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그분의 이름을 명예롭게 함
2019년 11월


그분의 이름을 명예롭게 함

성약을 통해 정체성을 알고 소속감을 얻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부모는 새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지을 책임을 지니게 됩니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 여러분의 이름은 수 세대 동안 내려오는 조상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태어난 해나 지역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름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선지자 힐라맨과 그의 아내는 두 갓난 아들의 이름을 의미 있는 가족 이름인 니파이와 리하이라고 지었습니다. 힐라맨은 후에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 우리 시조의 이름을 너희에게 주었으니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너희가 너희의 이름을 기억할 때 그들을 기억하[고], … 어떻게 그 행한 바가 선하였다 일컬음이 되고 또 기록되었는가를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아들들아, 나는 너희가 선한 것을 행하[기를 원하노라].”1

니파이와 리하이는 자신들의 이름을 통해 조상의 선행을 기억할 수 있었고, 그들 역시 선을 행하도록 격려받았습니다.

자매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8살이든지 108살이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이러한 같은 목적들을 지닌 특별한 이름을 공유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 [우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2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겠다는 우리의 기꺼운 마음을 … 제일 먼저 침례 의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3 우리는 이 성약을 통해 항상 그분을 기억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성약을 기꺼이 지키려는 마음은 우리가 안식일마다 성찬을 취하고 다시 한번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축복의 기쁨을 느낄 때 새로워집니다.4

우리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은 우리의 개별적인 정체성을 나타내며, 우리가 지상의 가족에게 속하도록 해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침례를 받아 “거듭”났을 때,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해력이 확장되었습니다. “이에 이제 너희가 맺은 성약으로 인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자녀라 …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는 보라, … 그가 영적으로 너희를 낳으셨음이라. 이는 너희 말에 너희 마음이 주의 이름을 믿는 신앙을 통하여 변화되었다 함이니, 그러므로 너희는 그에게서 났[느니라].”5

따라서, 성약을 통해 정체성을 알고 소속감을 얻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사람의 자녀들에게 구원이 이를 수 있는 다른 아무 이름이나 다른 어떠한 길이나 방법도 주어지지 아니하[며], 다만 전능하신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하여서만 구원이 올 수 있[습니다].”6

예수님의 이름은 그분이 탄생하시기 오래전에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한 천사는 베냐민 왕에게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그의 모친은 마리아라 칭하여지리라.”7 그분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사업은8 아담과 이브의 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지상에 복음이 있었던 어느 때에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알려져서 그들이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무슨 근원을 바라보아야 할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9

지난해에,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자매들에게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는 일을 도움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라고 “선지자로서 간청”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몰몬경을 읽으면서 “구주를 이야기하거나 그분에 대해 언급하는 모든 구절에 표시”하도록 권유하셨고, 또“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 보”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여러분과 그들 모두가 구주께 더 가까워[지고] … 변화가, 심지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그의 약속의 열매를 인식하기 시작하셨을 것입니다.10

항상 구주를 기억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은 진리와 의를 위해 나아갈 힘을 줍니다. 우리가 많은 군중 속에 있든 우리의 행동을 아는 분이 하나님밖에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 있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우리가 받드는 그분의 이름을 기억할 때, 자기 비하성 비교와 오만한 판단은 우리 안에 자리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눈이 구주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성약을 기억하여 행할 때, 우리는 세상적인 걱정을 잠재우고, 자기 회의를 용기로 바꾸며, 시련의 시기에 희망을 얻습니다.

그리고 성약의 길을 따라 나아가는 중에 실족하거나 넘어진다면, 우리는 오직 그분의 이름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의 친절을 기억하면 됩니다. “이는 그에게 모든 권능, 모든 지혜와 모든 명철이 있음이요, 그는 모든 것을 깨달으심이며, 그는 회개하고 그의 이름을 믿을 자들에게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11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니고 “더 잘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의 이름보다 더 달콤한 말은 분명 없습니다.12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시기는 이제 지났습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저 일요일에 교회에 얼굴을 비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일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제 제자란 없습니다.”13

우리가 기꺼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든다는 것은 형식적인 선언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수동적인 약속이나 문화적 장치가 아닙니다. 통과의례도 아니며, 차고 다니는 이름표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반 위에 올려두거나 벽에 거는 글귀가 아닙니다. 그분의 이름은 우리가 “옷[으로] 입”고,14 마음에 기록하며, “[우리의] 얼굴에 새기”는 것입니다.15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 구주의 속죄 희생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이름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항상 기억하십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여인이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고 그 태에서 난 아들을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참으로 그들은 잊는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집이여,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보라, 내가 너를 나의 손바닥에 새겼[느니라].”16

조지 앨버트 스미스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언젠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 여러분이 [그러한] 이름을 갖고 … 행한 일을 보고할 특권과 의무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17

신중하게 지은 니파이와 리하이의 이름처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는 사실이 이야기되고 기록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기꺼이 받들기로 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명예롭게 합니까?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친절과 구속하시는 권능에 대한 “종[이자] 증인”입니까?18

얼마 전에, 저는 몰몬경 오디오를 듣고 있었습니다. 니파이후서의 마지막 장에서, 저는 니파이가 하는 어떤 말을 그동안 읽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기록 전반에 걸쳐서, 니파이는 “구속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하나님의 양”, 그리고 “메시야”에 관해 가르치고 간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록을 마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명백함을 자랑하며, 나는 진리를 자랑하며, 나는 나의 예수를 자랑하노니, 이는 그가 나의 영혼을 지옥에서 구속하셨음이라.”19 이 구절을 듣자 저는 기쁜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그 구절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저는 마치 제 이름을 듣고 반응하듯, 그 구절을 알아보고 그것에 반응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기꺼이 내 이름을 받들고자 하는 이 백성에게 복이 있도다. 이는 내 이름으로 그들이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니, 그들은 나의 것이니라.”20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으로서, 우리가 사랑과 헌신과 선행으로 그분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며 “기쁘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 받들”기를 바랍니다.21 저는 그분이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참으로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이심을 간증합니다.22 그분의 거룩한 자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