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하라
우리의 어려움과 슬픔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전진하기를 바라십니다.
저는 인생의 많은 어려움들을 몸소 체험할 만큼 오래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살아온 것처럼 보일 때, 극심한 시련을 잘 견디어 온 특별한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종종, 역경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들은 밤새 잠을 못 이루며 왜 그토록 외로움, 아픔, 낙담, 그리고 우울함이나 상심을 겪어야 하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왜 내게?”라는 질문은 답하기 어렵고 종종 좌절과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더 좋은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은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이 생에서의 삶의 질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은 다양하지만, 우리의 어려움과 슬픔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전진하기를 바라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에 관한 교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기본적인 교리의 하나는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 또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리라]”2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견디는 것을 단순히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그 이상의 것,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그분 안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몰몬경의 예언자 니파이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온전한 희망의 밝은 빛을 품고,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느니라. 너희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쁘게 [취하]며 끝까지 [견딜]진대, 보라 아버지께서 이르시어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3
끝까지 견디는 것은 신앙, 회개, 침례 및 성신을 받는 일을 통해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로 들어선 후에 그 길을 계속해서 가는 것에 관한 교리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은 우리의 온 마음이 요구되며, 몰몬경의 예언자 아맬레카이가 가르친 바와 같이, 우리는 “주께로 나아와 [우리] 영육을 주 앞에 드리며 쉬지 말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니 [우리가] 구원을 얻[을]”4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은 우리의 삶을 복음의 토양 위에 굳건히 세우고, 받아들인 교리들을 계속 지키며, 겸손하게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생활을 하고, 성약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견디는 사람들은 균형이 잡혀 있고, 한결같고, 겸손하고, 꾸준히 발전하고, 간사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간증은 세상적인 동기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지식, 경험 및 영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주 예수 그리스도는 끝까지 견디는 것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씨 뿌리는 자의 단순한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은 것이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망]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5
이 비유는 진리의 씨앗이 뿌려져 자라는 토양의 형태를 설명합니다. 각 토양은 우리의 결심의 정도와 끝까지 견디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길가”라고 하는 첫번째 토양은 복음을 들었으나 진리가 뿌리를 내릴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두 번째 형태의 토양, 즉 “돌밭”은 희생이나 시련의 징조가 처음 나타날 때, 그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마음의 상처를 받고 도망하는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세 번째 토양, 즉 “가시떨기”는 세상의 염려와 부, 그리고 욕[망]에 의해 미혹되어 발전이 멈추는 교회 회원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그들의 삶이 주님의 제자임을 반영하고, 그 뿌리가 복음의 토양 깊이 내려가며 그로 인해 큰 수확을 거두는 교회 회원들입니다.
구세주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견딤 곧 인내의 세 가지 장애물들을 밝혀 주시는데, 그것들은 영혼을 타락시키고 영원한 진보를 저해할 수 있습니다.
인내의 첫째 장애물인 “세상의 염려”는 근본적으로 교만입니다.6 교만은 파괴적인 많은 방법으로 추악한 머리를 곧게 세웁니다. 예를 들면, 지적인 교만은 오늘날 널리 퍼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문과 학구적인 업적으로 인해 하나님과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종들보다 자신들을 더 높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지식이 우리의 영보다 우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의 영을 살찌우고, 우리의 영은 우리의 지식을 살찌울 수 있으나, 우리의 지식을 우리의 영보다 우선으로 둘 경우, 우리는 비틀거리고, 다른 사람들의 결함을 찾고, 자신들의 간증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매우 중요하고 다음 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7 우리는 항상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의 신앙을 옆으로 제쳐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실제로 배울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인내의 두 번째 장애물은 “재물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몰고 다니는 차의 종류, 그들이 입고 있는 비싼 옷, 그들의 집의 크기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너무 걱정하느라 더 중요한 일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8 우리는 매일의 생활에서 이 세상의 것들이 영적인 것들보다 우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구세주께서 언급하신 인내의 세 번째 장애물은 “다른 것들에 대한 욕망”입니다. 외설물이라는 역병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만연하고 있습니다. 외설물은 사악한 부도덕을 불러와서 가정을 파괴하고 삶을 파탄시킵니다. 외설물은 인내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소진시킵니다. 외설물은 수렁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접하는 순간 너무나 쉽게 걸려들고 정복되어 그것이 가혹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외설물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반면, 그것에 결코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간청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원리임
히버 제이 그랜트 대관장님이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총관리 역원 가운데 한 분이 그 분의 댁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에 그랜트 대관장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끝까지 간증을 잃지 않고 충실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9 회복[된 교회의] 위대한 예언자들 중 한 분으로서 27년 동안 대관장으로 봉사한 그랜트 대관장님이 끝까지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사탄의 영향력과 유혹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의 속임수에 희생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매일 경전 공부와 기도를 통해 주님께 가까이 머물러 계십시오. 우리는 뒤로 가만히 물러나 앉아 있으면서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온 생애 동안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10 브리감 영 대관장의 다음 말씀은 인내를 위한 투쟁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동기를 부여합니다. “해의 왕국의 자리를 얻고자 소망하는 남녀는 매일 [이 성스러운 목표를]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11
견디는 힘
저는 많은 사람들이 상심, 외로움, 고통과 좌절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에게 필요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구세주에 대한 소망과 그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지속적인 것이며 그분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2
우리의 삶에서 어려운 도전에 직면할 때, 우리는 교리와 성약 58편에 있는 주님의 말씀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후에 있을 일에 관한 너희 하나님의 계획과 많은 환란이 있은 뒤에 올 영광을 육신의 눈으로는 지금 볼 수 없느니라.
“많은 환란이 있고 난 연후에 축복이 임할 것임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많은 영광의 관을 쓸 날이 오느니라. 그때는 아직 아니나 가까왔느니라.”13
그러므로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전진해야 하며 결국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주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커다란 시련에 직면하여 충실하게 견딘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예를 보여주는 한 사람은 19세기에 살았던 초기 성도로서 워렌 엠 존슨이었습니다. 그는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북부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콜로라도 강을 건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리스 페리를 운영하도록 지명 받았습니다. 존슨 형제는 크고 어려운 도전들을 견뎌 냈고, 평생 동안 충실했습니다. 존슨 형제가 윌포드 우드럽 대관장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그의 가족의 비극을 들어 보십시오.
“1891년 5월에 한 가족이 … 친구들을 방문하며 겨울을 보낸 유타 주 리치필드로부터 이 곳 [리스 페리]로 왔습니다. 그들은 팽귀치에서 한 자녀를 묻었으며, … 포장마차나 자신들의 몸을 소독하지도 않고 … 우리 집으로 와서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 우리는 [디프테리아]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힘든 임무를 다하면서 [계명에] 순종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큼 우리 자녀들이 무사하도록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아, 그러나 나흘 하고 반 나절만에 [큰아들이 제 팔에 안겨 죽었습니다.] 두 명이 더 병에 걸렸으며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고 금식과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24시간 동안 금식했으며, 저는 40시간 동안 금식했으나 아무 소용도 없이 어린 두 딸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죽은 지 일주일쯤 후에 열다섯 살 된 딸 멜리나가 또 병에 걸렸으며, 그 아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으나 그 아이 역시 [곧] 죽고 말았습니다. … 세 딸과 한 아들을 잃었으나 아직 끝이 아니었습니다. 열아홉 살 된 맏딸이 지금 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고 있습니다. 대관장님께 우리를 위해 신앙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일을 다했으며, 다시 그분의 은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얼마 후에 존슨 형제는 지역 지도자인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전진할 수 있었던 그의 신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련이었으나, 저는 구원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통해 제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쇠막대를 굳게 잡으리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형제들의 신앙과 기도로써 제가 축복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살 수 있으리라는 소망과 믿음이 있었습니다.”14
존슨 형제의 힘든 시련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점들을 직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오늘날 우리의 인내를 증가시킬 수 있는 세 가지 자질들을 제언하고자 합니다.
첫째, 간증입니다. 간증은 불가피하게 직면할 시련이나 도전이 지나가는 것을 보는 데 필요한 영원한 안목을 줍니다. 히버 시 킴볼이 다음과 같이 예언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누구든지 빌려 온 빛으로는 견뎌 내기 힘든 때가 올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등불로 인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것이 없다면 여러분은 견뎌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시간이 올 때에 비틀거리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구하고 그것을 굳게 지키십시오.”15
둘째, 겸손입니다. 겸손은 이생을 잘 견디기 위해 주님의 도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견딜 수 없습니다. 그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6
셋째, 회개입니다. 회개라는 영광스러운 은사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마음으로 영생에 이르는 길로 돌아서게 하고, 그 길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성찬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 생에서 견디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성찬은 매주 우리에게 침례 성약을 새롭게 하고 회개하며 승영을 향한 우리의 발전을 평가할 기회를 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들입니다.17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우리가 영원한 세상에서 이 지상에 있었던 짧은 기간을 돌이켜볼 때, 직면했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혜와, 신앙과, 견디고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 것을 소리 높여 외치며 기뻐할 것이라고 간증합니다.
지금 그리고 영원히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