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다리를 건설함
“우리의 필멸의 인생은 신앙의 다리를 건설하고, 불사불멸과 영생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시간입니다.”
한 커다란 광고 회사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벽에 붙어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벽을 만드는 반면, 다리는 충분히 만들지 않는다.”(JCDecaux, France 회사)
참으로, 벽은 대체로 둘 이상의 존재를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심지어 영적으로 분리시키기 위해, 그들 사이에 장애물을 세우는 것입니다. 벽은 방어와 보호, 또는 분리의 개념으로써 만들어집니다. 어떤 벽들은 그 특성 때문에 유명하게 되었는데, 예루살렘 성벽, 중국의 만리장성, 그리고 베를린 장벽과 같은 벽들이 그렇습니다. 벽은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이해 부족의 벽”, “편협의 벽”, 또는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다”는 표현처럼 우리 언어 속에서 분리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리는 벽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다리는 불러모으고, 둘 이상의 존재를 연결하며 단합을 가져오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사이스교, 알렌비교 같은 몇몇 다리들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다리들이 있습니다. ‘다리’라는 말은 또한 “벌어진 간격에 다리를 놓다”, “상이점들을 다리로 잇다”라는 표현처럼 재결합 또는 단합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생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준비하는 시간”(앨마서 34:32)이라는 앨마의 말에 나와 있는 대로, 우리가 지상에 육신으로 존재하는 이유와 이 생의 목적을 생각할 때, 바로 이 목적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다리’라는 비유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불신과, 무관심, 두려움 또는 죄의 벽을 넘거나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삶에 신앙의 다리를 건설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멸의 인생은 신앙의 다리를 건설하고, 불사불멸과 영생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신앙의 다리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젊었을 때 저는 벨기에의 나무르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그 도시는 큰 강으로 인해 인접한 다른 도시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두 도시를 잇는 다리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로마 정복자들이 수 세기 전에 건립한 다리의 잔해 위에 여러 번 재건된 다리였습니다. 그 다리는 교통량을 감당하기에 너무 좁았으며 많은 아치들은 너무 작아서 큰 배들이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더 넓고 오직 하나의 큰 아치만 있는 새로운 다리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교량 건설을 위한 기초 공사가 강 양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속하게, 양쪽에서 거대한 두 개의 금속 상판이 강 중앙에서 결합되기 위해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량을 만드는 기술에 매혹되어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공사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러 갔습니다. 드디어 철재로 만든 초석인 중앙 부분에 양쪽 상판이 연결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두 상판을 이어 마침내 다리 위를 다닐 수 있게 되는 마지막 단계인 정교한 공사를 지켜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다리가 연결되자,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으며, 인부들은 서로를 포옹했습니다. 강이라는 장애물을 정복하고 극복한 것입니다.
제가 이 경험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 상징적 의미 때문입니다. 그 다리는 철재로 된 다리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인 우리가 다시 그분을 만나도록 해주는 신앙의 다리를 상징합니다. 다리의 중앙 부분인 초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중보자, 필멸과 불멸의 연결 고리,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 간의 연결, 지상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인류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고, 영적인 죽음과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죄와 필멸의 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그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세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구원의 계획의 핵심 부분입니다. 모세서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이는 절정의 시기에 올 나의 독생자의 피를 통하여 모든 인간에게 주는 구원의 계획이니라.”(모세서 6:62)
다리 저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에 대한 보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요한복음 3:16)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은사는 그의 아들의 크나큰 희생, 즉 속죄로서, 그것은 불사불멸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끝까지 견디면 영생도 가져다줍니다.(교리와 성약 14:7 참조)
그러므로, 신앙의 다리를 건설하려고 할 때, 아버지와 아들과 그의 속죄에 대한 확고한 간증을 우리 삶에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다리를 건설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원히 재결합할 수도 있고, 죄의 벽을 쌓아 그의 사랑과 자비로부터 멀어져 영원히 분리될 수도 있습니다.
성신의 은사는 신앙의 다리의 기초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 대한 거룩한 신앙의 행사를 통해서만 오며, 이 신앙은 죄를 회개하고, 다리의 난간 역할을 하는 구원의 의식을 받게 합니다. 성신의 음성에 귀기울일 때, 인생의 장애들을 극복하고 의로운 선택을 하게 하는 내적인 느낌과 속삭임을 듣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다리를 건너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리는 그 기초에 세워진 기둥의 힘때문에 폭풍을 견딜 수 있습니다. 죽음, 질병, 실직이나 재정적인 파탄과 같은 인생의 폭풍과 신앙의 위기는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때때로 재난이 너무 심한 경우, 하나님과 구세주의 존재까지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기에 더 큰 신앙을 간구하는 울부짖음은 항상 보혜사의 응답을 받는데, 이는 “변치 않는 … 동반자[와] … 의와 진리의 불변하는 홀”(교리와 성약 121:46)인 성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가 신앙으로써,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는 성신(요한복음 14:26 참조)의 영향력을 매일 간구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 해롤드 비 리 대관장님께서 어느 스테이크 대회에서 말씀하신 후에, 한 새로운 개종자가 적어 보낸 편지를 인용하여 설명하겠습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으로서의 삶은, 침례라는 탄생의 지점과 죽음으로 다시 시작되는 영생의 지점 사이에 흐르고 있는, 세속적인 것들과 죄들이 포효하는 강 위에 놓인 흔들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고 하신 말씀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침례 받은 지 얼마 안 된,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안전과 신앙을 느끼지만 점차 다리 아래 흐르는 강을 인식하고, 건너야 할 강의 광대함을 알게 되면, 안정감은 의심과 두려움에서 오는 고통에 자리를 내어주고 진로를 평탄하게 하는 기도와 신앙, 사랑, 봉사는 리듬을 잃습니다. 의심과 냉담함의 안개는 마음을 부식시키고 진로를 막아 강 건너편에 있는 강력한 사랑의 힘에 대한 반응을 제지합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은 건너기를 중단하고 무릎을 꿇고 다리에 매달리며 사랑의 힘이, 신앙과 건너갈 방향을 바로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대회 보고, 1965년 4월, 15쪽)
마지막으로, 부모와 자녀를 연결시켜 영원한 가족으로 단합시키지 않는다면 신앙의 다리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세대 간에 이 신앙의 다리를 건설하는 목적은 아버지와 아들이 영생을 달성하는 목적에서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계명이 주어졌습니다. 첫째,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또 부모는 자녀들에게 “주 앞에서 올바르게 생활할 것”(교리와 성약 68:28)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저는 어린 소년이었으며, 침략을 당한 우리 나라에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신뢰와 단합에 관해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전쟁의 위험을 일깨워 주시며 단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믿고 따라라.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거라.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너를 보호해줄거야.” 저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믿었으므로 단순히 어머니께 귀기울였습니다.
얼마 후, 저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제가 건너야 할 새로운 다리였습니다. 제 인생에서의 이 새로운 경험에 대한 준비로, 집을 나설 때 어머니는 제게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저는 어머니의 충고를 따랐습니다. 선생님께 순종하고 새로운 교칙을 잘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학교는 무지의 벽이 아니라 지식의 다리가 되었습니다.
신뢰와 단합의 교훈은 부모와 가족, 그리고 교사와 하나가 되게 하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그 교훈으로 후에 저는 주님의 교회에서 침례를 받아 구세주와도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은 제가 성전 성약을 지킴으로써 가족들 안에서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로서 신뢰와 단합을 계속해서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성전은 불사불멸의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생과 다음 생 사이의 다리입니다.”(Stand a Little Taller[2001], 6쪽)
우리 시대에, 물질적이거나 영적인 벽, 심지어 가족이라는 벽이나 종교적인 벽을 쌓아 자신을 격리시키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납니다. 벽을 쌓는 대신 더 많은 신앙과 화해의 다리를 건설하고,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요한복음 14:27) 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함께 생활합시다. 그분은 영생에 이르는 신앙의 다리입니다.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을 믿고 또 언젠가 다시 만나게 해주는 그분의 구원의 복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