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스카이드랏 보쿠마: 라트비아 쿠제메 지역
2017년 4월호


신앙의 초상

스카이드랏 보쿠마

라트비아 쿠제메 지역

스카이드랏 보쿠마

라트비야 쿠제메 지역 출신인 스카이드랏 보쿠마는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여덟 살 때 당시 소련으로 알려진 곳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이혼하셨어요.” 스카이드랏은 말한다. “알콜중독자이셨거든요. 아버지가 있긴 했지만, 시베리아로 끌려가셨어요. 우리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정부가 우리를 아파트로 이주시켰죠. 종종 먹을 음식이 없었어요. 제 여동생이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그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어요. 가정 환경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저를 시골로 보내어 목동이 되게 하셨죠.”

스카이드랏은 그때부터 종일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노예처럼 살았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했어요. 나무를 해 오고, 우유를 짜고, 밤에는 동물들을 우리에 집어 넣어야 했고요.” 스카이드랏이 학교에 가 본 것은 어느 겨울 학기 한 번뿐이었다.

그 목장 소유주였던 아주머니는 스카이드랏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스카이드랏은 이렇게 회상한다. “주인 아주머니는 제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다고,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몇몇 기본적인 원리들도 가르쳐 주셨죠. 예를 들어, 뭔가를 잃어 버렸을 때는 그것을 찾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만약 스카이드랏이 말을 듣지 않거나 실수를 하면, 그 목장 주인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스카이드랏을 때리라고 했다. “아저씨는 저를 때리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쩔 때는 저를 숨겨 주시고는 ‘나에게 매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거라’ 라고 하셨죠. 저는 숨어서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카이드랏은 정기적으로 매를 맞고 발길질을 당했다. 더이상 웃음이 나지 않았다.

농장에서 공장으로

이 년이 지난 후, 스카이드랏은 그 시골 목장을 나왔다.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은 직업 교육을 받기 위해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다. 바느질을 배우면서 스카이드랏은 농장 학교에서 일도 했다. 그녀는 잡초를 뽑고 우유를 짜면서 약간의 돈을 모았고, 종종 그 돈으로 살아 있는 여동생 두 명을 만나러 가곤 했다. 다시 가족으로 함께 뭉치는 날을 바라면서 말이다.

그 위탁 가정에서 스카이드랏이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려 할 때면,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었고 그곳에서는 기도가 금지사항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정말 신이 있다면 네가 이런 위탁 가정이 오지 않았을 거야. 네게 훌륭한 가정이 있었겠지.”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며 믿음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학교에서 오 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스카이드랏은 봉제 공장에 취직했다. 그녀는 훌륭한 재봉사였지만 일 하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비웃으며 그녀가 일부러 일을 안 하려고 그런다고 비난했다. 일을 하는 속도가 느렸기에, 보수도 적게 받았다. 스카이드랏은 실망과 낙담에 빠졌다. 심지어 자살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 때 다른 공장이 문을 열었고, 스카이드랏은 그 새로운 공장으로 이직했다. 그 공장에서는 속도보다 질을 우선했고, 스카이드랏의 실력은 누구나 알 정도로 좋았으므로 그녀는 다른 재봉사들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승진했다. 그녀에게는 딱 맞는 역할이었다.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지 말거라”

스카이드랏은 1969년에 결혼했지만 자녀를 갖지 못하다가 1981년이 되어서야 첫째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서 스카이드랏은 다시금 자신의 삶에 종교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지 말거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존중심은 가질 수 있지 않겠니?”

스카이드랏에게는 여전히 알콜중독자였던 어머니에게 받은 정서적인 상처가 남아 있었다. 심지어 결혼식이나 다른 축하 모임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면 그 옆에 있기조차 싫었다. 스카이드랏은 시어머니의 친척 중에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한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사람을 통해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에 가긴 갔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게 십 년이란 세월을 버둥거리며 살면서도 하나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소망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 알콜중독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이혼했고 남편과 아들은 다른 먼 곳으로 이주했다. 다시 어둡고 절망적인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자살이 답인 걸까?

그 자매님이 저를 보고 웃어 주었어요.

1999년, 스카이드랏은 교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라는 푯말이 걸린 교회 건물을 보게 되었다. 그 날은 평일이었지만, 스카이드랏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에는 자매 선교사들이 있었어요. 제가 안으로 들어가자, 한 자매님이 저를 보고 활짝 웃어 줬지요. 저는 그 자매님이 제 뒤에 있는 다른 누군가를 보고 웃는 줄 알았어요. 그러다 그 자매님의 미소가 다른 사람이 아닌 저를 향한 미소라는 것을 알고는 저도 자매님께 미소로 화답했죠. 그건 마치 가장 친했던 친구를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그 자매님이 저를 이 교회로 인도해 주신 분이랍니다. 선교사님 같은 분들은 제 평생 만나 본 적이 없었어요. 하늘에서 이 지상으로 내려 오신 천사 같은 분들이시죠.

한 마디로 말해서, 바로 그 날부터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스카이드랏은 다니던 교회를 떠나 후기 성도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 교회 사람들은 그 교회에 가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말이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말했죠.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 교회에 안 나가겠다고요.” 스카이드랏은 말한다. “하지만 이 교회에는 오히려 좋은 것들만 가득했어요.” 그 이후로 벌써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인생은 아름답다

현재 71세인 스카이드랏은 오늘이 너무 행복하고 언제나 활기에 가득 차 있다. 과거에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제가 그 자매 선교사를 처음 본 그날 이후로, 이 교회를 알게 된 바로 그날 이후로, 자살에 대한 생각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삶이 어둡고 절망적이란 생각도 사라졌지요. 비록 어려움은 계속 있지만, 저는 이제 긍정적으로 삽니다. 제게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스카이드랏은 행복하고 활기에 가득 차 있다. 지금의 그녀를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녀는 말한다. “이제 제게는 복음이 있습니다. 제게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경전을 들고

참된 교회를 찾는 동안 스카이드랏은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그렇게 질문을 하면서 저는 하나씩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창밖을 내다 보는 모습

어린 시절에 받은 정서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스카이드랏은 다른 사람들을 돕고 봉사하며 기쁨을 느낀다.

어린 소년과 부엌에 서 있는 모습

오래 전에 스카이드랏이 후기 성도 교회를 알아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이 교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스카이드랏은 이 교회에 좋은 것만 가득하다고 말했다.

계단에 서서

스카이드랏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걷고 그분의 힘에 의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네 짐을 내게 맡기고 나에게 의지하라”고 응답하셨다.

걸어 내려오며

스카이드랏이 교회 건물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한 자매 선교사가 환한 미소를 그녀를 맞이했다. 그 선교사에게 큰 감명을 받은 스카이드랏은 선교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스카이드랏은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다.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