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같은 성품- 우리를 들어올려 주는 힘
복음의 기본 원리대로 생활한다면 모든 후기 성도들은 삶에서 능력과 힘과 영적인 자립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저는 제가 항공기 조종사로 일하던 시절에 이따금 승객들에게 보잉 747 비행기 조종석을 구경하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수많은 스위치, 계기, 시스템과 작동 절차, 그리고 그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항공기를 날수 있게 하는 데 이런 모든 기술 장비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모든 조종사들이 그렇듯, 저는 승객들이 비행기의 복잡한 구조에 감명을 받고 이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사람일까 하며 놀라워 하는 상황을 즐기곤 했습니다. 이쯤 얘기하면 제 아내와 아이들은 제 얘기를 가로막고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종사들이란 본래 굉장히 겸손하게 태어나기 마련이죠.”
조종석을 찾는 승객들에게 저는 비행기가 탑승객의 편안함과 안전을 도모하려면 거대한 공기 역학 설계, 수많은 보조 시스템과 프로그램, 그리고 강력한 엔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해 주곤 했습니다.
기본 사항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설명하면, 강력한 추진력과 강력한 상승력이 있고 항공기가 자세를 바르게 하고만 있으면 자연 법칙에 따라 747 항공기와 탑승객은 대륙과 대양을 횡단하고 높은 산을 넘어서 위험한 뇌우를 피하여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이 되려면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상에서 하나님 왕국의 회원이 될 수 있는 기본 사항, 즉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기본 사항을 정립하고 실천한 다음, 가장 필요한 시기에 실로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교회는 조직적인 체계와 프로그램을 모두 갖추어 놓고 회원들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활동을 제공하여 가족과 개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봉사하고 회원 서로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 교리와 원리보다 이러한 프로그램과 활동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중심에 자리잡는 것처럼 비쳐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조직의 절차, 프로그램, 정책, 그리고 관행은 우리가 지상에서 영적인 발전을 이루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그것들은 변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이와 대조적으로, 복음의 핵심인 교리와 원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기본 원리대로 생활한다면 모든 후기 성도들은 그들의 삶에서 능력과 힘과 영적인 자립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은 그러한 권능의 한 원리이며, 우리의 생활에서는 이러한 권능의 근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권능으로 역사하시지만, 권능은 우리의 신앙에 따라 행사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20 참조) 그분은 자녀들의 신앙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올바른 원리를 가르쳐 그들이 스스로를 다스리게 합니다.”(“The Organiza-tion of the Church”, Millennial Star, Nov. 15, 1851년, 339쪽에서 존 테일러가 인용) 제게 이것은 멋있고 올바른 가르침입니다. 올바른 복음 원리를 이해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더욱더 영적인 자립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자립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의지를 주셨다는 교회의 기본 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도덕적 선택의지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주신 생명에 버금가는 가장 큰 은사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도덕적 선택의지와 그에 따른 영원한 결과를 연구하고 깊이 생각해 볼 때, 저는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자녀이므로 선택의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인 우리는 전세계의 위대한 성도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의 조직적인 구조는 우리의 회중 규모와 성장의 형태, 그리고 필요 사항에 따라 큰 융통성을 갖게 해줍니다. 조직적인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모임 수가 적은 경우에는 기본 단위 조직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또한 규모가 큰 와드에는 서로를 위해 봉사하기에 충분한 조직적인 자원이 갖춰져 있습니다. 회원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와, 그의 안에서 온전하게 되[도록]”(모로나이서 10:32) 모든 것들이 교회의 영감 받은 프로그램의 범위 내에서 정해집니다.
이처럼 다양한 선택 사항은 모두 동등하게 신성한 가치를 지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 교리가 단위 조직 어디에서나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그분은 살아 계시며, 이 복음은 참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늘날 지상에서 겪고 있는 개인적인 것뿐 아니라 집단적인 어려운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금년 여름 제 아내와 저는 유럽에 있는 여러 국가의 교회 회원들을 방문했습니다. 그 지역의 일부 국가에서는교회가 1837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유럽에는 충실한 회원들의 유산이 있습니다. 현재 유럽에는 40만 명 이상의 회원이 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세대들을 포함한다면 유럽의 총 회원 수는 현재의 몇 배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초기 시절, 왜 그토록 많은 충실한 회원들이 고국을 떠났을까요? 많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핍박을 피해서, 미국에서 교회를 건설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보다 나은 경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성전에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서 등등 많을 것입니다.
유럽에서 이러한 이주가 낳은 후유증이 아직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충실한 여러 세대의 교회 회원들이 남겨 놓은 영향은 지금도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즉 주님의 선교 사업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청소년과 부부의 수가 늘고 있고, 성전 결혼이 늘고 있으며, 회복된 복음을 나누려는 회원들의 자신감과 용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들의 백성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이 미치지 못한 영적인 공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회원들이 더 큰 용기와 신앙으로 이 복음대로 생활하고 복음을 전파한다면, 그 공백은 틀림없이 회복된 복음의 메시지로 채워지고, 채워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될 것입니다.
유럽에서 교회가 확산되면서, 현재 교회가 들어간 지 15년도 채 안 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저는 회원이 된 지 7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모국인 러시아에서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한 회원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침례를 받은 그 달에 지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따금 벅차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물론이지요! 그는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을 시행하려 했을까요? 다행히 안 그랬습니다. 회원 수도 적은데, 단기간에 그가 강해진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생각과 마음은 복음의 교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입했을 때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포근함과 신뢰와 사랑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소수였지만 구주를 따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서로 지지하고, 최선을 다하며,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조직이 아니라, 복음의 빛이었으며, 이 빛으로 인해 그처럼 훌륭한 회원들이 강화되었습니다.
교회는 여러 나라에서 아직 시작 단계에 있으며 때로는 조직적 환경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회원들의 마음속에 진리에 대한 온전한 간증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회원들이 경제적 난관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에서 교회를 건설할 때, 미래의 세대들은 그토록 용기 있는 현대의 개척자들에게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들은 제일회장단이 1999년도에 준 사랑에 찬 권고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시대야말로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성전을 늘리는 등 복음의 축복을 내려야 할 적기라고 여기셨습니다. 따라서 교회 회원들이 미국으로 이민하기보다는 자신의 조국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오래 전의 권고의 말씀을 되풀이하고 싶습니다. …
“전세계의 회원들이 자신의 고국에 남아 모국에서 교회를 세울 때, 회원 개인과 교회 전체에 커다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제일회장단 서한, 1999년 12월 1일)
규모가 큰 와드와 스테이크에서 생활하는 회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간증의 중심은 교회의 사교적인 차원 또는 훌륭한 활동, 프로그램 및 와드와 스테이크의 조직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정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란과 재난과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우리를 포함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진노가 온 땅에, 섞인 것이 없이 쏟아져 내릴 때 폭풍우를 피하고 진노를 피할 방어진이 되며 피난처”(교리와 성약 115:6)가 될 곳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선지자이신 힝클리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덕스러운 생활에 있습니다. 우리의 힘은 의로움에 있습니다.”(“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리아호나, 2002년 1월호, 105쪽)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성역을 베풀기 시작하셨을 때, 그분의 사도들에게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주신 가르침을 생각해 봅시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태복음 4:19) 이렇게 십이사도의 성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십이사도들이 성스러운 사업을 위해 부름을 받았을 때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성구에서 구주는 친히 우리에게 삶의 기본 교리와 우선 순위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먼저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이럴 때,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능가하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을 더 많이 닮으며, 그분의 성품에서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의 자녀들인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우리의 삶과 성품에 담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구주는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대로 생활하여 그분의 복음을 배울 것을 권고하십니다.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올바른 원리를 적용한 다음 그에 따른 축복을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간단합니다. 고대와 현대의 선지자들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라. 그러나 그에 더하거나 덜해서도 안 되느니라.”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적용하여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원칙과 이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생활을 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을 실천할 때 시험이 임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다시 말해서 우정, 취업, 사업 및 오락에서 남편이나 아내로서, 아버지나 어머니로서, 아들이나 딸로서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나타내 보여야 할 때 우리의 발전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점진적으로 더욱 “[그분] 앞에서 모든 거룩함 가운데 행[할]”(교리와 성약 43:9) 때, 주위의 사람들처럼 우리의 발전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경전에는 평생 동안 키워야 할 그리스도와 같은 많은 성품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식과 겸손, 사랑, 순종과 근면, 신앙과 소망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성품은 교회 단위 조직의 조직적인 상태, 경제적 형편, 가족 상황, 문화, 인종 또는 언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이러한 성품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한 가지 도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값 없이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을 믿는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그분을 완전히 의지하는 것, 즉 그분의 무한한 권능, 예지 및 사랑을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선택의지를 의롭게 행사한다면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있을 때 행함이 따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있을 때, 계명이 주어진 까닭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킵니다. 구주를 더 많이 닮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을 주기적으로 재평가하여 참된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과 그분의 속죄의 축복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키운다는 것은 고통이 따르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종들의 지시와 징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음악과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이 세계적인 대회를 통해서 “높은 곳”(교리와 성약 43:16)에서 주시는 영적인 힘과 지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개인적인 영감의 음성과 계시로 우리의 영혼에 평화를 채워 주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울 때입니다. 이 음성은 사랑하는 친구의 음성처럼 달콤할 것이며 우리의 마음에 회개의 영이 넘칠 때 이 음성은 우리의 영혼을 채울 것입니다.
구주를 더 많이 닮아갈 때,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로마서 15:13)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제쳐 두고 더 나은 것을 추구”(교리와 성약 25:10)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공기 역학 비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기본 사항에 중점을 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은 기본 사항에 해당됩니다. 기본 사항은 우리를 들어올려 줄 힘을 낳는 근본 원리에 해당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차츰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키울 때, 그 성품은 “독수리 날개 위에 태우듯 우리를 받들어 줄”(교리와 성약 124:18)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은 동력과 강력한 추진력을 낼 것이며, 우리의 흔들림 없는 간절한 소망은 강력한 상승력을 낳을 것이고, 신앙과 소망은 우리를 유혹의 바다를 건너 고난의 산을 넘어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자 목적지에 우리를 무사히 데려다 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