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2007년 10월


2:3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이 독립된 개체이며 세 분의 신성한 인격체라는 것이 경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밸라드 장로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하게 상반된 우리 시대의 경향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대의 사람들에게 이 후기의 사업이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1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은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이 사업의 경이로움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라고 권유할 때, 한 가지 그들이 궁금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대체로 이 문제에 관한 논쟁은 두 가지 교리적 쟁점, 즉 신회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정경에 추가될 수 있는 지속적인 계시의 원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 신앙을 변명할 필요는 없지만, 오해를 받는 일도 원치 않습니다. 이해를 증진시키고, 우리가 기독교인임을 분명히 선언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저는 오늘 방금 언급한 두 가지 교리적 쟁점 중 첫 번째 것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는 신앙개조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믿는다.”2 우리는 신회를 구성하는 이 신성한 세 분이 목적과 방법과 간증과 사명에 있어서 하나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동일한 자비심과 사랑, 공의, 은혜, 인내, 용서, 그리고 구속과 같은 신의 속성으로 충만함을 믿습니다. 진리가 아니기에 경전에 결코 언급되지 않은 삼위일체설, 즉 그분들이 하나의 물질로 결합되어 있는 세 가지 인격체라는 믿음을 제외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중요하고 영원한 특성에 있어서 그분들이 하나임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명한 Harper’s Bible Dictionary(하퍼 성서 사전)에는 “4~5세기경 교회 대 평의회에서 정의한 삼위일체의 공식 교리는 [신약전서]에 나오지 않는다.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신에 관한 현대의 기독교적인 견해를 고수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결의를 논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회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신약시대 이후의 기독교 역사와 다르며,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교리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도록 신약시대 이후의 기독교 역사에 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기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종교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당시 큰 쟁점이었던,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주장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반 성직자, 철학자, 고위 성직자들의 열띤 논쟁을 통해 나온 결과가 (이후 125년 동안 세 번의 주요 종교회의 끝에)4 바로 니케아 신조였던 것입니다. 니케아 신조는 이후 아타나시우스 신조 등으로 여러 번 개명되었습니다. 이렇듯 여러 차례에 걸친 신조의 진화와 개정, 그리고 그 이후에 제정된 다른 신조들은 하나님과 아들과 성신은 추상적이며, 절대적이고, 초월적이며, 무소부재하며, 동체이며, 영원히 공존하며, 불가해하고, 육신 지체 또는 감정이 없다고 공표했습니다. 그 신조에 따르면, 세 분 모두 개체이지만 동시에 한 분입니다. 이는 종종 “삼위일체설의 신비”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들은 세 분의 독립된 개체이지만,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입니다. 세 분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은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한 분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신성에 대한 그러한 개념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평가들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혼란스러운 개념이 교회에 주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4세기의 수도사들이 ‘아 슬프도다! 그들이 내게서 나의 하나님을 빼앗아 갔구나. … 내가 누구를 숭배하며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모르겠도다.’5 하고 부르짖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을 닮으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 즉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6라고 한 기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의 목적은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다른 종교의 교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의 교리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교리를 존중합니다. (이것 역시 신앙개조의 한 조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회에 관한 4, 5세기 당시의 견해를 고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초기의 기독교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이었음에도 신회에 관해 4, 5세기의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었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7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이 독립된 개체이며 세 분의 신성한 인격체라는 것을 틀림없고 명백한 다음의 사건들, 즉 방금 언급한 위대한 구주의 중재 기도, 요한의 손을 통해 받은 그의 침례, 변형의 산에서의 경험,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 등 네 가지 예에서 경전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신약전서에 나오는 이러한 예들과 우리가 알고 있는 더 많은 예들8을 볼 때, 예수께서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9라고 말씀하신 뜻을 묻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다른 상황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10 예수께서는 적대자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11 물론 예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 어린 순종심을 항상 갖고 계셨으며 이 때문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즉 하나님] 이시니라”12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13

예수께서는 “아버지시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14 그리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라는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포함하여 그 모든 세월 동안 누구에게 그렇게 간절히 간청하셨습니까? 완전하게 일치된 신회의 구성원들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개체라는 경전상의 증거를 인정하는 것이 다신론의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성한 분들의 속성에 관해서 예수께서 내려주신 위대한 계시의 일부입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의 다음 말씀은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16

일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기독교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고대 선지자와 사도들이 믿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된 육신을 갖고 계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17 경전에 근거를 둔 이 믿음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강조해서 묻겠습니다. 육신을 가진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불편하다면, 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육신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취했다는 교리)과 속죄, 육신의 부활이 모든 기독교의 중심 교리이며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 됩니까? 육신을 갖는 것이 하나님께 필요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원치 않는 것이라면, 왜 인류의 구속주께서 사망의 권세와 무덤으로부터 그분의 육신을 구속하시고 현세는 물론 영원토록 다시는 영과 육신이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까?18 육신을 가진 하나님의 개념을 거부하는 사람은 필멸의 그리스도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모두 거부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기독교 사상에 관해 궁금해 하셨던 분들 중 제 말씀을 듣는 모든 분에게 이 간증을 전해드립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문자 그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아들이라는 것을 간증합니다. 예수는 아버지의 지시 아래,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창조하신 우리의 구주이며 구속주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동정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셨고, 생애 동안 제자들은 물론 적들도 목격한 수많은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신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힘을 갖고 계셨지만, 그분 역시 잠시 필멸의 상태에 계셨기에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심으로써, 그분은 세상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고, 아담으로부터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있을 모든 슬픔과 질병, 모든 마음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무한한 대가를 치르셨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육체적으로는 무덤을, 영적으로는 지옥을 이기셨으며, 인간의 가족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부활하셨으며, 부활의 과정을 완성하기 위해 아버지께 올라가신 후에, 구세계와 신세계에 있던 수백 명의 그를 따르던 자들에게 되풀이해서 나타나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저는 그분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며,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서 지상을 다스리시기 위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나 이름이 하늘 아래 달리 주어지지 않았고, 우리는 오직 그분의 공덕과 자비와 영원한 은혜19에 의지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교리에 대한 저의 간증을 덧붙이자면, 복천년의 통치를 준비하시면서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육신을 가진 예수께서 이미 한 번 이상 지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1820년 봄,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바로 그 교리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열네 살 소년은 기도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드린 진지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영화로운 육신을 가진 개별 인격체로서 소년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약의 복음으로 되돌아가는 시점이자, 아담으로부터 오늘날까지 다른 선지자들이 전한 진리의 회복을 알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저의 증언이 참되며 하늘은 똑같은 확신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진리의 성신을 통해 우리 모두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20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후에 우리가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말뿐만 아니라 행위에서도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