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1단계: 정직


“1단계: 정직,” 중독 회복 프로그램: 중독 회복 및 치유를 위한 안내서 (2011), 1–6

“1단계: 정직,” 중독 회복 프로그램, 1–6

1단계

정직

핵심 원리: 스스로 중독을 극복하지 못할 만큼 자신이 무력하며,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시인한다.

5:32

중독은 대개 호기심에서 비롯됩니다. 일부는 처방 의약품이 필요한 타당한 이유가 그만 원인이 되어 버린 경우도 있고, 혹은 의도적인 반항 행위에서 시작된 경우도 있습니다. 상당수가 아동기를 갓 넘겼을 때 이 길에 들어섭니다. 시작한 동기나 상황이 무엇이었든 우리는 곧 중독이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훨씬 많은 것을 덜어 준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독은 자극을 주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기분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잠시나마 두려움이나 걱정, 외로움, 낙담, 후회, 무력감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러한 감정을 야기하는 상황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우리는 중독에 점점 더 자주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스스로 굴복하지 않으려 하거나 자제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장로님이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중독은 선택할 자유를 굴복시킵니다. 인간은 화학적 수단을 통해 그야말로 그 자신의 의지와 접속이 끊어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7쪽)

중독 행위에 빠진 사람은 좀처럼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상태의 심각성을 부정하며, 발각되지 않고 선택에 따른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행동을 최소화하거나 숨기려 합니다. 자신과 사람들을 속임으로써 중독에 더 깊이 빠져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중독 앞에 점점 더 무력해지면서 대부분은 가족과 친구, 교회 지도자, 심지어는 하나님을 향해 트집을 잡습니다. 더 깊은 고립으로 뛰어들고, 다른 사람들, 특히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중독자였던 우리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수 있기를 바라며, 거짓말과 비밀에 의지하면서 영적으로 약해져 갔습니다. 부정직한 행위를 할 때마다 “아마 줄”로 자신을 결박했고 그 아마 줄은 곧 사슬처럼 강하게 변해 버렸습니다.(니파이후서 26:22 참조) 그리고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또 거짓말을 하거나 “이건 그다지 나쁘지 않아.” 하는 말로 자신의 중독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의사, 판사, 교회 지도자가 우리에게 삶이 중독으로 파괴되고 있다고 말해 주었을 때 우리는 더는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혼자 힘으로 시도한 그 어떤 일도 소용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오히려 중독이 더 극심해졌음을 인정했습니다. 중독으로 얼마나 많은 관계가 파탄에 이르고 자존감에 얼마나 깊은 상처가 났는지 깨달았습니다. 이 시점에 이르러 우리는 단지 한 가지 문제나 나쁜 습관만을 다루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용기를 냄으로써 자유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마침내 우리 삶이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과,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패배를 솔직히 시인하자 놀랍게도 회복이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몰몬경에 나오는 선지자 암몬은 우리가 마침내 자신에게 정직하게 되었을 때 알게 되는 진리를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스스로의 힘이나, 내 스스로의 지혜를 자랑함이 아니라. 그러나 보라, 나의 기쁨이 충만하고, 참으로 내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찼으니, 내가 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과연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아노니, 내 능력으로는 내가 약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내 스스로를 자랑하지 아니하겠고, 내 하나님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의 능력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이라.”(앨마서 26:11~12)

행동 수칙

기꺼이 그만두려 한다

사람마다 중독은 다르지만 몇몇 진실은 똑같습니다. 시작하려는 의지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의지를 아주 조금만 발휘해도 중독에서 벗어나 깨끗해지는 여정은 시작됩니다.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겪는 고통보다 문제에서 비롯된 고통이 더 심해질 때에야 비로소 그만두려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 상태에 도달했습니까? 아직은 아니더라도 계속 중독 상태에 있게 되면 분명히 그런 지점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중독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독은 퇴행성 질환과도 같아서 정상 생활을 소화하지 못하도록 여러분의 능력을 갉아 먹습니다.

회복을 시작하는 유일한 요건은 중독과 연관된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여러분의 소망이 지금은 작고 일관성이 없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망이 자라날 것입니다!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기꺼이 시작하려는 마음은 아직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 마음을 인정하고 중독으로 생기는 손실을 자세히 따져 보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열거해 볼 수 있습니다. 가족 관계와 사회 관계, 하나님과 맺는 관계, 영적인 힘, 다른 사람을 돕고 축복하는 능력, 건강 등을 살펴보십시오. 그런 후에 여러분이 믿고 바라는 것과 여러분의 행동 사이에 모순이 없는지 찾아 보십시오.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어떻게 약화시키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신성한 모든 잠재력이 있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그리고 계속 중독에 빠져 있음으로써 자신이 어떤 위험을 떠안고 있는지를, 주님이 보시는 것처럼 여러분도 볼 수 있도록 주께 도움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중독에 빠져 탐닉함으로써 무엇을 잃었는지를 깨닫는다면 그만두고 싶은 소망이 생겨날 것입니다. 티끌만한 소망이라도 찾는다면 1단계를 시작할 여지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각 단계를 밟아 나가며 발전하고, 삶에 찾아오는 변화를 보면서 여러분의 소망은 점점 더 자라날 것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만과 정직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교만은 환상이며 모든 중독에서 필수 요소입니다. 교만은 현재도 있고, 과거에도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진실을 왜곡합니다. 교만은 회복을 가로막는 주된 방해물입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님은 교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교만은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죄[입니다.] ……

우리는 대체로 교만을 자기 중심, 자만, 자랑, 거만함 또는 오만함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교만이라는 죄의 요소들이지만, 아직 핵심 요소가 빠져 있습니다.

교만의 큰 특징은 적대감,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적대감이란 ‘증오의 감정, 적개심 또는 반목’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힘으로 사탄은 우리를 지배하려 합니다.

교만은 본질상 반드시 경쟁을 유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맞서 교만할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하려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의 뜻에 더 치중하면 소망과 욕망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앨마서 38:12; 제3니파이 12:30 참조)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권세(힐라맨서 12:6 참조)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보다 진리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하나님의 신권 권능보다 자기의 능력을, 주님의 놀라운 업적보다는 자신이 이룬 성취를 더 내세웁니다.”(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4쪽)

여러분이 기꺼이 절제하며 직면한 문제들을 인정하고자 다짐할 때, 여러분의 교만은 조금씩 겸손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문제를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며 모임에 참여한다

중독에 빠졌을 때, 우리는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허세와 핑계로 괜찮은 척 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계속해서 그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미끄러운 비탈을 타고 더 큰 슬픔으로 빠져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마침내 인정했을 때에는 큰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희망이 비집고 들어올 작은 틈이 생겨나게 허락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고 기꺼이 도움과 지원을 구할 마음이 생겼음을 자신에게 인정하는 것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그 희망에게 자랄 곳을 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회복 모임에 참여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지원 그룹이나 회복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회복 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라면, 감독님 혹은 신중히 선택한 전문 상담자와 협의하여 일부를 수정한 후에 각 단계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회복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유용하다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첫째, 여러분은 자신에게 적용하기만 한다면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구체적인 복음 원리를 그러한 모임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복음 교리를 공부하는 것이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보다 더 빨리 행동을 향상시켜 줍니다. 합당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행동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복음 교리 공부에 많은 역점을 둡니다.”(성도의 벗, 1987년 1월호, 21쪽) 둘째, 이러한 모임은 회복을 바라는 사람들과, 이미 그 과정을 거쳤고 그 효과가 입증된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입니다. 회복 모임에서 여러분은 이해와 희망, 지지를 얻을 것입니다.

연구와 이해

경전과 교회 지도자의 말씀을 연구하면 회복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전과 말씀을 연구하면 이해력이 밝아지고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 경전 구절이나 말씀, 질문 등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연구해 보거나 글을 써 보거나 단체 토론 주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는 회복에 쓰이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글을 쓰면서 여러분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생각에 집중하며 중독을 둘러 싼 문제점과 생각, 행동을 살펴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단계들을 진행해 가면서 자신이 발전해 가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 감명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유혹에 둘러싸이다

“나는 나를 그처럼 쉽게 괴롭히는 유혹과 죄로 인하여 에워싸였도다.

또 내가 기뻐하기를 원할 때에 나의 마음은 나의 죄로 인하여 신음하는도다. 그러할지라도 나는 내가 누구를 의뢰하여 왔는지 아노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의지가 되셨나니, 그는 나를 인도하사 광야에서 나의 고난을 지나게 하셨으며, 큰 깊음의 물 위에서 나를 보전하셨도다.

그는 그의 사랑으로 나를 채우사 참으로 나의 육체가 소멸되기에 이르게 하셨도다.”(니파이후서 4:18~21)

  • 덫에 걸렸거나 무언가에 에워싸여 있다고 느끼십니까? 그런 기분이 자주 드는 때는 언제입니까?

  • 여러분을 중독에 굴복하게 만든 상황이나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을 때, 니파이는 누구를 신뢰했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을 더욱 신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나니

이렇게 되었나니, 모세가 사람이 가진 본래의 힘을 다시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났더라. 그리고 그가 스스로에게 이르기를, 이제 이 일로 말미암아 나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나니, 이 일은 내가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도다.”(모세서 1:10)

  • 모세는 하나님에 비하면 자신을 무엇일 뿐이라고 했습니까?

  • 어린아이는 무한한 가치가 있지만 그 부모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어떤 면에서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까?

  • 어떤 면에서 여러분은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까?

  • 혼자서는 중독 앞에 무력하다는 자기 인식은 어떻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어린아이처럼 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습니까? 이것을 주제로 글을 써 보십시오.

굶주림과 목마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그리고 나의 영혼이 주렸던지라, 내가 나를 지으신 이 앞에 무릎을 꿇고 나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그에게 부르짖었나니, 참으로 온종일 내가 그에게 부르짖었고, 그뿐 아니라 밤이 오매 내가 여전히 내 목소리를 높여 하늘에 이르게 하였더라.”(이노스서 1:4)

  • 이 두 성구에서 우리는 영혼이 주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 배고프지 않았을 때에도 속이 비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런 공허함을 느꼈습니까?

  • 여러분이 영에 주리는 것은 더욱 정직하게 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정직

“어떤 사람들은 정직이라는 품성을 매우 평범한 주제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그것이 복음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믿습니다. 정직이 없다면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가 와해되어 추하고 무질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든 비 힝클리, “우리는 정직함을 믿는다”, 성도의 벗, 1993년 6월호, 4쪽)

  •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중독을 숨기려고 시도하거나 속였던 방법을 적어 보십시오. 어떻게 이런 행동이 ‘추악함과 혼란’을 야기했습니까?

겸손

“이제 너희가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었음으로 인하여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는 사람이 간혹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면, 회개를 구함이요, 이제 정녕 누구든지 회개하는 자가 자비를 얻을 것임이며, 자비를 얻고 끝까지 견디는 자 그 같은 자가 구원을 받을 것임이니라.”(앨마서 32:13)

  •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어 회개를 구했던 상황에 대해 적어 보십시오. 앨마에게서 어떤 희망을 얻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런 희망을 찾거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기쁨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언 12:22)

  • 앞서 제시된 질문에 답하는 데에는 굉장히 솔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경전 구절은 그런 종류의 정직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주께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