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회
하나님의 아들과 딸
2024년 10월 연차 대회


하나님의 아들과 딸

우리는 진심으로 모든 사람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처럼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가장 영광스럽고, 기쁘고, 강력한 복음 진리 중 하나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이 교리는 우리가 비판을 받아온 내용이기도 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겪은 한 가지 경험을 통해 이 복음 진리에 대해 더욱 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교회 대표로 한 종교 회의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그들은 그 순간부터 거의 모든 기독교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침례를, 물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행하기만 한다면 그 침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행하는 침례에는 이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저는 발표를 담당한 지도자와 그런 예외를 둔 이유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훌륭하고 통찰력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그는 그 예외 조항이 다른 기독교 교파에서 흔히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신회에 대한 우리의 특별한 믿음과 주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내어 자신의 믿음과 그 교회의 정책에 관해 설명해 준 그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대화를 끝내고 우리는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중에 그 토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던 중에, 이 지도자가 후기 성도들은 그가 “삼위일체의 신비”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승영하신 분”이시며 “사람의 것과 같은 만져 볼 수 있는 [영화로운] 살과 뼈의 몸을 가지셨으며, 아들도 그러하[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말할 때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시편의 저자가 기록했듯이 하나님께서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회복의 출현과 함께 되찾은 귀중한 교리입니다. 요약하자면, 그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선교사들이 첫 번째 토론의 첫 번째 문단, 첫 번째 줄에서 가르치는 바로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는 우리가 주장하는 더 깊은 의미의 함의와 약간 다를 수도 있습니다. 후기 성도에게 이 가르침은 은유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가 모두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 영의 아버지”이시며,6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처럼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어떤 이들은 이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처럼 여깁니다.

첫 번째 시현으로 회복의 문이 열린 지 이제 20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어린 조셉 스미스는 어떤 교회에 가입해야 할지 알기 위해 하늘의 인도를 구했습니다. 그날 받은 계시와 나중에 그에게 주어진 계시를 통해 선지자 조셉은 하나님의 본성과 그분의 자녀인 우리와 그분의 관계에 대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이 소중한 교리를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더 명확히 알게 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경전에서 적어도 두 가지 기록을 인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값진 진주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지시를 기억할 것입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나는 전능한 주 하나님이요, 무궁이 나의 이름이니라.” 다시 말하면, 모세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 네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그리고 보라, 너는 내 아들이니라.”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분은 나중에 “그리고 내 아들 모세야, 나는 네가 해야 할 일을 갖고 있도다. 너는 나의 독생자를 닮았나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마지막으로 “그리고 이제 보라, 나의 아들 모세야, 이 한 가지를 내가 네게 보여 주노니”라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적어도 다음 한 가지 교훈, 곧 “너는 내 아들이니라”라는 교훈을 가르치기로 결심하신 듯 이를 적어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분은 모세의 이름을 언급하실 때마다 그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말씀을 즉시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홀로 남겨진 후, 더 이상 하나님의 면전에 있지 않은 까닭에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고 느꼈습니다. 그때 사탄이 그를 유혹하기 위해 왔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패턴이 보이나요? 사탄이 모세에게 처음으로 한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람의 아들 모세야, 나를 경배하라.”

이 맥락에서 사탄이 자신을 경배하라고 요청한 것은 단지 주의를 흐트러뜨리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연약한 순간에 모세가 받은 의미심장한 유혹은 그가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단지 “사람의 아들”일 뿐이라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나니, 모세가 사탄을 보고 이르되, 너는 누구냐? 보라, 나는 하나님의 한 아들이요 그의 독생자를 닮았[도다.]” 다행히도 모세는 당황하지 않았고 주의가 흐트러지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지에 대한 교훈을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내용은 마태복음 4장에 나와 있습니다. 학자들은 마치 우리 주님이 세 번만 유혹을 받으신 것처럼 이 기사에 “예수님의 세 가지 유혹”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러한 유혹의 의미와 내용을 무수히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장은 예수께서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라는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사탄의 첫 번째 유혹은 오직 주님의 육체적 필요 사항만을 충족시키려 했습니다. 사탄은 주님께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유혹했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마지막으로, 사탄의 세 번째 유혹은 세상의 열망과 영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 [사탄]이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사실, 사탄의 궁극적인 유혹은 구체적인 이 세 가지 도발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하여 당신의 신성을 의심하게 하는 것과 더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두 번 이상, 사탄은 유혹에 앞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정말로 믿는다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도전적인 비난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금식하고 기도하기 위해 광야로 가시기 직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신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연관성이 보이십니까? 패턴을 알아보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 운명에 대해 배울 때마다 모든 의의 대적이 우리를 유혹하여 그것에 대해 의심하게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 진정으로 안다면 우리의 결정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우리는 도전적인 세상,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이런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들은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교회에 소속되어 우리의 이상을 높이고 우리를 신성한 것으로 초대하는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에는 그분의 높은 기대감과 우리의 영원한 가능성이 분명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프리 알 홀런드 회장님의 말씀을 빌자면, 그것은 “종국에” 일어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나아온다면” “그분 안에서 온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어떤 노력이든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노력이 필요한 이 일은 그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식은 “보라,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이것이 곧 나의 일이요, 나의 영광이니라.”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라는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의 권유에는 우리의 신성한 본성과 기원 그리고 잠재적인 목적지를 훌륭하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통해서만 해의 왕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이겠지만 사탄은 예수님이 지상 성역을 시작하신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똑같은 유혹으로 그분을 부추겼습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지나가는 자들[이] …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유혹에 귀 기울이는 대신 우리가 하늘의 모든 축복을 받도록 길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엄청난 대가가 치러졌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합시다.

저도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간증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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