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신권
교만은 신권 권능을 꺼 버리는 스위치입니다. 겸손은 이를 다시 켜는 스위치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연차 대회 신권 모임을 위해 전 세계에 모이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계시든, 여러분이 모인 모습을 통해 거룩한 신권을 소유한 우리 형제들과 더불어 우리 주님이자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려는 여러분의 굳은 의지가 느껴집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우리는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제 삶에도 그런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1989년에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교만을 조심하십시오.”라는, 시대를 초월한 권고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벤슨 회장님은 교만이라는 주제 때문에 오랫동안 고심했다는 점을 말씀 서두에서 언급하셨습니다.1
지난 몇 달 동안 저도 이와 비슷한 부담을 느꼈습니다. 성령의 속삭임은 벤슨 회장님이 21년 전에 전하신 이 메시지를 재차 강조하라고 제게 촉구했습니다.
모든 필멸의 존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교만이란 죄와 관련된 경험을 합니다. 아무도 이를 피할 수 없으며, 극복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교만에 대해 말씀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아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아주 잘 아는 주제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네요.”
교만의 다른 의미들
벤슨 회장님께 영향력 있는 말씀을 들은 직후에 저는 한 가지 흥미로운 후유증을 발견했습니다. 얼마 동안 교회 회원들 사이에서는 자녀들이나 자기 나라가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하거나 자기 직장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을 하는 것이 거의 금기시 되었습니다. 자랑, 자부심, 교만을 의미하는 “pride”라는 말은 우리 어휘에서 버림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경전에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의 안에서 기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자랑한 예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소개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2
앨마는 “하나님의 손에 든 도구가 [될 수 있다는]”3 생각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 회원들의 충실함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4 위대한 선교사 암몬은 자신과 형제들이 선교사로서 거둔 성공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5
저는 어떤 일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과 교만해지는 것은 다르다고 믿습니다. 저는 많은 것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저는 제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 제 아이들과 손자손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교회 청소년들이 자랑스러우며 그들의 선함을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충실한 형제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권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죄입니다
그럼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마음과 벤슨 회장님이 “보편적인 죄”6라고 부르신 교만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벤슨 회장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교만은 죄입니다. 교만에서 증오와 적대심이 생겨나며, 결국 하나님과 이웃을 등지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보통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한 일이 얼마나 멋진지 봐라.”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기에, 기본적으로 교만은 비교에서 오는 죄입니다. 교만은 항상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보다 더 낫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우리는 심각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바로 큰 계명 두 가지를 어기기 때문입니다.7 교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우리가 실제로 섬기고 사랑하는 대상은 바로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속에 비치는 사람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중죄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래미움프톰, 즉 시기심, 탐욕, 허영을 정당화시키는 거룩한 단입니다.8 어떤 면에서 교만은 원죄입니다. 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 권세를 지닌”9 아침의 아들 루시퍼는 교만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교만 때문에 루시퍼와 같이 능력 있고 유망한 자가 타락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우리 영혼을 잘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만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교만은 치명적인 암과 같습니다. 교만 죄는 인간의 다른 약점들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합니다. 사실 다른 모든 죄는 본질적으로 교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죄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 성취, 재능, 부, 또는 지위에 열중합니다. 그들은 이런 축복을 자신이 “선택된”, “더 뛰어난”, 또는 “더 의로운” 증거로 삼습니다. 교만은 “내가 당신보다 더 잘나서 다행이야.” 라는 죄입니다. 그 중심에는 사람들에게 찬사와 부러움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교만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죄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만이 부러움으로 작용합니다. 그들은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능이나 재물을 가진 이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을 깎아내리고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그릇되고 비열한 짓을 일삼습니다. 그 부러운 대상이 넘어지고 고통을 받으면 그들은 은밀하게 이를 기뻐합니다.
운동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예
아마도 이 교만의 예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운동 경기일 것입니다. 저는 항상 운동 경기에 참여하거나 관람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운동 경기에 있어야 할 예의와 정신이 사라진 상황에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 상대 팀과 팬들에게는 어쩌면 그렇게 편협해지고 증오로 가득 찰 수 있을까요?
저는 운동 경기 팬들이 경쟁 팀을 욕하고 비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결점이라도 찾으면 이를 부풀렸습니다. 이런 증오심을 스스로는 일반화하고 정당화하며, 상대 팀과 관련된 이들이면 누구든 증오했습니다. 상대 팀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안타깝게도 이런 태도와 행위가 정치, 인종, 종교에 관한 공적 대화에서도 너무 자주 목격됩니다.
친애하는 신권 형제 여러분, 친절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랑하는 동료 제자 여러분, 우리의 표준을 더 높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권 소유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같은 팀으로서 같은 운동복을 입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팀은 인류에 대한 형제애 팀입니다. 이 필멸의 삶이 바로 경기장입니다.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 사랑을 동료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율법에 따라 살며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를 바로 세우고, 고양시키며, 올바르게 대하고, 격려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우리에게 독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 받고 나서 저는 감사하게도 교회의 여러 선임 사도들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제임즈 이 파우스트 회장님을 한 스테이크 대회로 모셔다 드리게 되었습니다. 파우스트 회장님께서는 차 안에서 제 부름에 관해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회 회원들이 총관리 역원을 얼마나 정중하게 대하는지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원들은 자네에게 정말 친절할걸세. 자네가 얼마나 훌륭한지도 이야기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분은 조금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디이터, 그런 말들에 감사하게. 그렇지만 그런 말들이 약이 되어야지, 독이 되게 하지는 말게.”
형제 여러분, 이 말은 부름이나 상황에 관계 없이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가르침이 됩니다. 우리가 건강, 부, 재물, 지위 등에 감사할 수는 있지만 지위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지위나 권위, 평판에 집중하고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지를 의식하는 허황된 삶을 살며 그것이 우리에게 독이 되기 시작한다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교만에 걸려 넘어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경전에는 교만을 경고하는 구절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0
사도 바울은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11 몰몬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온유하며 마음이 겸손한 자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지 아니함이라.”12 주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13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육신의 팔을 의지하지”14 않도록 그분의 사업에서 그분의 손길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주님, 곧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우리가 신권을 받은 것은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일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며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을 대비해 세상을 준비시키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작지만 의로움으로 신권 권능을 행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노력을 통해 크고 기이한 일을 일으키십니다. 모세가 말했듯이 우리는 “사람이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15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음을]”16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겸손에 대해 완전한 모범이 되십니다
모든 덕목에서 그러하듯이 교만을 피하는 일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모범이 되십니다. 루시퍼는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을 변경하여 모든 영광을 스스로 취하려 했지만 구주께서는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영광이 영원토록 당신의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1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위대한 능력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구주께서는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반차를 좇는 성 신권”18이 있습니다. 이는 지상에서 그분을 대신하여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권능입니다. 그분의 권능을 행사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주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주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19 구주께서 그러하셨듯이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린다는 의미입니다.20 구주께서 그러하셨듯이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만은 신권 권능을 꺼 버리는 스위치입니다.21 겸손은 이를 다시 켜는 스위치입니다.
겸손하고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그렇다면 널리 행해지며 큰 피해를 입히는 이 교만이라는 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더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교만으로 자고해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겸손하고 사랑이 가득[한] …… 자가 아니면 아무도 이 일을 도울 수 없[습니다.]”22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렌즈로 주위 세상을 본다면 겸손이 무엇인지 이해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겸손이 우리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겸손은 자신을 쓸모 없고, 무의미하며,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매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부정하거나 자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함으로써 겸손해집니다. 하나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일을 행할 때 겸손해집니다.
겸손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갖습니다. 교만은 그 반대로 작용합니다. 교만은 이기심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힘과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자신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봉사하며 자신을 잊는 순간, 교만은 줄어들고 결국은 소멸해 버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면 우리가 염려해야 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의 아내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봉사할 방법도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만 빠져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비행사 기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제가 정말 좋아한 펜이 하나 있었습니다. 펜 자루를 살짝 돌리면 네 가지 색을 선택할 수 있는 펜이었습니다. 그 펜은 제가 파란색 대신에 빨간색을 사용한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펜은 제게 “저는 밤 열 시가 지나거나 안개가 짙게 깔리거나 고도가 너무 높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혹은 “일상 업무 말고 중요한 서류에만 사용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펜은 아주 듬직해서 저는 일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항상 그 펜을 썼습니다. 그 펜은 항상 쓰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입니다. 우리 마음이 올바르다면 주어진 일이 우리 능력에 맞지 않는 하찮은 일이라고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임무가 주어질 때 어디서든 기쁘게 일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제 21년 전에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님께서 전하신 영감에 찬 메시지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교만은 시온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는 교만을 극복함으로써 그릇 안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 …23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며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고 ‘주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성도’가 되며 ‘어린아이와 같이 되고, 유순, 온유, 겸손’해야 합니다. … …24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이들을 취하실 것입니다. …… ‘어찌할 수 없어 겸손하게 됨이 없이 스스로 겸손하여진 자들은 복이 있도다.’ … …25
겸손해지겠다고 결심합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압니다.”26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구주께서 보이신 모범을 따라 인간의 칭찬과 영예를 구하기보다 봉사하는 손길을 내밉시다.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불의한 교만을 인식하고, 이를 몰아낼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교만을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27로 대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