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코 그분을 떠나지 마십시오
상처를 받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분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전세계에 계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보여 주시는 신앙과 용기에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매우 경이롭습니다만 또한 어려움이 많은 시대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다가오는 위험을 경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분께 돌아가려 노력하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다가오는 위험을 알리시는 다음 경고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1 “너희가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2 “살피고 조심하[라]”3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4
세상적인 영향력에서 안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고로 우리는 보호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겪으신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구주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습니다.]”5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
너희도 가려느냐
저는 마음속으로 그 질문에 대해 수 차례에 걸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안 갈 것입니다! 결단코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여기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대답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희도 가려느냐?” 하는 질문을 들으면 우리의 약점이 떠오릅니다. 삶은 영적 소풍이 아닙니다. 다른 상황에서 사도들이 한 이 말은 우리 마음에 조용히 와 닿습니다. “나는 아니지요”7
우리는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침례의 물에 들어섭니다. 구주께서는 “내게로 오[라]”8라고 손짓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받듦으로써 응답합니다. 이 여정이 일시적인 영적 호기심에 불과하거나, 뛰어나지만 유한한 끝을 향한 것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자가 되는 길은 영적으로 나약한 사람들을 위한 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9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0
우리가 구주를 따르는 동안에도 의심할 여지 없이 시련은 찾아올 것입니다. 신앙으로 다가가면 우리를 단련시키는 이러한 경험들은 오히려 구주의 실재하심에 대한 더 깊은 개종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세상의 방식으로 접근하려 하면 이 똑같은 경험들이 우리의 시야를 흐리고 결의를 약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몇몇 사람들은 협착하고 좁은 길에서 벗어나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충실하게 남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구주와 그분의 복음과 신권 의식에 충실하게 남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결단코 그분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신앙과 힘을 키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1 우리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구주께서 이루신 속죄 권능을 통해 “어린아이와 같이 되고, 유순, 온유, 겸손, 인내하며, 사랑이 충만하게 되어, 주께서 합당하게 여겨 [우리]에게 내리시는 모든 것에 기꺼이 복종하고자 하기를, 아이가 참으로 그 아버지에게 복종함같이 하[게]”12 됩니다. 이것이 마음에 일어나는 크나큰 변화입니다.13
우리는 마음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를 금세 깨닫게 됩니다. 두 단어로 된 위험 표지판이 놓여 있습니다. 그 단어는 ‘상처와 부끄러움’입니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선택하십시오
구주의 신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14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는]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15
우리는 여러 형태로 상처를 받으며 상처는 끊임 없이 우리 마음에 머물 방법을 찾습니다. 믿었던 사람이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칩니다. 인생은 늘 예상대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실수를 저지르고 합당하지 않다고 느끼며 용서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교리적 문제에 대해 의구심을 품습니다. 150년 전 교회 연단에서 전해진 어떤 말씀에 대해 알고서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자녀들은 불공평한 대우를 받습니다. 우리는 무시를 당하거나 인정 받지 못합니다. 백 가지 상처가 있을 수 있으며 각 상처는 그때마다 매우 혹독합니다.16
우리가 약해지는 순간에 대적은 우리가 맺은 영적 약속을 파괴하려 합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어린아이처럼 상처 입은 영은 따스하고 치유력이 있는 구주의 빛을 떠나서 과거에 지녔던 차갑고 어두운, 거만한 자아라는 껍질 속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1835년에 팔리 피 프랫이 불공정한 재판을 받아 그와 가족들이 당혹감과 수치심을 느꼈을 때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팔리 …… 신경 쓰지 마세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형제님과 함께하실 거예요.”17
또 한 가지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830년에 유명한 의사인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가 침례를 받았습니다. 윌리엄스는 곧바로 재능과 재산을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는 교회 지도자가 되었으며 커틀랜드 성전을 짓기 위해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1837년, 어려운 시기가 닥쳤을 때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는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계시에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그가 저지른 범법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이 받은 교회 지도자 자리를 박탈당했노라.”18
우리가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에게서 배우는 아름다운 교훈은 “그에게 어떤 개인적인 약점이 있었든 간에 그는 비통함에 빠질 만한 상황에서 주님과 선지자와 교회에 대한 충성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강인한 성품을 지녔다.”19는 것입니다. 1840년 봄, 윌리엄스는 연차 대회에 나타나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겸손하게 용서를 구했으며 앞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하이럼 스미스는 그 문제를 검토했으며 스스럼 없이 그를 용서했습니다.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는 충실한 교회 회원으로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는 최근에 브라질 헤시피 성전 회장인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를 만났습니다. 윌리엄스 회장님은 고조부께서 내린 결단 덕분에 가족과 수백 명에 달하는 자손들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선택하십시오
상처에는 부끄러움이라는 파괴적인 감정이 수반됩니다.
몰몬경에서 우리는 리하이가 본 생명나무 시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시현에는 “쇠막대를 꼭 붙든 채 밀고 나아가 어둠의 안개를 지나 …… 나무의 열매[에 도달해 그 열매]를 먹[은]”20 고귀한 영혼들이 나옵니다.
니파이는 그 나무를 “하나님의 사랑”21이라고 설명했으며, 그 나무의 열매는 “영혼을 심히 큰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22
열매를 맛본 후, 리하이는 “크고 넓은 건물 하나를 보았[는데] …… 그 건물은 사람들, 곧 늙은이와 젊은이, 남자와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저들의 옷차림은 심히 훌륭하였고, 저들은 열매[를] …… 먹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멸시하는] 손가락질[을] 하며 조롱하[였습니다.]”23 천사는 조롱과 멸시와 멸시하는 손가락질이 세상의 교만과 지혜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24
니파이는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25
안타깝게도, 용기가 흔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들이 열매를 맛본 후 그들을 비웃는 자들로 인하여 부끄러워하더니, 금단의 길로 떨어져 나가서는 잃어버린 바 되더라.”26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세상과 다릅니다. 멸시하는 손가락질이 우리가 성스럽게 여기는 것을 조롱하고 무시하여 불쾌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27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간증이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신앙을 시험하는 사람들의 조롱을 견뎌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28 니파이가 말했듯이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마십시오.]”29 바울이 권고했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이니] …… 그러므로 …… 우리 주를 증언함[을] ……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30 우리는 결단코 그분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님과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저는 성도들이 지닌 신앙과 용기에 놀랐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한 신권 지도자는 침례 받고 겨우 6개월 뒤인 1994년 봄에 지부 회장단으로 부름 받은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부름을 받아들이면 그분은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야 했고 그와 함께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라는 도시에 교회를 등록하는 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당시에 우크라이나는 불안정했기에 그리스도와 회복된 복음을 믿는 신앙을 밝히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종사라는 직업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신권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제게는 간증이 있었고 저는 성약을 맺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았습니다.”31 그와 아내는 용기 있게 신앙으로 나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주어진 곳에는 많이 요구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다른 사람과 그렇게 많이 달라야 합니까?” “제 행동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까?” “순결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까?” “그분을 사랑하면서 일요일에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32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물론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으로서 성경뿐만 아니라 몰몬경을 통해 그분이 실재하신다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분의 신권이 지상에 회복되었음을 알며, 그분을 따르겠다는 성스러운 성약을 맺었고, 성신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성전에서 권능을 받았고, 그분이 지상에 영화롭게 오실 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과, 아직 이러한 진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많이 주어진 자에게는 많이 요구되[기]”33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스스로 택할 수 있나니”34
저는 상처를 받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그분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35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훗날 이해하게 될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평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고칠 수 없는 부분들을 받아들이고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때때로 주위 사람에게서 소외감을 느낄까요? 물론입니다.
몇몇 사람이 주님의 교회에 대해 화를 내고36 약한 자의 흔들리는 신앙을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될까요?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의 성장이나 운명을 가로막지 못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각자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결코 주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저는 이 찬송가 가사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생에서 온전해질 수는 없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행사하고 우리의 성약을 지킵니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간증이 계속해서 자양분을 얻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38 우리는 매일 경전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하여 영적 뿌리를 깊숙이 내리게 됩니다. 우리 앞에서 길을 알려 주는 살아 있는 선지자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 영혼에 평강을 말씀하시는 성신의 조용한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결단코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구주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39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40
저 역시 그렇게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