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노하기를 더디하십시오
2007년 10월


2:3

노하기를 더디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이 화를 내지 않고 살도록 축복하시고 영감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곳 컨퍼런스 센터나 멀리 바다 건너 교회 등 곳곳에 모여 있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이 컨퍼런스 센터에서 말할 수 있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저는 오늘 저녁 화를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주제가 다소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에 있는 잠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우리가 문제에 빠지게 되는 경우는 화를 낼 때입니다. 운전 중 화를 내는 것은 분노의 증오스러운 표현입니다. 저는 수감자 대부분이 감옥에 있는 이유가 그들이 화가 났을 때 무언가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화가 나 있을 때 그들은 욕설을 퍼붓고, 자제력을 잃고, 심지어는 살인과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순간적으로 화를 냄으로써 몇 년간의 뉘우침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찰스 더블유 펜로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우리 교회로 개종한 사람으로서 영국에서 약 11년 동안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그는 해임되었을 때 시온으로 여행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몇 가지 소유물을 팔았습니다. 그를 지켜본 일부 성도들은 그가 교회 재산을 취해갔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은 그를 분노하게 했으며, 그는 이층의 자기 방으로 올라가 앉아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Karen Lynn Davidson, Our Latter-day Hymns: The Stories and the Messages [1988년], 323쪽 참조)

감정을 다스려라, 오 나의 형제여

격동하는 충동적인 영혼을 길들여라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지혜롭게 제어하라

감정을 다스려라, 냉정하고

침착한 마음에 힘이 있으니

분노는 이성을 잃게 하고

맑은 시력을 눈멀게 하네

감정을 다스려라,

친구나 원수를 비난하지 말라

비록 비난의 물결이

진리의 홍수처럼 몰려올지라도

비판하기 전에 변명을 들으라

그러면 빛이 비치리니

얕은 시냇물 아래에

더러운 것이 숨어있음을 보리라

감정을 다스려라, 오 나의 형제여

격동하는 충동적인 영혼을 길들여라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지혜롭게 제어하라

오래 전에 저는 철도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철도원이 정처 없이 플랫폼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기차를 다른 선로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화를 냈습니다. 모자를 길 위에다 내던지고는 그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마치 술 취한 선원처럼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거기 서서 유치한 그의 행동을 보고 웃었습니다. 제가 웃는 것을 보고 그도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조용히 기관차에 탑승하여 빈 차량을 끌어다 빈 선로로 이동시켰습니다.

저는 전도서에 있는 한 구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도서 7:9)

화는 모든 악한 행위의 근원입니다.

저는 조간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2000년 이후로 결혼 25주년을 축하할 수도 있었던 미국인들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그 중요한 시점에 이르기도 전에 이혼하거나, 별거하고, 또는 배우자와 사별했다.”(Sam Roberts, “Most U.S. Marriages Don’t Get to Silver”, Deseret Morning News, 2007년 9월 20일자, A1쪽)

배우자와의 사별은 물론 당사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혼이나 별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혼은 대개 분노의 쓴 열매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말대로 사랑에 빠집니다. 각자는 서로의 눈에 훌륭하게 보이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느라 재정적으로 무리를 하며 결혼을 합니다. 한 동안은 모든 것이 더 없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행동이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작은 결함이 커다란 결점 찾기로 확대되며, 그들은 관계를 깨고, 별거한 후, 심한 증오와 비통함을 갖고 이혼하게 됩니다.

그것은 수많은 경우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순환의 과정입니다. 그것은 비극이며,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개는 분노의 쓴 열매입니다.

저는 제 결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제 영원한 동반자는 3년 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는 6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아내와 말다툼을 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아내는 저와 함께 여행을 했고 모든 대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사람들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행동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몇 년 전에 구입한 어떤 작은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었습니다.

“한번은 신문에서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이 에드워드 에버렛에게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에버렛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신문을 산 사람 중 절반은 그 기사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 기사를 본 사람 중 절반은 그것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읽은 사람 중 절반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이해한 사람 중 절반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믿은 사람 중 절반은 여하튼 개의치 않는 사람들입니다.’”(“Sunny Side of the Street”, 1989년 11월; 또한 Zig Zigler, Staying Up, Up, Up in a Down, Down World [2000년], 174쪽 참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를 과대평가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원한이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경우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고통스러운 지병처럼 우리의 모든 시간과 주의력을 소진케 할 수 있습니다. 기 드 모파상은 이것을 묘사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것은 장날 마을에 내려갔던 오치꽁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그는 길에서 넘어졌는데 그 때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노끈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집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을 평소 적대감을 갖고 있던 마구업자가 보았습니다.

같은 시각에 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신고가 시장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오치꽁이 주운 것이 지갑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것을 주운 죄로 고소되었습니다. 그는 그 고소를 적극 부인했습니다. 그의 몸을 수색했으나 나온 것은 노끈 조각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비방으로 괴로워했으며 결국 그것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그는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병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의 정신은 점점 더 쇠약해졌으며, 12월 말경 병이 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는 1월 초에 죽었다. 죽음의 고통 속에서 그는 계속 헛소리를 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노끈 한 [조각], 노끈 한 [조각]. 보십시오, [시장님], 이게 그것입니다.” (“The Piece of String”, http://www.online-literature.com/ Maupassant/270/ 참조)

기자들이 어떤 사람의 생일날 인터뷰를 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그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결혼할 때 만약 다툴 일이 생기면 우리 중 한 사람이 집 밖으로 나가 있자고 했습니다. 내가 장수를 누린 비결은 결혼 생활을 통해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분노가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경전에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환전업자들을 몰아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태복음 21:13)

하지만 이것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표출이라기보다는 꾸짖음의 형태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제 마치면서 저는 여러분께 감정을 자제하고 얼굴에 미소를 띠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러면 분노가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 감사와 존경의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의 삶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결혼생활과 가족 관계는 보존될 것이며 훨씬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더 큰 선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화평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아무런 비통한 느낌도 없이, 우정과 감사와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삶을 살도록 축복하시고 영감을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