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
2007년 10월


2:3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행합니다.

저는 조셉 비 워스린 장로님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1897년에 시인 루드야드 키플링은 교만에 대해 대영제국에 전하는 다음과 같은 경고의 글을 썼습니다.

소동과 외침은 사라지고,

대장과 왕들은 떠나는데,

그 옛날 그대의 희생은 그대로네,

우리 겸손하고 상한 심령,”

키플링이 그 옛날 희생으로서 통회하는 심령에 대해 말했을 때, 그는 아마 시편 51편에 있는 다윗 왕의 말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 [즉,]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17절). 다윗의 시는 구약 시대에서조차도 주님의 백성은 번제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경륜의 시대에서 요구된 희생 제물들은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을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인 메시야의 속죄의 희생을 상징했습니다. 앰율레크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보라, 이것이 율법의 온 뜻이니, 곧 모든 것이 저 크고도 마지막이 되는 희생을 가리킴이라 …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니]”(앨마서 34: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미 대륙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번제를 폐할지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하나도 받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

이에 너희는 상한 마음 … 을 가지고 내게로 오면 내가 그에게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줄 것이라”(제3니파이 9:19~20).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왜 희생으로 간주됩니까?

모든 면에서, 우리는 구주의 생애에서 완벽한 모범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전혀 죄가 없으셨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나타내 보이신 것처럼,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생을 사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6:38).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 내게 배우라”(마태복음 11:29). 그리고 속죄에 수반된 최후의 희생을 치를 때가 왔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쓴 잔을 마시지 않고 물러서려고도 하셨지만,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 드린 구주의 완전한 순종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의 완전한 모범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상한 마음이란 경건의 영원한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이 모두 그분께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요구하는 희생은 모든 형태의 교만을 버리는 희생입니다. 숙련된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처럼, 상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주님의 손안에서 반죽이 되어 모양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 역시 회개의 전제 조건입니다. 리하이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한즉 구속은 거룩하신 메시야 안에서 거룩하신 메시야를 통하여 임하나니 …

보라, 그는 죄를 위한 희생으로 자신을 바치사,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닌 모든 자를 위하여 율법의 목적에 부응하시나니, 그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율법의 목적이 부응될 수 없느니라”(니파이후서 2:6~7).

우리가 죄를 짓고 용서를 바랄 때,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은 “회개함에 이른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린도후서 7:10)을 경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로부터 깨끗해지려는 소망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우리의 마음이 슬픔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화평을 맛보고자 원할 때 옵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반항이나 원망 없이 기꺼이 행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배웁니다. 이렇게 유순해진 상태에서 속죄는 효력을 발휘하고 참된 회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회개한 사람들은 양심의 평안과, 하나님과 화해한 기쁨으로 그들을 채워주는 성신의 성결케 하는 권능을 경험할 것입니다. 신성한 속성이 놀랍게도 우리에게 거할 때, 우리에게 상한 마음으로 생활하도록 가르치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즐거움과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 받을 때, 상한 마음은 유혹에 대항하는 신성한 방패가 됩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 마음이 상하였고 나의 심령이 통회하오니, 지옥의 문이 내 앞에서 내내 닫혀 있기를 원하나이다!”(니파이후서 4:32) 베냐민 왕은 만일 그의 백성들이 지극히 겸손하게 산다면, 그들이 항상 기뻐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고, … 죄사함을 항상 간직하게”(모사이야서 4:12)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바칠 때 세상적인 매력은 간단히 그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상한 마음의 특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해서 받으신 고통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구주께서 모든 인간을 위한 죄를 짊어지셨을 때, 그분은 “만물 아래로 … 내”려가셨습니다.(교리와 성약 88:6) 골고다에서 그분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이사야서 53:12) 하셨으며,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완전한 사랑으로 그분의 큰 심장은 문자 그대로 터질 듯 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주와 그분의 고통을 기억할 때, 우리의 마음도 구주에 대한 감사로 벅찰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 자신 전부를 그분께 희생으로 드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화평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이사야서 61:1)실 것이며 “감미로운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감미로우며 … 순결한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순결한”(앨마서 32:42)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