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항구를 찾음
우리 인생의 폭풍우 가운데서 구세주는 우리의 위안이시며 피난처가 되십니다. 평안을 구한다면, 우리는 그분께 나아와야 합니다.
이 역사적인 모임에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견고한 화강암 벽으로 싸인 이 훌륭한 컨퍼런스 센터가 다니엘이 본 돌 곧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로” 하나님의 왕국으로 영원히 서게 될 말일의 위대한 사업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1 이곳에 직접 와 계시거나 다른 곳에 참석하시거나 관계없이 이 역사적인 연차 대회에 참석하기로 하신 여러분의 선택에 경의를 표하며 또 주님께서 여러분의 충실함에 대해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바입니다.
60여년 전에 저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선교부에서 선교사로 봉사한 적이 있습니다. 어렵기는 했으나 굉장히 훌륭한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 지역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들을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1939년 8월에 저의 봉사 기간이 끝나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전쟁으로 인해 대서양을 건너는 것이 위험했으나 오랜 항해 끝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멋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자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우리가 안전한 항구에 닿는 순간 제 자신이 느낀 안도의 느낌을 이루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 당시 구세주와 함께 갈릴리 바다를 항해할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느낌을 제가 느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전은 예수께서 피곤하셔서 배의 뒷편으로 가셔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2 곧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3 폭풍이 더 심해졌습니다. 제자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배가 거의 뒤집힐 것 같았으나, 구세주께서는 여전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애원할 때, 그들의 음성에 스며있는 번민과 절망을 여러분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라는 그들의 배가 어느 때라도 뒤집히거나 가라앉을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분들은 바로 안전한 항구를 찾고 계시는 분들, 마음이 상해 계신 분들, 근심 걱정을 지니신 분들, 슬픔을 갖고 계시거나 죄의 짊을 지신 분들, 아무도 여러분의 외침을 듣고 있지 않다고 느끼시는 분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마음속으로 호소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바로 그러한 분들께 위안과 권고가 될 만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안전한 항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을 위협하는 폭풍 속에서도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질 때마저도 아시는 여러분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점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우리 자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그분께서는 허용하시지만, 그리고 일의 과정에서 그분께서 항상 간섭하시지는 않으시더라도, 그분께서는 충실한 이들에게는 시련과 환난 가운데서도 평안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언자 앨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나가 고통과 고난을 겪으며 온갖 시험을 당하시리니, 그가 이렇게 하심은 인간의 질병과 고통을 대신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라.”5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위안을 주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6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지니고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원한 왕이십니다. 필멸의 몸으로 성역을 행할 때, 그분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유순하고 또 실망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그분의 모든 말씀은 동정과 격려에 찬 것이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그분은 치유의 향유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소망과 돌보아 주는 손길을 갈망하던 이들은 그것을 만왕의 왕, 바다와 땅과 하늘의 창조주이신 그분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십니다. 오늘날 그분께서 고통받는 사람, 병든 사람, 또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구조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안심하십시오. 갈릴리 사람, 창조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께 가까이 나아온 이들을 잊거나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저는 인류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며, 좌절한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데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분은 여러분의 고통과 의문, 그리고 마음의 고통을 염려하고 계시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그 때에 세상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폭풍이 제 주위의 모든 것을 삼킬 때 그분은 왜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왜 그분은 이 폭퐁을 잠잠케 하시지 않고 제가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여러분이 나비를 생각해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고치에 단단하게 싸여 자라난 번데기는 온갖 힘을 다하여 갖혀 있던 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나비가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간단하게 눈 깜박할 사이에 왜 나비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창조주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고치를 깨고 나오려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나비가 생기는 것이며 그런 후에야 그 나비는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역경이 없다면, 나비는 결코 그 운명을 성취할 힘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비범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결코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임즈 이 파우스트 부대관장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간이 살아 나가자면 여러 가지 역경과 고뇌에 휩싸이게 되고 고통과 절망의 날을 당하게 됩니다. 열심히 의를 행하고 충실히 생활하고자 하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는 참으로 커다란 고뇌와 슬픔과 때로는 비통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7
그리고 파우스트 부대관장은 우리가 경험하는 역경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손안에 있는 찰흙과 같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파우스트 부대관장은 “우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시련과 역경을 거쳐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8
역경은 우리를 강화시켜 주고 또 단련시켜 줍니다. 나비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역경은 성품을 쌓아가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파도가 험한 바다를 항해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에도, 역경이라는 장소에서 우리의 거룩한 잠재력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고통의 저 너머를 바라보고 또 우리의 고통을 일시적인 번데기의 시기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신앙을 지니고 그분에게 의지한다면,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우리가 어떻게 시련에서 빠져 나와 더욱 연단되고 영화롭게 되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걷는 것을 배우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경험이야. 걸려 넘어져서 다치게 될 때도 있을 거야. 그리고 넘어져 여러 번 자주 울게될 거야. 내가 보호해 줄께.”
저의 막내 손자 셋이 걸음마를 배울 때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경험을 얻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 아이는 이제 자신 있게 잘 걷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그 고난에서 너를 구해 주마”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아이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제가 그렇게 한다면 그 아이는 걷는 법을 결코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것은 사랑하는 부모나 조부모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걷기 위해서는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한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우리는 제 손자 셋이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는 걸음을 배운 후의 자유와 기쁨이 일시적인 고통이나 역경보다도 더욱더 크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이 없었다면 필멸의 생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주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합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시며 우주의 주관자께서 여러분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그 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 점을 생각할 때마다, 저의 마음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영원하며, 또 영원한 영은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고통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깨를 펴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우리의 난관을 이겨낼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신앙을 갖고 힘찬 노력을 기울이는 그런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에서 안전한 항구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면서 갖추어야할 정신인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날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는 수 백만의 사람들이 여러분의 곁에 서있습니다.구세주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꺼이 “남의 짐을 나누어 가볍게 하기를 원하며 애통하는 자와 더불어 애통하고 고난당한 자를위로”할 것입니다.9
가인이 주님께 한 질문 곧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10라는 질문에 대하여 말일에 여러 예언자들이 답을 주셨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부대관장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협동하여 궁핍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는 홀로 있는 사람의 약함을 함께 봉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의 강함으로 채우게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행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무슨 일인가는 할 수 있으며 또 해야만 합니다.”11
감독과 가정 복음 교사, 방문 교사와 신권 정원회 및 상호부조회, 그리고 다른 보조 조직에 속한 회원 여러분 모두가 도움을 줄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가르침과 교회가 우리에게 가장 좋고 안전한 항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폭풍을 “피하는 대피소”인 것입니다.12
물론 여러분의 형제 자매들이 여러분의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대신 하여 주었을 때, 때때로 그들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약화시킬 때도 있다는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형제 자매들은 여러분을 강화시켜주고, 격려하며, 도와주기 위해 여러분의 편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역경을 이겨 나가면, 더욱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때에는 여러분은 여러분과 위치가 바뀌어 그들을 뒤덮으려 하는 폭풍을 피하여 안전한 항구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다 잘 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폭풍으로 흔들릴 때, 파도가 일고 바람이 심히 불 때, 그러한 경우에는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외치는 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오면, 구세주께서 배의 뒷편에서 깨어나 일어나셔서 폭풍을 꾸짖으시던 때를 상기하십시오. 그분은 “잠잠하라 고요하라”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구세주가 우리의 시련을 아시지 못할 것이라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실 그 반대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여러분의 재능, 여러분의 강건함, 여러분의 힘을 사용하여 여러분의 난관들을 풀어나가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난 후에 그 나머지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하워드 더블류 헌터 대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회복된 복음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면, 그 어떠한 것도 영원히 잘못될수 없습니다. 그 반대로 우리의 삶이 구세주와 그분의 가르침에 그 중심을 두고 있지 않다면, 어떠한 성공도 영원히 올바르게 될 수는 없습니다.”14
복음에 따라 생활한다고 해서 인생의 폭풍이 우리 곁을 지나쳐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보다 잘 준비하여 평화롭고 침착하게 폭풍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열심히 구하며 항상 기도하며 믿으라. 만일 올바르게 행하면 모든 것이 연합하여 만사 형통하리라.”15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십시오. 용기를 가지십시오. 신앙을 지키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폭풍이 잠잠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예언자,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계명에 순종하며 생활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16
우리 인생의 폭풍우 가운데서 구세주는 우리의 위안이시며 피난처가 되십니다. 평안을 구한다면, 우리는 그분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분은 친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시며 이 영원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17 우리의 영혼이 구세주라는 안전한 항구에 그 닻을 내릴 때, 우리는 바울처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였다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18
인생의 폭풍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그의 가장 어두웠던 한 순간에 고뇌에 차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어디 계시나이까? 당신께서 숨으신 곳을 가린 큰 휘장이 어디 있나이까?”19라고 외쳤습니다. 그가 음성을 높이고 있을 때, 주님의 평온한 위안의 음성이 임했습니다. “나의 아들아, 평안할지어다. 네 불행, 네 곤고는 잠시 동안이니,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너를 높이 받들어 올릴 것이요, 너는 네 원수를 모두 이기리라.”20
복음은 우리에게 오래도록 안전하고 확실한 항구를 제공하여 줍니다. 살아 있는 예언자와 사도들은 오늘날 폭풍 속에서 불을 밝히는 등대와도 같습니다. 회복된 복음의 불빛에 따라 그리고 지상에서 주님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주는 영감에 찬 가르침에 따라 방향을 잡으십시오.
저는 예수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주가 되신다는 엄숙한 간증을 드립니다. 그분은 우리의 예언자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을 통하여 그분의 교회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한다면, 이 생과 다가오는 영원에서 안전한 항구를 확실하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