셔너]”로 불렸습니다. 그들은 노동을 해서 뱃삯을 갚고 자유를 사야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1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이름의 하나는 Redeemer[리디머], 즉 구속주입니다. 앞에서 짧게 설명한, 빚 갚아야 하는 이민자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redeem[리딤], 즉 상환이라는 단어는 채무나 빚을 갚는 것을 뜻합니다. redeem[리딤]은 또한 구속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몸값을 대신 치러서 그 사람을 구하거나 자유롭게 놓아 주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를 하고 나서 그것을 바로잡거나 그 대가를 치렀다면, 우리는 그가 자신을 구속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각각의 의미는 “희생을 치름으로써 죄인을 죄와 형벌로부터 구함”2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사전상의 의미 외에도, 그분이 성취하신 위대한 대속의 다른 측면을 보여 줍니다.
구주의 구속에는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의 범법과 그 결과로 일어난 인간의 타락에 대해 속죄하는데, 이는 타락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 죽음과 영적인 죽음의 극복을 통해서입니다. 육체적 죽음이 무엇인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육체적, 영적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러한 구속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조건 없이 주어집니다.3
구주께서 치르신 속죄의 두 번째 측면은 타락의 간접적인 결과라 할 수 있는, 아담의 범법과는 구별되는, 우리 자신의 죄로부터의 구속입니다. 타락의 결과로 우리는 죄, 즉 신성하게 제정된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이 만연한, 이 필멸의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모두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장성하기 시작할 때에 죄가 그들 마음에 잉태되어 쓴 것을 맛보게 되나니, 그리하여 그들이 선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그들에게 선악을 분별하도록 허락되나니, 그런즉 그들은 스스로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자라.”(모세서 6:55~56)
우리는 선택을 하고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죄에서 구속되는 데에는 조건이 따릅니다. 즉, 죄를 고백하고 죄를 버리며 돌이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는 것, 달리 말하면 회개라는 조건이 따릅니다.(교리와 성약 58:43 참조) 주님은 이렇게 명하십니다. “그런즉, 모든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회개해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그들은 결단코 하나님의 왕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음을 네 자녀에게 가르치라. 이는 부정한 것이 그 곳에 거할 수 없음이니, 곧 그의 면전에 거할 수 없음이니라.”(모세서 6:57)
구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고난과 십자가 위의 고통은 공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합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이에게 자비를 보이시고 그를 용서하십니다. 속죄는 또한 우리가 아무 잘못 없이 겪는 고통을 치유하고 보상하여, 공의가 우리에게 진 빚을 갚아 줍니다. “이는 보라, 그가 만인의 고통, 참으로 아담의 가족에 속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들 모두, 곧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의 고통을 겪으심이라.”(니파이후서 9:21; 또한 앨마서 7:11~12 참조)4
그리스도를 따를수록 우리는 그분의 구속 사업에 참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기를 구하게 됩니다. 이생에서 가족을 비롯해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봉사는 그들을 신앙과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에게로 데려가서 주님의 구속, 즉 현세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앞으로 올 세상에서 불멸과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선교사들이 하는 일을 통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주님의 공인된 사자로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회개, 침례, 성신의 은사라는, 비할 수 없는 축복을 전하여 영적인 재탄생과 구속의 길을 열어 줍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께서 무덤 저편에 있는 이들을 구속하시는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 경륜의 시대의 충실한 장로들은 필멸의 생을 떠날 때, 죽은 자의 영들의 큰 세계에서 어둠 속에 있고 죄의 속박 아래 있는 자들 가운데서 회개와 하나님의 독생자의 희생을 통한 구속의 복음을 전파하는 그들의 수고를 계속하더라.”(교리와 성약 138:57)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는 대리의식을 통해 죄에 속박된 죽은 자들도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5
구속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회개와 용서에 관한 것이지만, 아주 중요한 현세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행전 10:38 참조) 그분은 아프고 쇠약한 사람들을 고치시고, 굶주린 무리를 먹이시고, 가장 좋은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그러므로 우리도 성신의 영향 아래 두루 다니며 주님께서 보이신 그 구속의 모형을 본받아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구속 사업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잘못을 바로잡고, 진리를 수호하며, 자라나는 세대를 강화하고, 가정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우리가 하는 구속 사업의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그리고 의로운 소망과 바람을 성취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허구이긴 하지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한 본보기는 늘 저에게 감동과 영감을 줍니다. 소설 서두에서 비앵브뉘 주교는 오갈 곳 없는 장발장에게 음식과 하룻밤 잠자리를 줍니다. 장발장은 누이의 굶주린 자녀들을 먹이려고 빵 한 덩이를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지내다 출소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적의에 찬 장발장은 비앵브뉘 주교의 은 식기를 훔치는 것으로 그의 친절에 보답합니다. 나중에 그를 의심하는 경관들에게 잡히자 장발장은 은 식기를 선물로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경관들이 그를 주교관으로 끌고 가자 비앵브뉘 주교는 그의 말이 맞다고 확인해 주고,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촛대도 주지 않았소. 이것들도 은으로 만든 것이고 200프랑은 받을 것이오. 왜 접시만 가져가고 이것들은 가져가지 않았소?’
주교는 그에게 다가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되오. 이 은 식기를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쓰겠다고 나에게 약속한 것 말이오.’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는 장발장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주교는 ……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장발장, 나의 형제여, 이제 그대는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이오. 내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사겠소. 사악한 생각과 저주로부터 당신의 영혼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겠소!’”
정말로 장발장은 새로운 사람, 정직한 사람이 되어 많은 이에게 도움을 줍니다. 평생 그는 자기 영혼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속되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그 두 자루의 촛대를 간직합니다.6
어떤 형태의 현세적인 구속은 함께하는 노력을 통해 옵니다. 이것이 구주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의 하나입니다. 스테이크, 와드, 지부에서 정원회와 보조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는 복음 안에서 서로 가르치고 격려할 뿐 아니라 삶의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인력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혼자 일하는 사람들 또는 임시변통으로 일하는 집단은 더 큰 규모의 어려움 앞에서는 그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동료 성도들과 우리 손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세상 사람들을 어려움에서 구속하기 위해 조직된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지난해 우리의 인도주의적 노력으로 36개국에서 89만 명이 깨끗한 물을 얻었고, 57개국에서 7만 명이 휠체어를 갖게 되었으며, 25개국에서 7만 5천 명이 시력을 얻었고, 52개국에 사는 자연재해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어린이 약 800만 명에게 예방접종을 시행했으며 터키, 레바논,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 수용소에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동시에 2012년, 교회 내에 도움이 필요한 회원들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금식 헌금과 기타 복지 원조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관대한 도움에 감사를 전합니다.
이 모든 것에는 물론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베푼 친절과 도움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음식과 옷, 돈, 보살핌, 또 수많은 다른 형태로 위안과 동정을 표현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구속 사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가 도움이 필요한 한 여성을 구속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저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죽을 고비를 넘기는 큰 수술을 받으셨고 거의 1년 동안을 주로 침대에서 지내야 하셨습니다. 그 기간에 친지들과 와드 회원들이 어머니와 우리 가족을 도와주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와드 상호부조회 회장님이셨던 에이브러햄 자매님은 일자리가 절실히 필요한, 와드의 한 자매님을 고용하도록 저의 부모님께 제안하셨습니다. 그 자매님은 사라로, 그분의 딸은 애니라고 임의로 부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에이브러햄 자매님이 사라를 문 앞으로 데려오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볼품없는 행색을 한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비쩍 마르고 너저분한 데다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고, 어깨는 축 처진 채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자기 몸보다 네 치수는 더 큰 것 같은 낡은 실내복 차림이었다. 고개를 들려고 하지도 않고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숨어 있었다. 이 사람이 대체 무얼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들이 방을 나가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도움이 필요했는데 문제만 더 늘어난 셈이었다. 에이브러햄 자매님은 사라와 함께 좀 더 머물며 금세 집을 치우고 훌륭한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에이브러햄 자매님은 나에게 며칠을 함께 지내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 젊은 자매는 참 힘든 일을 겪었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사라가 왔을 때, 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침대 옆으로 오라고 불렀다. 사라는 자기가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할 일을 말해 주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에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어 주세요. 아이들이 집보다 더 중요하니까요.’ 사라는 음식도 잘하고 청소도 잘했다. 세탁도 깔끔하게 했고 아이들에게도 잘해 주었다.
몇 주가 지나면서 나는 사라가 겪은 일을 알게 되었다. [귀가 약간 먹어서 학교 공부를 잘하지 못하다가 결국엔 그만두었다. 결혼을 일찍 했는데, 남편은 알코올 중독이었다. 애니가 태어난 것은 사라의 삶에 기쁨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겨울밤, 취해서 집에 돌아온 남편이 잠옷 바람인 사라와 애니를 강제로 차에 태우고는 고속도로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그 후론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추위에 맨발로 사라는 애니를 데리고 몇 킬로미터를 걸어서 친정어머니 집으로 갔다.] 사라의 어머니는 사라에게 집에 머무는 대가로 온갖 집안일과 음식을 하게 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을 보살피게 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라를 이비인후과에 데려갔고 보청기를 사줬다. …… 성인을 위한 학교에도 데려갔다. 거기서 사라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야간학교에 다니며 대학까지 졸업하고 특수학교 교사가 되었다. 작은 집도 장만했다. 애니는 성전에서 결혼했고 두 아이를 두었다. 나중에 귀 수술을 받고 결국 잘 들을 수 있게도 되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은퇴한 다음엔 선교사로 봉사했다. …… 사라는 자주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고, 나에게 참 많이 배웠다고 했다. 특히 내가 아이들이 집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던 걸 기억했다. 사라는 나에게 배운 대로 자기도 애니에게 그렇게 했다고 했다. …… 사라는 정말 특별한 여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고통과 짐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가장 위대한 구속의 봉사는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일일 겁니다. 구주께서 우리를 사망과 죄로부터 구속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회 정의뿐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현세에서 도움과 중재를 받을 수 있지만, 완벽한 공의와 무한한 자비를 하늘에서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궁극적인 구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있습니다. 저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이 구속주임을 간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