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하나님의 약속이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살아가는 일
단순한 한 가지 문구를 통해 나는 하나님께서 내 축복사의 축복에 있는 내용을 포함한 그분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아직 그것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때로 영원한 관점을 지닌다는 것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위안도 되지만, 영원은 기다리기에 정말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가 그분 앞에 공존하는 ‘영원한 지금’에 사십니다.”1 이 가르침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서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지금의 내 모습뿐만 아니라 그러한 약속들이 영원한 시간 안에서 성취된 이후의 내 모습 또한 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남편이나 자녀가 없지만, 그분은 나를 아내이자 어머니로 바라보신다. 내가 비록 매일 인간적인 약점과 연약함을 보일지라도, 그분은 나를 영화롭게 된 온전한 존재로 보신다. 그분께서 나를 이처럼 영원한 역할을 맡은 존재로 바라보시기에, 나는 그러한 일들이 “마치”(예이롬서 1:11)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고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마치” 약속들이 이루어진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약속을 지키는 자”는 경전에 언급된 말은 아니지만, 나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현 중 이 말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경전은 약속이 담긴 책이다. 그분의 거룩한 성전은 약속의 집이다. 내가 그분과 맺은 성약은 내가 개인적으로 맺은 약속이다. 그분의 일은 약속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며, 간절하게 당신의 백성들에게 축복을 부어 주고 싶어 하신다.(교리와 성약 109:21 참조) 그분은 라헬을 기억하시고, 다윗을 구하셨으며, 사르밧의 여인을 먹이셨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고, 오래전부터 약속된 복음의 회복의 서막을 여셨다. 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분은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모세서 1:39) 참으로 경전 곳곳에서 “주님께서는 당신과 당신의 완전한 성품을 나타내셔서 … 인간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주저 없는 신뢰가 심어질 수 있게 하셨다.”(Bible Dictionary, “Faith”)
그분이 약속의 하나님이심을 생각할 때, 가끔은 내 삶에서 몇몇 약속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는 축복사의 축복문을 읽을 때나 다른 신권 축복과 성신의 속삭임을 되새겨 보면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사람들을 많이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약속이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세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하겠다.
1. 여러 약속들을 고려한다
하늘 아버지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믿기 위한 열쇠 중 하나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여러 약속들을 인지하는 것이다. 어떤 약속들은 다른 약속들보다 좀 더 흥미롭거나 중요한 것처럼 보여서, 우리는 자주 그런 약속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약속들이 이생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알지만, 우리는 필멸의 삶에서 그 약속들의 일부가 이뤄지기를 바라며 언젠가 완전히 성취되는 날까지 충실히 살아간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활이 만인에게 임하”고(니파이후서 9:22), “한 영혼[을 그분께]로 데려오”는 기쁨을 누리며(교리와 성약 18:15), “육체에 [박힌] 가시”를 빼내고(고린도후서 12:7), 영원한 결혼과 가족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승영에 이르러 우리의 하늘 부모님과 같이 되기를 고대한다.2
다른 약속들은 사소하고 단순할 수 있고 때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약속들은 필멸의 삶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하”는 것(교리와 성약 20:77), “[그분의] 은혜가 … 족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고린도후서 12:9), “세상에서 … 평화”를 경험하는 것(교리와 성약 59:23), “어떤 상황에 있든 행복한” 것 등이 있다.3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약속하신다.(요한복음 14:18)
그분의 약속은 그분의 권능과 사랑만큼이나 무한하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그분의 약속을 더 충분히 인식할 때, 그분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더 많이 깨닫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럼으로써 그분을 약속을 지키는 자로서 더 깊이 신뢰하게 될 수 있다.
2. 그분의 손길을 인식한다
나는 살면서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약속이나 내가 바라는 특정한 약속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금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해 주시는 것들을 간과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우리는 자신이 찾고 있는 것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취된 약속들을 찾아본다면, 오늘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주신 문들을 볼 것이며, 우리에게 “확신”을(앨마서 58:11)주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제일회장단 제2보좌이신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님의 가르침을 통해 주님의 임재하심을 깨달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배웠다. 그분은 매일 우리를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을 어떻게 목격했는지 매일 기록하라고 가르치셨다.4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매일같이 하루를 돌아보고 기록하는 일은 나에게 가장 많은 변화를 안겨 주었다. 이를 통해, 나는 주님께서 매일 나와 함께 걸으시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약속을 이루고 계셨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은 자기 삶에서 부족한 것들에 집중한다. 우리 중 대다수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기대치에 이르지 못했다고 느끼며 하루를 마친다.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과 돈, 힘, 용기, 희망, 신앙 등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에서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찬송가 “As Now We Take the Sacrament[이제 우리 성찬 취할 때]”에는 “당신의 변함없는 은혜와 풍성한 사랑 생각하오니“라는 가사가 있다.5 수년 동안 나는 성찬을 취할 준비를 하면서 내가 지난 주나 여러 주 전에 실수한 것들과 내가 보인 부족한 점에 집중하곤 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데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만 보였다. 하지만 이 찬송가 가사를 통해 영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지난 주 동안 그분의 “변함없는 은혜”와 “풍성한 사랑”을 어떻게 목격했는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취된 약속들이 보였다. 그분이 이미 나와 함께 계셨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분은 이미 나를 위로하고 강화하시며 능력을 부어 주셨다. 그분은 이미 약속을 지키셨다.
3.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맺으신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몇 해 전 성탄절에 나는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으신 약속을 얼마나 이루고 싶어 하시는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또 한 번의 명절을 외롭게 보낼 생각에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분이 나를 필요로 하시는 어떤 방식대로든 그분의 도구가 될 기회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매일 그날 그분의 사랑을 느낄 필요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또 내가 그분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알기 위해 그분께 간구했다. 나는 성신을 통해 기적을 경험했으며, 사소하고도 단순한 몇 가지 약속들이 실현되는 일에서 그분의 손에 들린 도구가 되는 기쁨을 느꼈다. 나는 그분의 도구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매일 기도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편을 선택하고 약속이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살아갈 때,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충실히 생활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에도 참을성 있게 기다릴 힘을 얻을 것이다. 사라처럼, 우리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기를 선택한다.(히브리서 11:11)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가운데(로마서 4:18)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도록(로마서 4:20) 노력한다.
“마치” 약속들이 이루어진 것같이 살아가는 것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드러날 것이다. 내 경우에 그것은 빨리, 그리고 정기적으로 회개하고 나의 그런 노력이 그분과 같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가 지금 하는 선택들이 내 남편과 가족을 축복할 것임을 아는 가운데 내가 이미 맺은 성약을 지킨다. 나는 외로움에서 “물러서[지 않을]”(교리와 성약 19:18) 힘을 받기 위해 간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북돋아 줄 기회를 찾는다. 나는 내가 자녀를 양육하기에 적절하다고 느끼는 가정을 지금 만든다.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려는 선택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때로 우리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앨마는 이렇게 간증했다. “그가 너희에게 하실 그의 약속을 다 이루실 것임이니, 이는 그가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그의 약속을 이루셨음이라.”(앨마서 37:17)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다. “그 하신 말씀을 하나도 빠짐 없이” 입증하실(앨마서 25:17) 하늘 아버지를 알고 신뢰하고자 노력할 때,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얼마든지 주실 것이다. 참으로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으며]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열왕기상 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