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작은 일에서
2004년 10월


작은 일에서

우리는 선을 행함에 지치지 말아야 하고 초조해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는 “적절한 시기에” 올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이 주제를 선택한 이후로 모임 개회 시에 불렀던 회복에 대한 그 장엄한 찬송가의 가사들은 제 마음과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시온이 아름다움 속에서 일어나게 하라, 그 빛이 비추기 시작하네 …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네.”(“Let Zion in Her Beauty Rise”, 영문 찬송가, 41장) 주님이 돌아오실 약속된 때를 생각하면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 우리 각자가 준비되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생각하면 엄숙해집니다. 그러나, 자매 여러분, 여러분을 만나 여러분의 결심을 볼 때면, 우리가 성도로서 종종 느끼는 것만큼 부족하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준비하면서, 확신과 희망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1832년 9월은 초기 성도들이 분주하게 준비했던 시기입니다. 예언자는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 남동쪽에 위치한 존 존슨의 집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형제들은 미주리 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동안 요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64편에 나와 있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미주리 주로 가는 형제들에게 가르침을 주신 후, 다음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만사는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느니라. 그런고로 선을 행함에 지치지 말라. 너희는 위대한 사업의 기초를 닦고 있음이라.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느니라.”(교리와 성약 64:32~33)

이 구절들은 우리가 “위험한 시대”(디모데후서 3:1 참조)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 자신과 가족들을 준비시킬 때 지침이 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함에 지치지 말아야 하고 초조해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는 “적절한 시기에” 올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큰 일이 “작은 일”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제가 배운 작은 일들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영적인 저수지를 매일 채우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결점에 대한 광범위한 목록을 만들어 제 친구가 지적하는 것같이 마치 “독사”처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자기 개선은 일종의 방대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우리 자매들이 아이들을 키우고, 필요 사항을 제공하고, 학교에 참석하고, 노화나 악화된 건강 문제를 다루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영성은 해야 할 일이 적힌 긴 목록에서 종종 맨 밑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경전 공부와 기도는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경전을 읽으며, 우리가 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그것은 단지 의식에 불과한 것이며, 그 시간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전적으로 생산적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족의 도움으로 충분한 시간을 내어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숙고하고, 느끼고,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매일 시간을 낸다면, 우리를 강화시키시고, 고무시켜 주시며, 새롭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교리와 성약 88:63 참조)

자매 여러분, 봉사하고 싶다면 준비해야 하고, 준비하고 싶다면 봉사해야 합니다. 제가 열여섯 살이었을 때, 저는 당시 유년 주일학교라 불리는 반에서 세 살 된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그 당시에는 그런 반이 있었습니다.) 저는 몇 명의 부산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아이들은 의자와 탁자 위 아래를 오르내리고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경험이 전혀 없었고, 처음 몇 주 동안, 부름을 받은 것이 올바른 일이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가르쳤으며, 얼마 안 되어 제가 배운 것은 도움을 얻기 위해선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활동 및 이야기, 그리고 공과를 계획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여러 가지 대체 계획들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수년 후, 제가 유년 주일학교를 이끌도록 부름을 받았을 때, 저는 새로운 교사들을 돕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인도하는 법과 부름에 충실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교회에서 여러 가지 부름들을 수행했습니다. 어떤 부름은 다른 부름보다 쉬웠지만, 저는 각 부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함”이라는 문구 때문에 긴장되십니까? 저도 걱정했었습니다. 최근 저는 요셉 스미스가 그 주제에 대해 말한 내용을 인용했던 몬슨 부대관장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부름을 영화롭게 합니까? 부름과 관련된 봉사를 단순히 행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신권의 권세”,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60쪽) 자매님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매들이 ‘부름 때문에 녹초가 되어 버렸어’ 또는 ‘봉사할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유인물과 멋진 탁자 장식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방문 교육을 할 때 자매들에게 항상 무엇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나쁜 적이 됩니다. 간단하게 합시다. 좋은 공과 메시지는 영적인 준비를 통해서 옵니다. 복음 원리들과 우리의 학습 지도서의 자료들에 초점을 맞춥시다. 추가적으로 만든 자료, 즉 우리가 준비하느라 너무 지쳐 부름을 수행하는 데 소비한 시간들에 짜증낼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토의를 통해 흥미 있는 생각들을 나누기 위해 준비합시다.

우리가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을 때, 해임 날짜는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봉사입니다. 92세이신 우리 스테이크의 로이스 보너 자매는 65년 전 결혼했을 때부터 방문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충실히 봉사합니다. 캐나다에서 온 넬슨 부부와 유타에서 온 엘스워스 부부 선교사는 미주리 주의 성장 단계에 있는 작은 와드에서 자매들을 가르치고, 조언해 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통해 봉사의 기쁨을 배우고, 경험에서 나오는 그 분들의 지혜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느 연령에 있든지 간에 그분의 자녀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헌물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점점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십일조와 금식 헌금입니다. 주님은 교리와 성약을 통해 우리에게 서로를 돌보고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위해 우리의 세속적인 자원을 기꺼이 바치라고 권고하십니다. 사실상, 이렇게 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의는 주님께서 지상에 다시 오시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들 중 하나입니다.(대니얼 에이치 러들로우, A Companion to Your Study of the Doctrine and Covenants, 제2권. [ 1978년], 2:46 참조) 우리 각자의 상황이 다르더라도 우리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라고 요구하시지는 않지만, 요구 받는다면,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이고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이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브르스 알 맥콩키, “순종, 헌납 및 희생”, Ensign, 1975년 5월호, 50쪽 참조) 저희 부부가 살던 스테이크에서, 스테이크장님은 회원들에게 그들의 금식 헌금을 두 배로 내고 그로 인해 올 축복에 대해 준비하라는 목표를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후하게 내는 일에서 진실되고 충실하다면 주님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개인적인 간증을 드립니다.

기도와 경전 공부를 통한 영성,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 후한 십일조 및 헌물, 이것들은 새로운 원리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큰 일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작은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오는 구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진심과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교리와 성약 64:34)을 요구하십니다. 새로워져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우리 각자는 결점과 약점과 불완전한 태도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말고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열어 놓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자기 목숨”을 구하지 말고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힐라맨서 10:4)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고 베푼 다음, 우리의 마음과 뜻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현재는 물론 영원토록 우리의 삶이 풍성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매님들, 선을 행하는 데 지치지 마십시오. 인내한다면, 우리가 구하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에게 이것은 진로를 약간 수정하기를 요구하여 우리가 정방향 곧 의의 길을 향해 나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수정 작업은 바로 그 “작은 일”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많은 세력이 우리의 나침반의 작용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바로 북극성의 당기는 힘입니다. 그것은 본향으로 인도해 주는 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사랑하는 딸들인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실재성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우리가 구세주께서 보여주신 삶을 본받고자 우리의 삶을 조화시킬 때, 우리는 시온의 빛이 일어난다는 것과 우리가 그분의 재림에 대비하여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