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초상
레이철 라이트홀
미국 캘리포니아
지금은 재와 잔해더미만 남은 레이철의 옛 집터를 걷다 보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화재로 캘리포니아주 파라다이스가 모두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은 레이철의 신앙을 알게 될 것이다.
리처드 엠 롬니, 사진작가
이 지역은 화재가 빈번한 곳이기에, 그날 아침 연기가 자욱한 하늘을 보면서도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 지역으로 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파라다이스에 살았던 사람들, 특히 협곡 옆에 사는 사람들은 전에도 대피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풍으로 불이 너무도 빠르게 번졌고, 그 바람에 불길은 공무원들이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우리 지역을 덮치고야 말았다. 우리 대부분은 마을이 사방에서 불타고 있을 때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상황은 한 시간도 안 되어 “약간 우려”에서 “비상사태! 탈출!”로 바뀌었다.
우리는 혼란 속에서도 신속하게 대피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시내를 벗어나기 위해 불길을 뚫고 운전해야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차를 몰고 나가자 곳곳에 연기가 자욱했다. 불씨가 마을 곳곳을 날아다녔고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수많은 이가 불이 붙은 자신의 집이나 이웃집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우리 집이 타버릴지, 아니면 그대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운전하는 동안 나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우리가 안전하게 대피하고 우리 집이 무사히 남아 있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우리는 그 집에 겨우 2년 정도밖에 살지 않았다. 그 집은 우리 가족이 힘을 모아 개조한 집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조리대와 바닥을 개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그 집을 “숲속의 오두막”이라고 불렀다. 나는 우리 집을 사랑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며칠 후, 우리는 집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름답게 가꾸어 온 그 집이 홀랑 불에 다 타 버렸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 집에서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다. 우리 가족이 그 집에서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이번 화재로 내가 보고 들은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큰 신앙”이라고 부르는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간증이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어떻게 관여하고 계시는지를 목격했다. 이런 “큰 신앙”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쌓을 수 있다.
그것은 열 처녀의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등잔에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지 않다면, 위기가 닥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이번 화재와 같이 재난이 닥치면, 그때는 등잔에 기름을 채우기 시작할 때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차에 타서 아이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할 때와 같다. 아이들이 “전 안전벨트 필요 없어요. 엄마가 비명을 지르면, 그때 맬게요!” 하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위기가 닥치면 그럴 시간이 없다.
화재 후에, 나는 “등잔에 기름”을 채웠던 이곳 사람들은 그다지 큰 고통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여전히 슬퍼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보고 계시며 삶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고 계심을 여전히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화재로부터 그들의 집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한 분이심을 안다. 하지만 상황이 공평하지 않아도 그들은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큰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이 화재에서 그분의 손길을 보았다.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기적으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여기 파라다이스에 백만여 개의 작은 기적들을 가져다주셨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곳에서 그분의 손길을 볼 수 있다. 이번 일은 시련이기도 하지만, 기적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을 배우도록 도와주셨다.
“큰 신앙”이 있다고 해서 상실에서 슬픔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경험에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지켜보는 일이다. 나는 내 일로 슬퍼하기보다 그들의 일로 그들과 함께 더 많이 슬퍼한 것 같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힘든 일이었으며, 우리도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캘리포니아 치코 스테이크 회원들은 화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스테이크 회원들은 대피가 있던 날, 스테이크 센터에 온 모든 사람에게 단 몇 시간 만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으며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또한 전 세계 성도들이 우리를 위해 기부한 온갖 종류의 물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축복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후기 성도인 게 너무도 좋다. 그 사실을 목청껏 외치고 싶다!
불이 났을 때, 나는 많이 기도했다. 슬퍼할 수 있어야 했고, 자녀들에게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르쳐 주실 아름다운 것들을 가지고 계셨다. 나는 “깨끗한 슬픔”의 중요성을 배웠다. 이것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는 슬픔을 느끼면서도 어둠이나 두려움 속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분노나 수치가 우리의 마음에 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방식으로 슬퍼한다. 이런 방식으로 슬퍼하는 것은 아름답고, 마음을 치유한다. 그것은 오히려 더 사랑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는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대답보다 의문이 더 많다. 파괴와 손실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우리는 파라다이스가 얼마나 빨리 재건될지, 과연 재건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수년 동안 함께 일하시면서 나를 이 상황에 대비하게 하셨다. 나는 인생에서 겪어 온 다른 “재난들” 덕분에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아름답게 인도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목적과 의미가 온전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면 나는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일은 늘 시련을 통해 배움을 얻을 때 일어났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게 이끄심으로써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신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그분이 항상 내 곁에 계심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