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호산나
2023년 4월 연차 대회


13:1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호산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신 일과 그 주에 뒤이어 일어났던 일들은 오늘날 우리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리를 잘 보여 줍니다.

이미 언급된 것과 같이 오늘 우리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과 더불어 이 종려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립니다. 약 2000년 전의 그 종려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성역의 마지막 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주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주였습니다.

그 주는 승리의 입성을 하시는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찬미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1 신성한 계획에 따라 그분의 속죄 희생은 그분의 지상 성역의 대미를 장식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경전은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를2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성문에 선 일로 그 주가 시작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습니다.3

성경이 전하는 이 오래전 이야기를 생각하면 제가 교회 임무 수행을 위해 가나 타코라디에 갔었던 때가 떠오릅니다. 놀랍게도 제가 그곳에 갔었던 때도 종려 주일이었습니다.

가나 타코라디에서의 집회

저는 가나 타코라디 스테이크를 분리하여 가나 민신 스테이크를 조직하는 임무를 맡았었습니다. 오늘날 가나에는 10만 명이 넘는 교회 회원들이 있습니다.4 (오늘 함께하고 계시는 가나 아크라의 가 만체, 타키에 테이코 추루 2세 국왕 폐하를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곳의 성도들을 만나 뵙는 동안, 저는 주님을 향한 그분들의 심오한 사랑과 헌신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향한 제 큰 사랑을 전했으며, 교회 회장님도 그분들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구주의 다음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5 그분들은 그 대회를 “사랑의 대회”라고 생각하셨습니다.6

가나 타코라디에서 악수를 하는 래스번드 장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 그 가족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예배당을 차근히 살펴보는 동안, 저는 그분들의 얼굴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간증으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그리스도 교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그분들의 소망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합창단은 천사처럼 노래했습니다.

가나 타코라디의 합창단
가나의 회원들과 함께한 래스번드 장로

그 옛날의 종려 주일에 종려 가지를 들고 예루살렘 성문에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7 외쳤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기 위해 모인 그분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가나에서 종려 가지를 흔드는 사람들

인근에 있는 다른 교회의 교인들도 종려 주일을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연단에서 말씀을 하는 동안, 저는 이 사진과 매우 흡사하게 손에 든 종려 가지를 흔들며 기쁘게 길을 걸어가는 그분들의 모습을 창문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만왕의 왕을 경배했던 그날의 광경을 저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께서는 종려 주일을 “참으로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찬미하며 흔들었던 손바닥 모양의 종려나무 잎 외에도 구주의 손바닥을 기억”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넬슨 회장님께서는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는 구주의 약속을 전한 이사야의 다음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 … 나니.”8

주님께서는 지상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십니다. 그분의 상처는 그분께서 우리가 고통받을 때 우리를 도우시고 “너의 길[즉, 그분의 길]을 계속 [갈]”10 수 있도록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그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가셨으며9, “하나님이 영원무궁토록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임”을11 상기시켜 줍니다.

종려 주일은 단순히 역사의 한 페이지에 그 날짜와 시간, 장소가 기록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신 일과 그 주에 뒤이어 일어났던 일들은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리를 잘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에서 끝을 맺은 그분의 성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영원한 교리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 번째, 예언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 전서의 선지자 스가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시리라고 예언했으며, 심지어 그분께서 나귀를 타실 것까지도 묘사했습니다.12 예수께서는 입성 준비를 하시며 당신의 부활에 관해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13

두 번째, 성신의 동반입니다.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께서 주이심을 알 수 없느니라.”14 구주께서는 다락방에서17있었던 마지막 만찬에서16 당신의 제자들에게15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18 제자들은 홀로 복음 진리를 전파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인도해 줄 성신의 완전한 은사를 지닐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19 성신의 은사를 지닌 우리는 그와 동일한 확신, 즉 “항상 그의 영과 함께하”리라는20 확신과 성신의 “권능으로 [우리]는 모든 것의 참됨을 알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21

세 번째, 제자의 길입니다. 진정한 제자의 길은 한결같은 헌신, 영원한 율법에 대한 순종,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의심하지 않는 사랑을 말입니다. 종려 가지를 들고 찬미하기 위해 모인 무리는 환호하며 그분을 메시야로 맞이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메시야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과 그분의 기적, 그분의 가르침에 이끌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의 찬사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호산나”22를 외쳤던 사람들이 곧 등을 돌리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23 소리쳤습니다.

네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24 종려 주일 이후 생애의 마지막 며칠 동안, 그분께서는 겟세마네에서의 고통에서 시작하여 재판에서의 조롱,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겪으시며 빌린 무덤에 매장되기까지 놀라운 속죄를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흘 후, 그분은 당신께서 예언하신 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의 구속주라는 부름에 따른 영광과 함께 부활하여 무덤에서 걸어 나오셨습니다.2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할 데 없는 속죄에 대해 끊임없이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 정결하게 하는 권능이 바로 지금 느껴지십니까? 그것이 바로 구원의 창시자시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 이유입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앨마서에 나오는 다음 말씀이 심금을 울립니까? “만일 너희가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였고, 만일 너희가 구속하시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자 느꼈다면, 내가 묻고자 하노니, 너희는 지금 그렇게 느낄 수 있느냐?”26 저는 그 종려 주일에 타코라디의 합창단이 “구속하시는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고 진심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상 성역의 운명적인 마지막 주에 열 처녀의 비유를 가르치셨습니다.27 주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들, 곧 손에 종려나무를 든 이들이 아니라 내면에 복음의 빛을 지닌 이들에게 돌아오실 당신의 재림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길을 따르고 당신의 진리를 받아들이며 당신의 빛을 나누려는 의지에 대한 묘사로, 불이 밝혀져 타오르고 있으며 불꽃에 연료를 더할 여분의 기름이 든 등잔의 이미지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여러분도 익히 아실 것입니다. 열 처녀는 교회의 회원들을 의미하며,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열 처녀는 등잔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28 현명한 다섯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으며,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예비로 마련해 둔 기름도 없이 어두운 등잔을 가지고 갔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는29 외침이 들렸을 때, “슬기로우며 진리를 받아들이고 성령을 자기들의 인도자로 삼”은30 다섯은 “그들의 왕과 입법자”를31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 “그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있을 것”이었습니다.32 나머지 다섯은 정신없이 기름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행렬은 그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33

주님이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열 처녀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등잔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기름이 있습니까? 저는 제대로 준비하기에는 세상적인 압력으로 너무 바쁜 나머지, 얼마 안 되는 양의 기름만으로 겨우 근근이 살아가는 분들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기름은 살아 있는 선지자, 특히 넬슨 회장님과 그분의 보좌들, 그리고 십이사도들의 예언과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데서 옵니다. 기름은 우리가 성신의 음성을 듣고 느끼며 신성한 인도를 따를 때 우리의 영혼을 채웁니다. 기름은 우리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바를 우리도 사랑함을 보일 때 우리 마음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오는 치유를 구하고 회개하는 데서 옵니다.

소위 “버킷 리스트”라고 불리는 목록을 채우고 싶으시다면,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버킷, 그러니까 양동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34 즉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기름 삼아 채우십시오. 반면, 먼 곳이나 멋진 행사에 다녀오는 것으로는 절대로 여러분의 영혼을 만족시키거나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리에 따라 생활하는 것만이 그런 만족과 온전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언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성신의 속삭임에 따라 행동하며, 진정한 제자가 되고, 주님의 속죄가 주는 치유의 권능을 구하십시오. 그 버킷 리스트는 여러분이 바라는 곳, 곧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로 여러분을 데려다 줄 것입니다.

충실한 형제 자매들과 함께했기에, 타코라디에서의 종려 주일은 제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대륙과 섬들에서 겪은 다른 경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마음과 영혼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호산나”라고35 외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오늘 우리가 종려 가지를 손에 들고 예루살렘의 성문 앞에 서 있지는 않지만,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것과 같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설]”36 때가 이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롭게 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여 종려 가지를 손에 들고 우리 모두의 위대한 구속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들 가운데 속하시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네 복음서 모두가(마태복음 21~28장, 마가복음 11~16장, 누가복음 19~24장, 요한복음 12~21장)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성역의 마지막 며칠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 일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구원과 승영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신성하게 계획되었다. 때로 각 저자가 복음서에 포함한 내용은 다르지만, 구주께서 가르치고 행하신 일은 다르지 않다.

  2. 마태복음 21:10~11 참조.

  3. 요한복음 12:13.

  4. 회원 및 통계 기록상, 가나에는 102,592명의 회원이 있다.

  5. 요한복음 15:12.

  6.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분들은 내게 “래스번드 장로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아주 쉽게 그 사랑을 나눈다.

  7. 마태복음 21:9.

  8. See Russell M. Nelson, “The Peace and Hope of Easter” (video), Apr. 2021, ChurchofJesusChrist.org/media; Isaiah 49:16.

  9. 교리와 성약 122:8. 1838년 12월 선지자 조셉과 소수의 교회 지도자들이 부당하게 리버티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의 환경은 끔찍했다. 그 끔찍한 곳에서 여러 달을 지낸 후, 1839년 3월 선지자는 회원들에게 한 서한을 보냈으며, 그 서한에는 “고통을 겪고 있는 성도들”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연민을 가져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는 선지자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도 나누었는데 이는 교리와 성약 121~123편에 기록되었다.

  10. 교리와 성약 122:9. 리버티 감옥에 있는 조셉 스미스에게 주신 주님의 격려는 그에게 위안을 주었고 역경과 시련을 통해 우리가 강화되고 인내와 자제력을 배울 수 있다는 영적인 이해를 가져다주었다. 주님은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견디면서 “너의 길 [즉, 주의 길]을 계속 가라”라고 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 모든 것 아래로 내려갔었느니라. 네가 그보다 크냐?”(교리와 성약 122:8)

  11. 교리와 성약 122:9. 하나님께서 하신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은 주님을 신뢰하고 신앙을 굳게 지키는 이들에게는 확실한 약속이다.

  12. 스가랴 9:9 참조.

  13. 마태복음 20:18~19. 제임스 이 탈매지는 『예수 그리스도』에서 이렇게 적었다. “열두 제자가 그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실이다. … 그들은 오직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서 무서운 부조화와 어떤 심각한 불일치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들은 주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자가 어떻게 체포되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1916], 503~504쪽)

  14. 조셉 스미스는 1842년 4월 28일 금요일, 나부의 여성 상호부조회에서 이렇게 선언했으며, 이는 1855년 9월 19일자 『데저렛 뉴스』 218쪽 “조셉 스미스의 역사”에서 인용되었다. 그는 고린도전서의 12장을 언급하면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가 주이심을 알 수 없느니라”로 수정하며 3절에 관한 내용을 명확히 했다. (See The First Fifty Years of Relief Society: Key Documents in Latter-day Saint Women’s History.[2016], 2.2, churchhistorianspress.org.)

  15.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다.(마가복음 14:12~18 참조) 열두 제자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마태, 빌립, 도마, 바돌로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가룟 유다, 야고보의 형제 유다, 시몬이었다.(누가복음 6:13~16 참조)

  16. 구주께서는 마지막 만찬을 드시는 동안 성찬을 제정하셨다.(마태복음 26:26~29; 마가복음 14:22~25; 누가복음 22:19~20 참조)

  17.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제정하신 정확한 낮/밤의 시간은 사실 논쟁 중에 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 만찬은 “무교절의 첫날”, 즉 유월절 식사가 있었던 날로 추정된다.(마태복음 26:17; 마가복음 14:12; 누가복음 22:1, 7) 그러나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 전에 체포되신 것으로 추정되며(요한복음 18:28 참조) 이는 마지막 만찬이 유월절 식사 하루 전에 일어났다는 의미를 지닌다. 교회의 교육 과정 자료와 후기 성도 학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하루 전날,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주간을 기념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마지막 만찬은 목요일, 십자가에 달리심은 금요일, 그리고 부활은 일요일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18. 요한복음 14:18.

  19. 요한복음 14:27.

  20. 교리와 성약 20:77.

  21. 모로나이서 10:5.

  22. 성경 사전[Bible Dictionary]에는 “호산나”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해당 단어는 시편 118:25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시편의 노래는 초막절에 종려 가지를 흔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 군중은 이 말을 사용했다.”(Bible Dictionary, “Hosanna”) 마태복음 21:9, 15; 마가복음 11:9~10; 요한복음 12:13 참조.

  23. 마가복음 15:14; 누가복음 23:21.

  24.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분의 모든 자녀에게 불멸을 보장하고, 승영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이들에게 승영을 보장하는 무한한 속죄였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나서며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아브라함서 3:27)라고 대답하셨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속죄였습니다. 그 사명은 오로지 그분께만 주어질 수 있었습니다. 필멸의 어머니와 불멸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가 다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요한복음 10:14~18 참조) 그분의 속죄로 말미암은 영광스러운 결과는 무한하며 영원했습니다. 그분은 사망의 쏘는 듯한 고통을 없애시고 죽음의 슬픔을 한시적인 것으로 만드셨습니다.(고린도전서 15:54~55 참조) 속죄에 관한 그분의 책임은 창조와 타락이 있기 훨씬 전부터 알려졌습니다. 속죄는 모든 인류에게 부활과 불멸을 안겨 줄 뿐 아니라 그분이 정하신 조건에 따라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속죄는 우리가 그분과 또 우리 가족과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성역”, 『리아호나』, 2013년 4월호, 20쪽)

  25. 부활은 육신과 영이 불멸의 상태로 재결합하여 육신과 영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게 되며 필멸의 상태로 인한 질병이나 죽음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앨마서 11:45; 40:23 참조)

  26. 앨마서 5:26; 또한 앨마서 5:14 참조.

  27. 열 처녀의 비유는 마태복음 25:1~12교리와 성약 45:56~59에서 찾을 수 있다. 마태복음 25장의 앞뒤 장들을 미루어 볼 때, 예수께서는 그분의 생애 마지막 주에, 그러니까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입성 이후, 그리고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마지막 만찬과 체포 직전에 이 비유를 가르치신 것으로 보인다. 그 마지막 주에 가르치신 열 처녀의 비유 이외에도 예수께서는 감람나무의 비유(마태복음 21:17~21; 24:32~33 참조), 두 아들의 비유(마태복음 21:28~32 참조), 사악한 농부들의 비유(마태복음 21:33~46 참조)를 주셨다.

  28. 마태복음 25:1.

  29. 마태복음 25:6.

  30. 교리와 성약 45:57.

  31. 교리와 성약 45:59.

  32. 교리와 성약 45:59.

  33. 마태복음 25:12. 산상수훈 중 주님께서는 “많은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관해 언급하셨다. 그분께서는 열 처녀 중 어리석은 이들에 관해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 너를 알지 못하니”라고(마태복음 7:22~23 참조) 하셨다.

  34. 필멸의 삶에서 물이 중요하듯,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생수)은 영생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경전 안내서,“생수,” scriptures.ChurchofJesusChrist.org; 또한 이사야 12:3; 예레미야 2:13; 요한 4:6~15; 7:37; 니파이전서 11:25; 교리와 성약 10:66; 63:23).

  35. 제3니파이 4:32.

  36. 요한계시록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