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심
“우리에게 언제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오클라호마 주의 오클라호마 시는 매우 흥미로운 곳입니다. 저는 최근에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와 렉스 디 피네가 장로, 래리 브룩스 장로와 함께 그 곳의 한 지역 대회를 감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모인 장소는 교회 회원과 구도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합창단의 노래는 천국의 음악 같았고 말씀은 영감에 찼으며, 모임 중에 임재한 영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전에 그 곳에 갔을 때 들었던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이 제작한 오클라호마 주 노래 “오클라호마”의 아름다움과, 그 곳 사람들의 환대를 기억합니다.
이 도시는 1995년 4월 19일, 상당한 시련에 봉착했습니다. 알프레드 피 머라 연방 청사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폭파되어 168명이 생명을 잃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오클라호마시에서 지역 대회가 끝나고, 저는 한 때 알프레드 피 머라 건물이 있었던 그 지역에 세워진 아름다운 기념관 입구로 갔습니다. 그 당시의 악몽을 되새기듯 날씨는 음산하고 비가 왔습니다. 그 기념관에 있는 120m 정도 폭의 연못에는 주변 정경이 비쳤습니다. 한 쪽에는 168개의 빈 유리 화강암 의자가 사망자를 추모하기 위해 있었는데, 이 의자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수색한 뒤 시체가 발견된 자리에 놓였습니다.
반대쪽에는 근처에서 유일하게 폭발을 견딘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생존자 나무”라고 명명되었으며, 그 사고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을 기리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안내원이 기념관 문 위에 새겨진 비문을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망자와 생존자와 부상당한 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이 폭력이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이 기념관에서 위안과 힘과 평안과 희망과 평온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다음 안내원은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사회와 그 안의 모든 교회와 시민들은 함께 활기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슬픔 중에 강해지고,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은 “동정심”이었습니다.
저의 머리 속에 뮤지컬, “캐밀롯”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과의 이상적인 관계인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아더왕은 원탁의 목적을 마음에 그리며 “폭력은 힘이 아니며, 동정심은 약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말의 예는 구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그의 형들이 시기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모의했고 급기야 깊은 웅덩이에 빠뜨려 음식도 물도 없이 버려두었습니다. 대상이 지나갈 때 요셉의 형들은 그를 죽게 내버려 두기 보다는 그를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은화 20냥 덕분에 요셉은 웅덩이에서 구출되어 애급땅 보디발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1 요셉은 번영했습니다.
수년 간의 풍년이 지나고 기근이 닥쳐왔습니다. 기근이 극심할 무렵 요셉의 형들이 애급에 곡식을 사러 왔습니다. 이들은 애급의 요셉 덕분에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이전에 형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로 인하여 이들을 가혹하게 대할 수도 있었습니만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2 요셉은 동정심의 미덕을 모범으로 보였습니다.
절정의 때에 예수께서 성지의 먼지 나는 길을 걸으실 때 종종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주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의심할 것도 없이 대답은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그 때처럼 지금도 예수께서는 “가서 너도 이같이 하라.”3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동정심을 가졌던 예를 많이 들어 주셨습니다. 베데스다 못에서의 다리 저는 사람, 간음 중에 잡혀온 여인, 야곱의 우물에서의 여인, 야이로의 딸,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 등은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접하게 되는 재난 당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다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데스다 못에서 다리 저는 사람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4라고 하셨고, 죄지은 여인에게는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5라고 하셨으며,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는 영생으로 솟아오르는 물을 주셨고,6 야이로의 죽은 딸에게는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7라고 하셨으며, 무덤의 나사로에게는 “나오라”8라고 하셨습니다.
구세주께서는 항상 무한한 동정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곳 미대륙의 백성에게 나타나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거든 이리로 데려 오라. 너희 가운데 [다리저는 자]와 장님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자와 수족을 못쓰게 된 자와 [나병]에 걸린 자와 마르는 병에 걸린 자와 [듣지 못하는 자] 등 온갖 질병으로 고난을 받는 자가 있느냐? 저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내가 저들을 고쳐 주리니 이는 내가 너희를 가엾게 생각함이라.”9
그리고는 그들을 낱낱이 고쳐 주셨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의 구속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자신의 여리고 길에서 그러한 값진 경험을 실제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주님의 말씀으로 대신 대답하겠습니다. “와서 보라”10
우리에게 언제 이러한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리고로 가는 사마리아인처럼 어떤 사람을 도와야 할지 알 수 없으며 지친 나그네처럼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은 우리에게 낯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 본부에 도착한 한 통의 편지에 진정한 감사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발신인 주소는 없었지만 소인은 오레곤 주 포틀랜드 시로 찍혀 있었습니다.
“대관장단 사무실 전
“솔트레이크시티는 한 때 제가 방황하던 시절, 기독교적인 호의를 베풀어주었습니다.
“버스로 캘리포니아까지 대륙 횡단하는 중에 솔트레이크시티의 한 터미널에 내렸는데 필요한 약이 없어서 수면을 취하지 못해 몸이 아프고 떨렸습니다. 보스톤에서 황급히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그만 깜빡 잊고 약을 챙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템플 스퀘어 호텔의 식당에서 제가 낙담하여 앉아 있었는데 어떤 부부가 제 테이블로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젊은이, 괜찮아요?’라고 부인이 물었습니다. 저는 일어나 울면서, 또 조금은 떨면서 곤경에 빠진 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뒤죽박죽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고 나서는 식당 지배인에게 일러두기를 제가 5일 동안 그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옆에 있는 호텔 데스크로 데리고 가서 5일 동안 묵을 수 있는 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 저에게 정말로 저의 건강과 안정에 근본적인 생명선인 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힘을 회복하고 있는 동안 저는 매일마다 태버내클 오르간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오르간에서 나오는 훌륭한 음악은 제가 알고 있는 것 중에는 가장 숭고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태버내클 오르간과 합창단의 앨범과 테이프를 받았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이 음악에 의지해서 의기 소침해진 제 영혼을 달래고 보강할 수 있습니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 다시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열쇠를 반납했는데 그 부부가 남긴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비슷한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보임으로써 우리에게 보답하실 수 있습니다.’ 원래 제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잘 보살펴 주는 편이긴 했지만 그 때부터는 더욱 열심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서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이 정말로 경전에서 말하는 ‘말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귀 교회의 회원 두 사람은 제가 절실히 도움이 필요로 했던 때에 저에게 ‘성도’였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이 알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동정심의 예입니까!
어떤 사설 요양원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동정심이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소유주는 에드나 휼렛이었습니다. 에드나는 천사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남은 생을 그녀의 보살핌 아래 지내고자 하는 환자들이 줄을 지어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모든 환자들의 머리를 감아주고 빗어주었습니다. 노인들에게 목욕도 시켜주고 환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제가 한 때 감리했던 와드의 미망인들을 방문하는 동안 저는 그들을 방문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에드나 요양원을 먼저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저를 상냥한 미소로서 환영하며 환자들이 앉아 있는 거실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항상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은 지니 버트라는 할머니였는데 102세까지 사셨습니다. 그 분은 제가 태어날 때부터 저와 저의 가족을 알고 지낸 분이었습니다.
한 번은, 지니가 억센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토미, 최근에 에딘버그에 가본 적 있어요?”
“예, 얼마 전에 가보았습니다.” 하고 제가 대답했습니다.
“참 아름답지요?”
지니는 깊은 몽상에 잠긴 듯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장례 비용을 현금으로 미리 냈어요. 내 장례식에서 장로님이 말씀하시고 테니슨의 시 ‘모래톱을 건너서’를 암송해 주세요. 한 번 들어 봅시다!”
모든 눈이 저에게 쏠린 듯 해서 돌아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니는 다정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미소를 짓더니 “오 토미, 정말 좋았어요. 그렇지만 내 장례식 전에 조금 더 연습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비틀거릴 때도 있고 힘없이 미소 지을 때도 있고, 병의 고통도 있고, 여름이 지나 가고 가을이 오며, 추운 겨울이 오고, 죽음이라는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옵니다. 이 죽음은 비틀거리며 걷는 노인에게도 옵니다. 그 소환장은 아직 반도 채 살지 못한 사람에게도 오며, 종종 웃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도 찾아옵니다.
전세계를 통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들과 딸,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과 작별을 고할 때 그들이 슬퍼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잔인한 십자가 위에서 구세주께서 그의 어머니에게 고한 온화한 작별의 말은 특히 통절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12
장례식의 꽃이 시들고 나면 친구들의 기원도 추억이 되고 기도와 말씀도 우리의 기억에서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상기합시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종종 외롭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립고, 십대들의 소동이 그립고, 떠나간 배우자의 부드럽고 사랑스런 관심이 그리워집니다. 시계는 더욱 크게 똑딱거리고, 시간은 더욱 천천히 가며, 사방의 벽은 감옥 같기만 합니다.
사랑과 동정어린 관심으로 굶주린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집 없는 자에게 잠을 재워주는 사람들을 찬양합니다.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
주님의 동정심으로, 그리고 신성한 계획에 따라, 우리는 성전에 감으로써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날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의 지시하에 새로 건립된 성전과 건축 중인 성전의 수는 매우 놀랍습니다. 지상의 자녀들과 장막 저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동정 어린 관심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분의 생애에 대해, 복음에 대해, 모범에 대해, 그리고 축복 받은 속죄에 대해 감사드려야 합니다.
오클라호마 시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는 주님의 아름다운 성전이 이곳에 세워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기쁨과 다음 세상에서 오는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하는 길을 표시하기 위해 하늘에서 보낸 횃불로서 이 도시에 서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13
실제적인 방법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14
그분의 두드림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의 진실한 사랑이 들어 오도록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