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지금 행하십시오
2007년 10월


2:3

지금 행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인류의 구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비로운 변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세 자녀의 아버지이며 오늘 저녁 이 신권회에 함께 참석하고 있는 저의 장남이 11살이었을 때, 그는 학교에서 자신의 가족이 만들어 먹는 음식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요리의 조리법을 제출하는 숙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규모의 춘계 바자회에 기증하기 위해 제 아들을 비롯한 6학년 학생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요리책을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프로젝트의 내용을 설명하시고 마감일이 다음 주 금요일이라고 발표하셨을 때 제 아들 브렛은 나중에 시작해도 끝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즉시 결론을 내리고는 그 일을 마음 속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그 다음 주 초에 선생님께서 금요일이 마감일이라고 학생들에게 상기시켰을 때 브렛은 목요일 밤에도 얼마든지 그 과제를 쉽게 끝마칠 수 있으며 그때까지는 더 재미있는 다른 일들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감일인 금요일 아침,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준비한 조리법을 교실 앞쪽으로 전달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태만했던 브렛은 그 과제를 잊고 있었습니다. 긴장하고 당황한 브렛은 가까이 앉아 있는 급우에게 자신의 상황을 고백했습니다. 도움을 주고자 했던 그 친구는 “내가 조리법을 하나 더 가져왔어. 원하면 그걸 써도 돼.”라고 말했습니다. 브렛은 재빨리 그 조리법을 받아 그 위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는 제출했습니다. 자신의 준비 부족 때문에 초래될 수 있는 결과를 모두 모면했다고 느끼면서 말입니다.

몇 주가 지난 후 어느 날 저녁, 저는 퇴근을 한 후 저녁에 있을 교회 모임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집에 도착했습니다. 수 년간 감독으로 봉사했던 저는 불과 며칠 전에 스테이크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저희 가족은 저희가 가진 종교의 신조에 따라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교회 회원으로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현관문에 들어서자 제 아내 다이앤이 “여보, 잠깐 이것 좀 보셔야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책장이 한 장 접혀 있는 제본된 책 한 권을 제게 건넸습니다. 얼핏 보니 책 제목이 노엘라니 학교의 인기 조리법-1985였습니다. 표시가 된 쪽을 펼쳐보자 다음과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홀스트롬 가족의 인기 조리법-바카르디 럼주 케이크.”

우리 중 대다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완전히 개종되는 것을 미루다가 단순히 우리를 창피하게 하는 것 훨씬 이상의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게으름, 두려움, 합리화, 혹은 신앙의 결핍 때문에 온전한 영적 참여를 미룹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할거야”라고 자신을 설득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으며, 마침내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 조차도 진보의 손실과 필연적인 퇴보는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태만의 정도를 부분적으로나마 진단하기 위해 다음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십시오.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연구와 또한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는]”(교리와 성약 88:118) 태도, 즉 우리가 배운 바가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이어지는 태도입니까? 아니면 “이미 예전에 다 들은 내용인데”라는 태도로 영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 접근하는 것을 봉쇄하여 태만이 자신의 인격의 일부가 되도록 허락하십니까?

회복된 교회의 초창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계명이라면 어떠한 것도 순종하겠다고 성약을 맺었던 어느 한 저명한 구도자에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즐거이 말씀을 받았으나, 즉시 사탄이 그를 유혹하였고 … 세상의 염려가 그로 하여금 말씀을 저버리게 하였느니라.”(교리와 성약 40:2) 이 말씀을 주님께서 명백한 어조로 말씀해 주신 다음 구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나의 율법을 받고 행하는 자, 그가 나의 제자니라.”(교리와 성약 41:5)

앨마는 감정에 북받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또 이제 나의 형제들아, 내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참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큰 염려를 가지고 바라노니, 너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너희 죄를 던져 버리고, 너희의 회개의 날을 미루지 말고”(앨마서 13:27)

앨마의 친구이자 선교 동반자였던 앰율레크는 이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 공포했습니다.

“이는 보라, 이 생은 사람들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할 시간이라. 참으로 보라 이 생의 날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수행할 날이니라.

또 이제 너희가 그처럼 많은 증거를 가졌은즉,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회개의 날을 끝까지 미루지 말라.”(앨마서 34:32~33)

제가 아론 신권 교사 직분이었을 때, 몇 달 동안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제 침실 창문 밖에서 마당 일을 하시던 아버지의 소리에 잠을 깨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항상 제 방 창문 아래서 일을 시작하셨는지 파악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그 소음을 무시하려고 한 동안 노력한 후에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집 둘레 마당 손질을 돕는 한 주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아침에 시간에 맞춰 빨리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몇 번 있고 나서인지, 아니면 제가 일하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의 반복적인 격려가 필요했던 다른 비슷한 사건들 때문인지,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저와 함께 마주 앉아 게으르기로 유명한 동물인 나무늘보 사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교리와 성약을 펴고 제게 다음 구절을 읽게 하셨습니다. “이는 보라, 내가 범사에 명령해야 함은 적절하지 아니함이라. 무릇 범사에 강요당하는 자는 게으르고 현명하지 못한 종이니, 그런즉 그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하느니라.”(교리와 성약 58:26) 그날 이후로 그 사진과 교훈은 제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 왔습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이 사용하신 효과적인 격려 방법 중 하나는 “행하십시오” 라는 간단 명료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나중에 시간 엄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씀을 “지금 행하십시오.”라는 표현으로 그 의미를 확장하셨습니다.

킴볼 회장님은 또한 “태만은 승영을 놓치는 길”이라는 심오한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인간의 가장 심각한 결점 중 하나는 해야 할 일을 뒷날로 미루기, 즉 개인의 책임을 현재에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잃은 채 정신적이고 영적인 나태와 세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중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 [2006년], 4~5쪽)

많은 사람들이 힘든 일이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과정, 즉 쉬운 길을 원합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실제로 이런 길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와이 주 호놀룰루 시 위의 녹지대 계곡 뒤편에서 운전을 하면서 위쪽 표지판을 쳐다보니 바로 그곳에 이지 스트리트, 즉 쉬운 길이란 거리가 있었습니다. 제 발견이 제 인생을 변화시켜 줄 혜택을 가져다주리라 꿈꾸며 저는 그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고자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그렇지만 카메라 눈을 통해 바라보면서 초점이 분명해지자, 제 마음 속의 상징적인 초점도 분명해 졌습니다. 크고 노란 표지판을 바라보며 저는 현실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이지 스트리트에 들어서자 노란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습니다. ‘막다른 골목’

태만은 어떤 가치 있는 일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일시적으로 덜어주므로 편한 길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태만은 죄로 가득 찬 무거운 짐과 만족감이 결여된 공허함만을 낳습니다. 현세적인 목표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적인 목표는 태만으로는 결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신앙을 행사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의를 행하기로 결심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인류의 구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비로운 변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분들께 호소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와 그 복음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를 받았으나 아직 침례 및 확인을 받지 않으신 분들.

  • 아론 신권이나 멜기세덱 신권을 소유하신 분들 중 범법 때문에, 혹은 아무런 임무도 수행하지 않아서 신성한 맹세와 성약(교리와 성약 84:33~39 참조)에 반하는 생활을 하시는 분들.

  • 과거에 엔다우먼트를 받았으나 현재 성전 추천서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교회 회원들.

  • 다른 교회 회원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상해 어떠한 방법으로든 교회에서 멀어진 회원들.

  • 회개하지 않은 죄의 짐을 짊어지고서 남을 속이는 이중생활을 하는 분들.

여러분과 우리 모두는 변화할 수 있으며 바로 지금 당장 변화할 수 있다고 간증드립니다. 그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기쁨 안에 삼키[워질]”(앨마서 31:38)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