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덫이 놓일지라도”,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1권, 진리의 표준, 1815년~1846년(2018) 제23장
제23장: “어떠한 덫이 놓일지라도”
제23장
어떠한 덫이 놓일지라도
1836년 가을 내내 조너선 크로스비는 커틀랜드에 새로 집을 짓느라 바빴다. 11월에 벽과 지붕이 올려졌지만, 바닥과 창문, 문 공사까지 마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곧 아기가 태어날 것이었기에 캐롤라인은 조너선에게 최대한 공사를 서둘러 달라고 재촉했다. 지금 사는 집의 주인과 관계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캐롤라인은 하루빨리 그 비좁은 공간을 벗어나 자신만의 집으로 가고 싶었다.1
조너선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공사를 완료하려고 바삐 움직이던 무렵, 교회의 지도자들은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 창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 기관은 커틀랜드의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고 교회 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마을 은행이었다.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미국의 여타 소규모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지역 경제 부흥을 위해 사람들에게 부동산이나 재화를 살 돈을 빌려주고, 그들에게서 이자를 받고 대출금을 회수함으로써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2
대출금은 은행권 형태로 발행하고, 은행권에 대한 지급 준비금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보유한 얼마 안 되는 은화와 금화로 마련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경화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은행은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판매했고, 투자자들은 시간을 두고 돈을 나눠서 내기로 되어 있었다.3
11월 초가 되자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주주는 서른 명을 넘어섰으며, 이들 주주 중에는 수중에 있는 돈의 상당 금액을 투자한 조셉과 시드니도 있었다.4 주주들은 시드니를 기관의 회장으로, 조셉을 출납원으로 선출하여 은행의 계좌에 대한 책임을 맡겼다.5
은행 설립을 위한 계획이 마련된 후, 올리버는 은행권 인쇄에 필요한 자재를 구입할 목적으로 동쪽으로 떠났고, 올슨 하이드는 은행에 대한 합법적인 운영 인가를 받기 위해 주의회를 찾아갔다. 조셉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께 금과 은을 바치도록 요청받았던 구약전서의 성구를 인용하며 모든 성도에게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 투자하라고 촉구했다.6
조셉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노력을 받아들이셨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만일 성도들이 주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인다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약속했다.7 선지자의 말에 대한 신뢰로, 더 많은 성도들이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 투자했지만, 신생 은행의 주식을 사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크로스비 부부도 주식을 사는 문제를 놓고 고민했으나, 집을 짓는 데 큰돈을 들인 상황인지라 그들은 그럴 만한 자금이 없었다.8
12월 초에 마침내 창문과 문을 달아 공사를 완료한 후, 두 사람은 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내부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이었지만, 집 안에는 난방을 하고 요리할 수 있는 좋은 화덕이 있었다. 그리고 집 근처에는 쉽게 물을 길을 수 있게 조너선이 만든 우물도 있었다.
캐롤라인은 집을 장만해서 더할 수 없이 행복했다.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던 12월 19일에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9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겨울의 한복판인 1837년 1월에 문을 열었다.10 영업 첫날부터 조셉은 막 인쇄기에서 뽑은 빳빳한 은행권을 발행했다. 은행권 앞면에는 은행의 이름과 조셉의 서명이 함께 들어가 있었다.11 더 많은 성도들이 종종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커틀랜드 안팎으로 은행권이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12
얼마 전에 미국 북동부에서 커틀랜드로 이주한 피비 카터는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와 어떠한 거래도 없었지만,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약속한 번영의 혜택이 자신에게도 돌아올 날을 고대했다. 곧 서른이 되는 나이에 미혼인 피비는 커틀랜드에 재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없었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성들처럼 피비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그녀는 삯바느질을 하고 이곳으로 오기 전에 오하이오주에서 했던 것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13 커틀랜드의 경기가 나아지면 새 옷과 교육에 돈을 들일 사람이 많아질 것이었다.
그러나 피비가 커틀랜드로 오기로 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영적인 이유에서였다. 피비의 부모는 딸의 침례를 반대했다. 그녀가 성도들과 함께 집합하기 위해 떠나겠다고 말하자 피비의 어머니는 강하게 만류했다. “피비, 몰몬이즘이 거짓이란 걸 알게 되면 돌아오겠니?”
피비는 “네 어머니, 그렇게 할게요.”라고 약속했다.14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커틀랜드에 도착하고 몇 달 후에 조셉 스미스 일세로부터 받은 축복사의 축복을 통해 그녀는 자신을 위해 지상과 하늘에 큰 보상이 준비되어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피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심하라, 그대의 어려움은 이제 끝이 났도다. 그대는 오래도록 살아가며 좋은 날들을 맞이하리라.”15
그렇게 피비는 집을 떠날 때 받았던 느낌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그녀는 슬픈 마음에 차마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편지만 탁자에 남겨 둔 채 집을 떠났다. “제 걱정은 마세요. 저는 주님께서 저를 돌봐 주시고 제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요.”16
피비는 축복사의 축복에 담긴 약속을 믿었다. 축복사는 피비가 여러 자녀를 둔 어머니가 되고 지혜와 학식, 이해력을 갖춘 남성의 아내가 되리라고 축복했다.17 사실, 피비는 결혼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결혼해서 자녀를 둔 대부분의 여성보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1837년 1월의 어느 날, 피비는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짙은 머리칼에 담청색 눈을 가진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피비보다 생일이 며칠 더 빠른 그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행군을 마치고 미국 남부에서 선교 사업을 한 뒤 얼마 전에 커틀랜드로 돌아왔다.
그의 이름은 윌포드 우드럽이었다.18
겨울 동안 커틀랜드의 성도들은 큰돈을 빌려 계속해서 부동산과 재화를 사들였다. 고용주들은 종종 임금을 은행권으로 지급했는데, 은행권은 통화로 사용하거나 세이프티 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경화로 교환할 수도 있었다.19
한편, 그랜디슨 뉴얼이라는 사람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남몰래 은행권을 사 모으고 있었다. 인근 마을의 오랜 정착민인 그랜디슨은 조셉과 성도들을 증오했다. 성도들이 이주해 오기 전까지 지역의 유력 인사였던 그는 성도들을 괴롭힐 방법을 찾는 데 아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방법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20
그는 일자리를 구하러 찾아오는 성도들을 단칼에 거절하고, 선교사들이 자신의 집 근처에서 복음을 가르칠 때면 사람들을 모아 선교사들에게 달걀을 던졌다. 또, 닥터 필라스터스 헐버트라는 사람이 조셉을 비방하는 발언들을 모으기 시작하자 그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21
하지만 그의 그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그 지역으로 계속해서 모여들었다.22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문을 열자, 그랜디슨은 이것이 성도들을 공격할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오하이오주에 은행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던 주의회는 올슨 하이드의 인가 신청을 거부했다. 따라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공식적인 은행이 될 수 없었고, 예금과 대출 업무만 할 수 있었다. 주주들이 있어야 은행의 지급 준비금을 유지할 수 있기에,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성공은 주식을 사는 주주들에게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만큼 충분한 경화를 보유한 주주는 드물었으며, 이 점을 파악한 그랜디슨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지급 준비금이 워낙 적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23
그는 많은 사람이 은행권을 금과 은으로 교환한다면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파산할 것이라는 계산에 따라 지방 곳곳을 다니면서 은행권을 사들였다.24 그는 그렇게 모은 은행권을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사무실로 가져가서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고, 은행권을 현금으로 바꿔 주지 않으면 기관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25
궁지에 몰린 조셉과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임원들은 그랜디슨의 은행권을 현금으로 바꿔 주고, 그저 투자자가 더 많이 나타나기만을 기도하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윌포드 우드럽도 가진 돈이 거의 없었지만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서 20주의 주식을 사들였다.26 그의 절친한 친구인 워렌 패리쉬는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서 간사로 일했다. 워렌과 그의 아내 벳시는 윌포드와 함께 이스라엘 진영의 일원으로서 함께 서쪽으로 행군했던 동료였다. 벳시가 콜레라로 사망한 후, 워렌은 윌포드의 동반자로서 선교 사업을 했으며, 귀환 후에는 커틀랜드로 돌아와 조셉의 서기이자 믿음직한 친구로 선지자의 곁을 지켰다.27
선교 사업이 끝난 후부터 윌포드는 마땅한 거처 없이 이따금 워렌과 같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비 카터를 만나고부터는 그도 결혼을 꿈꾸게 되었다. 그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 투자한 것도 가정을 꾸리기 전에 경제적 자립을 꾀하려는 그의 노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1월 말에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랜디슨 뉴얼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지급 준비금을 모조리 빼내려 했고, 지역의 신문사들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합법적인 기관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들을 쏟아 냈다. 게다가 일부 성도들은 이웃 주민들이 하는 것처럼 일확천금을 꿈꾸며 땅과 재화에 대한 투기를 일삼았다. 주식을 사는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성도들도 많았다. 곧 커틀랜드 안팎의 많은 노동자와 사업체들이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은행권을 거부하기 시작했다.28
파산을 우려한 조셉과 시드니는 일시적으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문을 닫고 다른 지역의 은행과 협력 관계를 맺어 보고자 커틀랜드를 떠났다.29 그러나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빈약한 시작은 많은 성도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았다. 결국 성도들은 투자를 촉구했던 선지자의 영적 지도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30
주님은 과거에 조셉을 통해 경전을 계시하셨기에 성도들은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믿는 신앙을 행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 관련된 조셉의 발언들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자신들의 투자금에 손실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이자, 성도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조셉을 비난했다.
하지만 윌포드 우드럽은 그런 와중에도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선지자 조셉은 다른 은행과 협력 관계를 체결한 후에 커틀랜드로 돌아와 자신을 탓하는 성도들의 불평에 응대했다.31 그로부터 얼마 후에 열린 연차 대회에서 그는 교회에서 성도들의 돈을 빌려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와 같은 기관을 설립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성도들이 빈약하고 궁핍한 가운데 후기의 사업을 시작한 것과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시간과 재능을 바쳐 시온에 집합하고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신 일을 상기시켰다. 큰 대가를 치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노력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구원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32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진척하기 위해 이 사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방편을 찾아야만 했다.
조셉은 채권자들에게 큰 빚을 졌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인정했다. “우리는 분명 그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있는 우리 형제들이 돈을 가지고 오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그는 성도들이 커틀랜드에 집합하여 그들의 재산을 주님께 헌납한다면, 교회의 부채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33
조셉의 설교를 듣고 있던 윌포드는 그의 말에서 권능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 말씀은 우리가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 가슴에 각인되어 영원토록 남을 것이다.’ 그는 어느 누가 이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그가 하나님에게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34
그러나 성도들의 의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4월 중순부터는 온 나라에 닥친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커틀랜드의 경기도 어려워졌다. 수년간 과도한 대출을 시행한 끝에 영국과 미국의 은행들이 흔들리자 경제 붕괴에 대한 공포가 나라 곳곳을 뒤덮었다. 은행들은 대출금을 회수했으며, 일부 은행은 대출을 완전히 중단했다. 은행들이 문을 닫고 사업체가 도산하여 실업이 급증하면서 마을마다 공황 상태가 확산되었다.35
이런 상황에서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처럼 어려움에 처한 기관이 재기를 꿈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이 난관을 바로잡기 위해 조셉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전무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국가의 경제 공황이 아닌 조셉에게 돌리는 편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았다.
채권자들은 조셉과 시드니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돈을 갚지 않았다며 소송을 걸었고, 그랜디슨 뉴얼도 조셉이 자신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조셉을 형사 고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지자는 자신이 체포되거나 죽게 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깊어졌다.36
약혼을 한 윌포드와 피비가 조셉에게 결혼식 집행을 부탁했지만, 두 사람의 결혼식 당일에 조셉은 프레드릭 윌리엄스에게 결혼식 집행을 맡긴 채 종적을 감추었다.37
조셉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안전을 알리는 조셉의 편지가 에머에게 배달되었다.38 조셉과 시드니는 자신들을 해하려는 사람들을 피해 모처에 피신해 있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비밀이었지만, 그들과 연락이 닿을 방법을 알았던 뉴얼 휘트니와 하이럼은 멀리서나마 두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을 전했다.39
에머는 조셉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했다. 조셉의 편지가 도착하자, 그랜디슨 뉴얼의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편지의 소인을 뜯어보며 조셉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조셉의 상점을 염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에머는 그런 와중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한 살배기인 프레드릭은 아직 어려서 상황을 몰랐으나 여섯 살인 줄리아와 네 살인 조셉은 당분간 아버지가 집에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불안해했다.40
에머는 커틀랜드의 많은 사람이 의심과 불신앙에 빠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4월 말경에 에머는 조셉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주변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할 수 없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예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어요. 우리가 겸손하고 최대한 충실하다면, 우리 발 앞에 어떠한 덫이 놓일지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실 거예요.”41
그렇지만 에머는 채권자들이 조셉이 없는 틈을 타서 재산이나 돈을 탈취해 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에머는 통탄했다. “당신 소유로 있는 것들에 대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우선권을 가진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에머는 남편이 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이제 그녀는 거의 아무도 믿지 않았고, 조셉의 빚을 갚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에머는 아이들이 홍역에 노출된 채 생활해 온 것이 걱정스러웠다.
“아이들이 아플 때에는 당신이 집에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을 꼭 기억하세요. 아이들도 늘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42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팔리와 생크풀은 출산을 위해 커틀랜드로 돌아왔다. 생크풀은 히버의 예언대로 사내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이름은 아버지 이름을 따서 팔리라고 지었다. 그러나 극심한 산고를 겪은 생크풀은 출산 후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갓 태어난 아기를 홀로 돌볼 수 없었던 팔리는 젖을 먹일 수 있는 여성에게 아들을 맡기고 캐나다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떠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셉 필딩과 같은 성도들도 팔리의 준비 과정을 함께 도왔다. 조셉 필딩은 그 이전부터 바다 건너 친구와 친척들에게 회복된 복음에 관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43
팔리는 캐나다에서 선교 사업을 마친 후 오하이오주로 돌아와서 커틀랜드의 젊은 미망인인 메리 앤 프로스트와 재혼했다. 이후에 그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인 토머스 마쉬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토머스는 그에게 돌아오는 여름에 커틀랜드에서 사도들이 정원회 모임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가는 것을 미루도록 촉구했다.44
토머스의 말에 따라 팔리가 다른 사도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셉과 시드니는 커틀랜드로 돌아와 부채를 해결하고 성도들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45
그로부터 며칠 뒤에 시드니는 팔리를 찾아가서 상환 기한이 지난 대출금을 어서 갚으라고 요구했다. 전에 팔리는 커틀랜드의 땅을 사기 위해 조셉에게 2,000달러를 빌린 적이 있었는데, 후에 조셉은 자신의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팔리에게 상환받을 권리를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 넘겼다. 그래서 이제는 시드니가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팔리는 2,000달러는 없지만 그때 샀던 땅으로 그 돈을 갚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시드니는 그 돈을 다 갚으려면 땅과 함께 집까지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46
시드니의 말에 팔리는 분개했다. 처음에 땅을 팔 때 조셉은 내가 이 거래로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또, 큰 부와 부채 없는 삶을 약속한 히버 킴볼의 축복은 도대체 어떻게 됐단 말인가? 팔리는 조셉과 시드니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땅도 집도 잃는다면, 그와 그의 가족은 당장 갈 곳이 없어질 것이었다.47
이튿날, 팔리는 분노를 가득 담아 조셉에게 편지를 보냈다. “마침내 나는 우리가 관여한 투기의 모든 부분에 악마의 손길이 미쳤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일은 거짓과 기만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이웃을 이용하고 말았죠.” 팔리는 조셉에게 자신은 여전히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을 믿지만, 선지자의 행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졌다고 항의했다.
그는 조셉에게 회개를 권고하고, 땅을 줄 테니 그것으로 빚을 갚은 것으로 하라고 요구했다. 팔리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적 조치까지도 취할 생각이었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강탈과 탐욕, 그리고 자신의 형제를 이용한 죄로 당신을 고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48
팔리가 조셉에게 편지를 보낸 지 며칠 후인 5월 28일, 윌포드 우드럽은 일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성전으로 갔다. 커틀랜드에서 조셉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윌포드는 여전히 조셉의 충실한 협력자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동안이나 조셉과 함께 일했던 워렌 패리쉬는 재정적인 위기 속에서 조셉이 했던 역할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예 조셉을 반대하는 무리의 선두에 서 있었다.
윌포드는 교회 내에서 논쟁을 일으키는 분위기가 가시기를 기도했다.49 그러나 그는 상황을 도울 만큼 커틀랜드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최근에 그는 북동부 메인주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폭스 제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영감을 받았다. 그곳은 피비의 부모가 사는 곳과도 가까웠다. 윌포드는 폭스 제도로 가는 길에 자신의 부모님과 여동생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싶었다. 피비도 남편과 함께 가서 시댁 식구들을 만나고, 나중에는 남편과 북쪽으로 가서 친정 식구들까지 만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50
윌포드의 마음속에는 가족을 만날 날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조셉과 커틀랜드의 교회 상황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윌포드는 성전에 앉아 연단에 있는 조셉을 올려다보았다. 큰 반대에 직면한 선지자 조셉은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파산하면서 그는 수천 달러를 잃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큰 손해를 입었다.51 다른 많은 사람과 달리 조셉은 파산해 가는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를 포기하지 않았다.
조셉은 회중을 응시하며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 맞서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윌포드는 조셉의 말을 듣는 동안 하나님의 권능과 영이 조셉에게 임한 것을 보았다. 그는 시드니를 비롯한 사람들이 연단에 서서 조셉의 고결성을 간증할 때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을 느꼈다.52 모임 막바지에 워렌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중 앞에서 조셉을 맹렬히 비난했다.
윌포드는 그의 장황한 비난을 들으며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슬픔에 잠겨 이렇게 되뇌었다. “오, 워렌, 워렌.”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