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브렛 내트레스 장로
칠십인 총관리 역원
케이 브렛 내트레스 장로와 그의 아내인 쇼나 리 애덤슨 내트레스 자매는 자신들을 일컬어 “완전해지는 순간을 구하는 불완전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내트레스 장로에 따르면, 그들은 살아오면서 그런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했으며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구주와 속죄에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내트레스 장로는 훌륭한 부모인 데이비드와 주디 소렌슨 내트레스 사이에 태어났으며, 그는 어머니가 매일 가족들에게 몰몬경을 읽어 주시던 것을 기억한다.
대학 시절, 한 번은 그가 휴일을 맞아 집에 머물던 때였다. 그는 다가오는 기말고사에 집중하고 있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몸이 괜찮은데 기분이 편치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봉사를 해야 한단다.”
브랫 장로는 눈 치우는 삽을 집에 있던 트럭 뒤 칸에 싣고 와드에 홀로 되신 자매님들의 집앞 진입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다녔다. 그러자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는 말한다. “저는 제 자신과 기말고사에 너무 집중해 있었습니다. 삶의 진정한 목적이 타인을 돕는 것이라는 사실은 잊은 채 말입니다.”
내트레스 장로는 1965년 3월 4일, 미국 아이다호 주 포카텔로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미국 유타 주 리하이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그와 다섯 명의 형제자매는 작은 가족 농장에서의 삶을 경험했다.
그는 인근 고등학교의 졸업반 시절에 같은 학년에 다니던 미래의 신부를 만났다. 그가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선교부에서 봉사를 마친 뒤 그들은 1987년 4월 24일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결혼했다. 그리고 일곱 자녀를 두었다.
내트레스 장로는 유타 주 프로보에서 브리검 영 대학교에 다녔으며 1990년에 유타 대학교에서 물리 치료로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는 형제 중 하나인 데이비드와 함께 Advanced Health Care Corp.를 설립했다.
그는 와드 청남 회장, 감독, 스테이크 청남 회장, 스테이크 회장, 지역 칠십인 등 교회의 여러 부름에서 봉사했고, 부름을 받을 당시에는 새로 조직된 애리조나 길버트 선교부를 감리하고 있었다.