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교회 역사: 힘과 영감의 원천
2020년 7월호


교회 역사: 힘과 영감의 원천

과거의 성도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우리가 지닌 사명을 성취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웃는 여자

여성 사진: Getty Images

쿡 장로: 교회 역사가 신앙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음에도 일부 사람들은 교회 역사를 오해하거나 간과해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의심을 자아내기 위해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오도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교회 역사를 배우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과거와 현재의 성도들과 연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저와 여러분처럼 불완전한 사람들이 신앙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성취하시도록 한 사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교회사를 연구한다면 신앙이 깊어지고 복음대로 더 충실히 살고자 하는 소망이 깊어지리라고 약속합니다.

회복의 이야기는 희생과 결심과 신앙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회복과 교회사의 일부입니다. 우리 각자는 이생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으며, 그 사명은 복음으로 이 세상을 채우는 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과거의 성도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우리가 지닌 사명을 성취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총관리 역원으로 봉사해 온 지난 24년 동안, 총관리 역원 형제님들은 교회사와 교리 면에서 교회가 가능한 한 투명해지는 것을 희망했습니다. 우리는 특히 The Joseph Smith Papers(조셉 스미스 기록들), 복음 주제 관련 글, 교회 역사 주제, 그리고 현재 여러 권으로 발간된 『성도들』1 등 새로운 자료를 발표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교회 역사를 진실된 맥락 속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연구하게 하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남태평양으로 간 에디슨 프랫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약 60명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메리는 에디슨 프랫이 복음을 가르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투부아이 제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투부아이 제도: 일곱 개의 화산섬과 산호초 섬으로 이루어진 태평양 남부의 섬 무리—옮긴이)

제가 경험한 가장 놀라운 일 중 하나는 그곳의 한 청녀가 “저는 7세대 교회 회원이에요.” 하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성도들이 유타로 가기에 앞서 애디슨 프랫은 그녀의 먼 조상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있든, 어떤 혈통을 타고났든에 상관없이 여러분은 중요한 존재이며, 교회 역사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매우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의 삶을 축복할 것입니다.

교회 역사 가운데 논쟁의 소지가 있는 몇 부분에 대해 교회가 더 공개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케이트 홀브룩

할머니를 방문하는 어머니와 딸

삽화: 데이비드 그린

제가 네 살 때, 제 어머니와 할머니는 브리검 영이 살던 집인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비하이브 하우스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제게 브리검 영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며, 그분에게 아내가 많았던 사실도 알려 주셨습니다. 한 10년쯤 지나서야, 저는 조셉 스미스에게도 아내가 여럿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조셉이 몰몬경을 번역할 때 사용한 선견자의 돌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교회가 정보를 숨겨서가 아니라 제가 어린 시절에는 역사 정보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그 대신 저는 일요일 모임과 세미나리 수업을 통해 교회의 주된 일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회개하는 법을 배웠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어떻게 관계를 수립하는지도 배웠습니다. 이런 것들은 제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마땅히 알았어야 할 사실을 뒤늦게야 아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압니다. 매트와 제가 이 일을 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런 경험이 사람들에게 과거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전체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성도들』이라는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에 관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매트 그로우

저는 지난 9년간 교회를 위해 역사를 기술하는 일을 하며, 우리의 역사를 대하는 총관리 역원들의 태도를 보았습니다. 그분들의 대화의 초점은 “어떻게 역사를 숨기고, 검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역사에 접근하고, 이를 이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가?” 하는 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정보화 시대의 어려움이 답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답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진정한 어려움은 좋은 답과 나쁜 답,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구별하는 데 있습니다. 온라인상에는 우리 역사와 관련해 굉장히 많은 토론이 있는데, 이런 토론은 대부분 깨달음보다는 과열된 논쟁을 훨씬 더 많이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을 비방하려고만 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 대신,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그 기록을 공정하게 다루려 하는 정보의 출처를 찾으십시오. 과거에서 “꼬투리”를 잡아내고, 맥락은 쏙 뺀 채 인용문이나 사건만 가져다가 논란거리로 삼기는 정말 쉽습니다.

역사가로서, 저는 한 영국 소설가의 다음 조언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과거는 마치 외국과도 같아서, 그곳에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L. P. Hartley, The Go-Between [1953], prologue) 그 말은 과거를 방문할 때는 “색안경을 낀 관광객”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놓인 상황과 문화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성급하게 그들의 과오라고 판단하지 않고 인내하려고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에 대해 겸손하려고 하며, 과거에 대해 자애로운 마음을 지니려고 합니다.

조셉 스미스와 몰몬경

제가 십 대 때, 우리 가족은 형이 선교 사업을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와드에서 한 번에 청년 한 명만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징병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독님과 스테이크 회장님은 한 명을 더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저희 형과 이야기하셨고 형은 집에 와서 그 내용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지만 교회에서 활동적이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는데, 그 이유가 특이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나 선교 사업에 대해 비판적이지는 않으셨지만 형이 의대를 준비하던 것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넌 의대에 갈 준비를 해 왔잖니. 필요한 수업도 들어 왔고 말이다. 네가 의대에 가면 선교 사업을 갔을 때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그날 저녁, 충실하고 훌륭한 형은 저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형이 아버지께 어떤 대답을 드릴지는 결국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주이셨는가?” 둘째, “몰몬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셋째, “조셉 스미스는 선지자였는가?” 저는 그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제가 남은 인생 동안 내리게 될 거의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구주를 사랑했고 몰몬경도 읽어 왔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는 그날 밤에 기도했고, 성신을 통해 그 질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심오하면서도 긍정적인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이시며, 몰몬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조셉 스미스는 선지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참되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조셉 스미스의 첫번째 시현에 관한 기록들은 왜 조금씩 다른가요?

매트 그로우

조셉 스미스는 첫번째 시현에 관해 서로 다른 네 개의 기록을 손수 기록했거나 서기들에게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 기록들은 줄거리는 일관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놀랄 일은 아닙니다. 만일 그 기록들이 서로 완벽하게 일치했다면, 역사가로서 저는 그 점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기억력은 그렇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은 다른 역사 기록이나 경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9:7; 22:9 참조)

또한 성스러운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점도 유념해야 합니다. 조셉은 언어를 “작고 좁은 감옥”이라고 했습니다.(in History of the Church, 1:299) 여러분이 했던 가장 성스러운 경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습니까? 우리는 여러 개의 기록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복음 주제 관련 글에서 첫번째 시현에 대한 네 가지 기록을 읽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 더 깊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몰몬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림과 둠밈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케이트 홀브룩

조셉 스미스와 금판

삽화: 데이비드 그린

조셉 스미스는 하나님의 은사와 권능으로 몰몬경을 번역했습니다. 몰몬경에서 언급된 우림과 둠밈은 판들과 함께 묻혀 있었습니다. 모로나이가 조셉에게 금판을 주면서 우림과 둠밈도 함께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조셉이 번역에 사용한 선견자의 돌은 판들과 함께 묻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조셉이 여러 해 전에 발견한 것으로, 영적인 계시에 주파수를 맞추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셉은 두 가지를 다 사용했습니다.

조셉의 서기 역할을 한 에머 스미스가 이후에 회고한 바에 따르면, 조셉은 자리에 앉아 번역을 다시 시작할 때면 “아까 어느 부분을 했죠? 우리가 어디까지 했죠?”라고 묻지 않고, 중단했던 지점에서 바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조셉 스미스가 몰몬경을 번역하고 3년이 지난 후에 쓴 개인 일지를 보면, 거기엔 온통 줄을 그어서 지운 단어들, 어설픈 생각,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투성이입니다. 그런데 구술된 몰몬경 페이지를 보면, 그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완벽하고 훌륭한 산문체에, 줄을 그어서 지운 것도 없고, 문장도 완벽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 점도 매우 흥미롭지만, 제게 더 중요한 것은 몰몬경의 내용입니다. 저는 몰몬경에 나오는 베냐민 왕에게서 판단보다는 관용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앨마에게서는 침례를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침례받을 때 우리는 동료 성도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몰몬경에 나오는 몰몬과 모로나이에게서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이 책은 제가 누구이며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복수결혼

저는 복수결혼과 관련해서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복수결혼에는 많은 희생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큰 사랑과 화합도 있었지만 희생도 있었으며, 그런 결혼 관계에 있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희생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복수결혼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 중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했고 많은 사람을 축복했습니다.

둘째, 빌리트 킴볼처럼,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 교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개인적인 계시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2

그리고 세 번째는 교회의 선임 평의회에서는 복수결혼이 실행된 그 목적을 완수했다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를 시행한 성도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이미 완수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완전한 계획을 마련하신 사랑 충만하신 하늘 아버지가 계시고, 그분의 계획은 행복의 계획이며,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행하신 구주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초기 성도들이 복수결혼을 시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케이트 홀브룩

복수결혼에 관한 몰몬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주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바라시는 바는 한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이지만, 의로운 백성을 일으키기 위해 복수결혼을 명하시는 드물고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야곱서 2:30 참조) 조셉 스미스에게 복수결혼을 실행하도록 명하신 것도 이 드문 예외에 속합니다. 조셉은 수년간 복수결혼을 시행하기를 주저했지만, 결국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명하시는 일에 순종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조셉은 1830년대 중반에 복수결혼을 실행하려고 노력했으나 실제로 그가 자신이 신뢰하는 동료들에게 서서히, 그리고 조금 더 공식적으로 복수결혼을 실행하도록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1841년부터였습니다. 동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 원리를 이해하게 해 달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로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그 당시 그들에게 옳은 일이라는 개인적인 영적 증거를 받았습니다.

복수결혼이 공식적으로 실행된 약 50년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얼마나 많은 성인 후기 성도가 실제로 복수결혼을 행했는지 알아내려고 아직까지도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성도들 중에서 소수만이 복수결혼을 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 중 많은 이가 우리 교회에서 가장 독실하고 충실한 회원들이었음을 압니다. 1890년에 윌포드 우드럽(1807~1898) 회장은 복수결혼 시행을 끝낸다는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선언문을 듣고 안도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복수결혼이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선언문을 듣고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희생을 치렀고, 이 원리에 대한 간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교회 회원들은 과거에 복수결혼을 시행한 것이 다음 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승영이나 영원한 영광을 위해 복수결혼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일부일처제가 원칙이며 복수결혼은 예외라는 사실에 감사하지만, 이 원리를 시행한 우리 영적인 선조들의 간증과 명예로운 순종을 깎아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순종했으며 이 원리가 옳다는 간증이 있었습니다.

성전과 성약

커틀랜드 성전에 나타난 모세, 일라이어스, 엘리야

모세, 일라이어스, 엘리야, 게리 어니스트 스미스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 중 하나는 커틀랜드 성전을 건축하고 헌납한 것이었습니다. 조셉이 계시로 받은 헌납식 기도문이 교리와 성약 109편에 나와 있습니다. 그 기도문에서 그는 주님께 성도들이 성전을 지으며 바친 노고와 희생을 받아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성전 헌납식을 한 일주일 뒤,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는 또 다른 시현을 받았습니다. 이 시현은 유월절이기도 한 부활절에 주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시현으로 오셔서 그 집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힘을 다하여 내 이름을 위하여 이 집을 지[었으므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10:6) 그 시현이 닫히고 난 후에, 세 명의 고대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와서 땅의 사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집합하는 열쇠를 회복해 주었고, 일라이어스가 와서 아브라함의 복음의 경륜의 시대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와서 인봉의 권능의 열쇠들을 회복해 주었습니다.(교리와 성약 110:11~16 참조)

그런 열쇠의 회복은 주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몰몬경뿐만 아니라 그런 열쇠와 성전 의식들도 필요했습니다. 그 열쇠들이 지금만큼 더 중요했던 적도 없었습니다.

저는 십이사도 중 한 분이 선지자가 되면 그분의 마음이 극적으로 성전 의식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리노이주 나부 성전 헌납식에서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님과 함께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 성전이 지어진 것에 대해 얼마나 깊이 감격하셨는지, 그리고 성도들에게 성전을 가져다주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기억합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1927~2018) 회장님도 계속해서 그런 노력을 하셨으며 힝클리 회장님과 똑같은 영감을 하늘로부터 받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러셀 엠 넬슨 회장님도 극적인 방식으로 그와 같은 영감을 받으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선지자의 역할이 부여되자, 그분은 성전 의식의 소중함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교회 회장이 되고 전하신 첫 번째 메시지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성전으로 가서 자신을 위한 의식을 받고 성약의 길에 머물라는 권고였습니다. 그런 다음, 바로 그분은 어떤 이유로든 성약의 길에서 벗어났다면, 다시 그 길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3

성전 사업이 어떻게 초기의 후기 성도들에게 축복이 되었습니까?

매트 그로우

조셉 스미스가 사망했을 때, 나부 성전의 벽은 아직 절반도 채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브리검 영(1801~1877) 회장은 곧 성도들이 다시금 쫓겨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성전이 거의 완공되자마자 성전을 포기하고 떠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저희가 이곳에 머물러서 성전을 완공해야 할까요, 아니면 지금 떠나야 할까요?” 응답이 분명하게 왔습니다. “머무르라.”(see Brigham Young diary, Jan. 24, 1845, Church Archives; Ronald K. Esplin, “Fire in His Bones,” Ensign, Mar. 1993, 46) 엔다우먼트 의식과 인봉 의식이 너무나 중요했기에 성도들은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내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성전에 쏟아부었습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부 주변에 있던 성도들의 집이 불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을 완공하며 서부로 갈 채비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845년 12월에 성전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성도들은 성전을 부분적으로 헌납하고, 합당한 자들에게 엔다우먼트를 부여하고, 남편과 아내를 서로에게 인봉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몇 달 동안, 그들은 모든 사람이 서부 대이동을 영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 동일한 권능을 통해 아내와 자녀와 부모님과 과거 세대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인봉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심오하고도 성스럽게 여겨집니다. 그것이야말로 회복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회복과 관련된 사건 중 여러분의 간증을 강화해 준 사건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케이트 홀브룩

자녀들과 함께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여성

삽화: 데이비드 그린

에머 스미스가 미주리에서 박해를 피해 달아나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미시시피강은 군데군데 얼어 있었을 뿐, 가재도구와 사람들을 실은 우마차가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얼지는 않았습니다. 강폭도 넓어서 그 강을 건너는 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여섯 살, 여덟 살짜리 아이들이 각각 에머의 양쪽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었고, 그녀는 한쪽 팔에 두 살배기 아이를, 다른 쪽 팔에는 젖먹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에머는 조셉의 서기와 인척 관계였던 한 여성이 바느질해 준 면 가방 몇 개를 허리춤에 달고 있었습니다. 에머는 치마 속에 매단 그 가방 안에 조셉이 여러 달 동안 작업한 유일한 성경 번역본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녀는 물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문서와 아이들을 품은 채 얼어붙은 강을 한 발짝씩 내디디며 건너갔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용기와 신앙의 위대한 표징입니다.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할 때, 그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개척자 광경

위: 삽화: 댄 버; 퀸시에서의 기적, 줄리 로저스; 리버티 감옥에 있는 조셉 스미스, 그레그 케이 올슨

“기뻐하라”

많은 사람이 시련과 역경을 겪습니다. 그중에는 선택의지에서 비롯된 어려움도 있고, 대적 때문에 생긴 어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랑 충만하신 하늘 아버지가 계시며, 비록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지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우리를 축복할 수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1838년에서 1839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동안 미주리를 탈출해서 나부로 들어간 성도들의 수가 8천 명에 달했다고 말합니다. 겨울 동안 말입니다. 조셉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는 리버티 감옥에 있었고 성도들이 겪는 일 때문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는 버림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열악한 상황에서 그는 가장 아름다운 경전 구절에 속하는 교리와 성약 121, 122, 123편을 받았습니다. 그 장들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에서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다룹니다.

“조셉은 … 무고한 성도들을 대신해 읍소했다. ‘오 주여, 어느 때까지 그들이 이러한 부당한 처사와 불법적인 억압을 당해야 당신의 마음이 그들에게 부드러워지시[겠나이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다. ‘내 아들아, 네 영혼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네 역경과 네 고난은 잠시 뿐이리니, 그러고 나서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내면,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들어 올리실 것이요, 너는 너의 모든 원수를 이기리라.’

주님은 조셉을 잊지 않으셨다고 확인해 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지옥의 바로 그 턱이 입을 크게 벌려 너를 삼키려 할지라도, 내 아들아, 이 모든 일이 네게 경험이 되고 네 유익이 될 줄 알라.’

구주께서는 조셉에게 성도들의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당신이 겪으신 고통보다는 크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주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끝낼 수 있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하시는 대신 속죄 희생의 일부로서 그들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그들과 함께 고난을 겪는 편을 택하셨다. 그분은 그 고통을 겪음으로써 자비로워지셨고, 고난 속에서 그분께 의지하는 모든 이를 구하고 단련할 권능을 얻으셨다. 주님은 조셉에게 인내하라고 이르시며, 절대 그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히버 시 킴볼(1801~1868) 장로는 미주리 대법원의 재판관들이 조셉을 석방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반대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히버는 리버티 감옥으로 돌아갔지만, 지하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이 나쁜 소식을 조셉에게 고함을 질러서 전해야 했습니다.

조셉은 그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그러고는 히버에게, “가능한 한 빨리 모든 성도들을 멀리 데려가십시오!”라고 지시했습니다.4

여기에는 한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유혹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십시오. 성신에 의지하십시오. 리버티 감옥의 조셉과 미주리에서 나부로 피신한 성도들의 모범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힘의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저는 사도로서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저의 간증을 전합니다. 저는 그분의 신성하심에 대한 증인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교회를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될 방법으로 인도하고 지도하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살아 계심을 간증합니다.

devotionals.ChurchofJesusChrist.org에서 이 영적 모임의 전 과정을 시청할 수 있다.

  1. 이 자료는 history.ChurchofJesusChrist.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See Orson F. Whitney, Life of Heber C. Kimball (1945), 327.

  3. 러셀 엠 넬슨, “우리가 함께 나아갈 때”, 『리아호나』, 2018년 4월호, 7쪽 참조.

  4.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1권, 진리의 표준: 1815~1846』(2018), 389~390쪽; saints.ChurchofJesusChrist.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