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2009년 4월


2:3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신앙의 집에서는 두려워하고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이 아닌 신앙으로 살기를 선택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는 복음의 중요한 원리를 이야기하는 동안 성신이 함께 하시길 겸손히 바랍니다. 제 생애 동안 참된 신앙과 충실함의 위대한 모범을 볼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와 사랑을 표합니다. 훌륭하신 부모님과 가족, 신권 지도자들과 사랑하는 선교사들, 훌륭한 자녀들과 제 사랑스러운 영원한 동반자에게 제 가슴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증인으로서 더 큰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와 소망을 느끼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제 삶에서 지금보다 더 절실히 신앙을 필요로 했던 시기가 없었습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자녀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 의 교리를 이해하도록”(교리와 성약 68:25)가르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복음 원리로서의 신앙을 인식하는 것 이상을 요구합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사물 또는 사람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Bible Dictionary, “Faith”, 669쪽) 입니다. 참된 신앙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행위와 권능의 원리(Bible Dictionary, 670)입니다.” 그것은 단지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필요로 합니다. 신앙은 성신을 통해 오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인 은사입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신성한 속성과 온전한 품성, 그분의 가르침, 속죄, 부활, 그리고 신권 권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원리들에 순종함으로써, 그분과 그분의 성임 받은 종들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두터워지고, 그분이 약속하신 축복들에 대한 확신이 커지게 됩니다.

이것 외에는 우리가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인생의 토대도 없습니다. 불확실하고 어려운 시기에, 신앙은 참으로 우리의 모든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영적인 은사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교육, 훈계, 운동, 예술, 물질적인 재산을 주더라도, 만일 우리가 신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준 것은 거의 없는 셈입니다.

“신앙은 신앙을 가진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음으로써 타오를 수 있습니다.”(경전 안내서, 신앙, 161~163쪽; 또한 로마서 10:14~17 참조) 여러분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의 자녀들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확신을 여러분의 자녀들이 알고 느끼고 있습니까? “강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종에 의해 발전[됩니다]”(경전 안내서, 161쪽)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신앙이란 개인적인 의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그것은 의로움이 존재할 때에는 언제나 주어지며,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정도에 따라 신앙도 더 많이 부여된다.”(Mormon Doctrine, 2차 개정판, [1966년], 264쪽) 더 큰 신앙을 원한다면, 더 많이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건성으로, 또는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우리의 자녀들이 이 필수적인 영적인 은사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비록 작고 간단한 일들일지라도 정확하게 순종하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소망은 우리가 신성한 진리를 경험할 때, 우리 안에서 발전하는 신앙의 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마치 영적인 광합성과도 같습니다. 성신의 영향력이 모든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빛에 작용할 때, 광합성의 화학적 반응에 상응하는 영적인 결과물로서 가슴이 뛰고, 마음이 변화되며, 알고자 하는 소망이 생겨납니다. 신앙의 작은 입자들이 분자와 같이 서로 연결되고 연합하면 소망도 커지게 되고, 참된 원리에 따라 생활하려는 단순한 노력들을 하게 됩니다.

순종의 패턴이 발전할수록, 그 순종과 결부되어 있는 구체적인 축복들이 현실화되고 믿음은 더 분명해집니다. 소망과 희망과 믿음도 신앙의 한 형태들이지만, 권능의 원리인 신앙은 일관된 순종의 행위와 태도를 통해 옵니다. 개인적인 의로움은 우리의 선택에 따른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사이며,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거대한 영적인 권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마음과 힘과 생각과 능력을 집중할 때 발전하는 그런 단계의 신앙이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훌륭한 선교사의 눈에서, 용감하고 덕스러운 청녀의 눈에서, 의로운 부모들과 조부모들의 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젊거나 나이 들었거나에 상관 없이, 모든 나라와 문화에서, 모든 언어에서, 삶의 모든 환경과 지위를 막론하고 목격됩니다. 이것이 선지자 앨마가 이야기한 “신앙의 눈”(앨마서 5:15~26 참조)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직면한 암흑의 안개가 심히 클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참된 원리를 단단히 붙잡고 꾸준하게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런 단계의 신앙은 대단히 강력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이 있음이 꼭 필요[합니다.] … 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행하게 하시었나니, 그런즉 사람은 이편이나 저편에 의해 이끌리지 않고서는 스스로 행할 수 없었[습니다].” (니파이후서 2:11, 16)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보다 의심과 불신앙을 선택하도록 이끌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형의 산에서 초자연적인 영적 경험을 하고 돌아오셨을 때, 아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한 절박한 아버지가 다가왔습니다. 그 아버지는 간청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마가복음 9:23~24)

신앙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내쫓습니다. 단순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파괴적인 불신앙의 근원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신앙을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겨자씨로 신앙을 비교한 구주의 가르침은 이것의 실재성을 잘 보여줍니다.(마태복음 13:31~32)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신앙에서 우리가 가진 의심과 불신앙의 양 만큼을 뺀 나머지가 우리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최종적인 신앙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자문할 수 있습니다. “내게 남은 최종적인 신앙은 양수인가 음수인가?” 만일 여러분의 신앙이 의심과 불신앙을 초과한다면, 그 답은 양수가 될 것입니다. 만약 의심과 불신앙이 여러분을 조종하도록 놓아 둔다면 답은 음수가 될 것입니다.

물론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것을 거둡니다.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이 있기에,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키는 힘도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는 사탄의 직접적인 영향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개인적인 성향, 태도, 습관에서 기인합니다. 저는 이런 영향력들을 “여섯 가지 파괴적인 도전들(6D)” 이라고 부릅니다. 말씀 드리는 동안,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이 도전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의심(Doubt)입니다. 의심은 복음의 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빛이나 성신의 영향력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은 두려움과 관련된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의 부족에서 올 수 있습니다. 의심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신성한 정체성에 상반되는 것입니다.

의심은 낙담(Discouragement)으로 이끕니다. 낙담은 기대치에 못 미칠 때 옵니다. 만성적인 낙담은 기대치를 더 낮추며, 덜 노력하게 하고, 소망을 약화시키며, 점점 더 영을 느끼고 따르는 것을 힘들게 합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2004년],10쪽 참조) 낙담과 절망은 희망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낙담은 산만함(Distraction), 즉 집중력이 부족한 상태로 이끕니다. 산만함은 신앙의 눈이 가져야 하는 바로 그 초점을 흐리게 합니다. 낙담과 산만함은 사탄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들 중 하나이며 또한 나쁜 습관들이기도 합니다.

산만함은 태만(lack of Diligence)으로 이끄는데, 이것은 변함없이 참되고 충실하게 남으려는 결심을 반감시키고 어려움과 실망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앗아갑니다. 실망이란 감정은 삶에서 필연적인 부분이지만, 실망이 꼭 의심, 낙담, 산만함, 또는 태만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된다면, 궁극적으로 불순종(Disobedience)에 도달하게 되고, 불순종은 신앙의 토대를 붕괴시킵니다. 때때로 불순종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믿기를 거부하는 불신앙(Disbelief)을 낳습니다.

경전에서는 불신앙(Disbelief)을 마음을 완악하게 하기로 선택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감각은 무뎌지고 성신의 느낌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이 여섯 가지 파괴적인 도전들(6D)-의심, 낙담, 산만함, 태만, 불순종, 불신앙-은 모두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파괴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피하고 극복하도록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는 더 큰 영적인 힘을 필요로 합니다. 구주의 약속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나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내게 합당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리라.”(모로나이서 7:33)

저는 겸손하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고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 각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시며 구속주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살아 계시며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 몬슨 회장님을 통해 그분의 교회를 직접 이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기에 희망은 항상 우리 앞에서 밝게 미소 짓고 있습니다. 신앙의 집에서는 두려워하고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이 아닌 신앙으로 살기를 선택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