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러나 우리가 낟알 하나만큼의 신앙이라도 갖고 시작한다면, 양들을 위해 우리가 행하는 봉사로 인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커갈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영예를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우리의 직분입니다. 신권을 받을 때, 우리는 교회 회원을 보살피는 책임을 맡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신권의 회장은 전체적인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각 정원회는 신권의 열쇠를 통하여 맡은 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새로 부름 받은 집사조차도, 교회 회원을 돌보는 이 위대한 책임을 담당하게 됩니다.
교리와 성약에 있는 다음 말씀에 귀기울여 보십시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저마다 맡은 바 직분을 지켜 자기의 부르심대로 힘써 일하라. 머리가 발을 향하여 발이 필요없다 말하지 말라. 발 없이 어찌 몸이 서 있으리요.” 그런 후에 구세주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집사까지도 그분의 임무 지명 목록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집사와 교사는 교회를 지키며 교회의 상임 역원으로 임명되어야 하느니라.”(교리와 성약 84:109, 111)
새로 성임된 집사와 최근에 개종하여 성임된 회원까지도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제가 거룩한 의무에 대해서 잘 설명 드릴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경전의 여러 곳에서 주님께서는, 자신과 그분께서 신권 직분에 부르신 사람들을 목자로 묘사하셨습니다. 목자는 양을 보살핍니다. 경전의 이야기에서 양들은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보호와 양육이 필요합니다. 구세주께서는 그분께서 하시는 것처럼 양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양들을 위해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 양들은 그분의 소유입니다. 우리가 고용된 종처럼 오직 편리할 때나 보상이 있을 때만 양을 보살핀다면, 우리는 주님의 표준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분의 표준은 이렇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한복음 10:11~12)
교회의 회원들은 양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양이며, 우리는 그들을 보살피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먹여야 합니다. 영적인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그들에게 영적인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는 신앙과 비이기심이 필요합니다. 오래 전에 주님께서는 그의 예언자에게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질책하라고 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언자 에스겔이 전한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에스겔 34:1~2)
양들은 굶주리게 내버려두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던 목자들은 그 음식으로 양들을 구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몰몬경에 나오는 한 위대한 목자는 그 음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제공되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침례를 받은 뒤에는 성신의 능력으로 정결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백성으로 헤아림을 받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으로 양육되어 이를 바르게 지키며 깨어서 항상 기도하며 저들의 신앙을 이루어 주시며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그리스도의 공덕만을 의지하도록 저들의 이름이 기록되나니”(모로나이서 6:4)
목자가 양들은 굶주리도록 내버려둔 채 자신의 배만 불리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양떼를 먹이는 많은 목자들을 보았습니다. 한 집사 정원회 회장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의 정원회 회원 한 사람이 저의 집 근처에 살았습니다. 이웃에 살고 있는 그 소년은 정원회 모임에 한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었으며 정원회 회원들과 어떤 일도 같이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양아버지는 교회 회원이 아니었으며 어머니도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그가 속한 집사 정원회의 회장단은 평의회를 가졌습니다. 훌륭한 고문과 교사는 매주 하나님의 선한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했습니다. 회장단 모임에서, 이 열세 살 된 목자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그 소년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들이 그 소년에게도 절실이 필요하리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회장은 그의 보좌 한 명에게 그 헤매는 양을 찾아가 보도록 지명했습니다.
저는 그 보좌가 소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또 그 임무 지명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보좌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제 집 옆을 지나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소년의 집을 향해 터벅터벅 올라가는 모습을 의구심을 갖고 창문으로 지켜 보았습니다. 그 목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땅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그가 가고 있는 곳이 정말로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곳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듯, 그는 천천히 걸었습니다. 20분쯤 후에 그는 되돌아 내려왔는데, 그 옆에는 그 잃어버렸던 집사가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몇 번인가 일요일마다 반복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그 소년은 멀리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별로 대단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세 명의 소년이 한 방에서 조그만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으며, 그 중 한 소년이 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다른 한 소년과 함께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난 후, 저는 그 회장단이 만나 회의를 했던 방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열린 한 스테이크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한 백발의 노인이 제게 다가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의 손자가 여러 해 전에 형제님의 와드 지역에 살았었습니다.” 그분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 소년의 삶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분은 저에게 오래 전에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던 그 집사를 찾아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당시의 그 집사에게 대신 감사를 전해 줄 수 있는지 또 이제는 성인이 된 그의 손자가 지금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전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몇 주 동안 그는 난생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자신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런 이유로 그 일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진리를 듣고, 경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생명의 떡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어린 목자들은 주님에게서 받은 그들의 신뢰에 충실했습니다.
주님에게서 받은 신뢰에 충실하고 또 지속적으로 충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세주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되도록 어떻게 그들을 훈련시킬 것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세우셨으며 사도들을 성임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경험이 없는 종들의 손에 그분의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그분은 그 종들이 그들의 인간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어려운 일들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 종들을 위해 행하셨던 일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구세주께서 배반당하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극심한 고통을 겪으실 때, 그분께서는 혼자 가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신권을 지닌 종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마태복음에 이러한 기사가 있습니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복음 26:38)
구세주께서는 아버지께 힘을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고통 중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돌아와, 그분과 함께 깨어 있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0~41)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그분의 목자들 사이에 있었던 이 짧은 대화에는 어떤 확신과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깨어 있으십니다. 모든 것을 보시며, 그 사랑에 끝이 없고 결코 주무시지 않는 그분은 우리와 함께 깨어 계십니다. 그분은 매 순간 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성신의 권세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또 우리를 그 양들에게로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신권으로 그분의 권세를 가져와 그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경고는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영적인 면에서 양을 죽이려는 이리는 분명 목자도 공격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도 보살펴야 합니다. 목자인 우리도 조금은 유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죄도 성신을 해칩니다. 여러분은 영을 거스르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장소에 가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됩니다. 죄가 여러분을 실족하게 한다면,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영의 속삭임을 듣고 순종하여 합당했다면, 여러분이 막을 수도 있었던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난 슬픔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목자는 영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또 하늘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것입니다.
고대의 한 예언자에게 주어진 경고는 우리에게도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했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에스겔 33:7~8)
실패에 대한 벌은 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성공을 위한 기초를 어떻게 쌓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간단한 메시지를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것은 참된 목자의 가슴에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17)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동기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주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낟알 하나만큼의 신앙이라도 갖고 시작한다면, 양들을 위해 우리가 행하는 봉사로 인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커갈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목자가 행해야 하는 간단한 일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양, 곧 우리의 책임이 있는 모든 양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알게 해 주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응답은 올 것입니다. 어떤 얼굴이나 이름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떠오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하지도 않은 사람과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순간에, 우리는 구세주께서 그들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양을 보살필 때, 그분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은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의 자신감과 용기를 키워 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야. 내게는 보살펴야 할 사람이 너무도 많아. 그리고 나는 시간도 별로 없어.”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느 곳으로 부르시든 그분은 방편을 마련하여 주십니다. 그것을 믿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2년 전에 한 사람이 장로 정원회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교회 회원이 된 지 10년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막 성전에 가기에 합당하게 되어 성전에서 부부 인봉과 가족 인봉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지체 부자유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세 딸이 있었습니다. 큰 딸은 열세 살이었는데, 다른 딸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또 집을 관리했습니다. 막노동으로 버는 적은 수입으로 그는 다섯 식구뿐 아니라 그 작은 집에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장로 정원회 회장으로 부름 받았을 때, 그 정원회에는 13명의 회원이 있었습니다. 그 작은 정원회는 또 다른 101명, 즉 신권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집사, 교사, 또는 제사 직분을 지닌 회원들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총 114명의 영혼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었으나, 일요일과 주 중에 하루 저녁 외에는 봉사할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직면한 어려움으로 인해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살펴야 하는 양들을 만나고 그들을 알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의 기도는 기대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응답되었습니다. 그는 개인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목적은 그를 통해 가족을 강화시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지 않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족을 강화하는 방법이 성전에서 성약을 맺고 지키는 데 가족들이 합당하게 되도록 돕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선한 목자가 늘 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야 할 목적지가 성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는 누가 그의 보좌가 되어 그와 함께 가야 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어떤 가족이 그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어떤 가족이 준비되어 있는지 알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방문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냉담하여 그의 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함께 그는 한 가지 방식을 따랐습니다. 상대방에게서 관심과 믿음을 보게 되면 즉시 감독을 만나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감독에게는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성전에 가서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성전이 주는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간증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이 정원회 회장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스테이크 지도자가 가르치는 성전 준비반에 참석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과정을 끝마친 것도 아니었으며, 또 모든 사람이 성전에 가기에 합당한 요건을 갖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가족과 아버지들을 위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으로 베푸는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초대를 할 때마다 정원회 회장은 영원히 인봉된 가족이 누리는 축복과, 가족이 헤어질 때의 슬픔에 대해 간증을 전했습니다. 모든 초대는 구세주의 사랑과 함께 전해졌습니다.
정원회 회장으로 봉사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가르친 열두 명이 장로에 성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정원회 장로들 가운데서 네 명이 대제사에 성임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숫자들로는 기적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 형제들의 가족들은 세대에 걸쳐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서로에게 인봉되고 또 자녀들에게 인봉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하늘의 도움을 받고, 또 충실한 부모에게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영감으로 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장로 정원회 회장과 그의 보좌들은 참된 목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양떼를 보살폈으며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세주께서 한 사도, 곧 토마스 비 마쉬에게 가르쳤던 진리를 직접 목격한 증인입니다. 주님과 함께 그분의 양을 돌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내가 보내는 곳은 어디나 가라. 네가 행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곳을 보혜사께서 알려 주시리라. 유혹에 빠지지 않고 상을 잃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라. 끝까지 충실하라.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도다. 이 말씀은 인간의 것이 아니요, 나의 것이니 곧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야기한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니라. 아멘.”(교리와 성약 31:11~13)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고 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저는 사랑하는 구세주께서 충실한 목자들과 함께 그분의 양을 보살피고 계시다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