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르는 목탄처럼”,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2권, 그 어떤 신성하지 않은 손도, 1846~1893년』(2019) 제22장
제22장: “활활 타오르는 목탄처럼”
제22장
활활 타오르는 목탄처럼
1863년 6월 5일, 티 비 에이치 스텐하우스는 저녁 어스름이 내린 워싱턴 D.C.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만났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서른아홉 살의 출판 편집인인 스텐하우스는 대서양권에서 매우 존경받는 후기 성도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 영국과 이탈리아, 스위스에서 선교 사업을 했으며, 나중에는 미국 동부에서 선교사들을 이끌었고, 많은 독자를 둔 New York Herald『뉴욕 헤럴드』와 『데저렛 뉴스』에 기고 활동도 했다. 그와 그의 아내 패니는 솔트레이크시티의 성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들은 분지에 저명한 인사가 방문할 때마다 자주 소개되곤 했다.1
스텐하우스는 링컨 대통령을 만나서 그가 성도들에게 자치를 허락하는 사안에 대한 가능성을 어느 정도나 열어 두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유타 주민 대부분은 링컨이 새로운 중혼 금지법을 집행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 회원에게 중혼 혐의로 유죄를 선고하려면 검사는 복수결혼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결혼식은 엔다우먼트 하우스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데다 관리들은 그 기록을 열람할 길이 없었으므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교회 회원들이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한, 유타에서 검사가 누군가에게 중혼 혐의로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은 희박했다.2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유타에서 그들을 다스리도록 링컨이 임명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개했다. 1858년에 브리검 영의 후임으로 온 앨프리드 커밍은 성도들과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다 1861년에 지사직을 사임했다. 링컨이 커밍의 후임으로 선택한 존 도슨은 1862년에 낸 주 승격 청원을 백지화하려 함으로써 순식간에 성도들의 신망을 잃어버렸다.3 그다음으로 링컨이 지명한 스티븐 하딩은 뉴욕주 팔마이라 토박이로, 일찍이 조셉 스미스와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인연에도 불구하고 하딩은 교회의 회원은 배심원이 될 수 없다는 법을 제안함으로써 중혼 금지법을 강화하려 시도했고, 이 일로 즉각 민심을 잃었다.4
링컨 대통령은 스텐하우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하딩 지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농담으로 응수하며 자신이 유타로 보낸 관리들이 더 잘 처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은 3년째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전쟁 중에 있었고, 링컨의 주름진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최근에 그는 전쟁의 기류를 바꿔 볼 생각으로 남부의 모든 주에서 노예를 해방한다는 내용과 흑인도 미국 군대에 입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었다. 그러나 남부의 군대는 워싱턴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큰 희생을 감수하며 대대적인 전투를 벌인 끝에 연방 군대를 격퇴했다. 따라서 링컨은 성도들과 정부 관리 사이의 갈등보다 더 큰불이 발등에 떨어진 상태였다.5
링컨은 스텐하우스에게 말했다. “젊은 시절에 새로 개간한 땅을 한 군데 경작했었는데, 그 땅을 갈던 중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위로 계속 쟁기질을 하기엔 나무가 너무 컸고, 무게도 너무 무거워서 어디다 옮길 수도 없었지요. 또 나무가 물기를 잔뜩 머금어 불에 태울 수도 없었고요. 그 자리에 서서 나무를 찬찬히 살펴본 후에 나는 결국 그 주변 땅만 갈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6
대통령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돌아가서 브리검 영에게 전하십시오. 그가 내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7
얼마 후, 링컨은 하딩 지사를 해임하고 더 온건한 성향의 정치인을 후임으로 지명했다.8
이듬해 1월, 서른세 살의 앨마 스미스는 라나이섬에서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여섯 명의 하와이인 성도의 서명이 담긴 짧고 긴급한 내용의 편지였다. 그 여섯 명 중에는 앨마를 비롯한 유타의 선교사들이 1858년에 다 같이 하와이를 떠날 때 라나이에서 교회를 이끌 지도자로 성별받았던 솔로모나 장로도 있었다.9
앨마는 편지를 읽어 나가며 하와이어를 영어로 주의를 기울여 번역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저희는 이곳에 사는 우리의 선지자 월터 엠 깁슨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우리의 지도자라는 것이 사실입니까?”10
월터 깁슨이 라나이에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선지자”란 말은 충격적이었다. 월터 깁슨은 1861년에 제일회장단의 부름을 받고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으로 야심 찬 선교 사업을 떠났던 유명한 탐험가였다. 선교 사업을 나가고 얼마 안 되어 그는 자신과 딸 탈룰라가 성도들과 함께 라나이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11
그는 그 후로 선교 사업과 라나이 정착촌의 전도유망한 발전상에 관한 소식을 꾸준히 브리검 영에게 보냈었다. 1862년에 하와이의 한 신문은 월터가 하와이에서 성도들과 지내며 한 일을 칭찬 일색의 기사로 다루었고, 이 기사는 『데저렛 뉴스』에도 그대로 실렸었다.12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왜 그곳의 성도들은 월터를 그들의 선지자로 일컫는 것일까? 월터는 선교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앨마는 계속 편지를 읽어 나갔다. 편지에는 월터가 브리검 영의 권세를 거부하고 섬에서 자기 나름의 형태로 신권을 정립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솔로모나와 성도들은 편지에 이렇게 전했다. “그는 십이사도 정원회와 칠십인 정원회, 여러 명의 감독과 고등평의원을 성임했습니다. 성임 증서를 얻으려면 돈을 내야 했고, 돈을 내지 않은 후보자는 성임받지 못했습니다.”13
월터가 교회의 토지를 관리하는 방식도 문제였다. 그는 하와이 성도들에게 기부받은 것들을 이용해서 자기 명의로 땅을 사고, 이제는 그 땅의 소유권까지 주장하고 있었다. “깁슨은 그 땅이 교회 소유가 아니며, 유타의 십이사도는 그 땅에 대한 권리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땅은 오직 깁슨 자신의 것이랍니다.”
이들은 앨마에게 이 편지를 꼭 브리검 영에게 보이도록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이 외국인이 당혹스럽습니다. 절대 그를 믿을 수 없습니다.”14
앨마는 이 편지를 브리검에게 가져갔고, 브리검은 1864년 1월 17일에 십이사도 정원회 앞에서 그 편지를 낭독했다. 사도들은 즉시 조치를 취하기로 뜻을 모았다. 월터는 스스로 선지자라 주장하고, 교회의 토지를 가로챘으며, 하와이의 성도들을 탄압했다.
브리검은 말했다. “십이사도 정원회 중 두 분의 형제님이 하와이 제도에 가 본 젊은 형제들을 이끌고 가셔서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15
브리검은 선교부의 지도자로 사도인 에즈라 벤슨과 로렌조 스노우를 선택했다. 그런 다음, 그는 과거에 하와이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던 앨마 스미스와 조셉 에프 스미스, 윌리엄 클러프에게 가서 그들을 보조하도록 요청했다.16
브리검은 이렇게 지시했다. “그곳에 필요한 일들을 해 주십시오.”17
1864년 3월 31일 아침, 두 명의 사도와 세 명의 선교사를 태운 범선이 하와이제도 마우이섬의 라하이나 외항에 닻을 내렸다. 조셉 에프 스미스는 일행의 짐과 함께 갑판에 남아 있었고, 에즈라 벤슨, 로렌조 스노우, 윌리엄 클러프, 앨마 스미스, 그리고 범선의 선장은 작은 배 한 척을 바다로 내려 타고서 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멀리 해안 가까이에는 높은 파도가 암초 위로 위태롭게 솟구치고 있었는데, 선교사 시절에 여러 차례 항구 안팎을 오간 경험이 있는 윌리엄 클러프는 배를 띄우기에는 파도가 너무 거칠어 보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선장은 항로만 지키면 두려워할 것 없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몇 분 뒤, 그들이 탄 작은 배가 큰 파도에 부딪히면서 배의 선미가 물 위로 들려 올라갔다. 그대로 암초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던 배는 암초에 이르러 다시 한번 파도에 부딪혔고, 배의 선미는 노가 물에 닿지 못할 만큼 높이 치솟았다. 뒤이어 파도가 부서지면서 배는 완전히 뒤집혀 돌며 전복되었다. 형제들은 휘몰아치는 물결 속으로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18
배에 탔던 사람들은 잠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윌리엄과 에즈라, 앨마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뒤집힌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로렌조와 선장을 찾기 위해 형제들이 사방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해변에 있던 하와이 사람 몇몇이 이 사고를 목격하고 곧바로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중 몇 사람은 윌리엄과 에즈라, 앨마를 물에서 건져 내 주었고, 나머지는 로렌조와 선장을 찾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에 들어갔던 이들은 곧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선장을 발견했지만, 로렌조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윌리엄의 시야에 하와이 남자 하나가 로렌조를 끌고 배를 향해 헤엄쳐 오는 것이 들어왔다. 일행은 뒤집혔던 배를 다시 제대로 돌려놓았고, 윌리엄과 앨마는 로렌조를 물에서 끌어올려 자신들의 무릎 위에 뒤집어 눕혔다. 로렌조의 몸은 차갑고 뻣뻣한 채 호흡이 없었다.
배가 뭍에 닿자 윌리엄과 앨마는 로렌조를 해변으로 옮겼다. 둘이 커다란 원통을 옆으로 쓰러트리고 그 위에 로렌조를 엎어 놓은 뒤 통을 앞뒤로 계속 굴리자 마침내 로렌조가 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에 두 사람은 로렌조의 팔과 가슴을 향이 강한 기름으로 문지른 뒤, 몸속에 남은 물이 모조리 나오도록 그를 한 번 더 통에 엎고 원통을 굴렸다. 그러나 로렌조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해변에 있다 그들을 도와준 한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우린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친구를 살리는 건 불가능할 것 같군요.”
윌리엄도, 앨마도 하나님께서 로렌조를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 이 먼 하와이까지 그를 데려오셨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앨마는 어릴 적에 가족과 함께 미주리의 혼즈밀에서 폭도의 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때 그는 폭도들에게 아버지와 형을 잃고 자신은 엉덩이에 총을 맞아 엉덩이 관절이 완전히 없어졌었다. 총을 맞았던 그 연기 자욱한 대장간에서 앨마는 피를 너무나 많이 흘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그의 어머니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영이 그녀에게 앨마를 치료할 방법을 알려 주었다.19
윌리엄과 앨마는 신앙을 발휘하여 다시 한번 로렌조를 살려 보려 시도했다. 그때 윌리엄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입을 로렌조의 입에 대고 이 사도의 폐 속으로 있는 힘껏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윌리엄은 숨을 들이마신 후 그대로 로렌조에게 불어넣었다. 몇 번이나 계속해서 반복하자 마침내 로렌조의 목에서 희미하게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힘을 얻은 윌리엄은 한 번 더 숨을 불어넣었고, 가르랑거리던 소리는 마침내 신음으로 터져 나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드디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로렌조가 말했다.
윌리엄은 “물에 빠지셨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윌리엄이 로렌조에게 자신을 알아보겠느냐고 묻자
로렌조는 이렇게 말했다. “네, 윌리엄 형제님. 전 형제님이 저를 버리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형제님들은 모두 무사하십니까?”
윌리엄이 말했다. “스노우 형제님, 저희는 모두 무사합니다.”20
그리고 돌아온 일요일, 조셉 에프 스미스까지 모두 합류한 가운데 일행은 라나이에 있는 교회의 정착지로 갔다. 그들이 도착하자 몇몇 하와이 성도들은 과거에 이곳에서 봉사했던 선교사들을 알아보고 그들이 돌아온 것을 환영하며 반가워했다.21
월터는 마른 풀로 지붕을 올린 자신의 커다란 집 대문에서 사도들과 선교사들을 맞이했다. 그들의 방문을 예상치 못했던 월터는 왜 이곳에 왔느냐는 듯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월터는 형제들과 냉랭하게 악수를 나눈 후, 이제 이십 대에 접어든 자신의 딸 탈룰라를 그들에게 소개했다. 그런 후 일행을 집으로 들여 고구마와 삶은 염소 고기 등으로 거하게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그러는 내내 그는 형제들과 거리를 두며 형식적인 태도를 일관했다.22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월터는 자신이 하와이 성도들과 갖는 안식일 모임에 일행을 데려갔다. 공들여 복장을 갖춘 “최고 감독”은 회중을 모으기 위해 종을 울렸다. 성도들이 줄지어 들어오자, 열다섯에서 스무 명쯤 되는 청년들이 꽃과 초록 잎으로 만든 화환을 쓰고 집회소 맨 앞에 놓인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그에 이어 제복을 입은 소년 17명과 소녀 17명이 월터가 사도로 성별한 남성들과 감독이 앉은 탁자 옆에 앉았다.
월터가 예배실로 들어가자, 회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월터는 그들을 지나 탁자의 상석에 앉았다. 개회 기도가 끝난 후, 월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타에서 온 다섯 명의 방문객을 소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분들이 오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 본인들이 직접 설명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말하건대, 나는 여러분에게 와서 여러분에게 땅을 사 주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흔들리지도 굴복하지도 않을 겁니다!”23
사도들은 그 후로 이틀에 걸쳐서 은밀히 월터를 만났다. 사도들은 그의 악행이 돈을 받고 신권 성임을 파는 것을 훨씬 넘어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4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
월터는 라나이에 와서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던 대로 태평양에 광활한 제국 건설을 시작할 기회를 포착했다.25 그는 섬에서 땅을 사기 위해 가축과 재산을 기부하도록 하와이 성도들을 설득했다.26 그리고 성도들에게 제국 건설의 꿈을 불어넣으면서 다른 섬들을 침략할 목적으로 라나이섬에 민병대를 조직하고 병사들을 훈련하기까지 했다. 또한 그는 사모아를 비롯한 폴리네시아의 섬들을 지배할 준비를 하기 위해 그곳에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사람들은 곧 그를 왕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누구든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땅에 엎드린 채 무릎으로 기어서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월터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속이 움푹 팬 바위를 성전의 초석으로 정했다. 그는 바위 안에 몰몬경과 다른 문서들을 넣고 덤불로 덮은 뒤, 그곳에 가까이 가면 재앙을 겪으리라고 성도들에게 경고했다.
선교사들과 함께 상황 파악을 마친 에즈라 벤슨과 로렌조 스노우는 모든 성도를 불러 모은 후 지도자로서의 월터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셉을 통역으로 세운 뒤, 에즈라는 월터가 교회의 토지를 몰수하고 신권 권세를 오용한 것을 규탄했다.
그는 이렇게 선포했다. “깁슨 형제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지금의 행태를 바꾸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교회에서 파문해야 할 것입니다.”27
월터가 귓속말을 하자, 탈룰라는 재빨리 인장과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서류 뭉치를 가지고 왔다. 월터는 그중 한 장의 아랫부분에 있는 세 개의 서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 이것이 저의 권세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설마 브리검 영과 여기 있는 그 두 보좌의 이름을 몰라보지는 않으실 겁니다.”
로렌조는 그 서류를 읽어 보았다. 그것은 단지 태평양 제도에 복음을 전해도 좋다는 선교사 허가증에 불과했다. 로렌조가 말했다. “이것은 형제님을 하와이 선교부의 감리자로 지명하는 서류가 아닙니다. 형제님이 그렇다고 추정하신 겁니다.”28
그러자 월터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영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가 내게 손을 얹고 나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또, 영 회장을 만나기 전에 내가 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내게 풍성히 부어 주시면서 내가 크고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월터는 예배실에 있던 하와이 사람들에게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 내며 열렬히 애원했다. “나는 여러분의 축복사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의 땅을 빼앗고 여러분이 벌어들인 것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이런 것이 사랑입니까?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아니면 누구란 말입니까? 자, 나의 자녀이자 벗은 누구입니까? 나의 자녀와 벗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조셉 에프 스미스는 회중으로 눈을 돌렸다. 월터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회중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셉의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들었다. 라나이 정착촌에 대해 품었던 자신의 희망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기분이었다.29
모임이 끝난 후, 월터는 이상할 만큼 로렌조 일행을 친절히 대했다. 일행이 이튿날 저녁에 섬을 떠나기로 결정하자, 그는 해변까지 타고 갈 말들과 거기서 마우이까지 타고 갈 배와 선원을 내주었다. 에즈라 벤슨에게는 튼튼한 지팡이와 수중에 있던 9.75달러를 모두 털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도 허가증이나 성도들에게서 사취한 땅을 내놓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절했다.30
조셉 에프 스미스는 하와이 선교부를 감리하기 위해 뒤에 남고, 에즈라 벤슨과 로렌조 스노우는 라나이를 떠나 유타로 돌아갔다. 선교사들은 월터가 빼앗은 땅을 라나이의 성도들에게 합법적으로 되돌려 줄 방법이 없었다. 그 대신 그들은 다른 섬 성도들의 신앙을 되살려 보기로 결정했다. 조셉은 앨마 스미스에게 하와이의 마우이와 빅아일랜드를, 윌리엄 클러프에게 카우아이를 맡기고, 자신은 오아후를 맡기로 했다.31
성도들 중에는 과거에 월터를 지지했던 일을 후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지 큐 캐넌의 몰몬경 번역 작업을 도왔던 조너선 나펠라는 지난 2년 동안 월터가 지명한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으로 봉사했다. 그러나 조너선은 월터에게는 자신을 그 직에 성임할 권세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자신이 속았다는 마음이 들었다.32
나펠라는 마우이에서 성도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월터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월터는 그들이 모이던 집회소들을 대부분 팔아넘겼고,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고 복음을 가르치며 경전을 읽고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 결과 그들은 영적인 면에서 약해졌고, 월터가 그들에게서 가져가 버린 것들을 생각하며 낙담해 있었다.33
앨마도 마우이의 바위투성이 산악 지대를 종횡무진 다니면서 곳곳에 흩어진 성도들을 방문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는 월터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성도들이 라나이를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옷가지만 등에 지고 마우이로 왔다. 그들은 월터와 함께한 시간 동안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교회로 돌아온 회원들 중에는 침례 성약을 지키는 이가 드물었다.
조셉은 브리검 영에게 보내는 보고에서 이렇게 불평했다. “복음이 과연 조금이라도 그들을 이롭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복음대로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모범을 보이고 귀가 따갑도록 가르침을 전하며 그래도 몇 명은 나아지리라 기대해야 마땅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34
브리검은 조셉과 다른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영의 속삭임을 느낀다면 그렇게 하라고 권고했다. 브리검은 하와이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에 대한 책임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는 조셉과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일렀다. “제 생각으로는 선교부의 일을 그곳 현지의 형제들에게 맡겨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와이 성도들이 복음과 신권을 받은 것은 여러 해 전이었으며, 그들은 이제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갖추고 있었다.35
브리검의 권고가 담긴 편지가 하와이에 도착할 즈음에는 하와이 성도들에 대한 조셉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그는 브리검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선교부를 이대로 두고 떠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셉은 섬에 머무는 미국인 선교사의 숫자를 줄이고, 하와이인 장로 몇 명에게 부름을 주어 선교부 내 여러 섬을 관리하게 하고 싶었다.
조셉은 10월에 이 변경 사항을 발표하고, 호놀룰루에서 열린 선교부 대회에서 하와이 성도들에게 지도자 부름을 주었다. 조셉이 말씀을 전한 뒤, 하와이 사람인 칼로아 장로가 연단으로 나와서 교회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자신의 결심에 대해 간증했다. “여기 계신 장로님들이 처음 섬에 오셨을 때만 해도 저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이제 저는 성인입니다. 어린아이에 머무르지 말고 충실하게 선한 일을 하는 성인이 됩시다.”
다음으로는 나펠라가 일어나 성도들을 향해 의로운 사람이 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깁슨의 교활한 말에 속아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맺었던 성스러운 성약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혹된 상태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성약을 새롭게 하고 충실한 사람이 됩시다.”
또 다른 하와이인인 카나후나후푸 장로도 간증을 더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들은 말씀들은 활활 타오르는 목탄과도 같았습니다.”36
대회가 끝날 무렵, 조셉 에프 스미스와 윌리엄 클러프는 자신들은 곧 유타로 돌아갈 것이라고 공지했다. 몇 주가 흐른 뒤, 브리검은 과거에 하와이에서 조셉의 선교 지도자로 봉사했던 프랜시스 해먼드를 조셉의 후임으로 부를 생각이라고 전해 왔다.37
라나이 정착촌을 잃은 조셉과 선교사들은 이제 성도들의 새로운 집합 장소를 찾고 있었다. 여름에 그들은 하와이의 빅아일랜드에서 좋은 선택지로 보이는 한 장소를 찾았으나 그곳은 하와이의 성도들이 감당하기에는 값이 너무 비쌌다.
게다가, 라나이 정착촌이 실패한 후 집합 장소에 더 많은 돈을 들이는 위험을 감수하기를 꺼리는 성도가 많았다. 또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살던 섬에 있는 자신들의 집 가까운 곳에 새로운 정착지가 정해지기를 바랐다.38
가을 대회가 끝난 뒤, 브리검 영은 선교부의 지도자들에게 교회의 자금으로 토지를 구입하도록 승인했다.39 조셉과 윌리엄은 빅아일랜드의 어느 곳을 정착지로 정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카우아이와 오아후의 지부들을 둘러보며 프랜시스에게 집합 장소로 추천할 후보지들을 계속 물색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은 조셉과 함께 오아후에 있는 라이에 농장 근처의 작은 지부를 방문했다가 혼자서 산책을 나갔다. 오아후섬 북동쪽 기슭에는 키가 큰 나무들이 우거진 산들이 이어져 있었고, 라이에 농장은 이 산맥의 아래에 있는 735만여 평의 땅에 자리했다. 라나이의 정착촌과 달리 라이에는 물을 구하기가 쉬운 곳이었다.
윌리엄은 울적하기도 하고 조금 외롭기도 한 마음에 옆에 있던 숲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는 여전히 울적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초지와 덤불 숲을 지나는 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쯤 그 길을 따라가던 끝에 윌리엄은 놀랍게도 브리검 영이 이 길을 걸어 올라오는 모습을 시현으로 보았다.
윌리엄은 마치 브리검이 정말로 거기 있는 것처럼 인사를 나눈 뒤 그와 함께 풀밭에 앉았다. 브리검은 이곳의 농장과 기름진 땅, 푸른 산들과 해변에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곳은 없을 겁니다. 윌리엄 형제님, 이곳이 바로 우리가 하와이 선교부의 본부로서 확보하고 싶은 땅입니다.”
브리검이 이 말을 마치자, 윌리엄은 혼자 남게 되었고 경이와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그는 하와이 성도들이 집합할 훌륭한 장소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다.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